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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정부의 노동정책, 무엇이 필요한가
현 정부의 노동정책, 무엇이 필요한가
  •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승인 2014.07.29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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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정책의 실종 ①> 박근혜 정부 노동정책 ‘안개속’…미래지향적 노동정책의 비전과 이를 실현할 방법 보이지 않아

박근혜 정부의 노동정책에 대한 비판이 커지고 있다. 일부에선 ‘노동정책의 실종’이라고까지 한다.

박근혜 정부는 출범 이후 이렇다 할 노동정책을 제시한 바 없다. 최근 발표한 ‘경제혁신 3개년 계획’에서도 노동정책이 빠져 있다. 노사정 대화는 중단돼 노사정위원회는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최근 대법원의 통상임금 판결로 임금체계에 대한 논란이 커지고 있지만 정부는 이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노동계는 노동계대로, 경영계는 경영계대로 노사 관계를 어떻게 논의해 가야할지 막막하다고 말한다.

노사자율에 의한 노사관계 재정립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노사만의 대화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많아 노사정위원회를 만들었다는 점을 상기해 봐야 할 것이다.

현 정부는 대선 과정과 인수위 때까지만 해도 ‘사회적협약’의 필요성을 제기한 바 있다. 그러나 취임 1년이 지나서도 ‘사회적협약’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는 진행되고 있지 못하다.

현 정부의 노동정책을 분석해 보고, 문제점이 무엇인지 알아본다. 아울러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통상임금 문제 등 임금체계, 일자리의 질, 사회적협약 등에 대해서도 살펴본다. - 편집자 주

박근혜 정부가 지난해 5월 발표한 광범위한 국정과제 중에서 고용과 노동분야에 관한 과제목록을 보면 주로 고용분야에 많는 관심과 노력을 기울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그해 6월에는 “고용률 70% 달성”을 핵심 국정과제의 하나로 제시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5개년 계획으로 “고용률 70% 로드맵”을 제시함으로써 일자리 중심의 국정운영 수행과 고용친화적인 정부가 되겠다는 의지를 표현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정부의 주요 예산사업, 법ㆍ제도 개선 등에 대해서 고용영향평가제도를 도입하고 비정규직에 대한 불합리한 차별과 고용불안을 해소하고 사회안전망을 확충하여 고용의 질을 높이는데 노력하기로 하였다. 또한 장시간 근로관행을 개선하고 정년 연장을 통해 일자리 창출 기반을 마련하는 것도 중요한 어젠다가 되었다. 뿐만 아니라 경영상 해고의 요건을 강화하고 고용재난지역 선포 등을 통해 근로자의 고용불안을 완화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로 제시되었다.

 

이와 같은 정책의 기본적 골자는 인사이더 근로자에 대해서는 고용안정성을 높이고, 아웃사이더인 구직자나 구직을 포기한 국민의 노동시장 진입을 확대하며 그리고 그 경계선에 있는 비정규직 일자리의 질을 높여 근로자의 만족도를 향상함으로써 고용률 제고에 기여하는 것으로 정리할 수 있다. 그 기본취지나 방향은 일단 타당하게 설정되었다고 볼 수 있다.

 

문제는 대한민국의 노동상황이 그렇게 녹록하지 않는다는데 있다. 정부의 정책의지가 그대로 법령에 반영되어 현실화되는 것은 기대하기 어렵다. 특히나 노동정책은 경제정책과 함께 동전의 양면을 이룬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경제의 동향을 예의주시하면서 기업의 경쟁력과 국민경제의 잠재력을 지탱할 수 있는 경제정책과 노동정책이 필요하다. 그렇지만 현 정부의 국정과제에서는 향후 노동시장의 전망에 터잡은 미래지향적 노동정책의 비전과 이를 실현할 방법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근본적 문제가 있다. 또한 엄연히 기업경영의 한축을 담당하는 노동주체들과 어떻게 노동정책 및 노사관계를 형성해 갈 것인지도 안개속이다.

