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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배의 형평성과 민주적 협력체제
분배의 형평성과 민주적 협력체제
  •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
  • 승인 2014.01.10 17: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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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반성장과 효율의 동력…형평성은 교육투자 늘리고 사회정치적 안정성 높이는데 기여

경제학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 두 가지를 꼽으라면 무엇보다 효율과 형평일 것이다. 이 둘은 서로 상충되는 것으로 알려져 왔다. 하지만 최근의 연구성과들에서는 오히려 효율과 형평이 보완적일 수 있으며 형평이 효율에 도움을 줄 수도 있다는 점이 밝혀지고 있다. 몇 년 전부터 들려오던 동반성장, 즉 형평성을 높이면서 효율을 높이자는 말이 더 이상 어색한 단어들의 조합이 아니라 한국경제의 사활을 좌우할 수 있는 중요한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효율과 형평은 상충되지 않는다

먼저 효율과 형평에 대한 전통적 견해를 보자. 경제학자 오쿤(Arthur Okun)은 분배가 평등하면 근로 및 투자 유인이 줄어들고, 재분배를 위한 노력은 그 자체가 비용이 많이 소요된다고 지적했다. 오쿤은 특히 재분배를 밑빠진 독(leaky bucket)이라고 불렀다. 이는 부자로부터 가난한 자에게 자원이 재분배되는 과정에서 많은 부분이 어디론가 그냥 사라져 버린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이러한 견해는 직관적으로 매우 설득력이 크다. 또 형평을 높이려면 효율을 희생해야 한다는 주장은 “공짜점심은 없다”는 경제학의 기본 가르침에도 충실해 보인다.

그러나 최근의 연구들에서는 이러한 전통적 견해를 뒤집는 결과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 예컨대 베르그, 오스트리, 제텔마이어 (Berg, Ostry, and Zettelmeyer) 등의 2011년 연구에서는 장기적으로 효율(경제성장)과 형평(분배)의 상충관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형평성은 경제성장을 촉진하고 유지시키는 데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된다. 이들의 실증분석에 따르면 경제성장을 오랜 기간 지속하는 나라들은 형평성이 높고 경제성장이 단기간에 가속화되었다가 이내 사라지는 나라들은 형평성이 낮다. 다시 말해, 형평을 개선시키는 것은 경제성장을 안정적으로 오래 지속시킨다는 의미에서 효율도 높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림 1-월간지 참조>을 보면 분배상황이 나쁜 나라일수록 경제성장의 지속기간이 짧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림 2-월간지 참조>에서는 경제성장이 얼마나 오래 지속되는지를 결정하는 다양한 요인들을 보여주고 있는데, 소득분배가 이 중 가장 중요한 요인임을 알 수 있다.

사실 적절한 재분배가 성장률을 높일 수 있다든지, 소득 및 부의 불평등이 심할 수록 경제성장률이 낮아진다든지 하는 연구결과들은 1990년대 이후 미국과 유럽의 주류경제학계에서 다수 발표된 바 있다. 과거에 통념 수준에 머물고 있었던 효율과 형평 사이의 관계를 발달된 통계 처리기법이 나오고 다양한 데이터들이 발표되면서 객관적으로 검증해본 결과이다. 그러나 이러한 연구들은 2000년대 초중반의 거품경제 속에서 다소간 잊혀졌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의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소득불평등이 이 모든 위기의 뿌리가 아닌가 하는 견해들이 대두되면서 경제의 불균형을 바로잡지 않으면 지속적 성장이 불가능하다는 연구결과들이 다시 주목받게 되었다.

한국에서 효율과 형평 논의

이러한 종류의 견해는 우리나라에서도 없지 않았다. 선구적인 주장 중 대표적인 것으로 정운찬 전총리가 1990년에 발간했던 <도전받는 한국경제>라는 책을 꼽을 수 있다. 그는 1990년대 초에 이미 이 책을 통해서 지속적 성장을 위해서는 한국경제가 더욱 형평을 중시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강하게 제기했다. 나아가 민주적 협력체제라는 대안적 개념도 제안하였다. “... 이제는 분배구조의 악화, 경제력의 집중 등 성장과정에서 누적된 경제적 불평등의 해결 없이는 지속적인 성장이 벽에 부딪치리라는 점에서 경제적 자유화와 함께 민주적 협력체제의 형성은 성장의 필요조건이 되었다”는 것이다.

