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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중가는 반(反)-왈라스적 경매인
경중가는 반(反)-왈라스적 경매인
  • 박이택 본지 편집기획위원, 성균관대 초빙교수
  • 승인 2014.01.27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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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양 고전으로 읽는 경제 사상사> 춘추전국시대 이코노미스트들의 바이블 <관자>3…시장개입 통해 가격통제와 물가조절 및 통치재원 확보

백성과 군주가 모두 잘 살 수 있는 나라, 그런 나라를 만들 수 있노라고 선언한 춘추전국시대 이코노미스트였던 경중가(輕重家)들은 당대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그러나 그것은 선언으로 그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실제 백성과 군주가 잘 살게 되었는가는 조만간 판명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어떻게 그런 나라를 만들 것인가, 그것은 경중가에게 이론의 문제가 아니라 현실의 문제였다.

좋은 구축물을 만들려면 기자재가 좋아야 한다. 백성과 군주가 모두 잘 살 수 있는 부민부국(富民富國)의 나라를 만들기 위해 경중가들이 사용한 기자재는 시장경제의 작동원리와 규제방법이었다. 경중가들의 바이블이었던 <관자>에 시장과 가격에 대한 논의가 많이 등장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그러나, 거기에는 아담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도, 왈라스의 ‘경매인’도, 하이에크의 ‘자생적 질서’도 보이지 않는다. 경중가들은, 언뜻 무질서해 보이는 시장 거래 속에서 창출되는 우아한 가격의 질서를 보는 데는 실패한 것이다. 왜 실패했을까? 그 실패의 원인을 따져보면서 자연스레 관자에 나타난 시장관을 살펴보자.

<관자>에 나타난 경중가들의 시장관

멸국겸병의 시대인 전국시대에 제후들이 벌이는 끊임없는 전쟁은 백성들에게는 살기 좋은 곳을 찾아 이동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공리주의적 인간상은 이를 배경으로 하여 출현하였다. 그러나 공리주의적 인간으로서의 백성은 말 그대로 남을 것인가 떠날 것인가만을 선택할 수 있는 티부(Tiebout)적인 유목민일 뿐, 사적 소유에 기반하여 자기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로크(Locke)적 시민은 아니었다. 그런 시대적 한계 때문에 전국시대의 경중가들은 군주를 규제하는 입헌적 질서의 형성자였던 로크적 시민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티부적 유목민을 통치하는 목자(牧者)로서의 군주의 입장에서 시장을 바라보았을 것이다. 그 뿐이랴. 당시 군주는 경중가들의 고용주이기도 했다. 이 입장에서는, 시장이 창출하는 우아한 질서는 잘 보이지 않고, 시장을 주무를 수 있는 군주의 손이 더 크게 보였을지 모른다.

시장이 창출하는 우아한 질서를 보지 못한 또 다른 이유는, 춘추전국시대의 시장경제가 근대의 시장경제와는 달리 우아한 질서를 창출할 수 없는 불임의 시장경제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당시 시장경제의 실태를 보다 세밀히 살피기 위해, <관자>의 ‘승마’를 보자.

“시장은 (그 나라의) 치란을 알 수 있는 곳이고, 물자의 많고 적음을 알 수 있는 곳이지만, 많고 적은 물자를 생산하는 곳은 아니다.”

멘큐의 경제학에서 시장은 가격이 형성되는 곳이다. 수요가 공급보다 많으면 가격이 오르고, 그 반대이면 가격이 내린다. 수요와 공급이 일치하는 데에서 균형가격이 결정되고, 이 균형가격 하에서 자원은 최선으로 배분된다. 시장은 군주의 통치와는 무관하게 작동한다. 반면, 춘추전국시대 경중가들의 시장경제관은 멘큐의 것과 매우 달랐다. 그들에게, 시장은 군주의 통치의 성과를 보여주는 바로미터(barometer)였으며, 시장에서 형성되는 가격은 공급에 영향을 주지 못하는 것이다.

춘추전국시대는 교통사정이 낙후한 농업 사회였기 때문에, 시장에서 형성된 가격에 따라 공급이 유연하게 조정되지 않았을 수 있다. 가격은 시장에 출회한 물자를 구매자들에게 배분하는 역할만을 할 뿐, 생산을 조정하는 역할은 하지 못하였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시장에서 결정된 가격이 정당한 가격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관자>의 ‘승마’를 다시 보자.

“시장은 재화 유통의 중심지다. 따라서 모든 재화가 저렴하면 부당한 이득이 생기지 않고, 부당한 이득이 생기지 않으면 온갖 일이 잘 되며, 온갖 일이 잘되면 모든 물자의 쓰임이 절도 있게 된다.”