 

노동정책의 철학과 비전의 재정립해야

 

정부가 국정과제로 제시한 정책 중에서 일단 노동정책으로 분류할 수 있는 것은 다음과 같다. 정규직 고용관행 정착, 사내하도급 근로자 보호, 비전형 근로자의 사회안전망 확충, 최저임금제의 개선과 임금체불 청산을 위한 제도개선, 실 근로시간 단축, 정년연장, 경영상 해고의 요건 강화 등이다. 일단 여기에 제시된 과제도 쉽지 않은 것들이다. 정년연장법이 국회에서 예상보다 쉽게 통과되긴 하였으나, 인건비 증가와 복잡해진 인사관리에 대한 대책을 찾지 못한 기업들은 우왕좌왕하고 있다. 아무리 목표가 타당하다고 하더라도 목표를 달성하는 수단이 합리적으로 제시되어야 이해관계 당사자들의 불만이나 고통을 감소시킬 수 있다. 정규직 고용관행의 정착과 사내하도급 근로자 보호도 그 취지나 필요성을 공감하지만 그 수단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한다. 정규직 전환이나 차별금지를 법률로 의무화한다고 해서 그것이 실제로 현실화될 것이라고 믿는 국민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근로시간 단축이나 통상임금 개선도 수많은 복잡한 이해관계가 충돌하고 있다. 근로자의 이익을 실현하고 보호를 강화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기업, 그중에서도 중소기업의 부담이나 고통이 수반될 수 있다는 점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결국 노동계와 경영계 그리고 정부가 서로 공감대를 넓혀가는 노동정치의 기반위에서 노사의 고통분담과 합리적 제도개선이 이뤄질 수 있다.

 

노동정책의 기조는 헌법이 정한 바에서 출발하면 된다. 헌법 제32조는 국가에게 사회적, 경제적 방법으로 근로자의 고용증진과 적정임금 보장에 노력하도록 의무지우고 최저임금제를 실시하도록 하고 있다.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할 수 있도록 근로조건의 기준을 법률로 정해야 하고, 여성과 연소자의 보호 및 차별금지를 실현해야 한다. 다시 말하면 국가는 취약계층에 속하는 근로자들에 대한 최소한의 법적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할 책무가 있다. 헌법 제33조는 그 바탕위에서 노사가 대등성에 기초하여 자율적으로 근로조건의 향상을 도모할 수 있도록 노동3권을 보장하고 있으며, 공무원도 예외가 아니다. 정부는 이를 바탕으로 한편으로는 스스로 자신의 근로조건을 결정하기 어려운 근로자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에 걸맞는 최소한의 근로조건과 생존조건을 보장해야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노사의 자율적 근로조건 결정과정을 지원하고 존중해야 한다.

 

취약계층 보호가 노동정책의 출발점

 

취약계층의 근로조건을 향상시켜 근로자의 기본적 생활을 보장하는 것이 노동정책의 출발점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세기 말부터 우리 사회를 양극화의 늪에 빠뜨린 비정규직 근로자의 근로조건 개선 문제는 여전히 노동정책의 앞자리에 놓여 있다. 그러나 근로조건의 수준만을 놓고 보면 비정규직 근로자의 근로조건과 중소기업 근로자의 근로조건은 거의 차이가 없다. 즉, 사회전체적으로 근로조건의 양극화가 진행되고 있는데,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경계선을 나누기 보다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근로자의 근로조건 차이가 양극화의 현실적인 경계가 되고 있다. 중소기업에는 사내하도급을 비롯한 대기업을 원청으로 하는 수많은 하청 및 협력업체들이 포진하고 있으며, 실제로 정규직, 비정규직의 구별도 의미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결국 중소기업 근로자의 근로조건 수준을 향상시키는 것이 노동정책의 기본과제가 되어야 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근로조건 양극화야말로 중소기업의 인력난을 가중시키는 주범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대기업 근로자의 근로조건을 낮춰 양극화를 해소하는 것은 난망하고 따라서 중소기업 근로자의 근로조건을 어떻게 현실화해 가야 할 것인지가 고민거리이다.

 

