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월가의 J.P.모건은 1902년 IMM(International Mercantile Marine Company)이라는 선박지주회사를 세웠다. IMM의 자회사 중 하나인 White Star Line이 바로 타이타닉호(RMS Titanic)를 소유했던 회사이다. 1912년 타이타닉호가 침몰하고 큰 타격을 입었는지 IMM은 1915년 파산보호신청을 하기에 이른다. 본래는 J.P.모건도 이 배에 타기로 했다고 한다. 고령 때문이었는지 불과 몇 분 전에 승선을 취소하였지만 그도 다음 해인 1913년 세상을 떠났다.
비극의 타이타닉호는 월가 J.P.모건 소유의 배
1912년 4월 14일 타이타닉호는 2시간 40분 만에 완전히 침몰했다. 탑승자는 모두 2,207명이었는데 그 중 2/3인 1,501명이 목숨을 잃었고 706명만이 구조되었다. 당시 바닷물의 온도가 섭씨 2도였기 때문에 바닷물에 뛰어들어 구조된 사람은 채 10명이 되지 않았다고 한다. 따라서 생존자는 거의 모두 구명보트에 탔던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배에는 20대의 구명보트가 있었으니 정원을 꽉 채워 타더라도 1,178명이 탈 수 있었다고 한다.
위기의 순간에 정원을 채워 출발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에 실제로 구명보트에 탄 사람은 정원에 훨씬 못미치는 700여명에 불과하였다.
그렇다면 구명보트에 탔던 사람들은 누구였을까? 제임스 캐머론(James Cameron) 감독의 영화 ‘타이타닉’을 본 사람이라면 기억할 것이다. 여성과 아이들이 우선적으로 탈 수 있었지만 다른 사람의 아이를 자신의 무릎에 앉히고 슬쩍 구명보트에 올라탔던 치사한 남자들도 있었다. 생과 사를 넘나드는 순간에도 이타심은 본연의 힘을 발휘했을까? 아니면 인간은 그저 이기적인 존재였을 뿐일까?
타이타닉호의 생존자 분석의 결과는?
취리히대학교의 교수인 브루노 프라이(Bruno S. Frey)는 ‘행복의 경제학’을 표방하는 대표적인 경제학자이다. 그는 2011년 동료학자들과 타이타닉호의 생존자를 분석한 논문을 발표하였다. 그 결과 중 흥미로운 것만을 소개한다. 누가 살아남을 확률이 높았을까?
서양 사람들은 여성과 아동에 우선권을 부여하는 규범을 지니고 있다. 그렇다면 여성과 아동의 생존확률이 더 높았을까? 그렇다. 아동을 동반한 여성의 생존확률은 65%나 더 높았고 아동을 동반하지 않은 여성의 생존확률도 51%가 더 높았다고 한다. 하지만 노인들이 우대받지는 못했던 모양이다. 16~50세의 남성 탑승자들은 50세 이상의 남성 탑승자들보다 생존확률이 16% 높았다고 한다. 남성 노인들의 생존확률은 매우 낮은 편이었다.
타이타닉호의 탑승자 중에는 1등석 325명, 2등석 285명, 3등석 706명이 있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1등석 또는 2등석 탑승자는 3등석 탑승자보다 생존확률이 높았을까? 그럴 가능성이 있는 이유는 구명보트의 탑승구가 1등석 또는 2등석 객실과 더 가까웠고 1등석 또는 2등석 탑승자들이 승무원들에 의해 우대받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분석결과에 따르면 3등석 탑승자에 비해 1등석 탑승자는 40%, 2등석 탑승자는 16% 생존확률이 높았다고 한다.
프라이교수는 2시간 40분 동안의 혼란 속에서 이타심과 이기심이 모두 나타났다고 말한다. 여성과 아동의 높은 생존확률은 이타심의 결과로 받아들였지만 남성노인의 낮은 생존확률과 1등석 탑승자의 높은 생존확률은 이기심의 결과로 받아들였다.
