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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권우의 책읽기] 동화 밖으로 나온 공주
[이권우의 책읽기] 동화 밖으로 나온 공주
  • 이권우 | 도서평론가
  • 승인 2002.08.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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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면서 어처구니없는 일을 많이 겪지만, 사랑이란 이름으로 서로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기는 것만큼 어이없는 일은 없다.
그것이 첫눈에 반해서든, 오랜 모색과 탐색을 거쳐 얻은 결론이든 사랑이란 이름으로 결합했다면, 거기에 걸맞은 행동이 뒤따라야 마땅하다.
그런데 알다가도 모를 일이 인생사다.
물불 가리지 않았던 열정은 식어버리고, 남은 것은 작게는 원망이요, 크게는 저주다.
도대체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되고 말았을까, 하는 한숨이 절로 나올 법한데, 놀랄 만한 사실은 많은 연인들의 심리상태가 사실상 이런 지경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동화 밖으로 나온 공주'는 용하다는 소문이 파다한 어느 족집게 점쟁이가 쓴 소설 같다.
빅토리아 공주라는 주인공을 통해, 여성이라면 누구나 겪었을 법한 파란만장한 일생을 그렸다.
주의할 것은, 여기서 말한 ‘파란만장’이 세상사의 파고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전쟁이나 혁명, 또는 운명 때문에 비극을 맞이한 게 아니다.
한 남자와 맺은 인연이 몰고온 파국을 가리킨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이 파국이 앞의 비극에 견주어보았을 때 고통의 정도가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는 않다는 점이다.
빅토리아는 어릴 적부터 어려움에 놓인 공주를 구해주려 왕자가 짠 하고 나타나는 동화를 들어왔다.
생일 선물로 받은 뮤직박스에서 ‘언젠가 왕자님이 찾아올 거야’라는 음악이 나오자 대뜸 “내가 제일 좋아하는 노래잖아!”라고 외쳤다.
드디어 공주에게 왕자가 나타나셨다.
“너른 가슴팍과 떡 벌어진 어깨와 칠흑처럼 검은 머리칼”을 가졌다니, 그가 뭇 여성들의 가슴을 얼마나 설레게 했을지 짐작할 만하다.
거기에다 유머감각까지 뛰어나, 공주는 왕자에게 낄낄박사라는 별호를 붙여주었다.
공주와 왕자의 결혼이라, 여기까지는 정말 익히 보아온 동화 같다.
그러나 현실은 동화와는 다른 법이다.
숨겨졌던 왕자의 또 다른 면이 나타났는데 얼마나 끔찍한 모습이던지, 그것을 일러 공주는 하이드씨라 이름지었다(이 대목에서 이크 하며 뜨끔해할 남자들이 많을 성 싶다). 공주는 불행과 좌절, 그리고 슬픔의 나날을 보내야 했다.
친정으로 달려가 도움을 구했지만, 혹시 네 잘못이 아니냐는 말을 들었다(여기서 어쩜 나하고 똑같냐고 말하는 여성들이 많이 있을 듯 싶다). 마침내 공주는 성을 박차고 나와 ‘그후로도 행복한 방법’을 찾아나선다.
이 길고 험한 여정을 통해 공주가 깨달은 것은, 이런 소설들이 늘상 그러하듯 무척 익숙한 것인 바, 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과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은 사랑 때문에 깊은 상처를 입은 사람에게 주는 처방전이다.
효과가 직방으로 나타난다고 장담할 수는 없으나, “존중받고 싶다는 욕망보다 사랑받고 싶다는 욕망이 더 클 때” 사랑의 희생양이 될 수 있다는 말에 수긍이 가는 것으로 보아, 참고할 만한 구절이 많을 성 싶다.
기대하는 바와 달리, 위기의 순간에 왕자는 나타나지 않는다.
그것을 꿈꾸는 것은 동화적 세계에서나 가능할 뿐이다.
그렇다고 지은이가 왕자는 없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정작 가치있는 것은 왕자가 있건 없건간에 자신이 행복해야 한다는 점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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