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과 남이 합작만 하면 돈벌이를 많이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신의주와 개성 사이의 철길을 한선 더 건설해 복선으로 만들고 남조선으로 들어가는 중국 상품을 날라다주기만 해도 거기에서 1년에 4억달러 이상 돈을 벌 수 있습니다.
초보적으로 계산해본 바에 의하면 우리가 러시아나 중국 흑룡강 성에서 수출하는 물자를 두만강역에서 넘겨받아 동해안에 있는 철길로 날라다주면 거기에서도 한해에 10억달러 이상 돈을 벌 수 있습니다.
결국 우리는 가만 앉아서도 한해에 약 15억달러의 돈을 벌 수 있습니다.
”
김일성 주석은 1994년 6월30일 벨기에 노동당 중앙위원회 위원장과 대담에서 경의선 철도 연결의 당위성을 이와같이 설명했다.
북한이 실질적으로 경의선 연결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것은 이때부터다.
그 이전까지 북한은 UNESCAP(UN Economic and Social Commission for Asia and the Pacific)의 유라시아 철도연결사업에 한국이 참여하지 못하도록 압력을 행사했다.
하지만 94년 6월 김일성 주석의 발언 이후 북한은 태도 변화를 보이기 시작했다.
북한은 더이상 UNESCAP의 유라시아 철도연결사업에 남한이 참여하는 데 반대하지 않았다.
90년대 중반 이후 남북한은 철도연결사업으로 둘다 이득을 볼 수 있다는 데 인식을 함께하고 있었다.
하지만 한반도의 불안한 정치상황 때문에 본격 논의는 이루어지지 못했다.
남북한 철도연결사업이 수면으로 부상한 것은 2000년 6월15일 남북정상회담 이후의 일이다.
2000년 9월 남북 합의로 경의선 복원공사가 시작되면서 ‘철의 실크로드’ 구상은 집중 조명을 받기 시작했다.
철의 실크로드는 한반도횡단철도(TKR)를 시베리아횡단철도(TSR)와 만주횡단철도(TMR), 중국횡단철도(TMGR) 등 대륙 철도망과 연결하겠다는 구상으로 한반도 평화와 번영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했다.
북한 운송료 수입보다 경제회생 효과 커
철의 실크로드 구상의 첫단계인 경의선 복원공사는 완공을 눈앞에 두고 있다.
남쪽은 도라산역에서 군사분계선까지 지뢰 제거와 철로 설치를 마무리했고, 북쪽도 늦어도 두달이면 철로공사를 마칠 수 있다.
북한 핵이라는 장애물이 가로 막고 있지만 남북이 결심하면 두달 안에 경의선 철도는 연결된다.
다만 경의선 복원공사로 뉴실크로드 구상이 바로 실현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북한 철도를 대륙수송망으로 기능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노후화된 철로망을 개보수하지 않고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경의선 철도복원 구간은 당장 개성공단과 남쪽의 물류를 담당함으로써 남쪽 기업의 개성공단 진출을 용이하게 한다.
하지만 남한의 물자가 평양, 나아가 중국, 러시아까지 가기에는 북한 철도망이 너무 취약하다.
교통개발연구원 안병민 박사는 “철도가 대륙수송망으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24시간에 1000km를 갈 수 있어야 하는데 북한 철도망의 평균속도는 시속 20~30km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평양에서 함경북도지역까지 가려면 1박2일을 잡아야 할 정도다.
전체 노선의 98%가 단선이고, 극심한 전력난으로 전기기관차의 견인력이 크게 떨어졌기 때문이다.
터널, 교량의 상태도 안전을 위협할 수준이고, 철도 노반과 침목도 크게 훼손된 상태다.
안 박사는 “현재 상태가 지속되면 북한 철도망은 5~10년 이내에 마비상태에 직면할 것”이라고 밝혔다.
철도망의 노후화는 북한 경제에 갈수록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북한에서 철도는 화물수송의 90%, 여객수송의 62%를 담당하는 중요한 운송수단이다.
도로망은 주로 단거리 수송에만 이용된다.
김일성대학 교수 출신인 대외경제연구원 조명철 박사는 “철도가 제기능을 못함에 따라 물자수송이 제때 이루어지지 않아 생산에 큰 차질이 발생하고 있다”며 “북한은 여객을 줄이고 화물열차를 늘리거나 전략산업 물자를 중심으로 수송하는 등 연이어 비상대책을 동원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밝혔다.
