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이어 F-117 나이트호크 스텔스 전폭기가 출동해 수백발의 위성유도폭탄을 투하한다.
지상에서는 정예부대 101공수여단이 병력 2만여명과 헬리콥터 260여대 등을 동원해 공습에 박차를 가한다.
”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의 ‘전쟁 시나리오’가 현실로 바뀌었다.
실제 상황에 맞춰 시나리오를 재구성하면 대충 이렇다.
지난 3월17일 미국 조지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 사담 후세인 대통령에게 가족과 함께 이라크를 떠나지 않으면 전쟁에 직면한다며 최후통첩을 날렸다.
다음날 이라크는 최후통첩을 거부했다.
3월20일 11시35분(한국시각) 미국은 대대적인 바그다드 공습을 시작으로 ‘이라크전’을 시작한다.
지난 1991년 걸프전 이후 미국과 이라크의 ‘석유 전쟁’이 다시 불붙은 것이다.
이제 이라크전은 세계경제는 물론 한국 경제에도 하나의 분기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중동지역의 화염이 쉽게 가라앉지 않아 세계경제를 다시 불황의 나락으로 떨어뜨리면 한국 경제는 지금 보다 더 큰 위기에 부딪힐 수 있다.
이에 비해 이번 전쟁이 속전속결로 끝나면 한국 경기회복의 계기로 작용할 수도 있다.
미국이 ‘이라크 자유작전’이라고 명명한 제2차 걸프전은 어떻게 진행될 것이며, 한국 경제에 업종별로 미치는 여파는 어떤 것일까. 3개월 이상 지속되면 스태그플레이션 우려 아직도 진행중인 이라크전의 향방은 여전히 안갯속에 놓여 있다.
다만 조심스럽게 시나리오를 미리 점쳐볼 수 있을 따름이다.
우선 미국의 압도적 승리는 누구나 인정한다.
하지만 이라크전이 단기간에 끝날지 아니면 장기전으로 접어들지에 따라 세계경제나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극과 극을 달리게 된다.
한달 안팎으로 전쟁이 끝나면 단기전, 석달을 넘기게 되면 장기전으로 대략 나눌 수 있다.
현재 분위기라면 이라크전이 장기전으로 질질 끌려갈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부시 미 대통령은 전쟁이 교착상태에 빠진 3월27일 “전쟁이 끝나려면 아직 멀었다”며 장기전에 대비하고 있음을 내비쳤다.
미국 언론들도 여기에 가세했다.
같은날 <워싱턴포스트>는 “전쟁이 몇달이나 지속될지도 모른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실제 군사 전문가들은 이라크군이 의외로 완강하게 저항하고 있는 점, 모래폭풍 등 불안정한 이라크의 사막기후, 바그다드 시가전에서 미국이 고전할 수 있다는 점 등을 들어 전쟁 장기화를 점치고 있다.
이렇게 이라크전이 장기전으로 치닫게 될 때 한국 경제는 3% 미만, 심하면 마이너스로 뒷걸음질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본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조사본부 이철행 팀장은 “전쟁이 3개월 이상 계속되면 고물가·저성장의 스태그플레이션에 빠지고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할 것”이라고 우려한다.
또한 수출 차질도 쉽게 예측할 수 있다.
한국무역협회가 최근 조사한 바에 따르면 미국의 공습이 시작된 지난 3월20일 하루만 수출상담 중단이나 선적·하역 중단에 따른 피해가 45건에 2306만달러였다.
그런데 3월24일 재집계 때는 이날 하루에만 피해액이 406건에 5600만달러로 그 규모가 급격히 커지고 있다.
장기전에 가장 큰 피해를 보는 업종으로는 자동차산업이 꼽힌다.
전쟁이 장기화하면 유가 급등이 최대 고민거리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심하면 비상체제로 전환해야 할 형편이다.
현대자동차 관계자는 “경기 불안감에 따른 국제유가 상승으로 소비심리가 위축되면 내수와 수출 모두 판매량이 크게 떨어질 수 있다”고 말한다.
업계 조사에서도 전쟁이 1개월 이상 이어지면 일단 수출이 연간 기준 15만대 정도가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장기전은 미국 경제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쳐 최대 자동차 수출지역인 미국 시장이 위축되기 때문이다.
내수판매는 수출보다 더 심각하게 영향을 받아 35만대 이상 수요가 감소될 것으로 조사됐다.
단기전에 북핵 문제 해결되면 5% 성장 석유화학업계도 크게 위축될 것으로 보인다.
이라크전이 장기전으로 접어들면 국제유가의 계속적인 상승으로 원재료 가격 상승과 수요 침체 국면 연장이라는 이중고가 심화되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원유 수입 의존도가 워낙 높기 때문에 수출경쟁력이 떨어지면서 석유화학업계의 채산성이 크게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
대우증권 이효근 연구위원은 “걸프전 때도 전쟁 직전의 원유생산 수준을 회복하는 데 쿠웨이트가 2년8개월, 이라크는 7년이 걸렸다”며 “석유화학업계의 수익성이 크게 나빠질 것”이라고 분석한다.