다행이었던 것은 이기심 못지 않게 이타심이 힘을 발휘한 것이다. 이타심의 힘은 이기심보다 약하지 않았다. 영화 ‘타이타닉’에는 에드워드 스미스(Edward Smith) 선장과 배의 설계자인 토마스 앤드류스(Thomas Andrews) 등 많은 승무원들이 끝까지 남아 탑승객을 돕고 배를 지키는 장면이 나온다. 그들은 기꺼이 죽음을 받아들인 사람들이다. 또한 월리스 하틀리(Wallace Henry Hartley) 등 8명의 연주대가 바이올린을 연주하며 타이타닉호의 침몰과 함께 하는 장면도 나온다.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모두 사실이다. 타이타닉호의 예는 극한의 상황에서도 이타심이 발휘되었음을 여실히 보여 주었다.
사람들은 왜 이타심을 갖는가
호모에코노미쿠스(homo economicus)는 인간을 이기적인 존재라고 간주하는 개념이다. 하지만 타이타닉호의 예에서도 발견할 수 있듯이 인간은 재난의 순간에도 이타심을 발휘하곤 한다. 이기적인 존재임이 분명하지만 인간이란 이기심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한 존재이다.
경제학자들은 이타심을 어떻게 설명하고 있을까? 오스트레일리아 모나슈대학의 경제학교수인 엘리아스 칼릴(Elias L. Khalil)은 이타심을 설명하는 세 가지 견해가 있다고 말한다.
첫째 자기중심적(egocentric)인 것이라는 설명이다. 타인의 행복으로 인해 효용을 얻기 때문에 이기적인 개인도 이타적인 행동을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가난한 사람을 도와주었다고 하자. 그렇다면 도움을 받은 사람의 효용도 증가하겠지만 그를 도와준 사람의 효용도 증가할 수 있다. 무언가 선행을 했을 때 보람을 느끼곤 하지 않는가? 그래서 이기적인 개인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이타적인 행동을 하게 된다고 말한다.
둘째 자기본위적(egoistic)이라는 설명이다. 이타적인 행동이란 무한히 반복되는 게임에서 개인이 얻게 될 미래의 이익을 위한 전략적 행동이라고 말한다. 캐나다의 캘거리에는 겨울철에 눈이 매우 많이 온다. 승용차를 운전하기 위해 눈을 치우고 있노라면 지나가던 운전자가 도와주겠다고 온다. 고마운 일이기는 한데... 그 사람에게 물어보았다. “왜 도와주지요?” 다음과 같은 답변을 들었다. “내가 도울 수 있을 때 많이 도와 주어야 내가 도움이 필요할 때 도움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요?” 우리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이타심을 발휘하곤 한다.
셋째 타인중심적(altercentric)인 것이라는 설명이다. 사람들은 도덕적인 명령으로 받아들여 이타적인 행동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 견해는 첫째 및 둘째 견해와 달리 개인이 무엇을 얻는가와 무관하게 이타적인 행동을 하게 된다고 말한다. 이 견해를 따르면 이타심이란 이기심과는 무관하고 도덕적인 유전자로부터 나타나는 다분히 개인적인 특성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가 잘 기억하고 있는 이태석신부의 고귀한 행동을 본인의 이익과 결부시킬 수 있을까?
물론 다른 학문에서는 다른 방식으로 이타심을 설명할 것이다. 위의 세 가지 견해는 이타심을 경제학적으로 설명하는 방식일 뿐이다. 게다가 세 가지 견해 중 하나가 이타심 모두를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어떤 이타적 행동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자기중심적 접근법이 더 적합하고, 또 다른 이타적 행동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타인중심적 접근법이 더 적합하다. 모든 것이 그러하지만 이타심도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다만 한 가지를 강조하고 싶은데 경제학적 접근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개인의 이익이 이타심의 발휘에서 중요한 동기가 된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타적 행위를 촉진하기 위해서는 개인주의도 충분히 고려되어야 한다.
