"비정규직들은 일일이 발로 걷고 손으로 툭툭 치는 거고. 정규직은 뭐 타고 가잖아요.”
[이코노미21] [박수영] 지난 8월 19일에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언더 그라운드”는 ‘버스를 타라(2012)’, ‘그림자들의 섬(2014)’를 통해 한진중공업 노동 운동을 조명한 김정근 감독의 신작이다. 이번 작품이 선택한 현장은 가장 일상적인 대중교통수단인 지하철이다.
영화는 점층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 초반 30분은 가장 일상적인 공간인 지하철 속에서 거의 보이지 않는 “언더 그라운드”인 정비창, 기관사, 관제실, 청소 노동자의 노동현장을 그야말로 ‘가감 없이’ 전달한다. 이 부분까지의 노동자들은 비록 눈에 잘 띄지 않고 몸은 힘들어도 자신이 무언가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곳곳에서 드러낸다.
초반 30분이 넘어간 시점부터는 이 구조에 균열이 가기 시작한다. 모든 운행이 끝난 후 터널과 선로 공간을 주로 조명하는 중반부는 같은 일을 하면서도 전혀 다른 작업방식을 보이는 구조를 드러냄으로써 한 단계 더 “언더 그라운드”로 진입한다. 밝은 파랑과 어두운 파랑으로 구분되는 옷을 입은 노동자들은 색뿐이 아닌 작업 형태에서도 확실히 구별된다. "비정규직들은 일일이 발로 걷고 손으로 툭툭 치는 거고. 정규직은 뭐 타고 가잖아요. 그런 거 보면 누가 비정규직이고 누가 정규직인지 다 티 나요." 현장견학을 온 한 취업특성화고 학생의 얘기이다.
비정규직보다 더욱 “언더 그라운드”인 하청 노동자의 이야기까지 진행한 영화는 여기도 아직 바닥이 아님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전 시기 무인매표기의 등장으로 일자리를 잃게 된 매표소 직원들의 인터뷰로 시작한 후반부는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것처럼 보이는 정규직, 그 중에서도 기관사에게 시선을 돌린다. 영화 초반 새벽 4시에 출근해 마감 시간까지 열차를 운행했던 한 기관사는 이번에는 대낮에 회사로 출근한다.
그가 찾아간 코레일 인재개발원은 적성검사장. 이 곳에서 화면에 나타나는 도형에 맞춰 버튼을 누르는 훈련을 한 기관사는 훈련 종료 후 무인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간다. “전문직이라서 외주화, 비정규직화가 불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기관사의 인터뷰는, 그래서 더욱 아프게 다가온다.
정규직, 비정규직, 하청, 무인화 등 계속 이어지는 “언더 그라운드”의 노동현장은 이제 그 곳으로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는 취업특성화반 학생들의 이야기와 맞물리며 더욱 큰 울림을 가져온다. 영화 초반 비록 지금은 얼굴도 모르는 기관사가 운전하는 지하철을 타고 등교하지만 나중에는 “머스탱을 타고 폼나게 달리는” 꿈을 얘기했던 소년은, 현장견학을 통해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티 나는” 현장을 경험하게 되고, 결국 “하청 기업”의 “비정규직”으로 취업하여 자동화기계에 맞춰 버튼이나 누르는 “버튼맨”이 되는 길을 선택하게 된다. 영화 마지막 “전문직 노동자”인 기관사가 받은 직업 훈련 역시 “도형에 맞춰 버튼을 누르는” 행위인데, 이 끝없이 “언더 그라운드”로 추락하고 있는 노동의 경향은 어느 누구에게도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을 명백히 보여준다. 구의역 사건, 부산지하철 기관사의 자살 등 극단적이고 이슈화된 사건을 전혀 다루지 않은 점 역시 이러한 폭력적 경향의 일상성을 더욱 잘 드러낸다. [이코노미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