항공업계도 장기전은 달갑지만은 않다.
대한항공은 최근 이라크전 영향으로 국제선 탑승률이 70% 수준으로 낮아졌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9%포인트나 줄어든 수치다.
또한 3월말까지 국제선 예약률도 74%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6%포인트나 떨어졌다.
아시아나항공 역시 똑같은 처지에 놓여 있다.
중국노선을 제외한 전 국제선 구간 탑승률이 60%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급격히 떨어졌다.
장기전은 가뜩이나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내 항공업계의 구조조정을 부채질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관광업계도 해외 여행객과 외국인 관광객 수가 이전에 비해 50~70% 수준으로 뚝 떨어져 타격을 면치 못하고 있다.
한국일반여행업협회 조계석 기획부장은 “벌써부터 소규모 업체는 문을 닫아야 할 지경이라면서 비명이 터져나오고 있다”고 말한다.
섬유업계도 장기전의 부정적 여파를 면치 못할 것으로 보인다.
원자재 가격 상승이 수출경쟁력을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특히 화섬업계는 그동안 섬유경기 침체에 전쟁까지 겹치면서 중소업체들이 줄줄이 도산할지도 모른다는 우려까지 돌고 있다.
장기전에 따른 피해가 천문학적으로 커질 수 있지만 아직도 단기전에 대한 희망은 남아 있다.
장기전에 대한 우려 역시 하나의 가능성일 뿐이지 애초의 단기전에 대한 기대가 크게 어긋난 것도 아니다.
이라크군이 게릴라 전법으로 미·영 연합군을 괴롭히고 있지만 워낙 화력이 밀려 저항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여러가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제시했던 한달 안팎의 전쟁 시나리오는 여전히 유효하다고 할 수 있다.
이라크전이 단기전으로 끝날 경우 한국 경제는 북한 핵문제라는 변수에 직면하지만 장기전보다는 상대적으로 좋은 조건이 전개될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한국경제연구원은 단기전에 북핵 문제까지 해결될 경우 애초 목표했던 5% 수준의 성장까지 가능하다고 전망한다.
종전 직후에는 꽁꽁 얼어붙었던 소비심리가 풀리고 기업들의 투자의욕도 되살아나고 주식시장도 활기를 찾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본다.
LG경제연구원 송태정 책임연구원은 “단기전일 때는 유가 하락 등 세계경제 회복이 탄력을 받아 국내 경제도 상당히 회복될 것”이라고 분석한다.
물론 북핵 문제 등 다른 변수가 많아 단기전이 본격적인 경기회복으로 이어진다고 단언하기는 힘들다.
전쟁 특수로 이어질 지 여전히 안갯속 산업별 전망을 봐도 단기전일 때 긍정적인 측면이 많다.
우선 반도체업계는 단박에 리스크가 해소될 전망이다.
반도체 덩어리인 미사일 소비가 반도체 특수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국내 가전특수도 만만치 않다.
중동 경기가 활력을 찾으면 에어컨, TV 등의 중동 수출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업계에선 중동 수출이 지난해보다 최대 100% 이상 늘어날 것으로 전망한다.
해운업계는 단기전으로 끝날 경우 호재로 예상된다.
전쟁이 시작되면 종전 때까지는 어느 나라든 원유를 조기에 확보하기 위한 가수요가 일어나 유조선 운임이 급등하기 때문이다.
실제 미국과 이라크전이 고조되던 3월14일 운임지수는 140까지 뛰어올라 초강세를 기록했다.
지난해 9월 유조선 운임지수가 30이던 것에 비하면 4배 정도 상승한 것이다.
특히 단기전으로 끝날 경우 세계 및 국내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감으로 해상물동량이 많아질 것으로 보인다.
자동차업계도 내심 단기전을 기대한다.
이라크전이 단기전으로 끝나면 국제유가 하락과 전후 복구사업 등으로 중동지역의 자동차 수요가 늘 수 있다고 전망하기 때문이다.
특히 그동안 이라크 수출은 힘들었다.
지난해 기준으로 중동 자동차 수출대수 7만7588대 가운데 고작 2584대만이 이라크에 수출됐다.
따라서 전쟁이 끝나면 이라크에 특수가 있을 것으로 자동차업계는 기대한다.
이라크전은 국내 시장뿐만 아니라 수출시장에 ‘전쟁 특수’ 내지는 ‘먹구름’을 몰고올 수 있는 큰 전환점이라고 할 수 있다.
전쟁 특수든, 먹구름이든 준비된 정부와 기업만이 기회와 위험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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