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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임재경 대기자의 유로 현지탐방③ - 유로권의 난제는 독일
[글로벌] 임재경 대기자의 유로 현지탐방③ - 유로권의 난제는 독일
  • 브뤼셀·빈=임재경/ 언론인
  • 승인 2002.02.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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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성장과 높은 실업률로 몸살… 사회적 시장경제에서도 프랑스에 밀려 유럽의 주말은 금요일 오후로부터라는 것을 깜박한 것이 문제였다.
하긴 하루 저녁밖에 머무르지 못하는 브뤼셀에서 유럽연합(EU) 본부에 가 그곳에서 근무하는 유럽 사람이면 누구든 만나 인터뷰를 해보려고 욕심을 부린 것 자체가 서툰 짓이었다.
그것도 연초에, 개인적 인연마저 없는 곳에서 말이다.
' 하지만 금요일 저녁의 인터뷰가 성사되지 못한 것 자체가 유럽적 현상 중 하나임에 틀림없다.
이런 체험을 한 것만으로도, 브뤼셀에 들렀던 것을 후회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금요일 오후 이야기가 나온 김에 하는 말인데, 프랑스는 2000년 2월초에 주당 기준 노동시간을 39시간에서 35시간으로 줄인 다음 목요일 저녁 대도시에서 지방으로 향하는 열차의 객차 편성 대수를 두배로 늘려야 했다고 한다.
그러니 프랑스에서는 이제 주말은 금요일이 아니라 목요일에 시작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유럽으로 떠나기 직전 서울에서 인터넷을 통해 읽은 독일 주간지 <디차이트>는 프랑스가 노동시간을 줄인 첫해에 실업자가 58만명 감소했다고 보도했다.
이로써 프랑스인들은 사회적 시장경제 정책에 관한 한 “그들의 선생인 독일을 앞질렀다”고 <디차이트>는 논평했다.
동양식 한자 숙어로 표현하면, 바둑 세계에서 이창호가 그의 스승 조훈현을 이겼을 때 나왔던 말인 ‘승어사’(勝於師)에 해당된다.
노동시간을 줄여 일자리를 나눈다 파리에서 야간열차를 타고 유럽중앙은행(ECB)이 자리잡은 독일의 프랑크푸르트로 직접 갈까, 아니면 브뤼셀을 들러 갈까 조금은 망설였던 게 사실이다.
프랑크푸르트로 가는 도중에 유럽연합의 수도 브뤼셀에 들러 몇시간이나마 보낼 수 있다면, 저널리스트로서 그것을 마다할 이유는 없다.
병아리 기자 시절 “사건 현장에 있었다”는 느낌을 주도록 기사를 쓰라는 말을 수없이 듣지 않았던가. 브뤼셀을 경유해 프랑크푸르트로 가는 여정을 주류 경제학에서 말하는 즉물적 ‘투입-산출 효과’(cost-benefit effect)로 따지자면 확실히 마이너스의 측면이 있다.
우회한 만큼의 철도요금, 그리고 브뤼셀에서 1박하는 데 드는 호텔요금이 비용쪽에 얹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만사를 계산하려거든, 장삿속이 아닌 해외 나들이는 아예 꿈도 꾸지 말아야 옳다.
브뤼셀역에서 호텔로 가는 동안 길가에 내걸린,‘유로’로 시작되는 색다른 네온 간판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이를테면 유로섹스, 유로버거 같은 것들이었는데 전자는 포르노 가게, 후자는 햄버거 가게를 가리키는 모양이었다.
유로화 도입 이전부터 브뤼셀은 유럽연합 관계기관에서 일하는 1만5천명의 인구가 경기를 유지하는 데 큰 몫을 차지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런 이유로 브뤼셀은 벨기에의 다른 도시들보다 물가가 비싸 토박이들은 불만이라고 한다.
이런 점은 국제기관이 많은 스위스의 제네바와 유사하다.
어떻든 상인들이 상품 이름만이 아니라 가게 이름을 짓는 데서도 발휘하는 기민함에는 혀를 내둘러야 했다.
