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판석 부장과 박진미 주방장은 하루 차이로 똑 같이 우측 손을 부상 당해 같은 병실에 입원했다.
김 부장은 중소 전자회로기판 제조 회사의 영업부장으로 거래처에 출장을 가다가 교통 사고를 당했다. 다행이 안전벨트를 해서 큰 부상은 없었지만 오른 손이 문과 좌석 사이에 끼이면서 손가락 4개가 짓눌리는 부상을 당했다.
박 주방장은 중소 한식당의 주방장인데, 그날은 보조 주방장이 없어 고기 다지는 기계를 서투르게 다루다가 오른손이 기계에 말려들어가 역시 손가락 4개가 압착되는 부상을 당했다.
두 사람 모두 뼈와 신경, 인대가 모두 손상되어 두 차례 수술을 했지만 손가락의 기능을 살릴 수 없었다. 결국 8개월 후에 산재 요양이 종결되었는데, 손가락을 절단하지는 않았지만 새끼 손가락을 제외한 4개의 손가락을 전혀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두 사람은 똑같이 산재 장해 7급으로 판정 받아서 평균임금의 138일분을 연금으로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처지는 사뭇 달랐다.
김 부장은 연봉이 4천 8백만원으로 월급여는 400여만원이어서 평균임금이 일당 13만 3천원이었고, 박 주방장은 연봉 3천만원으로 월급여는 250만원이고, 평균임금은 일당으로 8만 3천원이었다. 두 사람은 모두 장해보상을 연금을 신청했기 때문에 김 부장은 매달 1,529,500원을 연금으로 받게 되었고, 박 주방장은 매달 954,500원을 연금으로 받게 되었다.
김 부장은 비록 오른손을 사용할 수는 없지만 영업에 대한 노하우와 네트워크가 있어 회사에 복귀해서 계속 일을 할 수 있었다. 반면에 박 주방장은 오른손을 사용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이제 주방장 일을 할 수 없게 되어 실직하게 되었다.
두 사람에 대한 보상은 잘 된 것인가? 뭔가 좀 이상하다고 느끼지 않는가?
산재보험법 제1조 목적. 근로자의 업무상 재해를 신속하고 공정하게 보상한다. 이 법에서 말하고 있는 공정한 보상은 무엇을 뜻하는가?
산재보험의 보상은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적용된다. 병원 치료 및 재활 서비스는 물론이고, 휴업급여나 장해급여와 같은 현금보상도 동일한 기준에 따라 제공한다. 현금 보상의 기준은 평균임금인데, 휴업급여는 평균임금의 70%를 지급하고, 장해보상은 장해등급에 따라 정해진 일 수 만큼 평균임금을 곱하여 지급한다.
위의 김 부장과 박 주방장 뿐만 아니라 7급 장해를 가진 모든 산재환자들은 똑같이 평균임금의 138일분을 연금으로 받거나 660일분을 일시금으로 받는다. 이들 사이의 차이는 평균임금에 의한 것일 뿐이고, 지급 비율은 똑같이 적용받기 때문에 이들에 대한 보상은 공정하다고 할 수 있는가? 그래도 김 부장과 박 주방장의 예를 보면 뭔가 찜찜하다. 중요한 뭔가를 빠뜨린 것 같다. 그게 뭘까?
산재 장해보상의 원칙은 노동능력 상실에 대한 보상이다. 소득 손실과 노동능력 상실은 다르다. 소득 손실은 장애를 포함한 다양한 이유로 인한 소득의 감소를 말하지만, 노동능력 상실은 장해로 인한 신체 기능의 상실로 인한 일할 수 있는 능력의 감소를 의미한다.
박 주방장은 김 부장과 똑같은 장애를 입었지만, 그로 인한 노동능력 상실은 훨씬 크다. 우리나라 산재보험법의 장해보상 체계는 신체 장애를 기준으로 보상률을 정하고 있다. 노동능력 상실에 대한 보상을 규정하고 있지만, 노동능력 상실률을 평가할 수 있는 기준은 없다. 결국 노동능력 상실에 따른 보상을 하지 못하고 있다.