▲ 1월 10일 서울 공덕동 한국산업인력공단에서 열린 2014 노사정 신년인사회에서 방하남(왼쪽 두번째) 고용노동부 장관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여당 간사 김성태 의원 등 참석 내빈들이 떡 절단식을 갖고 있다. 사진=뉴시스
기업별이 아니라 산업별로 기본적 근로조건을 결정하는 방식이 오랜 역사가 되고 있는 선진국에서는 기업규모에 따른 근로조건의 격차가 거의 나지 않으며, 근로자의 기능과 숙련도에 따라 어느 정도 표준화되어 있다. 그에 반하여 우리나라에서는 같은 일을 하더라도 기업규모에 따라 근로조건의 격차가 크게 벌어지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이 문제를 어떻게 극복해야 할 것인가? 정규직-비정규직의 이분법으로는 해소되기 어려운 본질적인 테마다. 대부분 노동조합이 조직되어 있지 않은 중소기업의 특성을 감안할 때 상당수의 기업에서는 최저임금의 결정과정이 실질적인 전국단위의 임금수준 결정을 위한 교섭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도 고려의 대상이 된다. 이런 점에서 현재의 최저임금의 결정방식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지적은 타당하다고 볼 수 있다. 영세사업장의 부담능력을 고려할 때 최저임금을 한꺼번에 많이 올린다고 능사는 아니며 체계적이고 합리적인 기준에 따라 최저임금액을 결정하여 국민들의 공감대를 얻어 가는 방식이 필요하다.

 

취약계층에 속하는 근로자나 그밖의 취업자들이 처해있는 공통점은 사회안전망으로부터 소외되어 있다는 점이다. 취업 중에는 적정한 근로조건을 토대로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최소한의 물질적 기초를 가질 수 있지만 부상이나 질병, 실업이나 고령 등 부득이한 사유로 취업활동에서 소득을 얻기 어렵다면 사회보험 등 사회안전망이 작동되어 사회구성원으로서의 기본적 생활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국가의 사명이다. 고용기간이나 근로시간이 짧다는 이유로 또는 사업주가 영세하다는 이유로 사회안전망의 가장 핵심을 이루는 사회보험 가입이 제한되어서는 안 된다. 또한 노동시장의 변화와 서비스산업이 확대되면서 근로자에 속하지 아니하고 특수형태업무 또는 특수고용 종사자로 불리는 다양한 취업계층이 등장하고 있다. 그런데 현행 노동법과 사회보험제도는 all or nothing 시스템으로 되어 있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인정받지 못하면 노동법의 적용은 물론이고 사회보험 가입에도 큰 제약이 발생한다. 사회보험제도가 취업하고 있는 국민들의 실질적인 사회안전망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와 연계를 끊고 독자적인 적용범위를 설계할 필요가 있다. 근로자와 순수한 자영업자 사이에 제3의 범주를 넣어 적용범위를 다양화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것이다. 그와 함께 근로자와 자영업자의 가운데에 있는 특수고용직 종사자에게도 최소한의 노동법적 보호를 부여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과거 19세기 노동법으로 21세기의 노동 문제를 계속 규율한다는 것은 넌센스다. 호미를 막을 문제를 가래로 막지 않으려면 적극적인 대처가 필요하다.

 

차별해소의 노동정책이 돼야

 

뿐만 아니라 합리적인 이유없이 고용형태만을 이유로 이뤄지는 근로조건의 차별을 해소하려는 제도개선의 노력이 계속되어야 한다. 최근 차별시정제도의 활용을 높이기 위해 다양한 제도개선이 이뤄지고 특히 고의적, 악의적 차별에 대해서는 징벌적 배상제도가 도입되는 등 노력이 없지 않다. 그럼에도 실제 차별시정 신청 자체가 거의 없고 여전히 근로조건의 차별에 대한 체감도가 높은 것은 근로자들의 고용안정이 전제되지 않는 한 차별시정의 효과도 높아지기 어렵다는 점을 반증한다. 결국 근로자들의 고용안정을 위한 정책대안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지만 무조건 정규직화가 기업의 인력운영을 경직화시켜 역효과를 낼 수 있다는 경영계의 지적도 무시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양자의 이해관계를 조화하면서 비정규직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기간제 근로자의 사용을 줄여가기 위한 현실성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향후 가장 중요한 문제의 하나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관련하여 근로자 파견제도가 근로조건의 양극화를 초래하고 고용불안을 높여 우리사회의 잠재적 위험요인이 된다고 하는 비판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적정한 근로자 파견을 통해 시장의 불안정성에 대처하는 한편 그를 통해 숙련된 인력을 정상적인 노동조직으로 편입시킬 수 있도록 한다면 노동시장의 활력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그 과정에서 노동조합의 역할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이미 모든 업종에 대하여 근로자 파견을 개방하였고 경기변동에 맞춰 파견제도의 활용이 많았던 독일의 경우 세계 최대 노조인 금속노조와 사용자단체가 2년 이상 취업하고 있는 파견 근로자를 직접 고용하도록 하는 대안을 만들어 냄으로써 노사의 이해관계를 자율적으로 조정하는 규칙을 만들어 내고 있다. 일방적인 법적 규제와 강제로 일관하고 있는 우리 현실과 사뭇 다른 점이다.

