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11-21 16:31 (목)
[여행]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천리포수목원
[여행]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천리포수목원
  • 장한규 자유기고가
  • 승인 2022.04.07 15:39
  • 댓글 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국제수목학회, 아시아 최초‧세계 12번째 ‘세계의 아름다운 수목원’으로 지정
전체 면적 18만평…일반인들에게 개방된 공간인 밀러가든은 2만평에 불과
보유종 1만6860종으로 국내 최다…국내와 해외에서도 다양한 수종 들여와
민병갈 원장, 천리포수목원 조성 공으로 대통령으로부터 금탑산업훈장 받아

[이코노미21] [장한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수목원, 이 말은 천리포수목원 주차장에서 수목원으로 들어가는 입구에도 있고 수목원을 소개하는 작은 팸플릿에서도 볼 수 있다. 얼마나 자부심이 대단하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수목원이라고 자랑할까?

나는 천리포수목원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아름다움은 뛰어난 풍광에서도 찾아볼 수 있지만, 그 안에 담겨 있는 콘텐츠와 사람들의 마음까지를 포함해서 살펴볼 때 진정으로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천리포수목원의 비전 중 하나가 ‘한국의 자연미를 살린 전시 기법을 바탕으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수목원을 추구한다’이다. 이 비전에서 수목원 지킴이들의 간절한 바람과 의지가 생생히 느껴진다. 2000년에 국제수목학회로부터 아시아 최초이자 세계에서 12번째 세계의 아름다운 수목원으로 지정됨으로써 이를 입증하였다(국제수목학회의 정식 지정명칭은 Arboretum Distinguished for Merit이다. 한국어로 번역하자면 ‘매우 장점이 두드러진 수목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목원 설립자이며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한 민병갈 원장은 이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수목원이라 번역하고 그렇게 불러주기를 원했다).

수목원 전경
수목원 전경

천리포수목원은 규모가 그렇게 큰 수목원이 아니다. 국립광릉수목원이 600만평인 것에 비하면, 천리포수목원은 전체 면적이 18만평이며 그 중에서 현재 일반인들에게 개방되고 있는 공간인 밀러가든은 2만평에 불과할 정도로 규모가 작다. 이처럼 규모는 작지만 국립광릉수목원이 5000여종을 보유하고 있는데 비하여 천리포수목원은 국내 최다인 1만6860종(2020년 10월 기준)을 보유하고 있어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수목원이 된 것이다.

이처럼 보유종이 많은 것은 천리포수목원의 비전 및 역사와 맞닿아 있다. 수목원의 비전 중 하나가 ‘국내외 식물을 지속적으로 수집하여 종다양성을 확보하고 특성화속을 확대한다’이다. 이 수목원은 1970년부터 조성되기 시작하였는데, 부지는 비록 좁더라도 빠른 시간내에 세계적인 규모로 수목원을 만들려면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다양한 수종을 들여올 필요가 있었다. 수목원을 조성한지 30년이 지난 2000년에는 목련류, 감탕나무류(호랑가시나무류), 동백나무류, 무궁화류, 단풍나무류 등 5가지 수종에서 세계적인 보유량을 확보하여 세계 최고 수준의 수목원으로 인정받게 된 것이다. 이외에도 현재 수국, 작약, 억새, 비비추 등 다양한 나무와 꽃들로 주제별 정원을 조성하여 운영하고 있다.

설강화
설강화

보유종이 많은 만큼 사시사철 색다르게 피어나는 꽃들의 향연을 볼 수 있어 어느 계절에 가더라도 눈이 호강한다. 금년 2월 중순에 들렀을 때는 아직 봄이 일렀는지 복수초와 납매를 볼 수 있었고 하얀 눈이 내린 것 같다는 설강화(snowdrop)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지난 해 가을에는 기념관 뒤편에서 벌새를 만나는 행운을 얻기도 했다.

벌새
벌새

못 내 아쉬워 목련과 동백이 지천으로 피어있기를 기대하며 4월 초에 수목원을 다시 방문하였다. 그렇지만 아직 철이 일렀는지 목련들이 꽃망울을 터트리려고 마지막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수국과 작약이 만개할 6월말 쯤 다시 한번 다녀오고 싶다.

1만7000여종 중에서도 천리포수목원에는 세계 식물학계에서 인정받는 두 개의 명품나무가 있다. 우리나라 고유종인 완도호랑가시와 외국산 변종 목련 라스베리 펀이다. 완도호랑가시는 1978년 민병갈 원장이 처음으로 발견하여 전 세계에 알렸고, 큰별 목련 라스베리 펀도 파종 실험 중에 얻은 변종으로 2종 모두 세계 식물도감에 올려 있다.

완도호랑가시나무
완도호랑가시나무

천리포수목원은 민병갈 원장(Karl Ferris Miller)과 떼어놓고 설명할 수가 없다. 그는 1921년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20세 중반인 1945년 9월 해방과 더불어 한국에 온 이후 평생 한국인으로 살면서 2002년 소천할 때까지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한국과 천리포수목원에 바쳤다. 그는 58세인 1979년에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하였고 평소에도 입버릇처럼 ‘내 전생은 한국인’이라고 말하며 한국을 언제나 우리나라라고 말할 정도로 한국을 사랑하였다.

