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관광지이기도 하지만 우리 신화의 보고이기도 하다. 1만 8000 여의 신, 500편이 넘게 조사된 제주의 신화가 이를 말해준다. 신화는 그 민족의 의식과 정서의 원형이라 할 수 있다.
제주 탁라국의 건국신화와 화살
제주도 즉 옛날 탁라국의 건국 신화는 삼성혈에서 시작된다. 다른 신화의 신들은 하늘에서 강림하는 경우가 많은데 제주의 고·양·부 세 조상신은 땅 구멍에서 나온다. 매우 흥미롭다. 어머니 대지의 자궁인 동굴에서 태어났다는 점이 그렇다.이 세 사람들은 거인이었으며 가죽옷을 입고 사냥한 고기를 먹고 사는 수렵 생활을 하였다.
그런데 어느 날 바다에서 큰 나무상자가 떠내려 왔는데 세 처녀가 있었다. 뿐만 아니라 송아지와 망아지, 그리고 오곡의 씨앗이 있었다. 동해 벽랑국의 임금이 제주 근처 바다에 서린 자줏빛 기운이 하늘에 닿는 것을 보고 신의 아들 셋이 나라를 세울 것을 알고 그 배필로 세 딸을 보냈다. 이들은 결혼하여 화살을 쏘아 살 곳을 정하고 오곡을 뿌려 살림이 풍성해졌다는 이야기다. 여기서 주목하고자 하는 것이 화살을 쏘아 살 곳을 정했다는 것이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만화 영화 ‘원령공주’의 주제곡의 가사는 이렇다.
“ 당겨진 활의 떨리는 시위여 달빛에 수런거리는 너의 마음 잘 손질된 창의 아름다움이여 그 창 끝과 매우 닮은 그대의 옆모습 슬픔과 분노 속에 숨은 본심을 아는 건 숲의 정령 모노노케(원령) 뿐, 모노노케 뿐”
애니메이션 ‘원령공주’는 자연과 인간, 더 구체적으로는 숲과 동물, 신과 인간 사이의 갈등과 화해 등을 이야기하는 진지한 영화이다.
이 자체로 이야기할 것들이 많은 데 여기서는 활 이야기를 해 보려 한다. 원령공주에서 주인공 ‘산’이 갖는 활과 창은 실용적으로 인간에 대항하는 무기이기도 하지만 철을 대표로 하는 인간 문명을 물리치는 신성한 상징으로서 역할도 한다.
활(화살)이 갖는 신성한 의미
몇 해 전 방영된 ‘주몽’에서 부여 시조가 썼다는 활(다물활)은 매우 신성시되어 주몽을 비롯한 왕자들이 갖은 고초를 겪으며 그 활을 찾아가 당기는 이야기가 나온다. 수렵에 생활을 의존했던 원시인들에게 활이 갖는 의미는 절대적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종교적 인간(Homo Religiosus)이었던 원시인들에게 활은 가장 신성한 의미를 갖는 것 중 하나이다. 그래서 활을 이용해 각종 주술을 행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화살을 사용하지 않고 시위를 당기는 것은 일본에서 도 옛날부터 행하여진 귀신을 물리치는 방법이었다’고 한다.
矢의 갑골
矢(화살 시)는 그림에서 보듯이 화살의 모양을 그대로 그린 것이다. 정확히 대목은 기억 나지 않지만 <삼국지>에서 화살을 꺾어 맹세를 하는 장면이 있다. 그래서 화살은 맹세나 서약 때 사용하는 물건이기도 하다. 矢言(시언)은 맹세하는 말을 의미한다.
知의 소전
여기에 ㅂ(기도문을 담는 그릇. 축문그릇 재)를 더하면 知(알 지)로, 서약의 상징인 화살과 신에게 기도하는 신주단지를 맹세하는 모습이다. 신 앞에 맹세함으로써 서로의 의사를 확인하는, 것이다. 知(지)는 본래 객관적 앎이라기보다는 신 앞에서 서로의 의사를 확인하는 부족의 서약의 방법이었던 듯 하다.
智의 갑골
智(지)(슬기 지)의 본디 글자는 矢와 干(방패 간), ㅂ를 합친 모양으로 화살 이외에 성스러운 도구인 방패를 더해 신에게 맹세하는 것을 가리키는 글자다. 知가 주로 ‘알다’는 동사로 쓰는데 비해 智는 ‘지혜, 지식’처럼 명사적으로 사용한다.
族의 갑골
矢에 깃발 언을 더하면 族(겨레 족)이다. 方人(깃발 언)은 깃발을 붙인 깃대의 모양으로 씨족기를 말한다. 씨족기는 씨족 군대의 상징으로서 반드시 가지고 다녔고 씨족으로서 행동할 때도 이 기를 앞세우고 행동했다. 族은 씨족기 아래에서 서약하는 의례를 나타내고, 그 씨족의 서약에 참가하는 ‘일족(동족)’을 의미한다.
至의 갑골
至(이를 지)는 화살(矢)이 거꾸로 된 모양과 一을 합한 형태이다. 一은 도달하는 땅으로 화살이 그 지점에 도달한 것을 나타내며 ‘이르다’는 의미가 된다.
到의 금문
到(이를 도)도 같은 뜻인 데, 刂(선칼 도)는 여기서 칼이 아니라 亻(인)이 변형된 것으로 활이 떨어진 자리에 사람이 당도한다는 의미이다.
화살이 떨어진 곳은 조상이 정해준 곳
신성한 것으로 여겨졌던 화살을 쏘아 그것이 도달한 지점의 토지를 골라 거기에 중요한 건물을 짓는 데 이를 표현한 글자가 屋(옥)·臺(대)·室(실) 등이다.
屋의 소전
屋(집 옥)은 尸(주검 시)와 至(지)의 조합이다. 尸(시)는 시체이므로 屋(옥)은 신성한 화살을 쏘아 떨어진 곳에 殯所(빈소–장례를 치르기 전 임시로 사체를 보관하는 곳)를 정한 것을 표현한 문자이다. 나중에 모든 집을 의미하게 되었다.
臺의 소전
臺(돈대 대)의 윗부분은 高(고)의 윗부분과 마찬가지로 높은 건물이다. ㅗ 대신 士가 쓰였는 데 이는 장식물이 더 붙은 것이다. 아래에 역시 至(지)를 쓰고 있는 데 역시 이런 누각같이 큰 건물을 지을 때도 활을 쏘아 정했다.
室의 금문
마지막으로 室(집 실)도 역시 宀–(면) 아래 至(지)를 쓴다. 사당을 지을 때 활을 쏘아서 정했다. 다물활에서 보듯이 활은 조상의 신령이 깃들었다 볼 수 있기 때문에 화살이 떨어진 곳은 곧 조상이 정해준 것이 된다. 또 집터의 악령을 몰아내어 정화하는 의미도 있다. 어쨌든 제주 삼성혈 신화에서 보듯 고대인은 건물을 지을 때 이런 주술을 통하여 터를 잡는 것이 보편적이었다. E21
본 기사는 월간지 <이코노미21> 5월호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