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를 보면 ‘동명이사’(同名異社)를 가려낼 수 있다.
가령 같은 계열사로 보이는 삼성물산과 삼성종합건설은 엄연히 다른 회사다.
업종만 같을 뿐 대주주도 대표도 다르다.
삼성물산의 대주주는 삼성SDI(지분율 7.18%). 개인 대주주는 지분율 1.37%의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다.
삼성종합건설은 99년에 설립된 주택건설업체다.
최대주주는 지분율 44.23%를 소유한 한미좌자 대표다.
때문에 둥근 타원형의 삼성로고를 삼성종합건설은 사용하지 않는다.
현대모비스와 현대모직도 동명이사의 전형적 사례다.
현대모비스는 현대자동차그룹의 실질적인 지주회사격으로 대주주는 지분 17.81%를 소유한 기아자동차다.
정몽구 회장도 7.76%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다.
반면 현대모직은 지난 51년에 설립된 자본금 21억5천만원의 비상장회사다.
업종은 화섬사류의 제조. 대주주는 49.25%의 지분을 소유한 김명석씨다.
삼성종합건설과 마찬가지로 현대모직 역시 HYUNDIA 로고를 사용할 수 없다(관련 기사 42면). 두번째 질문 하나. 기업가치를 가장 손쉽게 높일 수 있는 방법은? 네이밍 전문가 대다수는 기업 로고를 1순위로 꼽는다.
잘 만든 로고 하나 만으로 소비자들의 마음을 휘어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기업 로고 최고의 자산 사례를 보면 쉽게 이해된다.
코카콜라 하면 빨간색 바탕에 흰색 필기체가 떠오른다.
삼성그룹은 푸른색 타원형으로 형상화된다.
삼각형 로고를 보면 범현대그룹이 생각나기 마련이다.
이를테면 로고는 각인효과를 불러일으킨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로고를 기업의 최고자산으로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실제 코카콜라와 삼성전자가 상호 하나 만으로 누릴 수 있는 경제적 효과는 각각 52억불, 800억불 이상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대기업들이 로고제작에 천문학적인 비용을 투입하고 로고를 지키기 위해 투쟁을 불사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는 형제기업들도 예외 일 수는 없다.
물 보다 피가 진하고 피 보단 로고가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 대우그룹 계열사 ‘오리발 전쟁’ 대우그룹이 공중분해 된 2000년. 당시 대우에서 분리된 계열사 12개는 로고와 표기를 공동사용키로 결정했다.
하지만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업종별로 로고와 표기의 국내 사용권을 인정한 것이었다.
예를 들면 건설업 관련은 대우건설과 대우인터내셔널, 대우개발 등 3개 기업만이 사용할 수 있다.
대우일렉트로닉스가 건설업에 진출할 경우, 대우그룹의 상징 오리발 로고는 절대 사용할 수 없다.
가령 대우인터내셔널이 전자제품을 출시할 경우, 대우 오리발을 사용하지 못한다.
그래서 이들의 대우인터내셔널의 전자제품 상호 및 로고는 DAYTEK이다.
그렇다면 만약 업종이 다른 회사가 오리발 로고를 사용했다면? 이는 전쟁을 의미한다.
한 때 같은 계열의 기업이었다고 해도 상황은 다를 게 없다.
대우건설과 대우자판의 아파트분쟁은 단적인 사례다.
과거 대우그룹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대우건설과 대우자동차판매 건설부문이 기업 브랜드 표기와 로고 사용을 둘러싸고 불편한 관계를 보인 바 있다.
문제제기와 함께 시정을 요구한 기업은 대우건설. 대우건설은 대우자판 건설이 현재 사용하고 있는 아파트 브랜드 ‘대우이안’에서 ‘대우’ 표기를 모델하우스는 물론 시공물(아파트)과 분양광고 등에서 사용하지 말 것을 공식 요청했다.
여기엔 대우자판 건설이 사용한 바 있는 오피스텔 브랜드 ‘대우마이빌’도 포함됐다.
동시에 대우건설은 이 회사가 쓰고 있는 속칭 ‘오리발’로 불리는 ‘대우’ 로고 사용도 금지할 것을 주문했다.
자사와 상관없는 대우이안 분양 관련 문의가 이어지는 등 소비자들에게 혼란을 야기 시킬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대우건설과 대우자판은 아직도 로고 분쟁 중이다.
대우이안측은 대우 로고를 사용하기 위해 법정투쟁을 불사하고 있다.
로고분쟁이 얼마나 치열한 지 엿볼 수 있는 단면이다.
■ 범현대그룹의 ‘H’ 논쟁 지금은 뿔뿔이 흩어진 왕년의 현대그룹. 왕자의 난 등으로 시끄럽던 2000년 경, 왕회장(고 정주영 명예회장)은 교통정리를 했다.
정몽구, 정몽헌 두 형제 회장간의 계열사 나누기 작업을 진행했던 것. 고 정몽헌 회장은 건설 전자 외 금융을 손에 넣어 3개 소그룹을 휘하에 뒀다.
정몽구 회장은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 그리고 현대정공, 한국DTS, 금융계열사 현대캐피탈 등 6개사를 얻었다.