그가 천리포수목원을 조성한 공이 얼마나 컸는지는 임종을 한 달 앞두고 2002년에 대통령으로부터 금탑산업훈장을 받은 사실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2005년에는 국립 광릉수목원 내 숲의 명예전당에 외국인으로서는 유일하게 동판 초상이 헌정된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숲의 명예전당에는 나무를 심고 숲을 가꾸는 데 혁혁한 공로를 세운 사람들의 모습과 업적을 세겨 놓았다. 여기에 동판 초상이 헌정된 사람은 박정희 전 대통령, 64년간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종자채집과 품질기준을 정한 김이만 나무할아버지, 세계적인 임목육종학자인 현신규 박사, 전남 장성 축령산에 543ha의 삼나무와 편백나무 숲을 조성한 임종국 독림가, 국내 최초로 대규모 활엽수 단지를 조성하여 사회에 환원한 최종현 전SK회장, 그리고 민병갈 원장 총 6명이다.

민병갈과 천리포수목원의 첫 만남은 그가 1962년 천리포에 황량한 모래땅 3천평을 구입하면서 시작되었다. 처음 구입한 부지는 현재 기념관 바로 앞의 논과 주변 부지로 남아 있다. 그는 1970년부터 수목원을 조성하기 시작하였는데, 그가 한국은행 고문과 증권사 고문으로 근무하면서 벌어들인 모든 재산과 정성을 수목원에 쏟아부었다. 그 결과 수목원을 조성한 지 30년만인 2000년에는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인정받는 수목원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그가 수목원과 나무를 얼마나 사랑했는가는 임 준수가 지은 『나무야 미안해』라는 책에 자세히 소개되어 있다. 그의 생전에는 수목원 안에 잔디밭이나 꽃길이 없었고, 통행로를 만들다가도 나무에 상처를 주게 되면 작업을 중지했다고 한다. 사람들이 너무 많이 다니게 되면 수목원을 훼손할까 봐 그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수목원을 지인들과 후원회원들에게만 제한적으로 공개했다. 2009년 3월에서야 일반인들에게도 수목원을 개방하여 이제는 누구나 자유롭게 수목원을 방문할 수 있게 되어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지금도 수목원 중 밀러가든만 공개되어 있고 나머지 대부분은 여전히 비밀의 정원으로 남아 있다.

추모공원
추모공원

수목원을 방문하면 우리는 호수 옆에 있는 추모공원에서 민병갈을 만날 수 있다. 추모공원에는 자그마한 동상이 있고, 오른쪽에 그가 최초로 발견하여 세계에 알린 완도호랑가시와 왼쪽에 그의 어머니가 좋아했고 어머니 사후에 문안인사를 드렸다는 목련 라스베리 펀이 있다. 그는 사후 2002년에 수목원 내에 안장되었다가 2012년에 동상 앞에 있는 태산목 리틀 잼 아래에 수목장을 해서 우리는 언제든지 그를 만나볼 수 있다. “나는 3백년 뒤를 보고 수목원 사업을 시작했다. 나의 미완성 사업이 내가 죽은 뒤에도 계속 이어져 내가 제2 조국으로 삼은 우리나라에 값진 선물로 남기를 바란다”라는 그의 말이 생생히 들리는 듯하다.

천리포는 태안반도에서 안면도에 이르는 태안해안국립공원의 북쪽에 위치하고 있어 여기저기 볼거리가 아주 많다. 근처에 해안사구 가운데 유일하게 천연기념물(제431호)로 보호되고 있는 신두리해안사구가 있다. 또한 천리포를 중심으로 십리포(의항해변), 백리포, 천리포, 만리포로 이어지는 소원길을 차로 드라이브하거나 산책을 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잠깐 짬을 내어 수목원 바로 앞에 있는 유류피해극복기념관도 들러보면 좋겠다. 이 기념관은 2007년 12월 7일 기름유출사고로 태안해안이 오염되었을 때 전국에서 달려온 연인원 123만명의 자원봉사자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기름을 닦아냈던 감동적인 상황을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다.

십리면 4㎞인데 바닷가가 얼마나 크길래 천리 만리라고 했을까 궁금해서 차로 십리포부터 만리포까지 구석구석 돌아 본 적이 있다. 만리포가 옛날 명나라 사신을 환송할 때 수중만리 무사항해를 기원하던 전별식을 했던 곳이라는 말에서 유래되었다는 표지판을 보고 고개가 끄떡여지긴 했지만 한편으로 이 동네 사람들의 과장과 해학이 느껴져서 정겹다. [이코노미21]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2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김숙 2022-04-08 11:25:46
낭새섬이 바라다보이는 서해안 내 마음의 보물같은 수목원!
많은 정보가 담긴 친절한 글입니다.
나무하고 대화하러 또 가야겠네요.

강상민 2022-04-07 20:07:07
가보고 싶게 만드는 글이네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