민주적 협력체제란 억압적, 권위주의적 협력체제와 대비되는 개념으로서 “민주적 절차를 통한 각 집단의 이익의 적절한 상호균형”을 중시하는 것이다. 이렇게 구조적으로 형평성을 높일 수 있게 하지 않으면 지속적 성장이 한계에 도달하리라는 지적은 문제의 핵심을 정확히 진단한 것이다.

▲ 제주그랜드호텔에서 열린 ‘JDC-입점협력사 동반성장 협약식’에서 김한욱 JDC이사장과 면세점 입점업체 대표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제공=뉴시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이러한 문제의식이 기존 통념과 배치되는 하나의 소수의견으로 간주되면서 그 중요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은 주목을 받지는 못했었다. 물론 2000년대 이후에는 과거에 비해 분배 측면을 더욱 중시하는 방향으로 가고는 있으나 형평성 제고를 지속적인 성장과 연결시키려는 노력은 아직도 미약한 것이 현실이다.

형평성은 인적자본 투자를 늘려 성장에 도움

그러면 형평성을 높이는 것이 왜 성장에 도움이 되는가. 그것은 경제가 무엇으로 성장하느냐와 관계가 있다. 경제성장의 역사를 보면 저개발 단계에서는 기계나 설비같은 물적자본이 중요한 성장동력이었으나 경제발전 단계가 높아질수록 인적자본(human capital)과 지식, 기술혁신이 더욱 중요해진다. 인적자본은 교육투자를 통해서 축적되는데 분배가 불평등할 경우에는 많은 저소득층 가계에서 교육투자에 자금을 투입할 여력이 없어진다. 물론 부유층이 교육투자를 더 크게 늘릴 수 있겠지만 교육에 투입되는 시간이 늘어나는 데에는 한계가 존재하기 때문에 경제 전체적으로 평균적인 교육투자가 작아지게 되고 인적자본 수준이 낮아지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분배가 인적자본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경제학자 갈로어(Galor)를 비롯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연구결과를 내놓은 바 있다. 실제로 분배가 불평등한 저개발국에서는 소수만이 고등교육을 받고 대다수 국민들은 초등교육도 제대로 못 받는 사례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물론 이에 대한 반론도 있을 수 있다. 가난한 집 아이라도 금융시장에서 돈을 빌려다가 교육을 받게 하고 나중에 높아진 소득으로 돈을 갚게 하면 되지 않느냐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자본시장은 그러한 정도로 완벽하지 않다. 가난한 집 아이의 장래 가능성을 담보로 해서 돈을 빌려줄 금융기관은 현실에서는 거의 없을 것이다.

소득 불평등에 따라 경제의 인적자본 수준이 전반적으로 낮아지게 되면 장기적으로 성장잠재력을 좌우하는 기술혁신 역량이 떨어질 수 있다. 연구개발 투자에서 인적자본이 가장 중요한 투입요소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이는 매우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물적자본 투자에 대해서도 비슷한 논리가 적용될 수 있다. 소규모 벤처기업의 투자를 생각해 보자. 만약 자본 분포에 불평등이 커지면 당장 돈이 없고 금융부문에서 돈을 빌리기 어려운 소규모 기업가들은 최적 수준의 투자계획을 실현시킬 수 없게 된다. 대규모 기업의 설비투자가 중요한 발전단계에서는 이러한 문제가 크게 드러나지 않겠지만 벤처나 창업이 중요해지는 단계에서는 이것이 경제의 기반을 잠식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을 것이다.

형평성은 사회정치적 안정성을 높여 성장에 도움

다른 한 편으로 소득 및 부의 분배는 사회정치적 안정성에 영향을 주게 된다. 소득불평등도가 높아질 경우 사회정치적 불안정성이 높아져 미래의 소유권 보장에 대한 믿음이 줄어들게 되므로 투자의 기대수익률이 하락한다. 이는 투자를 저해하여 성장에 악영향을 주게 된다. 만약 쿠데타나 혁명이 일어나 투자자산에 대한 소유권을 보장받지 못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면 누가 투자를 하겠는가. 이러한 메커니즘은 경제학자 알레지나(Alesina), 페로티(Perotti) 등의 분석을 통해 실증적으로도 밝혀진 바 있다.

