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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준와처] 미 대형은행의 탐욕...SLR 규제 철폐를 원하는 ISDA의 ‘꼼수’
[연준와처] 미 대형은행의 탐욕...SLR 규제 철폐를 원하는 ISDA의 ‘꼼수’
  • 양영빈 기자
  • 승인 2024.04.02 12:31
  • 댓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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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DA "eSLR 규제에서 미국국채 영구히 면제해 달라"
은행에 대한 적절한 규제 없다면 경기 변동 더욱 커져
은행, 국가로부터 신용창조 권능 부여 받아
국채를 자산에서 제외한다는 것은 은행이 마음만 먹으면
엄청난 레버리지를 일으킬 수 있음을 의미
금리인하 예상돼 장기 국채 매입하면 큰 수익 얻을 수 있어

[이코노미21 양영빈] 은행권들의 로비단체라 할 수 있는 ISDA(International Swap and Derivative Association)는 올해 3월 초에 연준(Fed), 연방예금보험공사(FDIC), 통화감독청(The Office of the Comprtoller of the Currency, OCC)에 대형은행들에 부과하는 eSLR(강화된 SLR) 규제에서 미국국채를 영구히 면제해 달라는 내용의 공개 서한을 보냈다.

SLR(the supplementary leverage ratio)은 은행의 레버리지를 규제하는 중요한 지표이며 은행의 자기자본/총자산 비율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유지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은행은 전통적으로 단기채무를 지고 장기채권을 보유하는 "Borrowing short, lending long"을 기본적인 수익모델로 삼는다. 은행의 단기 채무는 거의 대부분 예금이고 장기 채권은 기업 및 가계 대출 채권과 국채, MBS 등의 증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규제 당국이 SLR 비율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맞추도록 한 것은 은행은 기타 금융기관과 다르게 신용을 창조하는 권능을 당국으로부터 부여받았기 때문이다. 은행은 경기 침체기에는 대출을 줄이고 활황기에는 대출을 늘리기 때문에 은행의 신용창조는 경기변동에 순행적인 특징을 가진다. 규제 당국의 적절한 규제가 없다면 은행의 행동 유인은 경기 변동을 더욱 크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부동산이 활황일 때는 열심히 주택담보 대출에 나서고 불황일 때는 주택담보 대출을 줄이거나 회수해 시장의 변동성을 키우는 주범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은행의 행동 유인이 가져오는 폐해를 방지하기 위해 규제 당국은 오래전부터 다양한 규제를 도입했고 SLR은 금융위기 이후 특히 강화됐다.

은행의 신용 창조와 국채 매입

은행은 예금 형태로 단기 채무(낮은 금리)를 지면서 장기 대출(높은 금리)을 제공한다. 은행 경영의 핵심은 장기 대출이 회수될 때까지 만기가 짧은 단기 부채를 만기까지 안정적으로 롤오버하는 것이다. 장기 대출은 회수하기까지 시간도 많이 남아 있어 도중에 발생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위험을 생각한다면 리스크가 높을 수밖에 없다. 은행은 바로 이 위험을 지는 것에 대해 리스크 프레미엄 또는 예대 금리차를 요구하게 된다.

은행이 일반적인 금융기관과 다른 것은 바로 신용창조 권능을 당국으로부터 부여 받은 것에 있다. 은행은 자신의 대차대조표를 확대함으로써 대출을 완성한다. 이것은 대출을 받는 고객과 은행이 서로 차용증서(IOU,I Owe You)를 교환하는 것과 동일하다.

다음은 은행이 대출하기 이전과 이후의 대차대조표를 보여준다.

은행의 IOU는 예금이고 은행으로부터 대출받은 고객의 IOU는 대출이다. 대차대조표를 보면 각각의 자산에 서로의 IOU가 있는 것을 볼 수 있고(또는 서로 IOU를 교환) 은행 대출의 독특한 특징이다.

은행의 신용창조(Bank Credit)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첫째, 은행이 국채, MBS 등의 증권을 매입하는 경우가 있다. 둘째, 기업이나 가계에 대출을 하는 경우가 있다. 두 번째 경우는 여러 번 살펴봤으므로 첫 번째 경우를 보도록 하자.