토요일 새벽 6시 반 브뤼셀에서 독일의 쾰른을 거쳐 프랑크푸르트로 가는 열차를 탔다.
주말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려는 듯 객차 안의 손님 수는 예닐곱밖에 되지 않았다.
역 구내 신문 판매대는 고사하고 커피 파는 간이식당조차 문을 열지 않은 이른 시각이긴 했다.
이틀 동안 쌓인 피곤 때문인지, 전날 밤 잘 잔 편이었는데도 차 안에 들어가 앉자 곧 졸음이 쏟아졌다.
기차가 멎는 가벼운 충격에 눈을 떠보니 독일의 아헨역이다.
조는 사이에 기차가 독일 국경선을 넘은 모양인데, 국경 경찰은 왜 나를 깨우지 않았을까? 지난 1971년에 프랑스에서 자르브뤼켄을 거쳐 독일로 갈 때, 92년에 폴란드에서 프랑크푸르트 안 데어 오더를 통해 독일로 되돌아올 때, 그리고 98년에 이번처럼 아헨을 거쳐 독일로 갈 때는 예외없이 국경 경찰이 긴장한 표정으로 내게 패스포트 제시를 요구했었다.
유럽연합 역내에서 통행하는 것이 유로화의 통용을 계기로 한층 더 자유로워져, 역내 국경선이 이제는 정말 있으나 마나 한 것이 되고 만 걸까? 그러고 보니 전날 파리에서 테제베(TGV)를 타고 브뤼셀로 올 때도 패스포트 제시 요구가 없었다.
뒤에 말할 기회가 있을 것 같지 않아 미리 기록해두는 것인데, 독일 방문을 마치고 유로화에 가입하지 않은 영국으로 건너갈 때는 출입국 관리가 단순히 여권을 보여달라는 데 그치지 않고 영국에 며칠이나 묵을 예정이냐고 물었다.
“Yes, One money, one market!”(역시 그렇지. 한가지 돈을 쓰면 어찌되었건 한 장바닥이지.) 나는 입 속으로 중얼거렸다.
스위스, 조만간 유로권에 들어올 것 쾰른에서 갈아탄 쾌속 남행열차의 왼쪽 차창 밖으로 라인강이 모습을 드러냈다.
라인강의 수위가 예전 기억보다 높아진 듯이 느껴져 앞에 앉은 사람에게 “비가 많이 내렸느냐”고 묻자, 그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면서 “스위스에 많이 내린 눈이 녹아 라인강의 수위가 높아졌다”고 대답했다.
어?, 떡 벌어진 어깨와 굵은 올의 스웨터 차림인 이 50대 후반 독일인은 전혀 기상학자 같지 않은데도 라인강 수위 상승의 원인을 이처럼 즉석에서 자신있게 말하다니. 상식이 보통 이상이다.
이쪽의 가벼운 질문에 반응하는 상대방의 대거리 수준에 따라 저널리스트의 취재 의욕이 발동하는 것은 기름 냄새를 맡은 개의 경우처럼 거의 본능적이다.
간단하게 내 자신을 소개한 다음 직업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서양인에게는 아주 친숙한 사이가 아닌 한 직업을 묻는 것은 실례인 것쯤은 잘 알지만, 직업을 알아야 더 알맹이 있는 대화를 진행할 수 있는 법이다.
그는 자신의 직업을 “콘택터”라고 말했다.
그때까지는 피차 독일어 반, 영어 반으로 의사가 제법 잘 통했는데 콘택터는 잘 모르겠다.
발음의 액센트로 미루어 영어로 무엇인가를 표현하려 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어의 콘택트(contact· 접촉하다)에 ‘er’을 붙여 ‘접촉하는 사람’을 말한 것인가? 그러나 나는 콘택터라는 직업을 일찍이 들어본 적이 없다.
혹시나 하며 나는 “콘트랙터(contracter), 즉 바우운터네머(Bauunternehmer)를 말하는 것인가요?”라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야, 야.(ja, ja.)”를 연발한다.
그는 루르 지방에 사는데, 건설사업 현장인 남부 바이에른 지방으로 가는 길이라고 했다.
