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기업인 시스템 통합업체 P사는 올해 초 정부 산하기관에 M&A(인수·합병) 알선을 의뢰했다.
이 회사는 기술력, 시장 경쟁력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하지만 사업 추진 능력이 부족해 덩치가 큰 기업을 파트너로 삼길 원했다.
P사로부터 M&A 알선을 의뢰받은 해당 기관은 자체 실사를 거친 후 사내 정보망을 이용해 매수자를 물색해 둘 사이를 이어줬다.
M&A 협상과정에서도, M&A가 성사된 이후에도 P사는 이 기관으로부터 M&A 자금 보증지원 등 성공적 구조조정을 위한 지속적인 컨설팅을 받았다.
최근 들어 P사처럼 사업 활로를 위해 새 주인을 찾는 이른바 자발적 M&A기업이 늘고 있다.
기술력, 사업성은 갖췄으나 자금난에 시달리는 기업들이 M&A를 통한 구조조정으로 살길을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M&A협회에 따르면 올 들어 지난 3월 말까지 54개의 기업이 협회에 자발적으로 M&A 알선을 의뢰했다.
이 밖에 기술신용보증기금(기보)에도 68건이 매물로 나온 것으로 집계됐다.
여기에 중소기업진흥공단, M&A부띠끄(중개회사), 벤처캐피털업계까지 포함하면 매물 기업은 500여곳에 이를 것으로 파악된다.
업계에서는 올해 전체적으로 2천여곳에 달하는 벤처기업이 M&A시장에 매물로 나올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연내 2천여개 벤처 M&A 매물로 나올 듯
이처럼 최근 들어 중기·벤처를 중심으로 M&A 매물이 늘어난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최근 몇 년간 지속적인 경기침체와 자금 부족에 시달리던 기업들이 더 이상 생존수단을 찾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구조조정 전문 회사인 프론티어CRC의 이제호 이사는 “만성적인 자금 부족을 겪고 있는 기업들 가운데 더 이상 은행 등 금융기관으로부터 차입이 어려운 곳들은 결국엔 M&A시장에 기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달부터 만기가 도래하는 프라이머리-CBO 발행기업 가운데 자금 상환을 하지 못하는 곳들도 M&A로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기보는 2001년 벤처 지원을 위해 총 5차에 걸쳐 프라이머리-CBO를 발행한 바 있다.
이것이 5월17일을 기점으로 6, 8, 10, 12월 중 만기가 속속 도래하기 시작했다.
만기도래금액은 모두 2조2천억원에 달하며 발행 대상 기업은 808개다.
그러나 1차 발행 업체 166개중 53개가 부도처리되는 등 상당수의 기업들이 여전히 자금난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결국 이들을 중심으로 M&A 매물이 쏟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에서도 이들 기업에 대한 M&A 활성화 대책을 잇따라 내놓았다.
정부는 벤처기업 M&A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M&A시장을 옥죄고 있던 각종 규제를 풀어주고 있다.
먼저 합병시 신주발행을 통한 주식교환제도를 도입, 기술거래소 등 공인평가기관의 평가를 통해 신주와 구주를 교환할 수 있도록 했다.
또 M&A가 신속히 이뤄지도록 벤처기업이 다른 기업과 합병시 주주총회 전후로 2회 실시하는 주식매수청구절차를 주총 이전으로 단일화했다.
이 밖에 세제지원도 단행된다.
기술력이 높은 벤처기업을 합병할 경우 합병 첫해에 물리던 법인세를 영구 폐지하는 조치도 추진하고 있다.
중소기업청에서는 1천억원 규모의 구조조정 펀드를 추가로 조성, 벤처기업의 M&A를 적극적으로 지원할 계획이다.
전성식 중기청 금융지원과 사무관은 “지난해 전체 부도업체 중 중소기업의 비율이 99.8%에 달해 어느 때보다 벤처업계의 구조조정, M&A 활성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중기청 벤처진흥과 관계자는 “한국M&A협회나 기보, 중소기업진흥공단 내 M&A센터 등을 통해 M&A 알선을 의뢰할 경우 구조조정조합에서 자체 실사를 거쳐 M&A 지원 대상을 선정한다”고 설명했다.
4월들어 68개 기업 기보에 알선 의뢰
그 중에서도 기술신용보증기금(기보)은 자금난을 겪고 있는 M&A를 염두에 둔 벤처기업들이 가장 먼저 찾아가볼 만한 곳이다.
기보는 정부 출연기금으로 운용되며 공공적인 법인이다.
M&A를 알선해 받은 중개수수료로 이익을 챙기는 M&A부띠끄나 투자수익 창출을 목적으로 하는 벤처캐피탈의 M&A펀드와는 성격 자체가 다르다.
이들이 기본적으로 수익성에 초점을 맞춰 M&A에 접근하는 것과 달리 기보는 해당 기업의 구조조정을 최우선 과제로 삼는다.
한병희 기보 기업지원실 M&A팀 차장은 “기금의 운용방향인 공공성에 초점을 두고 기업 선정에 나서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투자를 목적으로 M&A를 추진하는 곳과는 차별성을 보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기보로부터 M&A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기보에서 자체적으로 운용하는 M&A 정보망 www.mna.kibo.co.kr 에 직접 M&A 알선을 의뢰하면 된다.
이곳에서는 기술 거래를 포함 M&A의 매도매수 정보를 신청, 조회할 수 있다.
이 밖에 기보 관할에 있는 전국 60여개 영업점와 기술거래소를 통해서도 접수가 가능하다.
M&A 의뢰서가 접수되면 먼저 기보는 M&A팀을 통해 신청내용, 거래 성사 가능성 등 예비검토를 실시한다.
여기서 통과된 기업은 기술평가를 받아야 한다.
기보 산하 기술평가센터는 신청 기업의 기술성, 사업성에 대해 종합적인 평가를 내린다.
이 같은 과정을 거쳐 선정된 업체에 한해 기보는 신청조건에 부합하는 대상 기업을 탐색, 중개하게 된다.
기보는 M&A 진행과정에서 업무제휴 협약을 체결한 회계법인, 법무법인, 증권사와 함께 거래 협상, M&A 절차 이행업무를 공동으로 수행한다.
또 M&A가 성사된 이후에도 구조조정 자금 보증 지원 등 거래 성사 기업의 사후관리를 실시해 기업의 경영안정을 지원하게 된다.
한 차장은 “기보는 벤처업계의 중요 경영정보가 수록된 거대한 데이터베이스를 바탕으로 공신력 있는 기업실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기보에 따르면 올 들어 4월 말까지 68개 기업들이 M&A 알선을 의뢰했으며 이 가운데 3곳은 실제 M&A가 성사됐다.
백경철 기보 경영홍보실 차장은 “매년 정부와 은행이 5천억~6천억원의 출연금을 조성하고 있지만 좀 더 효과적인 벤처 M&A 지원을 위해서는 아직도 부족한 상황”이라며 “특별출연금이 추가로 조성된다면 구조조정이 필요한 벤처기업에 좀 더 실질적인 혜택을 가져다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기관의 역할에 대해 전문가들은 대체로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강원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중소기업의 M&A가 최근까지도 투자자들을 중심으로 진행되다 보니 기업 구조조정보다는 투자이익 실현에 초점이 맞춰졌다”며 “앞으로는 채권단 혹은 정부기관 등에서 M&A를 추진해 그 본래 목적인 구조조정 효과를 누릴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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