로고는 누가 이어받았을까. 지금의 구도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현대 아산은 왕회장이 직접 만들었다는 산이 두개 겹친 형태를 가지고 있다.
범현대그룹 로고사용권 탓에 삐끄덕 현대자동차의 로고는 영문 HYUNDAI다.
하지만 이들 역시 로고분쟁을 피하지 못했다.
지난 2003년, 현대자동차와 현대상사는 오토바이 수출문제를 놓고 갈등을 겪었다.
현대상사는 지난 3월 부터 시작한 ‘현대’(HYUNDAI) 브랜드를 붙인 오토바이의 해외 수출을 전면 중단할 것을 요청했다.
현대상사가 주문자상표부착(OEM) 방식으로 공급받은 중국산 오토바이를 파키스탄을 비롯한 외국에 수출하고 있어 외국에서 현대차의 이미지가 훼손되고 있다는 게 현대차의 주장이다.
현대차측은 “품질이 검증되지 않은 중국산 오토바이에 현대 상표를 붙여서 외국에 팔면 현대차 제품으로 오해받기 쉽다”며 “현대차 이미지에 손상을 줄 가능성이 높다”며 수출자제요청을 했다.
전자제품도 아니고 왜 하필이면 자동차와 같이 동력을 이용한 ‘탈것’인 오토바이냐는 게 현대차 입장이었던 것. 특히 파키스탄의 경우 현대차가 ‘H’자 모양의 현대차 고유의 로고뿐 아니라 ‘현대’ 영문표기에 대한 상표권을 갖고 있어 현대상사의 ‘HYUNDAI’ 상표 오토바이 수출은 문제가 있다고 현대차는 주장했다.
이에 대해 현대상선측도 물러서지 않았다.
나라별로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상표권 등록은 아이템별로 하게 돼 있는데 파키스탄의 경우 자동차 상표권은 현대차가, 오토바이 상표권은 자사가 갖고 있다고 현대상사는 강조했다.
또 현지에서 영문 현대의 사용권은 현대상사와 현대건설, 현대중공업이 함께 갖고 있다고 현대상사는 덧붙였다.
현대상사는 이어 파키스탄뿐 아니라 중동, 남미, 서남아 등 자사가 오토바이에 대한 현대 상표권을 확보한 10여개국에 현대 브랜드로 오토바이 수출을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현재 현대상사는 영문 현대라는 로고를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현대차측의 강한 요구를 받아들였던 것. 형제기업 사이에서도 로고가 얼마나 중요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지 엿볼 수 있는 대표적 사례이다.
■ 범롯데그룹 ‘쓰리엘’ 전쟁 롯데그룹도 한때 형제기업과 현재 로고 사용권 분쟁 중이다.
당사자는 2005년 롯데그룹에서 계열분리된 롯데관광. 롯데관광은 신격호 롯데 회장의 막내 여동생인 신정희씨의 남편 김기병 회장이 운영하는 회사로 2005년 롯데에서 독립했다.
롯데관광은 신 회장의 묵인 아래 로고를 계속 사용하고 있다.
롯데家 분쟁 ‘현재진행형’ 하지만 롯데그룹이 지난 8월 일본여행업체인 JTB와 합작해 ‘롯데제이티비’라는 회사를 설립해 관광업에 진출하면서 사정이 복잡해졌다.
롯데 관계자는 “최근 롯데관광이 대북 관광사업까지 넘보는 데다 농협과 제휴해 농협롯데관광을 출범시키면서 롯데의 브랜드 이미지가 혼란스러워질 우려가 있다”며 로고사용금지와 관련된 소송을 제기했다.
호텔롯데,롯데쇼핑,롯데제과 등 롯데 주력 3사는 롯데관광개발을 상대로 서비스표권 침해금지 청구 소송을 냈다.
롯데그룹 측은 원 안에 로마자 ‘L’셋이 겹친 롯데 마크를 롯데관광이 사용하면 안되고 이를 이용한 간판도 없앨 것을 요구했다.
이에 대해 롯데관광 측은 “롯데 표지는 1973년 신격호 회장과 김기병, 신정희 씨 부부 사이에 맺어진 약정에 따라 사용해 온 것이며, 77년 심볼 마크가 처음 생긴 뒤 그 마크를 사용하라는 통보가 와서 부착하게 된 것”이라며 정면 대응할 뜻을 비추고 있다.
롯데그룹과 롯데관광의 로고분쟁은 현재진행형이다.
9월 중순 경 첫 심리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양측은 승소를 자신한다.
로고를 사용하겠다는 강력한 의사도 표현하고 있다.
역시 형제애 보다는 로고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례라는 평가다.
이처럼 글로벌 시대로 접어들면서 토지, 건물, 설비 등 하드웨어의 자산보다는 로고 또는 브랜드 자산 가치가 훨씬 중요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일반 산업에서도 브랜드의 무형자산 가치가 유형자산가치보다 중요한 것은 이미 입증된 지 오래다.
때문에 재계에선 종종 로고분쟁이 벌어지고 있다.
한 때 형제기업이었던 그룹 간 경쟁도 치열하게 전개된다.
이름은 같지만 완전히 다른 회사인 형제기업들의 로고분쟁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김성수 객원기자 top@economy21.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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