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다양한 얼굴의 《논어》를 만나왔다. 동양 고전으로서, 유교의 경전으로서, 나아가 처세의 지혜를 알려주는 자기계발서의 원형으로서. 《논어》는 누구의 시선으로 읽어 전달되느냐에 따라 빛깔이 오묘하게 달라지는 존재다. 동양철학을 인간의 생동하는 삶과 연결해 풀어내는 데 오랜 시간을 바쳐온 저자 김시천은 《논어》를 공자의 ‘제자들’ 관점에서 바라보며 그 옛날 논어가 처음 편집되던 시기의 관점을 복구해 보고, 나아가 ‘사람’이라는 존재를 읽는 텍스트로서 재조명하려 한다.
이 책은 ‘인(仁)이란 이러이러한 것이다’ 하며 개념 중심으로 접근해 《논어》를 독해하는 대신, 《논어》 속에서 마치 ‘씬 스틸러’ 같은 존재감을 드러내는 공자의 대표적인 제자 열두 명의 삶을 재구성한다. 그러면 바로 그 한 사람 한 사람의 삶 속에서 우리가 찾던 개념들이 다시 보일 뿐만 아니라, 제자가 공자에게 일방적으로 가르침을 받기만 하지 않고 제자와 선생이 서로와의 관계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만들어나가고 성장하는 모습이 나타난다. 《논어》라는 책이 ‘말하고 있지 않은 것’을 ‘합리적 상상력’을 동원해 밝혀나가는 것이 저자가 권하는 읽기 방식이다.
“자로가 있었기에 <논어>가 조금은 재미난 책이 되었고, 안희가 있었기에 공자가 조금은 덜 외로웠으며, 자공은 공자가 역사 속에서 존재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었다.”
《논어》라는 대표적인 동양철학의 고전을 이렇게 읽어봄으로써 저자가 추구하는 것은 무엇일까? 흔히들 《논어》는 ‘나이만큼 읽힌다’고 한다. 스물에는 스물만큼, 마흔에는 마흔만큼. 그만큼 보편적이고 우리 문화의 토대가 되어줄 힘이 있는 텍스트라는 말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 《논어》는 개인들 각각의 처지에 맞게 충분히 읽히지 못하고 있다. 아무나 쉽게 문제제기를 할 수 없는 ‘경전’으로서, 어떤 독점적·특권적 입장에서만 읽을 수 있는 난해한 철학책으로서가 아니라 청년과 장년, 노년이 함께 얘기할 수 있는 텍스트로 읽힐 수 있도록 다양한 관점을 도입해 보는 것이 저자의 의도다.
‘성인 공자’의 어록이라는 관점으로만 《논어》를 읽는 것은 고전의 수많은 틈새를 똑같은 재료로 메워버리는 것과 같다. 저자는 《논어》 속 문장들의 약 55퍼센트를 차지하는 다채로운 등장인물 중 가장 비중 있게 등장하는 열두 제자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그 시대 ‘공자학단’을 형성한 ‘개인’들의 철학을 재발견한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고전을 현실에 맞게 읽는 적절한 독법 가운데 하나다.
<논어, 학자들의 수다 : 사람을 읽다> 김시천 지음, 더퀘스트 발간, 16,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