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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디즘이 만들어낸 산업재해, 근골격계질환
포디즘이 만들어낸 산업재해, 근골격계질환
  • 송재철 한양대 의대교수
  • 승인 2014.05.20 15: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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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안전특집 8> 업무상질병중 80%를 차지하는 중요 직업병으로 산업 현장에서 더욱 더 늘어날 전망

“찰리는 출근해서 퇴근할 때까지 컨베어벨트 위를 지나가는 철판 위의 볼트에 너트를 조이는 일을 한다. 단순하고 반복적인 작업을 하던 그는 관절에 이상이 생기고, 작업하는 대상과 비슷한 모양의 것이면 눈에 띄는 족족 조여야하는 강박에 빠진다. 회사는 찰리의 정신이 이상해졌다고 그를 정신병원에 보낸다. 그리고....”

“모던타임스”는 1936년 미국 ‘유나이티드 아티스트’의 흑백영화로 제작·각본·감독·주연·음악을 찰리 채플린이 직접 맡았다. 자동화시대의 부작용을 이미 60여년 전에 내다보고, 시간의 노예가 된 인간을 통해 기계문명에 대한 도전과, 자본주의의 인간성 경시에 대한 분노를 그리고 있다.

1914년 미국의 헨리 포드가 자신의 자동차공장에 도입한 획기적인 공정인 ‘컨베이어벨트’를 가동한 지 20여년 후에 먼 미래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를 그린 감동적이고, 철학적인 영화임에 틀림없다. 이 영화는 나로 하여금 천재의 존재를 더 이상 의심할 수가 없게 하였다.

포디즘과 노동자의 단순반복운동

20세기 초 미국의 테일러 F.W. Taylor는 “과학적 관리의 원칙(1911)”이란 논문에서 사업장의 근로자 능률증진을 위한 방안을 제시하였다. 테일러리즘으로 불린 그의 제안을 더욱 발전시킨 포드의 시도는 조립라인 및 연속공정 기술을 통하여 표준화된 제품의 대량 생산을 가능케 하였다.

후에 포디즘(Fordism)이라는 경영학 용어로 잡은 이 시스템은 대량소비시대의 총아가 되었지만, 곧 에너지, 자원의 고갈과 산업 및 생활폐기물을 양산하게 되었고, 결국 자본주의가 가져온 에너지 및 생태환경 위기의 가장 큰 요인 중의 하나가 되었다. 테일러의 경영철학(Taylorism)은 작업의 과학화를 통해 생산성 향상을 이룩하고, '고임금 저 노무비용(High Wages and Low Labor Cost)' 를 실현하여 근로자와 사용자 모두의 번영을 추구하는 것이었으나, 실제 현장의 근로자가 겪는 노동환경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그의 방법론을 채택한 공장은 직능식 조직의 도입, 표준적인 작업방법과 이에 대한 표준시간이 작업순서에 따라 정리되어 있는 작업지도표의 활용, 그리고 과업달성을 촉진하기 위한 개별성과급제도를 도입하였다.

시간적 낭비요소가 감소하고 근로자의 숙련에 의한 작업능률을 상승시켜 노동생상성은 증가하였으나, 노동강도가 강화되고, 자율시간이 감소하였다. 근로자들은 자신이 하는 작업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도 모르는 채, 큰 기계의 한 부속이 되고 말았다. 실제로 당시인 1911년에 메사추세스주 워터타운의 근로자들은 그의 능률증진운동에 반대하는 파업을 시도하기도 하였으나, 결과적으로는 오늘날의 근로자들 역시 포드가 계승 발전시킨 자동화된 공정에서 테일러의 철학이 구현된 단순반복작업을 수행하고 있다. 이러한 공정은 업무스트레스 등 다양한 산업보건의 문제를 유발하고 있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큰 영향은 근육과 관절을 포함하는 근골격계질환을 양산하는 것이다.

직업성근골격계질환(Work-related musculoskeletal disorders, WMSDs)은 부담작업으로 인하여 목과 허리, 팔·다리의 신경·근육 및 그 주변 신체조직 등에 나타나는 질환을 통칭하는 직업의학 용어이다. 작업기간 및 시간, 작업자세, 작업량, 작업속도, 작업강도, 작업장의 구조 등 근골격계에 부담을 주는 일을 근골격계(신체) 부담작업이라 하며, 구체적으로는 반복 동작이 많거나, 무리한 힘을 가하는 경우, 부적절한 자세를 유지해야 하거나 진동기구를 사용하는 작업과 특정 신체 부위에 부담되는 상태에서 수행하는 업무를 일컫는다.

