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은행의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경상수지는 지난 2월 45억 2천만 달러의 흑자를 기록하였다고 한다. 2012년 3월 이후 24개월째 흑자행진이었는데, 2013년 한 해 동안 경상수지흑자는 모두 798억 8천만 달러나 되었다. 규모도 큰 편이었다. 한국은행은 “지난해 국내총생산(GDP) 대비 경상수지흑자 비율은 약 6.1%로 상당히 높은 수준"이며 "주요 20개국(G20) 중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를 제외하면 독일 다음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발표했다.
경상수지는 외환위기를 겪을 가능성이 있는 나라에게 특별히 중요한 문제이다. 우리나라의 경험을 보아도 그렇다. 외환위기 직전인 1996년 우리나라의 경상수지적자는 238억 3천만 달러나 되었다. 234억 7천만 달러의 자본수지흑자로 간신히 버티었지만, 1997년 들어 외국인의 자금이 급속히 빠져 나가자 외환보유고는 거의 고갈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이처럼 자본수지흑자는 순식간에 감소할 수 있다. 하지만 경상수지흑자는 그렇지 않기 때문에 외환보유고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자본수지흑자보다 경상수지흑자가 더 좋은 방법이라고 볼 수 있다. 디폴트위기를 겪는 나라들을 보면 한결같이 경상수지가 적자상태에 있다.
경상수지가 신흥국에서만 관심사인 것은 아니다. 얼마 전 임기를 마친 미국 연준의 전 의장 벤 버냉키(Ben Bernanke)가 쓴 교과서를 보면(몇 가지 단서가 붙어 있기는 하지만), 경상수지흑자는 바람직하다고 쓰여 있다. 그래서인지 만성적인 경상수지적자를 겪어 왔던 미국에서도 이에 대한 관심은 높다. 하지만 미국 정부는 그 책임을 다른 나라에게 돌리곤 하였다. 미국 사람들은 자국 경상수지적자가 1990년대 전반에는 일본의 불공정무역 때문이었다고 주장하였으며, 2000년대 들어서는 중국의 환율조작 때문이었다고 주장하였다.
이런 상황이고 보니 우리나라에서도 대규모의 경상수지흑자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없지는 않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국제사회의 압력이 거세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해 연례협의 후 원화가 저평가돼 있다고 밝히고, 원화가치절상의 필요성을 언급한 바 있다. 또한 미국 재무부도 작년 환율보고서에서 우리나라의 경상수지흑자가 2012년 GDP의 3.7% 수준에 달한다며 사실상 원화가치절상을 요구한 바 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정말로 환율조작국인가? 답변은 ‘No’이다. 그리고 그 이유는 이미 경제학교과서에 나와 있다.
국제통화기금은 회원국들의 토의를 거쳐 2010년 1월 새로운 국제수지통계 매뉴얼(BPM6)을 확정하고 회원국에 그 이행을 권고하였다. 이에 우리나라도 2010년 12월 1단계 이행을 완료하였고 이후 후속작업을 진행하여 왔다. 서두에서 언급한 바 있는 한국은행의 발표는 모두 새 국제기준인 BPM6에 의한 것이다. 이에 따르면 국제수지표는 경상계정, 자본계정, 금융계정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우리가 보통 말하는 자본수지는 자본계정과 금융계정의 수지를 합한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 물론 경상수지는 경상계정의 수지를 말한다. 따라서 국제수지는 경상수지와 자본수지의 합이다(물론 통계조사에서 발생하는 차이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오차 및 누락’이라는 별도의 항목이 있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그 이유는 간단하다. <그림1>의 (a)를 보면 외환의 수요와 공급이 같아지도록 외환시장의 균형이 달성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격통제나 수량통제 등 규제가 없다면, 외환의 초과수요(국제수지적자) 또는 외환의 초과공급(국제수지흑자)은 발생할 수 없다. 물론 그 과정에서 환율은 국제수지균형이 달성되도록 끊임없이 움직인다.
정말로 그럴까? 2013년의 경우 우리나라의 경상수지는 798억 8천만 달러의 흑자, 그리고 자본계정과 금융계정의 수지인 자본수지는 769억 1천만 달러의 적자이었다.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그 값은 크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오차 및 누락’에 해당된다. 이를 모두 반영하면 경상수지흑자, 자본수지적자, 오차 및 누락의 합은 0이다.
