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의 뉴욕세계무역센터와 국방부에 대한 동시다발 테러가 발생한 지난 11일 국제금융센터가 내놓은 ‘동향분석’ 자료의 핵심 내용이다.
테러 사태 이전에 작성된 이 분석자료는 갑작스런 사건 때문에 언론의 관심을 전혀 끌지 못했다.
그러나 국제금융센터가 그동안 미국 경제에 대한 낙관론을 경계하는 보고서를 여러 차례 냈고, 대부분 그 전망이 옳았다는 점에서 이 자료는 흥미를 끌기에 충분하다.
무엇보다 이 자료는 미국 경제가 4분기부터는 회복세를 보일 것이라는 그동안의 정부 전망과는 다른 해석을 담고 있다.
이 분석대로라면 미국 경제는 올해 4분기가 아니라 내년 하반기부터 회복된다고 보는 것이 더 합리적이다.
우리나라의 수출 감소가 주로 미국내 정보기술 분야의 소비와 투자 감소에서 비롯되고 있기 때문이다.
보고서를 작성한 강문성 부연구위원은 이런 분석의 근거로, 미국 경제에서 전통산업과 정보기술 산업의 경기 사이클이 다르다는 점을 들었다.
그는 “미국의 전통 제조업은 지난해 5월에 정점에 이른 뒤 하락하다가 자동차, 철강 등은 올해 1월과 3월에 이미 바닥을 치고 회복을 시작했다”며 “그러나 정보기술 산업은 경기 정점이 지난해 12월이어서 그동안 하강 폭이 컸음에도 회복이 전통산업보다 6개월 이상 더 걸릴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사실 미국 경제는 8월 들어 실업률이 예상보다 0.3%포인트 높은 4.9%로 급등하는 등 다시 나빠지는 국면이었다.
실업률의 증가는 소비감소로 이어지기 때문에 경기회복에 부정적으로 작용한다.
5월 이후 반등하던 소비자신뢰지수가 7~8월 2달 연속 하락한 것도 불길한 조짐으로 보였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에 대한 테러는 상황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테러로 인한 직접적 피해는 큰 건물 3채가 무너진 것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것이 가져올 간접적 효과는 ‘충격’에 가까울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견해다.
국제경제전문 통신인 <블룸버그>는 “이번 테러는 미국 소비자 신뢰도를 마비시켜버렸다”고 표현했다.
대미 수출비중이 22%에 이르고, 특히 정보기술 분야의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의 경우 이번 사태로 인한 악영향은 다른 나라에 비해 결코 작지 않다.
테러 사태 이후 열린 지난 12일 증시에서 종합주가지수가 다른 나라보다 훨씬 높은 12%나 하락한 것도 이런 우려를 반영하고 있다.
실제로 우리 경제에 대한 전문가들의 견해는 ‘비관’에 가깝다.
무엇보다 미국내 소비가 더욱 위축될 것이라는 점 때문이다.
정보기술 분야는 소비자의 선택에서 뒤로 밀릴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이 분야의 소비와 투자 회복은 더욱 늦어질 수밖에 없다.
7월 이후 20%대의 감소율을 보이고 있는 수출이 가장 큰 타격이다.
LG경제연구원은 “테러의 영향으로 4분기 중 미국 경제의 성장률이 0.4%대까지 떨어지고 연간 성장률은 1.8%대에 그칠 것”이라며 “경기위축이 내년 상반기까지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로 인해 우리나라의 수출도 하반기 전체로 전년동기대비 13.9% 가량 감소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렇게 되면 우리나라의 올해 하반기 성장률은 1.7%대, 연간 성장률은 2.4%대에 그친다고 연구원은 덧붙였다.
경상수지 흑자 역시 110억달러에서 99억달러선으로 줄어들 전망이다.
또 미국 경제의 회복이 늦어지면서 부담은 내년에도 이어지게 된다.
한국경제연구원도 12일 낸 보고서에서 이번 사건 여파로 우리나라의 올해 성장률이 0.5~0.8%포인트 추가 하락하고, 경상수지는 25억달러 가량 악화할 것이며, 소비자물가가 0.4~0.5%포인트 추가 상승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미국내 소비 위축으로 수출에 어려움을 겪게 된 수출경쟁국들이 수출을 늘리기 위해 환율을 경쟁적으로 평가절하한다면 상황은 더욱 어려워진다.
진념 부총리는 최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재무장관 회의에서 “역내 국가들이 통화가치 절하경쟁을 통한 수출경쟁을 지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사태가 악화될 경우 협력체제가 확실히 구축되기를 장담하기는 어렵다.
미국 경제의 회복 지연은 우리 경제의 현안인 구조조정에도 악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하이닉스반도체의 경우 반도체 경기에 대한 전망을 재조정해 정상화 계획을 수정해야 할지도 모른다.