 

인간적 노동 질서를 바로 세우기 위한 노동정책

 

대다수의 근로자들은 오로지 노동을 통해 자신의 인격을 실현하고 삶의 보람을 느끼며, 가족을 구성하고 가족의 미래를 설계할 수 있다. 반면에 근로자들이 장시간노동으로 노동력을 혹사하고 자신과 가족을 위한 시간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노동의 가치를 실현할 수 없다. 우리 사회는 그동안 근로자의 근면과 성실 그리고 희생을 강요하며 경제성장을 구가해왔다. 그 결과 1주일의 법정 근로시간이 40시간임에도 연장근로와 휴일특근 등의 이름으로 사실상 휴식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이제 우리 근로자들도 국가의 부에 걸맞는 삶의 질을 향유하고 휴식을 통해 인간다운 생활을 영위할 수 있어야 할 시점에 와 있다. 그렇지만 우리 기업은 여전히 인건비와 전쟁하고 있고 고용창출을 통해 줄어든 근로시간을 보충하는데 한계가 있다. 이러한 점을 감안하여 연장근로와 휴일근로를 분리하는 불합리한 근로시간 제도의 문제점을 개선하면서 노사의 자율적 합의와 결정에 따라 실제 근로시간을 점진적으로 단축해 나갈 수 있도록 로드맵을 만들어야 한다. 당장 중소기업의 근로자들은 근로시간 단축으로 인한 소득감소의 현실을 달가와 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실 근로시간의 단축은 인간적 노동을 위한 진일보한 정책과제임에 분명하지만 동시에 노사가 모두 불편해 하는 계륵이 될 수도 있음을 고려하여 적정하고 합리적인 완충지대를 두는 방안이 요청된다.

 

기업은 세계 및 국내경제의 변화에 따라 끊임없이 안팎의 도전에 대응하지 않을 수 없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구조조정을 피할 수 없다. 그 과정에서 고락을 함께 해 온 근로자들을 해고해야 하는 이른바 경영상해고가 발생하는 상황도 충분히 이해될 수 있다. 다만, 그 과정은 투명해야 하고, 경영책임을 근로자에게 부당하게 전가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근로자의 책임으로 경영문제가 발생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현실에서 이뤄지는 경영상 해고는 기업측의 자기책임에 대한 인식이 전제되어 있는지 의구심이 들 때가 많다.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더라도 해고라는 극단적 선택에 이르지 않도록 다양한 조치를 강구해야 함에도 형식적ㆍ피상적인 수준에서 조치가 그치고 있다. 부득이 근로자가 해고되더라도 새로운 취업기회를 얻을 수 있도록 회사의 지원과 배려가 필요하지만 기업의 적절한 보상 및 지원조치가 의무화되어 있지 않다. 이러한 조치가 구체적으로 선행되어야 경영상 해고가 가능하다는 점을 법률에 명시함으로써 기업이 자신의 경영상 책임을 부정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집단적 노사자치의 정립과 노동정책의 방향

 

우리나라의 노동운동은 위기인가? 이런 질문이 자주 제기된다. 노동운동이 위기인지 여부는 형식적으로 노조조직률이나 단체협약 체결 비율을 통해 판단될 수도 있지만 내용적으로는 기업의 노동조건이나 노동문제를 자주적으로 해결하는 결과를 통해 판단하는 부분도 있다. 즉 노동운동의 양과 질 모두가 평가의 대상이 된다. 노동운동은 헌법의 관점에서 보면 법질서의 테두리 안에서 이뤄지는 노사자치의 다른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노사자치는 우리 법질서가 우리사회의 갈등을 치유할 수 있는 중요한 수단으로 인정하고 있는 제도의 일부이다. 따라서 이러한 노사자치의 질서를 존중하고 활성화하여 사회적, 경제적 안정을 도모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정치의 중요한 영역이다. 이를 위해서 헌법은 노동3권의 보장을 명문화하고 이를 침해하는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를 규제하는 등 노사자치의 실현을 위한 다양한 수단을 강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노동의 리더십을 존중하고 대화의 파트너로 인정하는 것이 전제되어야 한다. 노동계가 요구하는 상급단체 파견 전임자에 대한 근로시간면제 인정 문제도 법적 원칙을 존중하면서 그러한 관점에서 유연한 접근이 필요하다. 전교조와 전공노의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노동계는 불법쟁의행위에 따른 손해배상청구 및 가압류가 노조활동을 옥죄는 족쇄로 작용하고 있다고 보고 이를 완화하는 제도개선을 주장하고 있다. 국제노동기구도 손해배상 및 가압류로 인한 파업권의 제한 가능성에 대한 보완책을 마련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노동계는 대안으로 노조활동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 자체를 제한하는 방안을 요구한다. 그러나 불법쟁의행위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 자체를 제한하는 것은 법질서의 관점에서 수용되기 어렵다. 다만, 손해배상 청구가 가능한 불법쟁의행위의 범위를 어디까지로 할 것인지는 사회적ㆍ법적 논의가 필요하다. 노동계의 요구를 전적으로 수용하기는 어렵지만 불법의 한계를 정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법원도 고민해야 할 지점이라고 생각된다.