사고에 의한 손상과는 달리 직업성근골격계질환은 반복되는 작업으로 인해 일할 때는 느낄 수 없는 정도의 작은 손상이 쌓이고, 개인 활동이나 사회심리적 요인 등 여러 원인에 의해 발생되기 때문에, 공식적인 전문용어로 자리잡기 전에는 누적외상성장애, 반복긴장성손상, 경견완장애, 과사용증후군 등 연구자의 관점에 따라 다양한 이름이 붙어졌다. 증상도 경미하게 시작되어, 몸이 스스로 회복할 수 있는 한계를 초과한 후에야 근로자가 질병을 인지하기 때문에, 일을 시작하고 상당기간이 지나고 나서 병원을 찾게 되는 특징이 있다.

1990년대 중반 이후 관심을 끈 근골격계질환

일자리를 찾기도 어렵던 시기에 근골격계질환으로 병가를 얻거나 산재를 신청한다는 것은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다.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으로 이 질환이 관심을 끌기 시작한 것은 경제성장의 안정기에 접어든 1990년대 중반이었다.

1993년 최초로 2건이 산업재해로 승인되었고, 1996년에는 한 통신회사에서 콜센터 응대나 전화교환과 같이 비교적 가벼운 일을 하던 근로자들이 단체로 산재를 신청(66명 산재승인)하는 등 506명의 근로자가 산재요양승인을 받았다. 이후 업무상질병 중 근골격계질환이 차지하는 비율은 경제위기가 있던 1998년의 6.7%를 최저로 2000년대 후반부터는 80%에 가까워 업무상질병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중요 직업병이 되었다.

2011년 고용노동부자료에 의하면, 발생자 수를 기준으로 제조업이 2,248(44.28%)명으로 가장 많으며, 전기건설업 451(8.88%)명, 보건의료 334(6.58%)명, 운수창고통신업 246(4.85%)명 순으로 많이 발생하였다. 그러나 업무상질병 중 근골격계질환이 차지하는 비율로 보면, 도소매, 음식숙박, 보건의료, 다음이 제조업으로 비정형작업자에서도 발생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질병의 정의와 부합하지 않는 사고성 요통을 근골격계질환의 범주에 넣어 발생하는 노동통계의 착시현상으로, 절반을 차지하는 사고성 요통을 제외할 경우 정형화된 공정의 제조업이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한다.

▲ 2008년 8월 27일 국회 정론관에서 민주당 최영희, 김상희 의원, 민주노동당 이정희, 곽정숙 의원과 민주노총 서비스노조연맹 '서서 일하는 서비스여성노동자에게 의자를' 국민캠페인단이 대형마트나 백화점 등 유통 서비스 부문에서 일하는 여성 판매직 노동자들의 근무형태에 대한 대책마련을 관계 당국에 요구하고 있다. 제공=뉴시스
외국의 경우 우리와는 다른 산재보험체계를 가지고 있어 직접비교는 어렵지만, 2009년 미국 노동통계국의 자료에 의하면 전체 산재의 약 30%, 업무상질병의 60%를 넘는 수준이며, 유럽의 많은 나라에서도 업무상질병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직업병이다.

우리나라의 근골격계질환 관리는 2003년 근골격계질환 부담작업의 범위를 노동부 고시로 규정한 것을 시작으로, 이후 관련 산재 다발사업장의 근골격계질환 예방프로그램실시를 의무화하고, 관련 사업장에 대하여 유해요인 조사를 3년마다 실시하게 하였다. 특히 최근에는(2013. 6.) 산보보상보험법시행령을 개정하여 그동안 판단에 많은 혼란을 가져왔던 퇴행성질환을 가지고 있던 근로자에 대한 산재심의에서 업무에 의한 악화가 인정될 경우 요양승인이 가능토록 하는 등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근골격계질환의 예방대책

그러나 질병의 특성상 아직도 과제가 산적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필자는 현실적인 문제로 인해 앞으로 상당 기간 동안은 이 질환의 감소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판단한다. 고용주의 입장에서는 생산능률향상에 적합한 현 작업공정을 고집할 가능성이 높다. 고용축소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공정자동화를 근로자들이 무작정 받아들이지도 않을 것이며, 고용을 유지한 채로 어마어마한 시설투자를 감행할 사업주도 없을 테니 말이다.

또한 노동인력의 고령화는 이 질환의 특성상 퇴행성 질환과 맞물려 더욱 악화될 것이 불 보듯 뻔한 일이다. 따라서 직업성근골격계질환의 관리 목표는 이 병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발생을 줄이고, 빨리 발견하여 악화를 방지하며, 치료기간을 최소화하고, 빠른 시간 안에 정상적인 업무로 복귀시키는 것이 되어야 한다.

예방단계에서 할 수 있는 조처로는 첫째, 작업공정이 근로자의 신체에 부담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작업환경의 인간공학적 설계나 중립적 자세(관절에 무리가 가지 않는 자세)에서 사용할 수 있는 도구의 제공 등이 필요하다.