나아가 사회정치적 안정성은 사회적 자본, 즉 경제주체들 사이의 신뢰를 형성하는 데에도 꼭 필요한 요소이다. 사회적 자본이 생산성을 높이는 데 필수적인 요소라는 점은 이미 많은 경제학자들에 의해 밝혀져 왔다.

동반성장 정책의 역사적 기원

결국 이러한 견해를 종합하면 적절한 소득재분배 또는 형평성을 높이는 정책을 통해 장기적으로 경제성장을 촉진함으로써 형평과 효율을 모두 높일 수 있게 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동반성장이라는 말은 어색한 단어들의 조합이 아니라 현대의 성장 메커니즘에 적합한 경제운용 방식을 가리키는 말이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보다 경제성장의 역사가 앞선 선진국에서는 동반성장 정책이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이미 19세기부터 시행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럽의 경우에는 19세기 후반에 접어들면서 인적자본의 중요성이 점점 커짐에 따라 자본가들이 앞장서서 노동자와 대중에게 양질의 교육을 제공할 수 있도록 공교육을 확충할 것을 주장한 바 있다. 이는 소득재분배의 요소를 다분히 품고 있으면서도 성장잠재력을 확충하는 것이어서 동반성장 정책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구체적 사례를 보면, 영국에서는 1867년 파리박람회 이후에 공교육 확충과 교육개혁을 요구하는 자본가들의 로비가 강화되고 정부는 이를 수용하였다. 주목할 만한 것은 자본가들이 스스로 나서서 재분배적 정책을 주장했다는 점이다. 사실 영국은 이전 1851년의 박람회에서는 90개 정도의 제조업 종목 중 대부분에서 최고상을 휩쓸었었으나 1867년에는 단지 10개 정도의 종목에서만 수상하게 되어 큰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위기의 원인을 조사해본 결과 노동자들의 질이 저하되었기 때문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 것이다. 이에 대해 영국은 1868년에 의회에 과학교육에 대한 위원회를 설치하고 각종 위원회들을 통해 교육실태에 대한 전면적 재점검을 실시하게 되었다. 그 결과 1870년의 교육법에서는 정부가 초등교육의 전면적 실시를 책임지게 되었고 1880년에는 의무교육이 실시되었으며, 1890년 지방조세법에서는 기술교육을 위한 공적기금을 조성하게 되었다.

이러한 정책들은 다른 나라들에서도 비슷하게 전개되었다. 프랑스에서도 자본가들이 교육개혁을 지원하여 1881년에는 무상 의무 초등교육이 실시되고 과학기술 교육을 더욱 확충하였다. 독일에서는 자본가들이 대학개혁을 로비하고 기술훈련의 강화와 기초과학의 산업적 응용을 위한 자금을 지원하였으며, 정부에서도 공교육제도를 확충하기 위한 조세를 부과하고 교사에 대한 훈련 및 자격증 제도를 확립하였다. 네덜란드에서는 이미 1830년대에 산업자본가와 기업가들의 자금지원으로 산업학교들이 설립된 바 있다.

이와 같이 유럽에서는 공교육을 대폭 확충한 결과 자본에 대한 렌트에 비해 임금이 크게 상승하고 소득분배 상황이 현저히 개선되었으며 중산층이 확대되고 지속적 안정성장의 토대가 마련되었다. 미국의 경우에는 유럽보다도 더 평등주의적인 교육제도가 갖추어지고 있었다. 재미있는 것은 1860년대는 유럽의 소득분배가 최악의 수준에 도달했으며 마르크스가 자본론을 출간하여 자본주의의 붕괴를 예언한 시기인데, 바로 이 때 자본가들이 재분배적 정책을 추진하여 분배를 개선하고 성장잠재력도 높이면서 자본주의의 지속적 발전의 기틀을 마련하였다는 점이다. 자본가들이 양질의 노동력과 지속적 기술혁신을 통해 장기적으로 이윤율을 높이고자 스스로의 계급적 특권을 기꺼이 포기한 이러한 사례는 지금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국의 발전단계와 동반성장의 필요성

한국의 경우 선진국에 비해 경제발전을 뒤늦게 시작했으므로 동반성장보다는 자원의 집중을 통한 따라잡기식 고도성장이 보다 손쉬운 방법이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1990년대 초부터는 기존의 방식이 한계를 보이기 시작한다. 당시 정운찬 전총리가 ‘한국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라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한 것은 깊이 음미해볼 만하다.