물자가 부족하면 가격이 올라가는데, 그 가격 상승분은 부당한 이득이다. 이로 보아, 경중가들은 공정가격이 있다고 생각하였던 듯하다. 공정가격(just price)이라는 개념은 고대 그리스에서도 보이는 것이기 때문에, 춘추전국시대 경중가들이 그와 비슷한 개념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 이상한 것은 아니다.

어떤 상품의 가격에 부당한 이득이 포함되면, 이것을 원료로 사용한 이후의 생산품의 가격도 모두 적당한 수준이 아니게 되기 때문에, 만사가 흐트러질 수 있다. 그런데 이 부당한 이득은 시장의 수급 사정에 의해 창출되는 것일 뿐만 아니라, 가격이 물자의 공급에 영향을 미치지 않기 때문에, 시장에 의해 자체적으로 해결될 수도 없었다. 따라서 부족의 문제를 미연에 막아, 부당한 이득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일은 시장의 자기 조정력이 아니라, 군주의 보이는 손에 의해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었다. ‘시장은 (그 나라의) 치란을 알 수 있는 곳’이라고 표현한 것은 이를 두고 한 말이다.

시장에 대한 불신과 군주의 시장개입 역할

시장에 대한 불신은 이에 한정되지 않는다. 당시 곡물은, 다양한 대체 식품이 있는 현재와는 달리, 대체 불가능한 생필품이기 때문에 가격이 변해도 수요가 많이 변하지 않았다. 그러나 생산력은 불안정하였기 때문에 어떤 때는 지나치게 많이 생산되기도 하고, 어떤 때는 지나치게 적게 생산되기도 한다.

당시 곡물시장은 이와 같은 극단적인 상황에서 잘 작동하지 못하였는데, 이 속에서 일어나는 극한 체험은 시장의 무기력함에 대한 강한 이미지를 형성시켰다. <관자>의 국축을 보자.

“풍년에는 시장에 내놓은 쌀이 팔리지 않아서 개 돼지들이 모두 (사람이 먹는) 양식을 먹는다. 흉년에는 시장에서 쌀 한 됫박을 사려고 해도 돈 열 꿰미 정도로 비싸져 길에는 굶어 죽는 백성도 있다. 이렇게 된 것이 어찌 토양이 비옥하지 않고 농민의 노력이 부족하며, 양식이 넉넉하지 않아서겠는가?

지난해 쌀값이 너무 싸서 개 돼지들도 (사람이 먹는) 양식을 먹었기 때문에 다음해 먹을 것이 부족해진 것이다.

곡물 가격이 싸면 반 값에라도 팔 수 없어서 농사에서 본전도 구할 수 없다. 곡물 가격이 높으면 가격의 열배를 주어도 얻을 수 없어서 백성이 그 씀씀이를 잃어버린다. 그렇게 된 것이 어찌 본래 재물이 모자라고, 생산과 비축한 것이 부족해서 그렇겠는가? 이것은 백성이 재물을 관리하여 이익을 얻는 시기를 놓치고 물가가 안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나치게 낮은 가격은 농민들의 파산을 야기하여 다음 해의 생산도 좋지 않게 된다. 그리고 지나치게 높은 가격은 굶어죽는 백성을 만들어내고, 혹여 그 속에 이득을 얻은 백성은 분수를 잃게 된다. 경중가들은 이와 같은 상황을 막기 위해서 군주가 물가의 안정을 위해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고 보았는데, 군주는 물가를 안정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었을까? <관자>의 ‘국축’을 다시 보자.

“여러 물자가 모두 풍족하면 가격이 낮아지고, 부족하면 가격이 높아진다. 재물을 방출하면 가격이 떨어지고, 구입하여 거두면 가격이 올라간다. 군주는 그것을 잘 알기 때문에 나라의 (시장에서) 남고 부족한 것을 살펴서 그 화폐와 물자를 통제한다. (그리하여) 곡물 가격이 떨어지면 화폐로 양식을 사들이고, 포백 값이 떨어지면 화폐로 포백을 사들인다.

물가의 등락을 살펴서 그러한 원칙으로 통제한다. 그러므로 물가의 높고 낮음을 조절할 수 있고, 군주는 그 차익을 이익으로 얻는다.”

우선, 군주가 가격을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시장에서의 수급 상황을 파악하여야 한다. 이와 같은 정보의 문제가 해결되면, 물자가 남을 때 사들이고, 물자가 부족할 때 방출하면 된다. 물론 물자를 때로는 사들이고 때로는 방출하여 물가를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화폐와 물자를 충분히 비축하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 본 문장이 수록된 편명이 ‘국축(國蓄)’인 것은 이 때문이다. 물건이 쌀 때 구입하고, 물건이 비쌀 때 판매하기 때문에, 매매 마진이 발생하는데, 이것은 군주의 이익이 된다. 물가도 안정시키고 군주의 창고도 가득하게 되는 일거양득이다. 군주의 이와 같은 개입은 중재(arbitrage)적 개입이라 할 수 있다.