은행이 정부 국채 입찰에 참여해서 국채를 매입하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 등장인물은 정부, 연준, 은행, 민간 군수업체이며 대차대조표에서 중요한 항목만 나타냈다.

① 대차대조표 초기 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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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은행이 정부로부터 국채를 매입한 직후 대차대조표

연준(중앙은행)은 정부와 민간 은행의 은행이므로 정부와 민간의 거래(국채매입)는 연준을 통해 이루어진다. 은행은 지급준비금을 줄이고 그 자금으로 국채를 매입하며 정부는 연준 TGA 계좌에 국채 대금이 들어온다.

③ 정부재정지출

정부가 국채를 발행한 것은 재정지출에 쓰기 위함이다. 따라서 정부는 TGA 잔고를 사용해 재정지출을 하게된다. 노란색은 ②의 대차대조표와 바뀐 것을 강조한 것이다. 정부는 민간 군수업체에게서 포탄을 구입하는 것에 재정지출을 하는데 정부와 민간은 직접 거래하는 것이 아니라 연준(중앙은행), 은행을 거쳐서 거래가 완성된다. 연준의 지급준비금이 줄었다가 다시 늘었고, TGA는 늘었다가 다시 줄었다.

④ 최종 대차대조표

최초 대차대조표 ①과 비교해 보면 은행은 국채와 예금이 증가했고 연준은 변화가 없음을 알 수 있다. 최종 대차대조표에서 은행은 단기 부채로 예금을 증가시켰고 장기 자산으로 국채를 늘렸다. 은행이 고객에게 대출할 때는 은행과 고객의 1:1 관계에서 IOU 교환이 완성됐다면 이번에는 IOU 교환이 조금 복잡하게 정부와 민간 군수업체로 나뉘어져 있다.

은행의 증권 매입과 SLR

은행이 증권(국채)을 매입하면 매입 전후의 대차대조표는 다음처럼 변화한다.

은행의 자본과 대출은 그대로 있지만 보유 증권과 예금이 같은 폭 만큼 상승하게 된다. ISDA가 요구한 것처럼 국채를 SLR 계산식에 나오는 자산에서 제외한다면 은행의 SLR 비율은 자본/대출만 계산하므로 변화가 없게 된다. 이것은 은행이 마음만 먹으면 어마어마한 레버리지를 일으킬 수 있음을 의미한다.

SLR 비율 규제는 코로나 팬데믹 당시 1년간 면제를 했었는데 당시 은행의 증권 매입을 보면 SLR 규제 면제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좀 더 자세히 알 수 있다. SLR 규제 면제가 시작된 후 은행들의 증권 매입은 기존의 추세선을 벗어나는 급격한 증가를 보였다. 면제 기간 동안 1조달러의 증권을 매입했다. 재미있는 것은 SLR 규제가 다시 시작한 다음 1년간도 추가로 8000억달러가 늘었다는 사실이다.

출처=연준(https://fred.stlouisfed.org/graph/?g=1jmq3)
출처=연준(https://fred.stlouisfed.org/graph/?g=1jmq3)

이것은 은행들이 국채를 매입할 때 반드시 SLR 규제를 폐지하지 않더라도 높은 수익률을 예상하고 투자를 하는 은행들의 행동 양식과 더 밀접한 관계를 가짐을 보여준다.

다음은 은행들의 미실현 수익(손실)을 보여준다. 2020년 팬데믹 당시에는 미실현 수익이 있었지만 2021년부터 미실현 수익은 급감했고 2022년부터는 손실로 돌아 선 것을 볼 수 있다. SLR 면제로 인해 은행은 무분별하게 증권을 매입했고 금리인상이 시작되기도 전인 2021년 4분기부터 바로 손실로 돌입했음을 볼 수 있다.

