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동반성장의 길을 찾아서>
<이코노미21>은 동반성장연구소와 함께 ‘동반성장의 길’을 모색하는 기획연재를 게재하고 있습니다. 지면 관계상 그래프와 도표는 일부만 게재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434호에 실려있습니다. - 편집자 주
새로운 국제정치질서의 시작
엄밀한 분석은 아니지만, 국제정치질서는 대략 20년마다 패러다임이 변화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우선 1950년을 전후해서는 냉전이 시작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세계는 동서진영으로 나누어져 치열한 경쟁을 전개하였다. 한반도에서도 일제로부터의 독립과 함께 분단이 된 이후 남북은 체제경쟁에 돌입하였다.
20여년이 지난 1970년 경에는 동서 데땅트가 시작되었다. 1969년 10월 발족한 브란트 정권은 아데나워 시대부터 서독의 외교원칙이던 ‘할슈타인원칙(소련 이외의 동독 승인국과는 외교 관계를 가지지 않겠다는 것)’을 정식으로 포기하고 동유럽제국에 대한 접근외교를 적극적으로 전개하였다. 그 결과 1970년 8월 조인된 서독-소련조약, 12월 조인된 서독-폴란드조약 등 이른바 동방조약을 위시하여, 1972년 6월 미국 ·소련 ·영국 ·프랑스 등 전승(戰勝) 4대국에 의한 베를린협정의 체결, 12월의 동독 ·서독 기본조약의 조인 등이 이루어졌다. 미중관계에서는 1971년 7월 키신저의 중국 방문, 1972년 2월 닉슨 대통령의 중국 방문이 성사되었다. 미소관계에서도 1969년부터 전략무기 제한 협상(Strategic Arms Limitation Talks, SALT)이 전개되었다. 남북 역시 세계적인 떼땅트 추세에 따라 1972년 7.4 공동성명을 발표하였으나, 이후 진전은 없었다.
1990년을 전후해서는 냉전 자체가 붕괴되었다. 1985년 소련 공산당 서기장에 취임한 고르바초프의 개방, 개혁정책의 결과 소련연방은 1991년 해체되었다.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도 체제전환을 시작하였다. 이로써 미국 유일의 슈퍼파워 체제가 상당 기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었다. 한반도에서도 1991년 12월 남북기본합의서 합의 등 남북 화해무드가 조성되었으나, 김일성의 사망, 연이은 자연재해 등 북한의 불안정 요인에 따라 본격적 관계개선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상당 기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었던 미국 유일의 슈퍼파워 체제는 2010년경 중국의 부상에 따라 G2시대가 개막되면서 종식되었다. 그 결과 이제는 소위 ‘신형 대국관계’라고 불리는 양강체제가 되었다.
그렇다면 향후 20년 후인 2030년 경에는 국제정치질서에서, 그리고 한반도에서 어떤 상황이 발생할 것인가? 이에 대한 답을 하기는 매우 어렵다. 다만 분명한 것은 “과거보다 훨씬 불투명한 미래”가 우리 앞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한반도 주변 4강을 보더라도 불투명성은 과거보다 훨씬 강화되고 있다. 예를 들어 미국이 쇠퇴하고 있다고 하나 이는 상대적 쇠퇴일 뿐이며, 쇠퇴의 속도와 범위를 가늠하기 어려운데다가 ‘아시아 회귀전략’으로 한반도/동북아 지역에 대해서는 오히려 국력을 강화하고 있다. 중국은 G2로 부상했다고 하나 이는 GDP 기준의 외형일 뿐 아직 개발도상국이다. 게다가 향후에도 과거처럼 경제성장을 지속적으로 해나갈 수 있을지, 경제수준 향상에 따라 야기될 정치적 불안정성을 어떻게 해소해 나갈지 등에 대해서는 상당한 우려가 존재한다.
러시아는 최근 극동개발부 설치 등 극동 지역에 대한 관심을 증가하면서 한반도 문제 개입을 적극적으로 시도하고 있으나, 경제위기로 인해 러시아의 중재자 역할이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지는 미지수이다. 일본은 G3로서의 외교적, 군사적 위상을 제고하려고 하고 있으나, 역사, 영토 등 주변국과의 분쟁, 국내 정치 문제 등으로 경제역량에 걸 맞는 외교역량을 발휘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이렇게 본다면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치질서의 새로운 패러다임은 이미 시작되었을 뿐만 아니라 동북아/한반도에서 가장 치열한 형태로 전개되고 있다. 더욱이 불투명성이 심화되고 있으며, 대결 위주의 냉전 시절과는 달리 사안에 따라 협력과 갈등이 공존하는 구도라는 점에서도 지역적 문제에 더해 우리에게는 이전에 접해보지 못했던 매우 복잡하고 어려운 과제를 던져 주고 있다.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미래 상황이 불투명하다고 가만있어도 될 것인가? 남북관계에 있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통일은 ‘대비’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준비’해야 하는 것이라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명확해진다.