중재적 개입과 조작적 개입

그러나 군주가 시장에 중재적 개입을 하게 되면, 그것을 바탕으로 시장에 대한 조작적 개입도 할 수 있게 된다. 중재적 개입이 물자의 수급의 안정화를 목적으로 하는 것임에 대해, 조작적 개입은 소득의 재분배, 주로 백성으로부터 군주로의 소득이전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다. 조작적 개입은 현대 주식시장에서의 작전과 같은 것으로서, 당시에는 크게 세 가지 방법이 활용되었다. 첫째는 국가의 막대한 비축물과 경제력을 바탕으로 매점매석을 하여 가격을 조작하는 것이다. 둘째는 독점적 지대(렌트)를 창출하여 가격을 조작하는 것이다. 셋째는 정령(政令)의 완급을 이용하여 가격을 조작하는 것이다. 시장의 물건을 모두 구입하여 공급을 부족하게 만들어 가격이 올라가면 방출하여 시세차익을 얻는 매점매석의 기법이나, 국가가 가지고 있는 권력을 이용하여 특정 재화에 대한 수요를 인위적으로 창출하는 방식으로 가격을 조작하는 기법에 대해서는 상술하지 않겠다. 이 시대에도 유동성 개념의 단초가 있었음을 보여주는 정령의 완급을 이용하여 가격을 조작하는 방법에 대해서만 소개해 둔다. <관자>의 ‘국축’을 다시 보자.

“지금 군주가 백성에게 화폐세를 강제로 거두고자 명령하기를, “열흘 안에 완납하라”고 하면 재물의 가격이 1/10 떨어지고, 명령 하기를, “여드레 안에 완납하라”고 하면 재물의 가격이 2/10 떨어진다. 명령하기를, “닷새 안에 완납하라”고 하면 재물의 가격이 반으로 떨어진다. 아침에 명령을 내려, “저녁까지 완납하라”고 하면 재물의 가격이 9/10 떨어진다. 선왕은 그것을 알았기 때문에 백성에게 화폐세를 거둘 때 호령으로 억지로 걷지 않았다.”

어떤 재화의 소유자가 자신이 소유한 재화를 자신이 원하는 시기에 화폐로 전환시킬 수 있는 정도를 유동성이라고 하는데, 화폐가 아닌 일반적인 재화는 화폐보다 낮은 유동성을 갖는다.

따라서 군주가 급박하게 화폐를 세금으로 내라고 하면, 백성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재화를 판매하여 화폐를 마련하려고 하기 때문에, 재화의 가격이 하락하는데, 화폐 납부를 어느 정도 급박하게 요구하는가에 따라 재화 가격의 하락폭은 변동하게 된다. 따라서 정령의 완급을 통하여 가격을 조정할 수 있다.

<관자>는 시장에 대한 중재적 개입뿐만 아니라 조작적 개입도 좋게 보고 있다. 조작적 개입을 통하여 군주의 창고를 가득하게 만드는 것은 당시 경제상황으로 볼 때 상당히 효율적인 재원 마련 방법이라고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현대 경제학자들은 경제적 유인체계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조세로 인두세를 들지만, 티부(Tiebout)적인 유목민의 세계였던 춘추전국시대에 인두세는 효율적인 조세가 아니었다. <관자>의 ‘국축’을 다시 보자.

“방과 집에 세금을 거두면, (세금을 피하기 위하여 사람은) 방과 집을 모두 허물어 버린다. 기르는 가축에 세금을 거두면, 가축 기르기를 그만둔다. 밭두둑에 세금을 거두면, 농사일을 그만둔다. 장정 수로 세금을 거두면, 다른 지역으로 떠나 부모 형제의 정이 흩어진다. 가구 수에 따라 세금을 거두면, 아무리 형제가 많아도 분가하지 않고 함께 모여 산다. 이와 같은 다섯 가지는 모두 사용해서는 안된다.”

가옥세, 가축세, 토지세, 인두세, 가구세는 모두 효율적인 조세가 아니었다. 그렇다면, 재원을 마련할 수 있는 효율적인 방법은 무엇일까? 가격 안정화를 위한 중재적 개입은 효율성을 높일 뿐만 아니라 정부의 수입을 증대시킬 수 있었다. 조작적 개입은 시장의 불안정화를 야기하기는 하지만, 백성들의 소득불평등을 완화하는 방향으로 시행된다면, 전체적으로 경제에 악영향이 크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였다. 이 밖에도 소금이나 철의 소비에 세금을 매기는 염철세와 같은 간접세도 위에 든 오종의 직접세보다는 효율적인 조세로 보았다. 어떻든 경중가들이 중재적 개입 및 조작적 개입에 대한 여러 비책들을 고안하였던 것은 이와 같은 방식으로 재원을 마련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효율적인 재원 마련의 방법이라는 인식에 바탕한 것이었다.

