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30줄(77년생)에 막 접어들었지만 CEO만 두 차례나 지냈다.
한번은 게임업체의 ‘강호’ ㈜넥슨의 대표를 역임했다.
다른 한번은 벤처회사를 몸소 이끌었다.
모두 20대 때의 일이다.
과연 그에겐 어떤 특별한 게 있는 것일까. “내 피엔 창업가 기질 흐른다” 2004년 2월 초. 넥슨은 임기를 마치는 정상원 대표(현 네오위즈 본부장)의 후임으로 서 유닛장을 선임했다.
당시 그의 나이는 불과 27세. 게임업계 최연소 CEO 등극이었다.
그야말로 파격 선임이었던 것. 그의 CEO 선임을 두고 우려가 적잖았던 까닭이다.
하지만 넥슨측의 시각은 달랐다.
‘서 유닛장의 개인적 능력을 잘 몰라서 하는 소리’라고 일축했다.
그는 실제 넥슨의 ‘보배’ 이자 ‘미래’였다.
해외사업에선 특히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
난항을 거듭하던 넥슨의 아시아 현지법인 설립을 성사시킨 것은 그의 대표적 성과다.
마이크로소프트(MS)와 협력을 통해 게임 온 디맨드(game on demand) 서비스를 시도, 화제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게임 온 디맨드는 MS가 유통하는 패키지 게임을 인터넷에 접속,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든 서비스다.
그뿐 아니다.
경영 마인드도 남달랐다.
‘경영’ 보다는 ‘개발’에 주력해온 넥슨에 ‘경영회의’라는 경영시스템을 도입한 주인공이 바로 그다.
서 유닛장을 CEO에 선임한 넥슨의 결정은 옳았다.
그는 일각의 우려를 비웃기라도 하듯 괄목할 만한 성적을 남겼다.
무엇보다 CEO를 맡은 지 단 1년 만에 넥슨을 100% 성장시키는 기염을 토했다.
수년 째 650억원에 머물러 있던 매출이 1천100억원 대까지 늘어났던 것. 또 ‘마비노기’ ‘메이플스토리’ ‘비엔비’ 등 유저(user)들을 위한 게임을 성공적으로 연착륙시키며 넥슨을 ‘게임명가’로 우뚝 세웠다.
서 유닛장의 CEO 시절, 넥슨의 행보는 이처럼 ‘파죽지세’를 방불케 했다.
“게임시장은 호황이었고 넥슨이 준비하던 아이템과 제품도 훌륭했습니다.
직원들도 열과 성을 다했구요. 넥슨이 성장하는데 제 능력도 어느 정도 있었겠지만 다른 환경적 조건이 너무 좋았습니다.
전 행복한 CEO였습니다.
” 넥슨이 급성장을 계속하던 지난해 중순. 서 유닛장은 또 다시 세간을 놀라게 했다.
넥슨 대표직을 돌연 사임했기 때문이다.
CEO를 맡은 지 1년6개월만의 사퇴였다.
“저는 창업가 기질이 다분합니다.
더 이상 잃을 게 없을 때 창업을 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넥슨 CEO 자리를 내놓은 까닭은 창업에 대한 열망, 갈증 때문이었습니다.
” 그가 창업한 회사는 ㈜스마트플레이. 지난해 7월, 그의 나이 29세 때 설립했다.
창업아이템은 게임을 차단하는 프로그램인 ‘블루실드’. 이는 게임 및 유해 사이트로부터 컴퓨터와 어린이들을 보호하는 기능을 갖춘 소프트웨어다.
흥미로운 대목은 넥슨과 스마트플레이가 양극단에 서 있다는 점이다.
넥슨은 게임회사다.
게임을 즐기는 유저들이 많아야 생존한다.
게임과 사운(社運)은 불가분의 관계다.
반면 스마트 플레이의 아이템은 게임중독을 방지하는 것이다.
게임에 빠져드는 것을 막는 게 스마트 플레이의 역할이다.
“넥슨에서 ‘블루실드’ 아이템을 해볼 생각도 했었죠. 하지만 게임업체에서 게임을 차단하는 프로그램을 출시한다는 게 왠지 어불성설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창업을 해야겠다는 의지가 더 단단해졌는지 모를 일입니다.
” 스마트플레이를 창업한 서 유닛장의 각오는 대단했다.
‘게임업체로 컴백하지 않겠다’며 의지를 불태웠다.
성공에 대한 자신감도 넘쳤다.
게임 및 유해 사이트 차단 프로그램 시장은 수백억대로 성장할 것이고, 스마트 플레이는 시장을 선점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했다.