경제적인 문제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한다면, 남북경제의 동반성장을 만들어 내야 한다. 그것이 진정으로 통일을 준비하는 것이다.
북한은 이미 새로운 패러다임을 활용하기 시작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협력과 갈등의 미중관계를 활용하고 있으며, 부상하는 일본과 러시아를 활용하고 있다. 또한 2013년부터는 ‘경제·핵 병진노선’이라는 경제와 안보의 병행전략을 채택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제대로 된 대응을 못하고 있다. 새로운 패러다임은 우리에게 위기이자 기회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낡은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특히 대북정책에 있어서는 아직도 지난 패러다임 시절의 햇볕과 강풍 사이의 진부한 논란만이 존재하는 실정이다.
최근의 북한경제
최근의 북한경제는 이전과는 다른 양상이다.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공존하고 있다. “성장하며 붕괴하는” 상황으로 요약할 수도 있다. 즉 거시경제 상황은 좋아지고 있으나, 전통적인 사회주의 계획경제 체제 자체는 무너지고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이제는 북한경제를 과거보다 보다 복잡하게 이해해야 한다. 이제는 단순히 “북한의 경제상황은 어렵다”라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긍정적인 면>
① 거시경제 상황의 호전
한국은행의 추정에 의하면 북한경제는 최근 수년간 플러스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행의 추정은 북한경제의 실제 상황을 과소평가하고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최근 플러스 성장의 가장 핵심적인 요인은 시장활동의 확대에 있으나, 한국은행이 이를 정확히 파악·추정하기란 매우 어려운 작업이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의 2000년대 북한 경제성장률 추정> - 이코노미21 434호 참조
② 농업생산의 증가
최근 수년간 북한의 농업생산량은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한 예로 빌라이데르자 가가 유엔식량농업기구(FAO) 평양 사무소장은 “북한 곡물 생산량이 꾸준히 늘어나 3~4년 뒤에는 자급자족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을 정도이다(노컷뉴스, 2014.10.16).
<북한의 농업생산량> - 이코노미21 434호 참조
③ 재정규모의 증가
통일부의 추정에 의하면, 북한의 재정규모는 지속적인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이 역시 북한의 경제 상황이 호전되고 있다는 증거이다.
<북한의 재정규모> - 이코노미21 434호 참조
④ 시장의 확대
북한주민의 약 90%는 시장에서 생계를 의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의 연구에 의하면, 북한주민의 전체 수입 중에서 비공식 수입의 비중은 2008년 31.1%, 2009년 30.2%에서 2011년에는 60.5%로 증가하였다. 2005~2009년 회령시 466가구의 가계소득 중 비공식 부문의 비중이 82~84%를 차지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실제로 최근에 탈북한 북한이탈주민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의하면, 시장을 이용해 본 경험이 97.8%에 달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시장에서의 장사 경험률도 1/4에 이른다. 어린이나 학생, 군인, 노인 등 장사를 할 수 없는 계층을 고려하면 북한 주민의 거의 절반은 장사를 해 본 경험이 있는 셈이다.
<2011~13년 시장 이용 및 장사 경험률> - 이코노미21 434호 참조
⑤ 북중무역의 증가
해마다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는 북중무역도 북한경제의 성장에 기여하고 있다. 특히 주요 수입품은 에너지, 기계류 등 생산재이므로 그만큼 성장에 도움을 주고 있다.
<북중무역의 규모> - 이코노미21 434호 참조
⑥ 북중투자의 증가
무역과 함께 중국의 대북투자 역시 증가하고 있다. 중국의 대북투자가 정확히 통계에 잡히고 있는지는 미지수이나, 적어도 추세 상으로는 증가를 보인다.
<중국의 대북투자 건수> - 이코노미21 434호 참조
⑦ 쌀값 및 환율의 안정
최근 북한 시장에서 쌀값과 북한원화의 대미환율이 안정 추세를 보이고 있다. 이는 그만큼 공급이 안정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증거이다.
<최근 쌀값 및 환율 추세> - 이코노미21 434호 참조
⑧ 북한 어린이 영양상태의 개선
북한 어린이의 영양상태가 개선되고 있다는 점도 경제 상황이 좋아지고 있다는 증거이다.