시장을 통한 재원마련을 위해 군주에게 필요한 것

이제 중재적 개입과 조작적 개입을 하기 위해 군주가 갖추어야 할 필수품을 정리해 보자. 첫째, 시장의 가격 형성에 영향을 미치기에 충분할 만큼 화폐와 물자를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 그것이 없으면, 물자부족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둘째는 조작적 개입과 중재적 개입을 잘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인재를 확보해야 한다. 앞서 언급하지 않았던 인재 문제에 대해서만 약간 살펴보자. <관자>의 ‘권수’에는 매우 유명한 구절이 있다.

“일 년의 계획은 곡식을 심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없고, 십년의 계획은 나무를 심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없으며, 일생의 계획은 사람을 키우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없다. 한 번 심어서 한 번 거두는 것은 곡식이고, 한 번 심어서 열 배를 얻는 것은 나무이며, 한 번 키워서 백 배를 얻는 것은 사람이다. 내가 참으로 인재를 키우면 귀신같이 마음대로 그를 쓸 수 있을 것이니, 나라 다스리기를 귀신같이 자유롭게 할 수 있으면 군주의 자격이 있다.”

한 마디로 요약하면, 사람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다. 노자의 도 위에 황제라는 전설적 군주의 통치체제를 올려놓겠다는 황노학(黃老學)은 무위의 통치를 지향하는데, 무위의 통치는 두 가지 용례로 사용된다. 첫째는 원하는 것이 저절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는 메커니즘을 디자인하는 것이다. 둘째는 시키지 않아도 필요한 것을 알아서 해주는 인재를 키우는 것이다.

당대 경중가들은 메커니즘 디자이너였을 뿐만 아니라, 군주가 신경 쓰지 않아도 경제가 잘 돌아가도록 경제를 관리하는 춘추전국시대의 보이는 손이었다.

경중가들은 시장 가격의 형성을 주도하였다는 점에서 경매인(auctioneer)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들의 활동은 시장가격이 공정가격과 비슷하게 되도록 하기 위한 가격 조정이거나, 군주의 창고를 가득 매우기 위해 가격 조작이었다는 점에서 반(反)-왈라스적 경매인이었다.

군주의 대리인으로서 경중가의 한계

경중가들이 반-왈라스적 경매인으로 활약하면, 시장이 창출하는 우아한 질서가 나타날 수 있는 기회 자체가 사라진다는 점에서, 반-왈라스적 경매인으로서의 활동은 자신의 존립기반을 스스로 창출한다. 이 지점에서 경중가들의 경제학이 근대경제학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은 사라진다. 뿐만 아니라 반-왈라스적 경매인이 지배하는 시장경제에서 로크(Locke)적 시민은 자라나기 어렵다. 경중가는 티부적 유목민을 통치하는 목자로서의 군주의 입장에서 경제학을 정립할 수밖에 없었다.

경제사가 조엘 모키어(Joel Mokyr)는 2010년에 <계몽된 경제(The Enlightened Economy)>라는 두꺼운 책을 썼다. ‘어떠한 세상을 만들려고 하는가’가 경제의 발전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어떠한 세상을 만들려고 하는가? 그것은 완전히 새로운 이상세계에 대한 구상을 묻는 것은 아니다. 미래에 대한 구상은 과거에 이루어졌던 다양한 시도들에 대한 명시적이고 반성적인 고찰에 바탕하여야 한다.

<관자> 속에 담겨져 있는 춘추전국시대에 벌어졌던 경제실험에 대한 기록은 그런 의미에서 현재성을 갖는다고 할 수 있다.

<관자>는 춘추전국시대에 전개되었던 경제실험들을 알려주는 여러 문헌 중의 하나로서, 주로 제나라에서 시도되었던 경제실험을 기록한 것이다. 그런데 <관자>를 만들어낸 제나라는 천하통일의 주인공이 되지 못하였다. 천하통일은 제나라가 아니라 상대적으로 후진국이었던 진나라에 의해 이루어졌다.

후진국 진나라가 어떻게 천하통일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을까? 거기에는 상앙(商仰)이라는 명재상의 추격의 경제정책이 있었다. 추격의 경제정책론으로서의 <상군서(商君書)>는 천하제일의 부국강병의 국가를 만들기 위한 작위의 통치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무위의 통치를 지향하는 <관자>와 묘한 대비를 이룬다.

<상군서(商君書)>, 이것이 다음에 다룰 고전이다. E21

본 기사는 월간지 <이코노미21> 12월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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