스마트플레이의 블루실드는 실제 소기의 성과를 올렸다.
오프라인 서점을 비롯, 인터파크· CJ몰 등 온라인 쇼핑몰에서 손쉽게 구매할 수 있을 정도로 유통망이 확대됐다.
대형업체와 공동마케팅 계약도 체결했다.
그러나 아쉬운 점도 적지 않았다는 게 서 유닛장의 말이다.
무엇보다 게임업계의 ‘중심’에서 ‘변방’으로 밀려난 현실이 실망스러웠다.
“넥슨 CEO 시절 때는 게임업계를 좌지우지할 만한 의사결정에 동참할 수 있었습니다.
게임업계의 발전 방향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하고 숙의할 수 있었죠. 하지만 회사를 창업하고 나니, 도저히 그럴 만한 기회를 찾지 못했어요. 정말 아쉬웠죠.” 자신의 능력을 맘껏 발휘할 수 있는 공간이 좁아진 것도 그로선 답답할 노릇이었다.
“제 능력이 100% 라면 50%도 채 쓰기 힘든 환경이었죠. 내 회사, 내 직원, 내 아이템을 가진 것은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지만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현실은 너무도 아쉬웠습니다.
” 창업회사의 ‘한계’를 절감하고 있던 지난해 초. 온라인 게임포털 ‘피망’으로 유명한 ㈜네오위즈의 나성균 대표가 영입을 제안했다.
부진한 해외사업의 숨통을 틔게 만들 적임자로 그를 낙점했던 것. 그는 손사래를 쳤지만 내심 ‘욕심이 났었다’고 털어놓았다.
“네오위즈의 아이템이 너무도 훌륭했습니다.
해외에서도 충분히 통할 것으로 확신할 수 있을 정도였죠. 너무 아쉬웠습니다.
네오위즈는 유독 해외사업이 체계적으로 진행되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죠. 그래서 더더욱 욕심이 났습니다.
‘내가 맡으면 정말 잘 할 수 있을 텐데’라는 생각도 들었구요.” 그는 현재 네오위즈의 ‘해외사업’을 총괄하고 있다.
장고 끝에 지난 7월 경 나 대표의 제안을 수락, 네오위즈에 입성했다.
그는 “매우 어려운 결정이었다”고 했다.
스마트플레이를 함께 운영하던 동료 선배들과 자신의 거취 문제를 두고 무려 2개월간 머리를 맞댔다는 게 서 유닛장의 귀띔. “스마트플레이에서의 경험은 저에게 소중한 약이 될 것입니다.
작게는 경영, 크게는 창업이 얼마나 고통이 따르는 일이라는 사실을 새삼 절감했기 때문이죠. 그렇다고 스마트플레이가 실패했다는 뜻은 아닙니다.
기대를 조금 밑도는 수준이었지만 소기의 성과는 분명 올렸다고 자부합니다.
현재도 잘 운영되고 있습니다.
지금은 비록 네오위즈로 옮겼지만 외곽에서 지원을 아끼지 않을 작정입니다.
” 네오위즈 해외사업 숨통 트일까 내년은 네오위즈의 다양한 게임들이 해외시장으로 본격 수출되는 해다.
미국 법인 설립과 북미시장 개척도 네오위즈의 선결 과제 중 하나다.
때문에 해외사업부문을 총괄하고 있는 서 유닛장의 어깨는 그 어느 때 보다 무겁다.
하지만 그는 전혀 부담스럽지 않다고 말했다.
오히려 자신감을 내비쳤다.
“네오위즈의 아이템은 세계 유저들의 관심을 끌만 합니다.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남길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2007년 본격적인 해외진출을 위한 로드맵이 작성되고 나면 해외공략에 적극 나설 계획입니다.
” 1년 만에 게임업계로 전격 귀환한 서 유닛장. 그의 원숙해진 한걸음 한걸음이 어떤 족적을 남길지 주목된다.
1998- 일본 정부 주체 아태지역 청년포럼(Youth Forum) 한국 대표단 국제경상학생협회(AIESEC) 서울대지부 회장 2000- ㈜넥슨 입사 2001- ‘바람의 나라’ 패키지 상품 개발 2002- 패키지 게임 ‘비앤비 어드벤처’ 프로젝트 착수 2003- 신 비즈니스 모델인 ‘Game on Demand’ 사업 진행 2004- ㈜넥슨 사장 취임 2005- ㈜넥슨 사장 사임 ㈜스마트플레이 창업 2006- ㈜네오위즈 해외사업부문 유닛장 취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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