<북한 어린이 영양상태>
|
2000 |
2002 |
2004 |
2009 |
2012 |
만성영양장애 |
45.2% |
39.2% |
37.0% |
32.4% |
27.9% |
급성영양장애 |
10.4% |
8.1% |
7.0% |
5.2% |
4.0% |
저체중 |
27.9% |
20.2% |
23.4% |
18.8% |
15.2% |
자료: 이정희, “북한 어린이 영양실태 비교”, KDI 북한경제리뷰, 2014.
<부정적인 면>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북한경제가 호전되고 있다고 해서 반드시 긍정적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경제의 성장이 만들어 내는 부정적인 측면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다.
① 양극화
최근 북한경제가 플러스 성장을 하고 있다는 것은 “이제 북한경제가 살 만한 상황이다”라는 것이 아니라 전년에 비해 지속적으로 호전되고 있다는 상대적 의미일 뿐이다. 또한 성장은 평균의 의미일 뿐 지역간, 계층간 양극화는 점차 확대되는 추세이다.
사실 양극화는 북한경제가 직면하고 있는 가장 커다란 문제라고 할 수 있다.
특히 평등을 지향하는 사회주의 체제를 고수하고 있는 북한당국의 입장에서 양극화란 매우 심각한 문제일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최근 탈북자 조사에 의하면 월 평균소득의 격차는 과거와 비교도 못할 정도로 크게 벌어져 있는 실정이다. 월 평균소득을 기준으로 보면 상위계층의 소득은 하위계층의 약 18배에 달하고 있다. 우리의 경우 2013년 소득 상위 20%의 월 평균 근로소득이 하위 20%의 9배 정도임을 감안하면, 북한의 양극화가 어느 정도 심각한 것인지 짐작할 수 있다.
<계층별 월 평균소득> - 이코노미21 434호 참조
② 절대적 빈곤
북한경제가 최근 플러스 성장을 이어아고 있다고 해도 아직도 아시아의 빈국들에 비해서도 일인당 국민소득이 크게 낮은 실정이다.
<아시아 국가와 북한의 일인당 국민소득 비교> (단위: 불)
국가 |
일인당 국민소득(2013년) |
몽고 |
3,770 |
필리핀 |
3,270 |
스리랑카 |
3,170 |
베트남 |
1,730 |
라오스 |
1,460 |
미얀마 |
1,126(2012년) |
캄보디아 |
950 |
방글라데시 |
900 |
북한 |
583(2012년) |
자료: UN, World Statistics Pocketbook
③ 식량의 절대적 부족
최근 식량 생산이 좋아지고 있다고 하지만, 아직 식량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2012년 9월 24일에서 10월 8일까지 평양과 남포를 제외한 북한 전역을 조사한 자료에 의하면, 식량 수준이 ‘안정’으로 분류되어 식량 부족에 대한 우려가 없는 가구는 전체의 7%에 불과하였다.
<북한의 식량상황> - 이코노미21 434호 참조
④ 낮은 공장가동률
최근의 통일부 조사에 의하면, 2013년 북한 당국이 실제 공급한 원자재 비율은 45.9%에 불과하다. 원자재 부족 대응방식을 보면, 공장 가동중단 31.3%, 자력갱생 26.9%, 노동자로부터 동원 20.9% 등으로 나타난다.
2011년 이후 공장 생산라인은 평균 18.6개이지만, 가동 생산라인은 평균 9.1개로 약 49%에 불과하다. 또한 공장, 기업의 하루 평균 전력공급은 11.9시간일 뿐이며, 전력공급 중단시 자체발전은 14.9%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난다.
경제가 우선일 수밖에 없는 김정은 시대
김정일의 사망으로 갑자기 최고지도자의 자리에 오른 김정은의 입장에서 가장 시급했던 과제는 세습의 권력기반 공고화였다. 비록 아버지로부터 후계자로 지명되었어도 권력 엘리트들로부터 지지 획득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제1위원장 등 주요 직책의 조기 승계, 군부 인사, 미사일 발사 및 핵 실험을 통한 유업의 완성 과시 등은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 가능하다. 2013년 12월 장성택의 처형은 본격적인 김정은 시대가 개막되었다는 선포식으로 해석할수 있다. 장석택의 처형은 운구 7인방의 과도기적 역할이 종료된 것을 의미하며, 고모부를 그렇게 잔인하게 처형할 수 있느냐고 하지만 오히려 고모부‘니까’ 충격적인 처형을 해야했을 것이다.
실제로 김정은 체제의 정치적 안정성은 어느 정도 확보되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분석이다. 북한주민들의 김정은에 대한 평가도 상승추세를 보이고 있으며, 이제는 김정일에 대한 평가 수준으로 올라와 있다.
