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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 증권사 'ABS를 잡아라'
[비즈니스] 증권사 'ABS를 잡아라'
  • 이경숙 기자
  • 승인 2002.03.2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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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란...

자산담보부증권(Asset Backed Securities). 가지고 있는 자산을 담보로 증권을 발행하는 것을 말한다.
회사채 같은 유가증권을 포함해 부동산, 매출채권, 주택저당채권 등 시장가치가 있는 모든 자산은 유동화할 수 있다.
이때 ABS는 어음 할인처럼 가진 자산을 미리 현금으로 만들어준다.
하지만 어음과는 달리 증권이기 때문에 투자 위험이 분산되는 효과가 있다.
이때 발행된 ABS가 부실채권일 땐 원래 자산보유자의 재무제표에서 부실채권이 사라지지 때문에 기업의 신용등급이 올라가는 부수적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지난해 여름 한 증권사 자산유동화팀 사무실. 다들 어찌나 분주한지 한번에 한가지 일만 하는 사람이 없다.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한쪽 어깨엔 유선전화 수화기를, 다른 한손엔 휴대전화기를 든 채 인터넷을 뒤적거리거나 연신 책상 위 자료들을 넘겨댄다.
나머지 사람들은 휴대전화기에 뭔가를 중얼거리면서 경황 없이 저고리를 꿰어 입고 달려나간다.
팀장들은 당구대 위의 당구공처럼 이 자리 저 자리를 오가며 진행상황을 바삐 점검한다.


올해 3월 어느날 오후 다시 그 사무실을 찾아갔다.
전날 야근했다는 한 팀원이 그제서야 눈을 비비며 출근한다.
다른 팀원들은 찻잔 하나씩 들고 느긋하게 인터넷을 들여다보고 있거나, 전화 통화를 하고 있다.
다른 사무실엔 경쟁사 팀장이 와서 이런저런 시장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다들 지난해만 해도 10분 이상 한자리에 붙잡아놓기 어려울 정도로 분주했었다.


남들은 더 바빠지고 있는 경기회복기에 이들은 왜 이리 한가한 걸까. “요즘 별로 ‘건수’가 없어요. 신상품 기획안을 내놓거나 기업 설명회를 나가는 것말고는 다른 일이 없죠.”


일부 증권사 ‘수수료율 0%’ 제안도

이런 분위기는 금융감독원 통계수치로 짐작했던 것과는 사뭇 다르다.
통계에서 나타나는 현황이나 금감원의 시장 전망으로 보면 증권사 자산유동화팀은 여전히 ‘잘나가야’ 마땅하다.
자산담보부증권(ABS) 시장은 2000년에 이어 지난해에도 급성장했으며 올해에도 성장세를 이어나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2월말 금융감독원이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ABS 발행 총액은 50조9천억원으로 2000년보다 3.1% 늘었다.
여기서 유통시장 채권담보부증권(Secondary-CBO)을 제외하면 실제 증가율은 72%에 이른다.
유통시장 CBO는 기존에 유통중인 회사채로 만든 채권담보부증권으로, 2000년엔 국내 자금시장의 신용 경색을 해소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대량 발행됐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ABS 가운데 CBO쪽은 유통시장, 발행시장 모두 크게 위축되고 있다.
기업의 자금사정이 호전되면서 회사들이 굳이 투기등급 회사채로 CBO를 발행할 필요가 없어져버린 것이다.
전체 CBO 발행액은 2000년 10조3천억원에서 2001년 8조7천억원으로 줄어들었다.


지난해 ABS 시장 확대를 이끈 것은 현금서비스채권을 포함한 카드채권 ABS와 항공요금 등 일반기업 매출채권 ABS였다.
특히 지난해 카드매출채권 ABS는 20조6천억원으로, 2000년보다 400% 이상 늘어났다.
일반기업 ABS 발행총액도 4조1천억원에 이르러 2000년보다 350% 급증했다.
금융회사 부실대출채권(NPL)을 유동화한 대출채권담보부증권(CLO) 발행규모는 42.5% 늘어난 14조7천억원에 이르렀다.


금감원은 올해에도 ABS 발행이 활발히 이뤄질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경기 호전으로 부실채권이 줄어들어 NPL 발행은 축소될지라도, 신용카드 이용실적 증가에 따라 카드채권 ABS 발행과 일반기업의 매출채권 ABS 발행도 꾸준히 이어져 전체 ABS 시장은 계속 커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하지만 기업과 직접 상대하는 증권사 실무자들의 생각은 좀 다르다.
어떤 이는 올해엔 지난해 정도의 발행규모를 유지할 것이라고 하고, 어떤 이는 약간 줄어들 것 같다고 말한다.
지난해보다 30~40%까지 규모가 줄어들 수도 있다고 보는 이도 있다.
대우증권 IB2본부 정유신 본부장이다.