이제는 내가 물어보고 싶은 쪽으로 화제를 돌려야 한다.
그래서 “스위스가 EU에, 특히 유로화권에 가입하지 않은 것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운을 뗐다.
그는 기다리기나 했다는 듯이 “유로화권에서는 스위스가 문제가 아니라 독일이 문제이며 독일에 어려운 문제가 더 많다”며 “스위스? 그 나라는 조만간 유로권에 들어올 것”이라고 또박또박 말했다.
나는 독일의 ‘어려운 문제’가 구체적으로 무엇이냐고 추궁했다.
그는 자신이 콘트랙터를 잘못 발음한 것을 만회라도 하려는 듯 독일의 낮은 성장률, 높은 실업률, 낡은 행정규제들, 불법이민의 방치, 게르하르트 슈뢰더 정부의 복지정책의 문제점 등을 열거했다.
그는 비록 낮은 어조이긴 했지만, 강단에 선 교수처럼 자신의 확신에 찬 생각들을 조목조목 말했다.
그런 모습을 바라보면서, 그는 불경기에 시달리는 고용주이며, 따라서 정치적 성향은 보수적일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얼핏 들었다.
마르크화는 외국돈, 유로화는 자국돈? 더 들을 흥미를 잃었다.
내가 너무 도식적으로 사람과 사물을 판단하는 것일까, 아니면 피곤해서일까? 레스토랑 칸에 가서 커피를 같이 마시자고 했더니 그는 “나인, 당케!”(Nein, danke!·고맙지만 사양하겠다) 하고 만다.
혼자 식당 칸에 가 메뉴를 보니, 커피 한잔이 4.20DM(도이체마르크). 보이에게 마르크화를 받느냐고 했더니 “물론”이라고 하면서도 “단 마르크화 동전은 안 받는다”는 것이었다.
그러면 유로화 동전은 받느냐고 했더니 “그것은 OK”란다.
왜냐고 다그쳤다.
그의 답변인즉, 자기는 오스트리아 빈에 살며 그 식당차는 오스트리아 철도청 소속이라는 것이었다.
그것이 마르크화 동전을 받지 않는 이유가 될 수 있을까? 내가 가볍게 고개를 가로젓자, 묻지도 않았는데 “당신에게 마르크화 동전이 있으면 독일에서 쓰라”고 말해주는 친절을 베푼다.
그제야 알만 했다.
금융이론 교과서 초장에 나오는 이른바 ‘현금 수송비용’의 이치를 나이 일흔을 바라보는 나이에 유럽의 열차칸에서 비로소 깨달은 것이다.
어느 나라든지 외국의 동전은 교환해주지 않는다.
유로 존(Zone)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독일 마르크화 동전을 오스트리아 빈에서 유로화로 바꿀 수는 없는 것이었다.
파리 환전소에서 바꿔 호주머니에 넣어뒀던 유로화를 한움큼 꺼내들었다.
보이는 그 가운데서 2유로10센트를 골라냈다.
그 열차는 도르트문트에서 출발해 빈으로 가는, 이름하여 ‘헨델’호였다.

유럽중앙은행의 구성과 기능

유럽중앙은행(ECB)은 임원회의(집행부·Executive board)와 정책이사회(의결기구·Governing Council) 등 두 기구로 구성돼 있다.
임원회의는 ECB의 총재, 부총재, 그리고 4명의 이사로 구성되는 금융정책 집행기구이며, 정책이사회는 ECB 임원 6명과 유로통화 가맹 12개국 중앙은행 총재들이 이사가 되는 주요 금융정책 결정기구다.
정책이사회는 단순 과반수의 찬성으로 안건을 처리하며, 주요 정책금리 결정과 유로화의 가치 안정이 임무다.
한편 유로화 가맹 12개국의 중앙은행들은 ECB 임원회의의 지시와 감독을 받아, 자국의 금융시장에서 시장금리의 유도와 외환시장 개입과 같은 업무를 집행한다.
유럽중앙은행의 자본금은 50억유로이며, 현재의 총재는 네덜란드 재무장관을 역임한 빔 도이센베르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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