출처=FDIC(https://www.fdic.gov/analysis/quarterly-banking-profile/qbp/2023dec/chart8.xlsx)
출처=FDIC(https://www.fdic.gov/analysis/quarterly-banking-profile/qbp/2023dec/chart8.xlsx)

은행 보유 증권의 미실현 손실 증가는 은행에 규제를 풀어주었을 때 은행이 어떻게 행동하는 가를 보여준 대표적 사례라고 할 수 있다.

ISDA의 노림수는?

ISDA가 SLR 규제를 면제하자는 주장의 가장 큰 이유는 미국 국채시장의 규모는 23조달러로 커졌는데 딜러들의 인수능력은 과거 10년 전 수준에 머물고 있다는 것이다. 즉 딜러 은행의 국채 인수 능력을 제고하기 위해 SLR 규제를 폐지하면 딜러 은행들은 레버리지 비율에 대한 고민없이 신규로 발행되는 국채를 인수할 수 있어 전세계 금융시장의 버팀목인 미국 국채 시장 안정성에 큰 도움이 된다는 논리다.

ISDA의 요구는 겉으로는 미국 국채 시장 안정성을 강조하지만 거대 은행의 탐욕이 배경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지금은 누구나 향후에 금리가 인하될 것이라는 것을 예상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장기 국채를 매입해 두면 큰 수익을 얻을 수 있게 된다. 그러나 대형은행들은 SLR 규제를 강화한 eSLR로 인해 장기 국채를 대량으로 매입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 ISDA의 바람대로 된다면 이것은 대형은행들에게 또 하나의 강력한 수익모델을 제공하는 셈이다.

SLR이 대형은행에게 제약적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SLR 면제에 장기 국채까지 포함한다면 이것은 탐욕을 대 놓고 드러낸 것이라 할 수 있다. SLR 규제에서 지급준비금이나 단기 국채는 포함되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단기 국채는 미실현 손익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기 때문이다.

ISDA가 표면적으로 내세우는 미국 국채 시장의 안정성은 구실에 불과하고 실상은 사회가 은행에 부여한 신용창조의 권능을 이용해 향후의 금리 인하를 무한 레버리지를 일으켜 수익극대화를 기도하는 꼼수라고 할 수 있다.

또한 SLR 규제 철폐는 재무부의 재정지출을 위한 국채 발행을 원활하게 하는 작용을 한다. 만약 ISDA의 의도와 미국 재무부의 이해가 일치해 SLR 규제 철폐가 관철된다면 미국의 재정적자는 걷잡을 수 없는 수렁에 빠지게 될 것이다. 특히 대선을 앞두고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그 후과는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미국 경제뿐만 아니라 전세계 경제에 큰 영향을 주게 될 것이다. [이코노미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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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병도 2024-10-04 00:10:36
감사합니다.

류지민 2024-04-05 16:54:45
양영빈기자님 덕분에 공부 잘 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건강 챙기세요~

김태완 2024-04-04 16:54:11
단기 국채는 MMMF가 ON RRP를 대체하여 구입하지만, 장기국채 발행은 증가하는데 인수주체인 딜러, 외국 중앙은행, 외국 금융기관이 받쳐주기가 버거운 듯합니다. 헤지펀드가 구입은 하고 있지만, 이 또한 금리가 하락하면 cash futures basis trade가 어찌될 지 모를 것 같고요....이 상황에서는 대형은행의 eSlR 규제에서 재무부 장기국채 면제가 Treasury와 시장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지네요...우려스러운 부분입니다...항상 명쾌한 설명 감사드립니다.^^

ㅇㅇ 2024-04-04 08:38:32
미국경제가 국채수익률보다 더 성장하면 되는거아닙니까?....

이유진 2024-04-03 19:21:32
고물가 시대에는 오히려 채무를 진 사람이 유리한거 아닌가 하는 무지한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고물가 시대에는 돈의 실질가치가 더욱 빨리 떨어지니 말입니다 더군다나 미국은 경제성장속도가
채무증가 속도보다 더빠르니 말입니다 물론 기자님께서 말씀해주신 것 처럼 걷찹을수 없는 재정적자는
위험하겠지만요
좋은 글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