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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박태종/ 한국마사회 기수
[사람들] 박태종/ 한국마사회 기수
  • 류현기 기자
  • 승인 2004.02.0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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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에 올랐을 때 우승 예감해요

“1천승에 대해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관심들을 많이 가져 주시니 괜히 부담이 됐던 것은 사실이에요.” ‘박태종’(41)이라는 이름 석자는 경마 애호가들 사이에서 어느새 ‘경마를 얼마나 잘 아는가’의 가늠자 역할을 한다.
최근 수억원의 돈을 벌어들이며 트랙에 설 때마다 우승후보에 오르는, 경력 17년 차의 박 기수의 1천승 달성 여부가 경마 애호가들 사이에서 최고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1986년. 경마가 뭔지도 모를 그때 당시만 해도 박태종 기수는 고교 졸업 후 이모부의 식품가게에서 일을 돕고 있었다.
당시 마사회 마포지점 식당으로 배달을 나가던 이모부가 우연히 기수 모집 벽보를 보고 박 기수에게 추천을 한 것이 지금의 자리에 오르게 된 계기가 됐다.


물론 기수가 되는 과정이 그리 녹록치는 않았다.
86년에 기수시험에 응시했을 때만 해도 3차 면접에서 낙방을 했다.
그렇다고 쉽게 물러서기에는 뭔가 아쉬움이 남았다.
결국 1년을 재수해 이듬해에 기수의 길로 들어설 수 있었다.


그러나 막상 기수가 됐다고 해서 당장에 트랙을 달린 수 있었던 것도 아니다.
처음 1년 6개월 동안은 정식게임에 한번도 참가하지 못하는 기수후보생으로 지내며, 무릎이 까져서 피가 날 정도로 연습만 했다.
이 과정에서 30명에 이르던 동기생들 가운데 한두 명씩 낙오자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때 박 기수는 오히려 ‘성공’에 대한 오기가 발동했다.


후보생 과정을 마치고 견습기수가 됐을 때만 해도 드디어 정식경기에 참가할 수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뛰었다.
하지만 2개월 동안 단 1승도 챙기지 못하자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16전16패. “그렇게 말을 많이 탔는데 1승도 못 거두냐”라는 선배 기수의 핀잔에 잔뜩 주눅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박 기수의 성실함이 빛을 발하기 시작하는 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데뷔 후 3개월째 처음 우승을 맛본 이래 16년 동안 어느새 1천승 고지에 올랐다.
2천239승을 거둔 영국의 프랭키 디토리나 2천865승을 거둔 일본의 오까베 유키오 같은 외국기수들과 단순히 승수만을 놓고 견주어 본다면, 1천승이라는 결과의 무게가 어쩌면 가벼워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게는 수십 개에서 많게는 백여 개에 이르는 경마장을 돌아다니며 마음만 먹으면 제한 없이 출전할 수 있는 외국에 비해 일주일에 단 이틀만, 그것도 하루에 6경기 이상 출전이 불가능한 국내 현실에서 1천승의 의미는 높을 수밖에 없다.
승률만 보더라도 박 기수의 최근 3년 간 승률은 15.8%로 오까베 유키오의 15.1%을 능가하고 미국의 정상급 기수인 게리 스티븐슨의 16.8%와 견줄 만하다.


물론 최고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시련도 있었다.
97년에는 무릎인대가 끊어져 5개월 동안 병원 신세를 지기도 했고, 99년에는 척추 압박 골절로 3개월 동안 병원에 입원하기도 했다.
박 기수는 우승후보 1순위다 보니, 트랙에 올라설 때마다 다른 경쟁자들의 견제를 피할 수가 없었다.
무릎인대가 끊어져 병원에 누워 지내야 할 때는 “이제 선수생활이 끝났구나” 하고 생각했다고 한다.


이 같은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것은 타고난 성실성 덕분이었다.
박 기수는 밤 9시에 잠자리에 들어 새벽 5시20분에 일어나는 일을 벌써 17년째 해 오고 있다.
물론 담배와 술은 입에도 대지 않을 뿐더러 하루도 빠지지 않고 체력훈련을 한다.
다행히 많이 먹어도 살이 찌지 않는 타고난 체질은 몸무게에 대한 부담을 덜게 만들어 주었다.
항상 규칙적인 생활을 하다 보니 “우승을 자주 하는 날에는 말에 오를 때부터 기분이 다르다”고 박 기수는 말한다.


올해 나이 41세. 박 기수도 어느새 불혹의 나이에 접어들었다.
“외국에는 60세까지 선수생활을 한 사람도 있다는데 저도 체력이 허락한다면 그때까지 선수생활을 하고 싶습니다.
” 박 기수의 성실함을 놓고 본다면 결코 빈말은 아닌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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