이타심을 촉진하려는 노력
선진국의 도시에는 공원이 많다. 공원의 벤치를 가만히 관찰해 보면 조그마한 팻말이 붙어 있는 것을 보게 된다. 거기에는 “○○○를 추모하며”라는 제목 하에 짤막한 글귀가 적혀 있다. 이 벤치는 ○○○가 세상을 떠난 후 유가족들이 일정금액을 기부하여 설치한 것이다. 조그마한 팻말은 지역사회가 기부자에게 부여하는 혜택이다. 유가족들은 이 벤치를 보면서 ○○○를 추모하고 어린 손주들에게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려 주곤 한다.
기부자에게 혜택을 부여하는 정책은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다. 정부는 특정의 기부금액에 대해 세제혜택을 부여한다. 하지만 이타심을 촉진하기 위한 정책이 얼마나 광범위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공원의 벤치와 같이 사소해 보이지만 누구나 쉽게 참여할 수 있는 방식이 우리나라에서는 미흡하지 않은가 생각해 본다. 그런 방식이 도입된다면 지금보다는 훨씬 더 많은 기부가 이루어지지 않을까?
어떤 사람들은 자기중심적 동기나 자기본위적 동기에 의한 이타적인 행동을 혐오하기까지 않다. 그런 행위는 이타적이지 않다고 생각하며 오로지 타인중심적인 행위만을 이타적인 것으로 간주하려 한다. 물론 타인중심적인 행위의 숭고함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칼릴이 언급한 바와 같이 인간의 이타적 행위에는 개인주의가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 그것이 경제학적 접근이 지니는 특징인데 경제학자들은 이타적 행위를 촉진하기 위해서라도 개인의 이익을 충분히 활용하자고 말한다.
자기중심적 접근법이나 자기본위적 접근법이 숭고해 보이지는 않을지 몰라도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매우 효과적인 방법이기 때문이다. 이타적 행위를 타인중심적인 것으로 한정하는 것은 이타심의 발휘를 억제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호모에코노미쿠스를 위한 변명
물론 이타적인 행동이 이기적인 행동보다 항상 우월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우리나라 축구대표팀의 수비수가 상대국 선수에게 기꺼이 골을 허용하는 행위는 아무리 이타적이라고 하더라도 바람직하다고 생각할 수 없다. 이기적인 행동이 좋을 때가 있고 이타적인 행동이 좋을 때가 있는 법이다. 우리 모두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최선을 다하여 노력해야 하며 그에 따른 정당한 대가를 마땅히 누려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시장경제가 지닌 장점 중의 장점이다.
하지만 이타적인 행동이 필요할 때조차 이기적인 행동이 난무한다면 그런 사회를 살기 좋은 곳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살기 좋은 사회란 이기심이 필요한 경우에 이기심이 발휘되고, 이타심이 필요한 경우에 이타심이 발휘되는 사회이다. 물론 두 가지 경우를 구분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우리가 사회생활의 각박함을 느끼고 있다면 부족한 것은 이기심이 아니라 이타심일 가능성이 높다.
이타적 행위를 촉진하기 위해서는 타인중심적 행위규범을 널리 계몽하는 일도 매우 중요하다. 아마도 타이타닉호에 탔던 많은 사람들은 타인중심적 행위규범에 따라 행동했던 것 같다. 개인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죽을 것을 뻔히 알면서도 여성과 아동들에게 구명보트를 양보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개인주의는 현대인의 많은 것을 설명하는데, 심지어 이타심의 발휘에도 개인주의는 작용한다. 잘만 활용하면 개인주의와 이기심은 이타심을 촉진하기 위한 매우 강력한 지렛대가 될 수 있다. 어쨌든 이타심은 매우 소중한 것이며 이를 향한 다양한 시도가 우리사회에 넘치기를 기대해 본다. 2014년 새해가 나눔의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E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