제너럴 모터스와의 대우차 매각협상, AIG 컨소시엄과의 현대투신증권 매각협상 등도 조기 타결을 장담하기 어렵게 됐다.
현대증권의 경우 테러 사태로 주가가 급락한 틈을 타 신주발행가격을 7천원으로 바꾸기로 이사회 결의를 했다.
그러나 뉴욕 세계무역센터 건물 붕괴로 미국내 상당수 금융기관들이 타격을 입어, 컨소시엄에 참여하기로 한 투자자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느냐가 변수다.
경기회복이 지연될 경우 회사채 신속인수, 프라이머리 CBO 등 정부의 신용보증 개입을 통해 가까스로 지탱해온 자금시장도 골칫거리다.
한계기업들의 부도가 현실화할 경우 금융경색은 더욱 심화될 것이다.
이로 인한 부실 처리에는 상당한 자금이 필요하지만, 현재의 국내정치 일정을 감안하면 공적자금 조성 등을 통한 신속한 처리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변수는 테러 사태의 후유증이 얼마나 오래가느냐다.
산업자원부에 따르면 항공편 운항 중단만으로 하루 2500만달러씩 수출이 차질을 빚고 있다.
하지만, 이런 문제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단기간에 그칠 것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기름값도 테러 사태 직후 급격히 올랐지만 곧 안정세를 회복했다.
산유국들이 아직은 미국의 영향권 아래 있기 때문이다.
테러 사태가 조기에 수습된다면 미국내 소비위축의 폭도 그리 크지는 않을 전망이다.
하지만 국제적 긴장이 오래갈 경우 후유증은 상상을 초월할 수도 있다.
미국이 테러를 응징하는 과정에서 국제적인 긴장이 조성되고 그것이 오래 끌 경우 기름값의 급등 등 부작용이 생기고 국가간 교역도 더욱 위축될 수밖에 없다.
세계적인 소비감소 폭도 커질 것이다.
재정경제부 권오규 차관보는 “이번 사태로 인해 세계경제와 우리경제의 회복시기가 늦어질 것은 분명하다”며 “그러나 회복시기는 미국의 테러 배후세력에 대한 응징 수준에 따라 크게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에 대한 동시다발적 테러 사태는 우리 경제에는 어려움을 가중시키겠지만 진념 경제팀에게는 득이 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경제전망을 잘못해 정책을 잘못 폈다는 비난에서 어느 정도 자유로워질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국정감사가 시작되면서 여야 의원들은 “4분기에는 경기가 회복될 것”이라는 진 부총리의 그동안의 낙관론이 정책실패로 이어졌다고 호되게 질책했다. 실제로 3분기 우리 경제의 성장률은 1%대로 떨어질 것으로 우려되는 상황이었고, 이는 경제팀에 큰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큰 상태였다. 경제팀은 또 4분기에는 우리 경제가 5%대의 성장을 회복할 것이라고 장담해왔으나, 이 또한 매우 불투명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책임의 상당부분은 이제 ‘테러’라는 우발적 사건으로 떠넘길 수 있게 됐다. 재경부 관계자는 이제 “4분기 경기회복은 어렵게 됐다”고 자신있게(?) 말한다. 경기악화 중 얼마만큼이 테러의 영향인지를 계산해낼 사람은 없기 때문에 경기침체의 책임을 정책팀에게만 돌리기는 어렵게 된 것이다. 정책을 풀어나가는 과정에서 야당의 협조를 얻기도 좀더 쉬워질 것으로 보인다. 진념 경제팀은 5조원 규모의 1차 추가경정 예산안을 국회에서 승인받는 데만도 야당의 반대로 큰 홍역을 치렀다. 그러나 지금은 추경편성이 없었다면 오히려 야당이 비판을 감수해야 할 상황이 됐다. 재정경제부는 연초 미국 경제의 성장률이 1~2%대로 떨어질 경우 3단계 비상대책에 들어가도록 계획을 세워놓은 바 있다. 이 비상대책은 2차 추가경정예산 편성과 강력한 경기부양책이 필요하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한나라당은 추경예산이 내년 대선을 앞둔 여당의 선심성 재정지출로 이어질 것을 우려해 재정지출 확대보다는 감세를 강력히 요구해왔다. 그러나 테러 사태로 상황이 나빠져 2차 추경예산 편성이 필요하다는 정부 요청이 나오더라도 야당이 반대할 명분이 그리 많지 않은 상황이다. 정부가 나서서 야당쪽에 제3차 여야 정책협의회를 열어달라는 말을 쉽게 할 수 있는 것도 테러사태의 영향이다. 그러나 경제는 결과가 말해주는 것이다. 길게 보면 내년 대선을 앞둔 김대중 정부에는 이번 테러 사태가 매우 운 나쁜 일임에 틀림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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