조 박사는 “북한이 철도연결사업을 통해 진정으로 기대하는 것은 운송료 수입이라기보다는 철도망 개보수를 통한 경제회생 효과”라고 말한다.
운송료 수입만 놓고보더라도 김일성이 94년에 산정한 연간 15억달러는 다소 무리가 있다.
산업은행 동북아연구실 최임봉 연구원은 “현재 물동량을 고려할 때 남북철도연결로 북한이 2013년까지 벌어들일 수 있는 운송료 수입은 16억~28억달러 정도”라고 추정했다.
최 연구원은 “다만 철도 개보수를 통해 북한 경제 전반에 미치는 경제적 파급효과는 총 112억달러로 운송료 수입보다 훨씬 큰 경제적 이득을 볼 수 있다”고 밝혔다.
전반적으로 물류가 개선되면서 산업생산성이 크게 개선된다는 설명이다.
산업은행이 북한의 산업연관표를 통해 경제적 파급효과를 분석한 결과 건설업(57억4천만달러), 서비스업(16억3천만달러), 농림수산업(8억1천만달러), 경공업(6억1천만달러) 등에서 산출증대 효과가 큰 것으로 나타난다.
남쪽도 경의선 복원과 북한철도 개보수를 통해 직간접적인 경제적 파급효과를 누릴 수 있다.
우선 남북한 경제협력이 크게 활성화되는 계기가 된다.
현재 남북교역에서 과다한 물류비용은 큰 장애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남북한을 오가는 물자는 대부분 인천항~남포항 해상로를 이용하고 있으며 20피트짜리 컨테이너 1개를 수송하는 데 약 720달러의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인천항~천진항까지 300달러, 인천항~홍콩까지 500달러임을 감안할 때 지나치게 비싸다.
북한에서 임가공 사업을 하는 S업체의 경우, 플라스틱 케이스 한개를 생산하는 데 드는 생산비용 18.22원 가운데 15.10원은 물류비용이다.
섬유류를 위탁가공하는 A업체도 생산원가에서 물류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40%에 달한다.
교통개발연구원 안병민 박사는 “남북 교역업체는 막대한 물류비용 때문에 생산원가를 맞추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경의선 철도를 통할 경우 물류비용이 크게 줄어들어 남북교역이 활성화할 수 있다”고 밝혔다.
북 철도 정상화에 국제 컨소시엄 절실
나아가 북한 철도망을 이용해 중국과 러시아쪽으로 물자를 수송할 수 있게 된다.
산업은행이 최근 발표한 보고서를 보면 남북철도연결에 따른 남쪽의 물류비 절감효과는 2013년까지 34억~36억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당장의 경제적 편익말고도 철도를 따라 북한의 개혁개방이 가속화하고 나아가 남북한이 동북아 물류의 중심으로 함께 발전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다.
다만 북한 철도망 정상화에는 상당한 시간과 비용이 필요하다.
대륙철도 연결에 적극적인 러시아는 2001년 9월 현지조사를 통해 북한의 철도 개보수 비용으로 1km당 40억원(표준궤 부설기준), 총 5조1240억원(미화 43억달러)을 제시했다.
또한 러시아는 시베리아횡단철도와 연결되는 개성~평산~원산~나진~두만강역 구간의 철로 현대화에 3~5년이 걸릴 것으로 분석했다.
이에 대해 북한전문가들은 “북한 철도문제는 단지 남북한의 문제가 아니라 러시아, 중국, 일본 등 동북아 주변국들의 이해관계가 걸린 문제인 만큼 국제적인 컨소시엄을 통해 풀어가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교통개발연구원 안병민 박사는 철도 개보수 비용과 관련해 “북한은 중국과 철도 협상을 하면서 북한이 노동력과 원자재를 대부분 제공하고 중국이 건설비용을 지원하는 방식을 제안한 바 있다”며 “이럴 경우 철도 개보수 비용은 크게 낮아질 수 있다”고 밝혔다.
안 박사는 또한 “북한 철도망 정상화를 위해 국제적인 컨소시엄이 구성되면 남쪽이 부담하는 비용은 더욱 줄어들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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