그러나 정권의 장기적 안정성은 정치적 안정성뿐만 아니라 경제적 안정성이 확보되어야 가능하다. 따라서 2014년 이후는 경제의 시대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물론 북한이 현 시점에서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를 향한 근본적인 개혁이나 본격적인 개방을 추진할 것으로 기대하기는 곤란하다. 체제의 수호가 우선이기 때문이다. 북한 역시 여전히 기존 체제의 고수를 주장하고 있다.
* “괴뢰패당은 우리의 현실을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하면서 ‘정책변화 조짐’이니 ‘개혁개방 시도’니 떠들고 있다”면서 “우리에게서 정책 변화나 개혁개방을 기대하는 것은 해가 서쪽에서 뜨기를 바라는 것과 같은 어리석은 개꿈”이라고 주장(2012년 7월29일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대변인)
* “사회주의는 인류의 미래이며 주체의 우리 식 사회주의가 반드시 승리한다는 것은 력사의 필연”(2013년 5월 5일 <로동신문>)
* 개성공단 국제화는 “개혁, 개방에 의한 제도통일 준비를 다그쳐 보려는 범죄적기도의 산물이라는것을 뚜렷이 보여주고 있다”(2013년 6월 4일 <조선중앙통신>논평)
그러나 김정은 체제에서는 경제문제의 해결이 최우선의 과제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개혁은 아직 멀리 있다고 하더라도 대외 경제협력을 위한 개방은 필연적이다. 김정은 시대가 개방의 시대, 경제의 시대로 변화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전망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째, 김정은 체제는 성장 슬로건이 필요하다. ‘새 시대의 새로운 지도자’는 ‘새로운 슬로건’을 내세우는 것이 당연하며, 따라서 김정일의 선군을 대체하는 새로운 통치 논리가 필요하다. 선군은 북한이 1990년대 후반 대내외적으로 최악의 어려움에 처했던 상황에서 제시된 생존논리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김정은 체제의 북한이 처한 상황은 당시에 비해서는 크게 개선되었다. 이제는 고난의 행군 시절의 구호인 생존 슬로건은 더 이상 무의미하며, 결국 ‘성장’, ‘발전’의 슬로건이 필요한 상황이다.
둘째, 경제강국을 통한 강성대국의 달성이라는 유업을 관철해야 한다. ‘쌀밥에 고깃국’으로 상징되는 경제난 해결은 할아버지 시절부터의 유업이며, 경제를 살려야 3대 세습의 정치적 명분이 보장된다. 또한 일반 주민들로부터의 지지 획득이 장기적 안전성 확보에 필수적인 과제이다. 따라서 주민이 체감할 수 있는 변화, 결국 먹고 사는 문제의 진전을 보여주는 것만이 최고 지도자로서의 자질을 인정받는 방법이다. 결국 민생 챙기기가 그의 시대를 안정적으로 만드는 핵심 전제인 셈이다.
셋째, 북한 시장과 주민의 요구이다. 이미 상당수의 북한 주민은 시장을 떠나서는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운 상황이며, 북한당국이 계획․공식부문을 정상화하려 노력한다고 해도 자본 없이는 불가능한 실정이다. 설령 6자회담이나 북미대화를 통해 핵 문제가 해결되고 국제사회의 지원이 결정된다고 하더라도 실제 자본의 유입까지는 상당 시일이 소요된다. 결국 김정은 체제에서도 당분간은 시장을 묵인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미 시장의 효율성을 경험한 주민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시장의 확대를 요구하게 될 것으로 전망되며, 시장의 존재․확대는 현재 북한경제의 상황으로 볼 때 개방의 확대를 의미한다.