 

노사자치는 근로조건의 결정과 근로기준을 형성하는 핵심적 수단이다. 노사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문제는 자율적으로 정할 수 있도록 법률은 직접적 개입을 자제하고 노사자치에 의한 규율가능성을 충분히 보장해야 한다. 법률이 모든 영역에서 모든 문제를 직접 규율하고자 한다면 노사자치의 영역은 현저히 축소되고 노동의 문제는 노정갈등으로 비화되어 사회적 혼란이 초래될 수밖에 없다. 통상임금의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법률은 노사자치가 작동되지 못하는 한계영역에서 존재의의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노조조직률이 10% 근처에 머물러 있는 상황에서 노사자치가 제대로 기능하기 어려울 것이다. 특히 중소기업에서 노동조합을 통한 노사자치는 거의 제도에 가깝다. 그렇다면 그 대안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한다. 노조가 없는 사업장에 법률이 노사자치를 대신해서 근로조건을 향상시킬 수는 없는 일이다. 그 때문에 실질적인 사업장의 노사자치가 가능할 수 있는 종업원 대표제도를 의무화하는 방안도 검토되어야 한다. 현재의 노사협의회는 그 성격이나 기능 모두 근로조건의 향상이라는 노사자치의 실현수단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사업장 단위에서 종업원의 선거에 의한 민주적 대표기구를 의무적으로 설치하여 근로조건 개선을 위한 노사자치를 실현한다면 헌법의 정신에 더욱 가깝게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노동정책의 프로세스와 노사정위원회의 역할

 

현대사회의 노동정책은 대부분 법령의 개정이 수반되어야 하지만 노사의 자율적 교섭에 의하여 해결방법을 찾을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 노사의 자율적 교섭에 의해서 노동관행이 정착되면 입법을 위한 소모적 정쟁을 해소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뿐만 아니라 노사관계의 특성을 고려할 때 노사가 적극적으로 대화하고 타협해서 노동정책이 결정되면 입법과정 자체가 단축되어 효과적인 입법이 진행될 수도 있다. 그런 이유에서 노사정위원회는 소중한 기구라고 할 수 있다. 노동계와 경영계가 노사정위원회를 경원시하는 것은 매우 근시안적인 태도이다. 노사정위원회의 활력을 회복하여 다룰 수 있는 모든 쟁점을 논의할 수 있다면 우리사회의 노동문제를 둘러싼 갈등의 상당부분이 해소되거나 그 단초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노동계가 노사정위원회를 정치운동의 수단으로 전락시킨다면 이를 다시 회복하는데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다.

 

작금의 노동문제는 노동정책의 수립과 비전의 제시에 노동의 리더십이 보이지 않는다는데 있다. 노동계는 스스로 해결해야 할 과제를 법원으로, 국회로만 달려가는 자세를 지양하고, 경영계와 더불어 노사가 직접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노사자율의 범위를 확대하고 노사정위원회의 활용을 통해 노동이슈를 여론화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정부는 취약계층의 보호를 위한 적극적 노동정책의 수립과 노동리더십의 존중을 통한 노사자치의 실현을 함께 도모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를 통해 노사관계가 안정되고, 노동계도 국민경제의 책임주체로서 현명하고 합리적인 교섭에 나설 것이라고 생각된다. E21

본 기사는 월간지 <이코노미21> 4월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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