그의 설명은 이러하다.
ABS는 IMF 외환위기 때 우리나라 국가 전체의 부실자산을 정리하는 구조조정 과정에서 처음 도입됐다.
결과적으로 ABS가 부실채권의 위험을 분산해 위축된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었으니 도입은 성공적인 셈이다.
그런데 올해 초부터 눈에 띄게 경기가 회복되고, 기업실적이 좋아지자 ABS에 대한 관심도 차차 시들해졌다.
기업 실적이 개선되면서 부실채권은 나올 가능성이 줄어들게 되었고, 기업들은 굳이 자산을 유동화해 자금을 조달하지 않고도 대출, 회사채 발행을 통해 자금을 끌어올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미국에선 ABS발행 대중적 수단으로 정착

ABS 발행시장의 체감온도는 낮아지기 시작했다.
증권사 자산유동화 담당자들은 발행 물량이 없다고 영업의 어려움을 토로한다.
ABS를 발행할 만한 큰 기업들은 이미 발행을 하고 있고 중소기업들은 자력으로 ABS를 할 만한 자산규모, 회계 시스템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기술신용보증기금이나 신용보증기금도 보증재원이 많이 남지 않아 지난해처럼 큰 규모로 발행시장 채권담보부증권(Primary-CBO)을 발행하기는 어려워졌단다.


때문에 주간사들의 ‘밥그릇’ 싸움은 열기가 높아지고 있다.
발행수수료율은 가을 낙엽처럼 우수수 떨어지고 있다.
주간사들은 고객에 따라, 계약에 따라 수수료율을 5bp(0.05%)에서 100bp(1%)까지 다양하게 조정하면서 고객을 경쟁사에 뺏기지 않기 위해, 혹은 뺏어오기 위해 신경전을 펼치고 있다.
심지어 어떤 중소형 증권사는 한 대형증권사가 독점하고 있는 고객사에 “수수료율을 0%로 해줄 테니 거래를 트자”고 제안한 것으로 전해진다.
출혈경쟁이 점화된 것이다.


이미 손들고 시장 밖으로 나가는 증권사들도 생겨났다.
ABS 업무를 하는 증권사 수는 한때 24개에 이르기도 했지만 올해 들어선 8, 9개로 압축됐다.
형제사의 ABS 물량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고 있는 LG투자증권, 삼성증권을 비롯해 대우증권, 현대증권, 하나증권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선두그룹을 형성하고 있고 대신증권, 부국증권, 한양증권, 한누리증권이 그 뒤를 바짝 쫓고 있다.


경쟁이 치열해지면 상품의 질이 높아지게 마련이다.
증권사 자산유동화팀들은 저마다 머리를 싸매고 차별화된 신상품을 준비하고 있다.
대우증권 정유신 본부장은 “ABS 시장이 새로운 모색기에 접어들었다”며 “앞으로는 양적으로 크게 늘어나기보다는 질적으로 성장하는 시장이 될 것”이라고 내다본다.
이제부터는 ABS도 금융채, 신종사채 등 다른 파생상품들과 함께 다양한 구조설계상품으로 진화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미국에서 ABS는 일찌감치 ‘대중적인’ 자산조달 수단으로 정착했다.
가령 마이클 잭슨, 마돈나 등 대형급 가수들은 스스로를 개인사업자로 등록하고 미래의 앨범판매액을 유동화할 수 있다.
이들의 앨범은 찍어내기만 하면 전세계적으로 1천만장은 기본으로 팔리기 때문이다.
이런 가수들의 앨범판매채권은 전기요금이나 항공요금처럼 ‘장래매출채권’ ABS로 발행된다.
같은 원리로 FIFA는 아직 팔지 않은 다음 월드컵의 스폰서십을 유동화한다.
‘자산’이라 이름 붙일 수 있는 모든 것은 유동화할 수 있는 셈이다.


GE캐피털은 자산유동화를 잘 활용하는 기업으로 유명하다.
이 회사는 GE 가전제품을 할부판매하면서 생기는 채권을 유동화해 현금을 확보하고 이것을 회전해 더 많은 이윤을 만들어낸다.
또 GE가 인수합병한 회사들의 부실채권을 유동화해 GE 전체의 기업 신뢰도를 끌어올리기도 한다.
한국기업평가 ABS팀 김필규 팀장은 “이렇게 확보하는 자금은 GE캐피털 조달자금의 30%에 이른다”고 전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이런 모습을 보는 것은 당분간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여러가지 관행적, 문화적 한계가 아직 남아 있는 탓이다.
대신증권 박정근 대리는 “ABS는 소액 발행이 어렵고 발행할 때마다 법인 설립비용이 소요된다”고 지적한다.
자산을 유동화하려면 신용등급이 적어도 BB 이상 되는 국내 상장·등록기업이어야 하는데다가, ABS를 한번 발행할 때마다 서류상 회사인 유동화전문유한회사(SPC)를 하나씩 설립해야 하기 때문이다.
금감원 자산유동화업무팀 현정근 팀장은 외국에선 한가지 ABS 프로젝트일 때엔 한번만 SPC를 설립해도 여러번 ABS를 발행할 수 있도록 ‘관행적’으로 허용하고 있다고 귀띔한다.