“내연적 성장단계로 진입한 지금 성장의 지속을 위해서는 요소투입의 효율성 제고가 요청되는데, 이는 지시와 간섭에 의해서가 아니라 개별 경제주체의 창의와 자발성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민주적 절차를 통한 각 집단의 이익의 적절한 상호균형”을 통해서 가능하게 된다. 즉, 이익의 적절한 균형 - 또는 분배의 형평성 제고를 통해 창의와 자발성을 이끌어내 효율을 높인다는 아이디어다. 이러한 아이디어는 교육 측면에서 지역균형 선발제를 비롯한 교육의 형평성 제고 정책으로 발전했고, 산업 측면에서도 대중소기업 간의 상생협력에 인센티브를 주는 다양한 형태의 정책대안들로 나타나게 되었다.

<그림 3-월간지 참조>을 보면 경제성장의 대표적인 세 가지 요소라고 할 수 있는 물적자본, 인적자본, 그리고 총요소생산성(생산요소 활용의 총체적 효율성)의 미국 대비 비율 추이가 나타나 있다. 여기서 특기할 만한 것은 1990년대 초부터 생산성의 미국 대비 비율이 물적자본의 미국 대비 비율을 하회하면서 생산성이 성장잠재력을 높이는 데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즉, 1990년대 초까지는 물적자본의 부족이 중요한 문제였으나 이후부터는 총요소생산성의 부족이 더 시급한 문제가 되었던 것이다. 이는 1990년대 후반 이후, 특히 21세기 들어서는 총요소생산성 중심으로 성장전략을 전환했어야 한다는 것을 뜻하는데, 생산성 중심의 성장전략은 다름아닌 동반성장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생산성을 높이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기술혁신인데 새로운 기술은 사람의 머리, 즉 인적자본에서 비롯되며, 경제구조도 경제적 약자들이 강자들과 대등한 위치에 서도록 함으로써 새로운 아이디어와 새로운 기업이 자라나는 데 유리하게 만들어져야 하는 것이다.

즉, 요소투입보다 생산성, 혁신이 중시되는 21세기의 성장동력을 강화하려면 민주적 협력체제가 필수적이고 그것이 바로 동반성장 전략인 것이다. 민주적 협력체제는 최근 중요시되고 있는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 “생태계”(ecosystem) 등과도 일맥상통한다. 사회적 자본은 경제주체들 간의 신뢰 수준을 말하는 것인데, 우리 사회에서 상호 불신과 비협조로 인한 비용이 얼마나 크고 그것이 생산성을 얼마나 저해하는지는 주지의 사실이다. 또 기업 생태계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벤처기업들이 서로 상생하면서 장기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시스템인데, 아직 우리나라의 생태계는 약육강식의 정글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현재 우리 경제는 동반성장 시스템의 부재로 인한 비효율이 극에 달해 있다는 느낌이다. 잘 배운 젊은 인력들이 넘쳐나고, 대기업에는 투자처를 찾지 못한 돈이 쌓여 있는데, 이 남아도는 생산요소들을 효율적으로 결합시켜 경제성장으로 연결시키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젊은 고급인력들이 자본을 공급받아 벤처기업을 만들거나 인력난에 허덕이는 중소기업에 취업하려 하지 않는 구조인데, 이는 무엇보다 기존의 대기업이 아니면 높은 소득수준과 고용의 안정성을 제공해주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현실은 신생기업이나 중소기업이 대기업과 동반성장하지 못하고 약자로서 ‘을’의 자리에서 간신히 연명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고착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동반성장을 통한 혁신의 생태계 구축