둘째, 수행할 업무에 부적절한 근로자들이 위험한 공정에 배치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추간판탈출(허리 디스크라 불리는 질병)이 의심되는 근로자가 중량물을 다루는 일을 하지 않게 하려면 채용된 근로자가 허리의 질병이 있는 가를 확인하는 등 업무적합성 평가를 해야 한다. 물론 그러한 과정이 근로자의 고용에 불이익으로 작용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셋째, 회사는 평소에 근로자들이 업무와 관련된 근육이나 관절 강화운동 또는 피로를 풀어줄 수 있는 시설이나 기구를 갖추어야 한다.

넷째, 정부는 비교적 구체적으로 규정이 마련되어 있는 만큼, 이들이 잘 지켜지도록 지도, 감독을 철저히 해서 근로자와 사업주의 의무가 제대로 실천되도록 해야 한다. 형식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유해요인조사의 의무를 더욱 강력하게 부과하고, 다발사업장 및 예방프로그램의 의무시행 사업장에 대한 지도와 감독을 강화해야 한다.

다른 산업재해와 마찬가지로 근골격계질환 역시 산재인정과 재활 및 복귀에도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첫째, 최근 퇴행성질환에 대한 시행령의 개정으로 기존 질환이 업무로 인하여 악화된 재해자의 요양승인의 범위가 넓어졌지만, 아직도 심사과정에서 이들이 배제되는 경우가 흔히 나타나고 있다. 직업성 근골격계질환은 의학적으로 퇴행성 질환의 형태로 나타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중량물 취급, 불안정한 자세 등의 물리적 위험요인은 퇴행성 변화를 촉진하기 때문에 질환이 업무적 요인에 의해 악화되었을 가능성에 대한 보다 심도 있는 평가가 필요하다.

둘째, 모든 산재요양이 갖는 특성 중의 하나로, 요양의 궁극적인 목적이 작업복귀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일반인들의 질병은 원인이 제거되고, 더 이상 악화 가능성이 사라질 경우 완치로 판정하지만, 산재요양의 대상이 되는 질병, 특히 대부분의 경우에서 영구장해를 초래하지 않는 근골격계질환은 업무복귀를 목표로 관리하여야 한다. 따라서 치료완료 후 재활 및 작업복귀를 위한 근력 강화 등의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마련해야 한다.

셋째, 산재피해자는 스스로 정상적인 생활로 복귀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특히 앞에 언급한 대로 근골격계질환에 의한 산재피해자는 다른 경우에 비해 영구장해의 가능성이 적기 때문에 작업복귀를 목표로 해야 한다. 대부분의 연구에서 복귀 가능한 질병을 극복하고, 현장 업무를 다시 시작한 근로자는 상대적으로 요양기간이 짧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복귀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요인 역시 근로자 자신의 복귀의지라는 것 역시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이 외에 아직 해결해야 할 중요 현안으로, 현재 노사간에 첨예한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산재요양신청 환자들에 대한 업무부담조사가 있다. 앞서 언급한 대로 근골격계질환은 직업적 원인 외에도 매우 다양한 요인이 관여하기 때문에 업무부담 수준이 높다는 것만으로 업무관련성이 있는 것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물론 업무부담이 있다는 전제하에 산재요양의 승인 여부를 판단해야 하지만, 업무부담의 평가결과를 업무관련성과 직접 연계하려는 시도는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허리에 부담이 있는 업무를 수행한다고 해서 모든 종류의 허리질환을 유발하는 것은 아니며, 이 판단은 방사선소견, 임상증상 및 증후 등을 의학적으로 검토하고, 해당 질환과 업무부담과의 관련성을 확인한 경우에만 이루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현재 논의되고 있는 물리적 환경에 대한 업무부담조사는 업무관련성을 평가하는 참고자료 중의 하나로만 활용되어야 한다.

직업성근골격계질환은 대부분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오는 질병이 아니다. 또한 객관적인 검사에 뚜렷한 소견을 보이지도 않으며, 원인 역시 매우 다양하고 불분명하다. 조기진단도, 완치도 어렵고, 쉽게 재발하며, 증상까지 다양하다. 즉, 관리가 어려운 질병이다. 업무관련성 질환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관리는 가장 어려운 과제인 것이다. 회사는 부담작업을 최소화할 수 있는 작업환경을 제공하고, 스스로 치료와 회복을 위한 활동이 가능한 시설과 장비, 그리고 교육기회를 제공하여야 한다.

근로자는 다양한 원인이 관여하는 만큼 스스로 위험요인에 노출될 기회를 최소화하고, 기왕 걸렸다면 복귀를 위한 노력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정부는 노사가 규정을 준수하도록 지도, 감독을 철저히 하고, 산재피해자들의 요양승인절차가 합리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하며, 근로복지공단 등에 대하여 업무복귀를 위한 투자를 독려하여야 한다.E21

본 기사는 월간지 <이코노미21> 2월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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