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콘텐츠의 생산과 존재방식, 유통과 소비행태 근본적 변화 있어
[이코노미21] [배재광 대표] 2018년 4월 29일 대한민국의 평범한 대학생이 도서정가제 폐지를 청원하는 글을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 올렸다. 8만명이 넘는 일반 소비자가 동참했다. 그로부터 1년 5개월이 지난 9월 17일에는 국회에서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후원으로 도서정가제 개선방안 토론회가 개최되었다.
도서정가제는 가격할인을 금지함으로써 인터넷 서점의 시장진입을 막으려는 의도에서 대한출판문화협회, 한국서점조합연합회, 저작권협회 등이 제기하여 2003년부터 시행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특히 2014년에 개정된 도서정가제는 OECD국가들 중에서도 유례없이 강화된 내용을 담고 있다. 문화관광부는 정가제를 강화함으로써 저작권자와 출판사, 지역서점과 도서소비자 모두에게 긍정적인 효과가 기대된다고 밝혔다.
도서정가제가 시행된 지 16년이 지난 지금 인터넷 생태계는 2007년 이후 아이폰 등 스마트폰으로 인하여 중대한 변화를 맞고 있다. 기술적으로는 인공지능(AI)를 가능하게 하는 머신러닝, 제2의 인터넷이라 평가받은 블록체인, IOT, AR/VR 등이 진화를 거듭하여 실제 생활에 적용되고 있다. 모바일, 핀테크, 자율주행차, 유투브, 웹툰 등이 광범위한 산업 생태계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 지금까지와는 별개로 앞으로의 변화는 지레 짐작할 수 없을 정도로 하루가 다르게 진화하고 있다. 이른바 4차 산업혁명의 시기다.
4차 산업혁명은 도서생태계에도 중대한 변화를 야기할 것이다. 지식콘텐츠의 생산과 존재방식, 유통과 소비행태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것으로 보인다. 이미 모바일로 인하여 미래는 성큼 다가왔다. 모바일로 인한 콘텐츠 소비채널의 다양성과 변화는 콘텐츠 생산과 유통, 소비 시장을 전면적으로 재편하고 있다. 전통적인 도서출판과 유통, 소비는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였다. 인쇄술의 발달로 초래된 ‘도서의 시대’가 새로운 혁명의 시기에 접어들었다. 4차 산업혁명은 모바일, IOT, 블록체인 등 요소기술로 인하여 전문저작자 시대의 종말, 1인 출판 등 기존 출판생태계의 파괴, 블록체인에 의한 디지털 콘텐츠의 생산과 소비행태, 생태계 참가자간 배분의 근본적인 변화 등이 도서정가제로 인한 효과 자체를 무력하게 만들 것으로 보인다.
이번 국회 도서정가제 개선방안 토론회에서 주제 발표자가 완전 도서정가제를 주장하면서 기대하고 있는 기술적 기반, 생태계 환경이 근본적으로 변화할 것이라는 점이다. 먼저 2014년 개정 도서정가제가 기대했던 효과가 실제 어떻게 생태계에 반영되었는지를 확인해 보자. 당연히 2014년 도서정가제 개정 당시 예측했던 효과가 발생했는지 여부는 필자가 마련한 정책의 미래예측 모델을 적용하여 평가했다. 2014년 개정 당시를 현재로 하여 아래 미래 예측모델을 활용하였다.
2014년 도서정가제 개정 당시 예상했던 정책목표에 부합한 평가지표 선정과 이에 근거한 결과로서 지난 5년간 도서정가제로 인한 생태계 영향에 대하여 각 지표에 나타난 결과들을 가지고 판단했다. 2014년 ‘개정 도서정가제’를 평가할 기준으로 세가지를 제시한다. 저작권자들에 의한 ‘도서창작 내용의 다양성’이 얼마나 진척되었는지 여부, ‘도서소비시장의 확장성’이 있었는지, 도서생태계 참여자들 사이의 ‘이해관계의 공정성’이 균형을 이루었는지를 판단기준으로 삼았다. 2014년 도서정가제 개정 당시 문화체육관광부도 “(신인)작가의 창작의욕 및 활동 활성화로 다양한 출판 활성화, 특히 학술, 인문서 등 양서 출판의 활성화’, ‘소비자의 양서 접근권 강화와 시장확대’, ‘지역서점 경쟁력 제고 및 활성화”를 도서정가제 개정으로 기대되는 효과라고 발표하였다.