만약 신생 벤처기업이나 중소기업이 좋은 아이디어만 있으면 얼마든지 대기업으로 클 수 있고, 또 M&A 등을 통해 제 값에 회사를 팔 수도 있으면 경제의 모습은 크게 달라질 것이다. 미국의 경우를 보면 좋은 아이디어로 벤처기업을 차리면 자본이 몰려들고, 스스로 회사를 키우거나 회사를 대기업에 비싼 값으로 팔 수 있다. 이렇게 벤처가 수익을 회수할 수 있을 때 투자도 일어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는 좋은 중소기업이 있으면 대기업이 핵심인력을 빼가는 식으로 접근을 하는 사례가 많다. 즉, 벤처에 투자해도 수익을 회수하기가 쉽지 않은데, 이는 벤처에 사람과 자금이 몰리지 못하게 하는 요인이 된다.

현대의 기술혁신은 과거보다 훨씬 복잡하다.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지에 따르면 1세대 기술혁신은 개개인의 발명가(에디슨, 라이트형제 등)가 중심이 되었으나 2세대에는 대규모의 연구실(듀폰의 나일론, P&G의 치약, 기저귀, 세제 등)이 중심이 되었고, 3세대는 벤처캐피탈을 활용한 벤처기업(애플, MS, 구글 등)이 중심이 되었으며 4세대에는 비즈니스 모형 또는 생태계, 즉 대규모 기업들과 신규 창업자들의 아이디어가 연결된 상생의 네트워크(아마존-킨들 제조업자-콘텐츠 생산자, 구글-안드로이드 관련 업계, 애플-애플리케이션 개발자 등)가 중심이 된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3세대에 진입 후 정체되어 있으며 사실상 2세대 중심으로 기술혁신을 추구하고 있는 실정이다.

2세대 중심의 접근법은 한국이 선진국 기술을 흡수하거나 복제할 때 유용한 방식이었다. 한국이 선진국과 경쟁하게 된 현 시점에서는 조속히 3, 4세대의 기술혁신 방식으로 진화해야 하는데, 그것은 동반성장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3세대 방식이 성공하려면 벤처기업이 충분히 높은 투자수익을 얻을 수 있어야 하는데, 이는 이들 기업들의 판매단가에 대한 후려치기, 인력 빼가기 등이 없어지고 대기업과 동등한 위치에서 M&A 등의 협상이 가능해야만 한다. 또 4세대 방식이 발전하려면 네트워크에 포함되는 대기업과 중소기업들이 상호 대등한 위치에서 거래하고 교류를 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바로 민주적 협력과 동반성장 체제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사실 동반성장 체제를 만드는 것은 단순히 대기업들을 비롯한 경제적 강자들에게 일방적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이들 스스로에게도 절실히 필요한 것이다. 만약 단기적 이익을 위해 벤처와 중소기업이 자라날 수 있는 토양을 훼손한다면 대기업의 기술을 보완할 수 있는 다양한 새로운 기술들을 얻을 수 없게 되고, 또 중소기업 종사자들로부터 비롯되는 내수 구매력을 확보할 수 없게 되어 시장의 크기를 제한받게 되며, 장기적으로 경제 전체의 인적자본 수준이 떨어져 스스로의 국제경쟁력도 훼손하게 된다. 즉, 동반성장의 생태계를 키우는 것이 좋든 싫든 생태계의 일부가 될 수밖에 없는 대기업에게도 장기적으로 유리한 것이다.

결국 제도와 인센티브가 중요

우리나라의 대기업이 미국 대기업에 비해 도덕적이지 않아서 동반성장이 안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기업은 주어진 제도와 인센티브 시스템의 틀 안에서 자신의 이익을 늘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 상식이다. 만약 미국의 애플이나 구글을 한국에 가져다 놓으면 이들도 한국의 대기업과 똑같은 방식으로 행동할 수 있다. 결국 눈에 보이는 제도와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관행화된 제도, 이런 것들이 모두 동반성장에 맞게 확립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좋은 제도의 확립은 민간 경제주체들뿐만 아니라 정부의 노력도 있어야만 가능하다. 경제민주화와 창조경제를 위해서라도 정부가 보다 적극적으로 동반성장에 맞도록 제도를 개선하고 이를 제대로 집행하는 데 힘써야 할 것이다. E21

본 기사는 월간지 <이코노미21> 10월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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