1960년대 초 미국 정형외과 의사 맥브라이드는 장애평가 방법을 저술하였다. 이 책에서는장애 종류와 직업에 따른 노동능력 상실률을 평가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자동차 사고나 일반 손해배상 사건에서 아직도 이 맥브라이드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시대에 뒤떨어지고, 몸에도 잘 맞지 않는 옷을 아직까지 입고 있다. 이유는 맥브라이드 방법만이 신체 장애율이 아닌 노동능력 상실률을 평가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다행이 최근에 대한의학회에서 우리나라에 맞는 장애평가 기준과 이를 토대로 한 직업에 따른 노동능력 상실률을 평가하는 방법을 제안하였다. 이 기준은 직업에 따른 노동능력 상실률을 평가할 수 있으며, 맥브라이드 방법을 대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산재보험에서도 직업에 따른 노동능력 상실에 따른 보상이 이루어져야 한다.
필자는 몇년 전 사고로 장애를 당했을 경우 장애보상에 대한 국민 설문조사를 실시한 적이 있다. 이 조사에서 56.6%의 국민은 사고로 장애인이 된 사람들에게 보상하는 이유는 장애로 인한 경제적 손실 때문이라고 응답하였다. 장애로 인한 생활의 불편함(28.7%)이나 외모 문제(5.7%)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물론 장애인은 외모 문제(13.2%)를 중요하게 생각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수입 감소(43.8%)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
더 중요한 점은 국민의 70.6%는 개인의 차이를 고려해서 보상에 차이를 두어야 한다고 한 것이다. 장애 정도와 종류가 같다면 무조건 동일하게 보상해야 한다고 한 사람은 31.7%에 불과하였다. 그럼 무슨 근거로 차이를 둘 수 있을까? 우리 국민 중 68.3%는 장애 발생 이전의 직업을 유지할 수 있는지 여부에 따라 보상을 달리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 이것이었다. 김 부장의 보상금이 더 많아서 찜찜한 것이 아니었다. 사고 후에도 김 부장은 여전히 자기 직장을 다닐 수 있었고, 수입도 줄지 않았다. 반면에 오른 손을 쓸 수 없는 박씨는 더 이상 주방장이 될 수 없었다. 주방장으로서 수입도 없어졌다. 박씨의 노동능력 상실률이 김 부장 보다 훨씬 크기 때문이다. 더욱이 박씨는 주방장이 아닌 새로운 직업을 찾아야 하지만 그것도 쉽지 않다. 어쩌면 산재 장해보상 연금이 그의 나머지 인생의 유일한 수입원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박씨의 처지를 고려한 배려는 없다.
이럴 때 다수의 우리 국민은 박씨에게 조금 더 보상을 해주라고 한다. 사고로 그냥 실직한 것이 아니라 직업을 유지하기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신체 기능을 잃은 장애인에게 조금 더 많은 보상을 해 주라는 것이다.
초인적 노력으로 장애를 극복하고 성공한 사람들을 예로 들지 마라. 당신도 그 사람들처럼 될 수 있다고 하지 마라. 피나는 노력을 통해서 성공한 장애인의 성공의 열매는 우리가 준 것이 아니다. 그들의 성공은 오롯이 그들의 몫이다. 모든 장애인이 슈퍼맨이 될 수는 없다. 슈퍼맨이 아닌 평범한 산재 장애인들에게 우리 사회는 무엇을 해 줄 수 있을까? 무엇을 해 주어야 하나? 그들은 더 많은 동정을 바라지는 않는다. 공정한 장애평가와 보상이다.
산재보험의 목적은 근로자의 업무상 재해를 신속하고 공정하게 보상하는 것이다. 공정한 보상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