때론 기업들의 회계 시스템이 ABS 도입에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현대증권 박주철 차장은 “신용평가기관이나 은행들이 해당기업의 회계시스템에서 원하는 데이터를 추출하지 못해 우량 신용등급 ABS를 발행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고 귀띔한다.
가령 회사채 등급이 투기등급인 기업의 장래매출채권이라 해도 은행의 신용 공여를 받으면 질 좋은 자산만 골라내 AAA급 증권으로 재탄생시킬 수 있다.
하지만 이 기업이 회계장부로써 앞으로 일어날 매출이 확실하다는 점을 증명하지 못하면 은행은 신용공여를 꺼리게 되고 기업은 ABS 발행에 어려움을 겪는다.


ABS를 마치 부실기업의 징표인 양 꺼림칙해하는 기업의 인식 수준도 문젯거리다.
LG투자증권 자산유동화팀 봉원석 차장은 “기업들이 ‘ABS를 받으면 시장에서 부정적으로 보지 않겠냐’고 걱정하며 발행을 꺼린다”고 전한다.
부실채권 정리과정에서 비롯됐다는 우리나라 ABS 제도 특유의 탄생배경 탓이다.
봉 차장은 “최근엔 제일제당처럼 신용등급이 좋은 기업들도 현금흐름과 기업신용을 좋게 하기 위해 자산을 유동화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우리나라의 자산유동화제도나 노하우 수준은 어느 나라에 내놔도 부럽지 않을 정도로 앞서 있다.
중국, 태국, 터키처럼 경제가 급성장해 부실채권 우려가 서서히 발생하고 있는 나라에선 부실자산 분산의 성공사례로서 한국의 자산유동화 시스템을 ‘학습’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증권사, 신용평가회사들의 자산분석 노하우도 상당히 높은 수준에 이르렀다.
한국기업평가 김필규 팀장은 “외국계 회사들과 붙어볼 만하다”고 자신한다.
한국 ABS 시장에 들어와 있는 외국계 증권사는 이미 한국 증권사들이 제압했으며 한국 신용평가회사들도 앞으로 들어올 예정인 S&P 등 외국계 신용평가사들과 맞붙어 뒤처지지 않을 만큼 노하우를 쌓아놨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ABS 시장은 양적 성장의 단계를 넘어 질적 성장의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
증권사와 은행들은 저마다 파생상품과 결합한 다양한 ABS 상품들을 개발하고 있다.
LG투자증권 봉원석 차장은 “ABS의 다양성이 단조로운 상품으로 침체된 우리나라 채권시장에 상품 수요를 자극할 수도 있다”고 내다본다.
비록 시장 확장 속도는 줄어들고 있지만 ABS는 여전히 우리 금융가의 효자 상품이다.




관련기사. 중기청에서 날아온 희소식

올해 중소기업이나 벤처기업이 ABS를 발행할 기회는 많지 않다.
지난해 대규모로 발행시장 채권담보부증권(Primary-CBO)을 보증했던 기술신용보증기금이나 신용보증기금도 남은 보증재원이 많지 않기 때문에 올해엔 기존 물량을 차환하는 정도로만 발행하거나 작은 규모로 발행할 것으로 전망된다.


따라서 관심있는 기업은 중소기업청의 ABS 발행계획을 눈여겨봐야 할 것이다.
중소기업청은 중소, 벤처기업이 발행한 회사채, 은행대출, 매출채권, 벤처캐피털회사의 투자주식을 기초로 프라이머리 채권담보부증권(CBO), 대출채권담보부증권(CLO) 등 중소·벤처기업 전용 ABS를 3~4차례에 걸쳐 발행하겠다고 밝혔다.
주간사 회사로는 한양증권, 대신증권, 한누리증권이 선정됐다.
지원대상은 중소기업과 정부의 벤처인증기업으로, 그중 수출기업이 받는 지원액수가 가장 커 모두 합해 5천억원에 이른다.


중기청 자금지원과 오형근 과장은 신용이 BB+ 이상인 기업, 해외시장 네트워크 확보 등 사업성을 증명할 수 있는 기업, 기술 특허 등 기술성을 증명할 수 있는 기업이면 사업체선정위원회의 우선 검토대상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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