넷째, 중국의 개방 지원과 요구이다. 중국은 자국의 이익 차원에서 안정된 동북아 정세를 희망하고 있다. 그런데 중국은 북한이 현재처럼 폐쇄적인 정책을 유지할 경우 북한 내부의 불안정 요인이 커질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으며, 그에 따라 북한에게 개방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예를 들어 2010년 8월 중국 후진타오 주석은 김정일과의 회담에서 경제발전에서 자력갱생도 중요하지만 대외협력은 시대적 조류에 따르는 것이자 경제발전을 촉진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제라고 이야기함으로써 북한의 개방을 촉구하였으며, 2011년 5월 원자바오 총리는 다시 한 번 북한의 개방을 강조하였다. 2012년 8월 방중한 장성택에게 원자바오 총리는 중국기업의 애로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문했는데, 이는 국제적 규범에 맞는 개방 수준에 대한 요구인 셈이다. 시진핑 체제에서 북한에 대한 중국의 개방 요구는 더욱 강해질 것으로 전망되며, 중국의 정치적․경제적 지원을 필요로 하는 김정은의 입장에서는 중국의 요구를 어느 정도 수용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로 김정은 체제에서 경제문제가 최우선 과제로 등장하고 있음은 여러사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김정은은 2012년 4월 15일 최초의 공개연설에서 북한주민들이 다시는 허리띠를 조이지 않게 하겠다고 약속하였다. 2013년 신년사에서는 경제문제의 해결을 “오늘 사회주의강성국가건설위업수행에서 전면에 나서는 가장 중요한 과업”이라고 강조하였다. 2013년 3월 19일 10년만에 경공업대회를 개최하였고, 김정은은 직접 참석하여 경공업 발전에 역량을 집중할 것을 약속하였으며, 2013년 4월 1일 경제개혁 추진 경험이 있는 박봉주를 총리에 임명하였다. 2013년 6월 4일 군대와 인민에게 ‘력사적 호소문’ “<마식령속도>를 창조하여 사회주의건설의 모든 전선에서 새로운 전성기를 열어나가자”를 통해 김정은은 “전체 인민들이 당의 경제건설과 핵무력건설의 병진로선을 틀어쥐고 나라의 전반적 경제를 더욱 활성화하고 인민경제 계획수행에 적극 이바지할데 대해 호소”하였다. 2014년 신년사에서는 “2014년은 사회주의 강성국가건설의 모든 전선에서 새로운 비약의 불바람을 세차게 일으켜 선군조선의 번영기를 열어 나갈 장엄한 투쟁의 해, 위대한 변혁의 해”라고 강조하였다.
김정은의 공개활동을 보더라도 2012년은 군 분야가 전체의 32.5%로 최다였으나, 그러나 2013년에는 경제 분야가 34.0%로서 군 분야의 29.7%보다 더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2013년 3월 31일 북한이 노동당 중앙위 전원회의에서 김정은 시대의 새로운 국가전략노선으로 경제·핵 건설 병진정책을 제시한 것도 이러한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 아직은 핵을 포기할 수 있을 정도로 안보에 자신이 없으므로 핵건설을 여전히 주장하고 있지만, 경제건설이 핵 건설만큼이나 중요하다는 그동안의 인식이 반영된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
흔히 김정은이 2013년 3월 제시한 경제·핵 건설의 병진정책을 정책을 1960년대 김일성이 제시한 경제·국방 병진정책의 재판이라고 평하지만, 내용적으론 상당한 차이가 존재한다. 당시는 한국전쟁 이후 급속한 경제성장을 추진하던 상황에서 한미일 삼각 안보체제가 출범하자 국방을 우선순위로 설정했던 것이다. 말로는 병진이었지만, 실은 국방에 방점에 있는 정책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경제가 우선이다.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핵은 외부로부터 체제를 지키는 힘이지만, 내부를 단단히 결속시키는 동력은 경제발전에서 나와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의 병진은 나름대로 정치군사적 안정성은 확보되었다는 판단 하에 경제사회적 안정성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겠다는 의미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실제로 2013년 6월 2일 <로동신문>은 “강력한 자위적 핵억제력이 갖추어진 조건에서 조선인민은 보다 안정된 환경에서 경제 강국건설을 마음 먹은대로 다그쳐 나갈수 있게 되었다”고 보도하고 있다. 2013년 3월 말의 전원회의에서 김정은은 이번의 병진정책이 “급변하는 정세에 대처하기 위한 일시적인 대응책”이 아니라고 강조하면서 이제는 “경제건설과 인민생활 향상을 위한 투쟁에 자금과 로력을 총집중할 수 있는 유리한 조건이 마련”되었으므로 “모든 력량을 총집중하여 경제강국 건설에서 결정적 전환을 이룩”하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나아가 김정은은 “지금 적들은 우리의 위성과 핵도 두려워하지만 우리 나라에서 경제강국건설의 동음이 세차게 울리고 인민들의 생활수준이 높아져 그들의 심장속에서 로동당만세 소리가 높이 울려나오는것을 더 무서워하고 있습니다”라면서 핵보다는 경제건설을 더욱 강조하고 있다. 또한 “새로운 병진로선은 국방비를 늘이지 않고도 적은 비용으로 나라의 방위력을 더욱 강화하면서 경제건설과 인민생활향상에 큰힘을 돌릴수 있게 합니다”라며 경제·핵 병진정책이 경제발전을 위한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