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을 계속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본사 요구 서류에 사인
신보 시설투자 용도 대출 10억, 권리금 3억 등 빚만 남아
[이코노미21 김창섭] 로젠택배에서 20여년 택배기사로 일하다 지점을 매수해 8년간 용인기흥지점을 운영해온 신 씨는 지난해 봄 로젠택배 측으로부터 청천벽력 같은 통보를 받았다.
지난해 4월 말로 신 씨와의 계약을 해지하고 5월부터 로젠 본사에서 일방적으로 정한 사람에게 기흥지점의 모든 권리를 넘겨준다는 것이다.
신 씨는 2014년 11월경부터 로젠택배 기흥지점을 운영해 왔고 이전에는 택배기사로 일했다. 이후 권리금 등 3억원 가량을 들여 로젠의 기흥 지점을 매수해 8년이 채 안되는 기간 동안 매출을 5배 넘게 성장시켰다.
이상기류가 감지된 것은 2021년 6월 경부터다. 신 씨는 로젠 본사로부터 한 번도 본 적 없는 정기감사를 받았다. 이후 본사 측은 신 씨의 배임·횡령을 의심하는 내용이 포함된 서류에 사인을 요구했다. 서류엔 신 씨가 사업소득세 신고를 안하고 그 소득세 삭감분을 유용했다는 내용도 들어 있었다.
신 씨는 “본사와 지점, 택배기사들 간의 사업구조를 보면 불가능한 논리다”라고 주장한다. 신 씨에 따르면 애초 로젠 본사와 신씨가 세금계산서를 주고 받은 다음 신씨가 기사들과 세금계산서를 주고 받는다. 신 씨는 경제적 상황이 어렵고 고령인 기사들에게 원천징수로 3.3%만 공제했다고 말했다. 또 기사들이 주민번호로 사업소득 신고를 꺼려 신 씨 사업자 앞으로 소득이 잡힐 수 밖에 없었다면서 결국 자신이 부가세, 소득세 등을 모두 냈다고 강조했다. 즉 기사들의 소득세를 신 씨가 모두 대납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로젠 측이 사인만 하면 이번 감사는 끝난다며 사인을 종용해 을의 위치인 신 씨는 사업을 계속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서류에 사인했다고 말한다.
이에 대해 로젠택배 측은 “택배기사들의 부가세를 대납했다는 것은 신 씨의 주장이다. 현재 신 씨가 제기한 소송에서 당사는 지점장이 영업소장에게 지급해야할 정산금에서 부가세상당액을 공제했다는 증거를 재판부에 제출했다”고 답변했다.
이후 2021년 추석 연휴가 끝나고 기흥 지점에 코로나 환자가 다수 나오면서 배송을 전혀 못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신 씨는 본사에 보고했고 로젠 측도 기흥지점을 일시 폐쇄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다음날 10톤탑 차량으로 4대 정도가 기흥지점에 도착했다. 그러면서 로젠 측은 무조건 신씨에게 책임지겠다는 내용의 사인을 요구했다. 신 씨는 요구에 응할 수 밖에 없었다. 그로 인한 피해는 1억원이 넘을 것이란 신 씨의 추산이다.
신 씨는 “본격적인 본사의 괴롭힘은 그 뒤부터 시작됐다”고 말했다. 이후 로젠 측은 끝났다던 감사 내용의 세금 부분을 다시 해명하라면서 감사 몇 년 전에 있던 일들까지 해명을 요구했다. 또 서비스지표가 안 좋다며 시인하라고 요구해 신 씨는 또다시 이에 응할 수 밖에 없었다.
결국 지난해 로젠 측은 신 씨와 재계약을 안 하겠다고 통보했다. 2022년 5월부로 본사에서 일방적으로 정한 사람에게 기흥지점의 모든 권리를 넘겨줬다는 것이다.
연 매출 100억원 목표가 바로 코앞이었던 신 씨의 사업장은 졸지에 매출 0인 회사가 됐다. 여기에 더해 신용보증기금의 시설투자 용도 대출만 10억원이 넘는데 그 빚까지 떠안아야 하는 신세로 전락했다.
신 씨는 “(지점을) 계약해서 운영하고 있는 신규지점이 천운을 타고 나지 않는 한 두 달 만에 부지 구하고 그 시설을 전부 완료할 수는 없다”며 훨씬 이전부터 자신을 배제하고 로젠의 지점 교체가 진행된 것이 아닌지 의심한다. 통상 신규 사업에는 부지 확보 및 시설투자에 상당한 기간과 자금이 소요된다. 신 씨도 사업이 안정화되는데 수 년이 걸렸다. 상식적으로 로젠의 이익을 위해서도 기존 지점이 사소한 문제를 시정하고 사업을 영위하는 것이 안정적이며 유리하다. 그럼에도 신규 가맹점과 계약한 것은 미리 준비가 됐어야 가능하다는 것이다.
또한 로젠은 이 기간 기흥점 가맹 계약 기간을 2년에서 1년으로 줄여 갱신했다. 신 씨는 “각종 서류에 사인을 요구하고 내용증명 등을 발송한 것으로 봐선 로젠 측이 분쟁에 대비해 소송 준비를 해 왔던 것이 아닌가”’라며 의심한다.
신 씨는 “(로젠이) 법의 약점을 파고들어 자신에게 사인받은 서류를 통해 민사만 이긴다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며 “개인이 아무리 변호사를 통한다 해도 거대 기업과 싸움이 이렇게 상대가 안 되고 힘들 줄은 몰랐다”고 호소했다.
반면 로젠택배 측은 “서울서부지방법원 사건에서 재판부는 적법한 계약해지로 판단했다”며 “(신규지점과의 계약도) 회사 내부기준에 의거 신규지점장과 계약을 체결했으므로 적법한 절차를 거쳤다”는 입장이다. [이코노미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