국제수지가 항등적으로 균형이라는 사실을 이해했다면 다음으로 알아야 할 중요한 사실은 다음과 같다. 경상수지가 흑자일 때 자본수지는 적자가 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물론 이를 바꾸어 말하면 다음과 같다. 자본수지가 적자일 때 경상수지는 흑자가 될 수밖에 없다. 이것 역시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그 이유는 <그림1>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a)에서 외환시장의 균형이 달성되므로, (b)의 경상거래에서 경상수지흑자가 달성된다면 (a)에서 균형이 달성되기 위해서는 (c)의 자본거래에서 반드시 자본수지적자가 발생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경상수지도 흑자이고 자본수지도 흑자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을 법하다. 하지만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 그렇다면 (a)에서 외환시장의 균형이 달성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즉 경상수지도 흑자이고 자본수지도 흑자인 상황이 일시적으로 나타나게 된다면, (a)에서 환율이 하락하게 될 것이므로 결국 외환시장의 균형은 달성될 것이다. 그리고 외환시장의 균형이 달성되도록 환율이 하락한다면 경상수지와 자본수지 중 하나는 반드시 적자가 되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경상수지흑자와 자본수지흑자는 동시에 달성될 수는 없다.
이것 역시 사실일까?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우리나라의 2013년 경상수지는 798억 8천만 달러의 흑자, 자본수지는 769억 1천만 달러의 적자이었다. ‘오차 및 누락’을 감안하면 경상수지흑자의 규모는 자본수지적자의 규모와 거의 같다.
<그림 2> 경상수지적자, 자본수지흑자의 경우
외환위기 직전에는 우리나라의 외환시장도 <그림2>와 같았다. 즉 1996년 우리나라의 경상수지는 238억 3천만 달러의 적자이었고 자본수지는 234억 7천만 달러의 흑자이었다. 하지만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우리나라의 외환시장은 <그림1>과 같이 변모하였다. 1998년 이후 연간 기준으로는 매년 경상수지가 흑자를 기록하였고 자본수지는 적자를 기록하였다. 이러한 변화는 외환보유고의 안정적인 관리라는 측면에서 바람직한 변화였다고 볼 수 있다.
우리는 흔히 경상수지흑자가 강한 경쟁력 또는 높은 생산성의 결과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거시경제학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경상수지흑자와 자본수지적자는 동전의 양면일 뿐이라고 말한다. 심지어 경상수지흑자의 원인은 자본수지적자에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논쟁이랄 것도 없지만 경상수지흑자가 강한 경쟁력의 산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그게 아니라고 말하는 경제학자들 간에 논쟁이 실제로 미국에서 벌어졌다. 1980년대 미국은 대규모의 경상수지적자와 재정적자에 시달렸다. 이 현상을 쌍둥이적자(twin deficit)라고 불렀는데 미국경제가 장기간 경기침체를 겪는 주요 원인이 되었다. 당시 경상수지적자의 상대국이 일본이었기 때문에 빌 클린턴(Bill Clinton)이 대통령에 취임하였던 1990년대 초 미국의 여론은 일본 비판 일색이었다. 미국의 여론은 경상수지적자의 책임을 일본에게 전가하였던 것이다. 하지만 폴 크루그만(Paul Krugman), 앤 크루거(Anne Krueger) 등 경제학자들의 생각은 달랐다. 그들은 미국의 경상수지적자가 자본수지흑자와 함께 나타난 현상일 뿐이라고 말했다.
1990년대 미국은 10년 동안의 번영을 누렸다. 이 시기에 미국의 경상수지적자는 크게 감소하였다. 하지만 2008년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미국의 경상수지적자는 다시 급증하였다. 우리나라가 우려하는 상황은 1990년대 초반 미국이 그랬던 것처럼 다시 한 번 더 미국이 경상수지적자의 책임을 다른 나라에 전가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번에는 다름 아닌 우리나라가 그 표적이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나라가 미국 경상수지적자의 책임을 져야 할 이유는 없다. 그건 단순히 미국의 자본수지가 흑자이기 때문일 뿐이다.
물론 우리나라가 <그림1>처럼 되었고 미국이 <그림2>처럼 되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나라가 <그림1>처럼 되었기 때문에 미국이 <그림2>처럼 되었던 것은 아니다. 그건 엄연히 다른 문제이며, 미국이 경상수지적자와 자본수지흑자를 겪는 이유는 다른 곳에서 찾아야 한다. 이 문제가 오히려 더 중요할 지도 모르는데, 다음 호에서 자세하게 살펴 보기로 한다. 왜 우리나라에서는 경상수지흑자와 자본수지적자가 나타나고, 미국에서는 경상수지적자와 자본수지흑자가 나타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