작가의 창작의욕 및 활동 활성화로 도서 창작 내용이 다양화 되었는지에 대한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지표는 개정 도서정가제 영향평가(주제발표)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다만 저자들의 대다수는 영향이 없거나 보통(73.8%)이라고 응답하여 도서정가제가 창작내용의 다양성과 특별한 상관관계가 없다고 평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실제 토론회에 나온 정우영 시인도 도서정가제로 인한 판매량 저하로 인하여 저작자들이 피해를 입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일단 현행 도서 정가제는 당초 취지와 달리 도서 생태계의 다양화에 전혀 영향을 주지 않았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개정 도서정가제로 인하여 도서소비시장이 확장되었고 소비자의 양서 접근권이 강화되었다는 지표도 없다. 오히려 도서정가제로 인하여 구매가 저하되었다. 당연히 출판시장 규모도 정체되거나 위축되었다. 교과서, 학습서 시장은 성장하였으나 단행본, 실용서 시장은 큰폭으로 감소하였다. 2010년부터 2017년 사이에는 그나마 교과서, 학습서 시장의 성장에 힘입어 전체 출판시장이 성장하였으나, 2014년 이후 2018년 사이에 전체 출판시장은 정체되거나 소폭 감소하였다. 물론 도서소비의 감소는 동영상, 웹툰 등 다양한 콘텐츠 소비 행태에 영향을 크게 받았지만 개정 도서정가제가 감소추세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특히 모바일 등 콘텐츠 소비행태에 익숙하고 가격에 대한 민감성이 큰 10대와 20대의 도서구입 비중이 큰 폭으로 감소하였다는 점은 향후 도서생태계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저작권자와 출판인, 서점 등 도서 공급자 측에서 미래 세대인 10대와 20대의 도서구입 경험을 늘리지 않고는 시장의 위축을 막을 길이 없을 것이다. 성인 독서율도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2013년 71.4%에서 2017년 59.9%까지 감소). 개정 도서정가제가 그 감소세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고 있음은 명약관화하다.
마지막으로 중소규모 출판사의 경영이 개선되고 지역서점의 경쟁력이 제고 되었는지를 살펴보자. 개정 도서정가제로 인하여 중소규모 출판사의 경영이 개선되었다는 지표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중소형 출판사들이 개정 도서정가제의 할인폭 축소로 인하여 인터넷 서점에 적정한 가격으로 도서공급이 가능하므로 경영이 개선될 것이라고 예상하였으나, 대형출판사들의 광고에 의한 베스트셀러 점유율 증가로 인하여 중소규모 출판사들의 경영상황은 오히려 악화되어 도서정가제에 대한 불만이 상당히 높다(50% 이상). 개정 도서정가제로 인하여 직원수가 적은 중소규모 출판사, 영업기간 10년 미만 출판사, 문학 및 실용서 출판사들의 매출액이 위축되어 시장의 다양성이 감소되고 독과점이 심화되었다고 평가된다.
2014년 도서정가제 개정 당시에 상정했던 기대효과, 2018년까지 일어났어야 할 규범적 효과(미래)는 일어나지 않았다. 실제 개정 도서정가제에 의해 2018년까지 나타난 개연적 효과(미래)는 살펴 본 바와 같이, 당초 예상했던 도서창작의 다양성과 출판의 다양성은 물론이고 소비자의 양서 접근권 강화와 시장 확대, 중소규모 출판사의 경영개선과 지역서점 경쟁력 제고 효과는 발생하지 않았다. 개정 도서정가제의 가장 중요한 취지가 사실상 나타나지 않았다. 결론적으로 보면, 개정 도서정가제 5년 동안, 상위 12퍼센트의 서점과 25퍼센트의 출판사들이 혜택을 보았을 뿐 도서생태계에 예측한 긍적적인 효과는 나타나지 않았다.
이러한 효과는 결국 2007년 이후 우리 사회에도 본격적으로 도입되기 시작한 모바일과 4차 산업혁명의 요소기술과 산업으로 인하여 도서생태계 자체가 도서정가제가 도입된 2000년과 완전히 달라졌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도서정가제의 강화만으로 정책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고 지레 판단한 잘못으로 인한 당연히 예견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4차 산업혁명은 도서생태계와 소비시장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번에 인스타페이가 시작한 ‘인스타북스’ 사업모델은 4차 산업혁명의 초연결로 인하여 생산과 유통생태계가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를 집약적으로 보여주었다. 향후 인스타북스가 블록체인 기술을 도입하여 디지털콘텐츠의 소비추적이 가능하게 되면, e북과 소비자, 저작권자를 연결하는 새로운 생태계가 도래할 것이다. 중고책 유통시장도 저작권자의 저작권을 보호할 수 있는 기술적 진보로 인하여 전통적인 ‘저작권 소진론’이 중대한 변화를 맞게 될 것으로 생각된다.
이번 국회 도서정가제 개선토론회에서 도서 생태계의 불공정한 문제를 극복할 대책으로 2020년 ‘완전 도서정가제’로의 개정을 제안하였지만 이미 시장은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하여 돌아 올 수 없는 다리를 넘고 있다. 현실을 외면한다고 도래한 변화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이코노미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