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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가 나아갈 길
한국경제가 나아갈 길
  • 김종인 전 청와대 경제수석
  • 승인 2017.08.24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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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시급한 것은 세계적인 흐름을 정확히 인식하는 것…OECD, 최근 한국에 포괄적인(inclusive)성장에 대한 연구 제안

<이코노미21>은 동반성장연구소와 함께 ‘동반성장의 길’을 모색하는 기획연재를 게재하고 있습니다. 이번 호는 제25회 동반성장포럼에서 주제 발표를 한 김종인 전 청와대 경제수석의 발표 내용을 녹취해 싣습니다. - 편집자 주

저는 오늘 ‘한국경제가 나아갈 길’과 관련해 우리 경제가 낙관적으로 잘 갈 수도 있고, 또 대단히 비관적일 수도 있다는 두 가지 가능성 모두로 강의를 하겠습니다. 판단은 여러분의 몫입니다.

먼저 시작하기 전에 역사 이야기를 하나 인용하겠습니다. 이 이야기는 경제 정책을 다루는 사람들에게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보기에 말씀드립니다. 1789년 프랑스 혁명 당시의 루이 16세 이야기인데, 그가 처형당하기 직전 단두대 계단에서 한 말을 집행관이 듣고서 전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가 단두대에 오르면서 중얼거린 이야기가 무엇인가 하면 “나는 10년 전에 이러한 사태가 올 것이라고 예견은 했지만 오지 않기를 바랐다. 그런데 왜 이러한 사태가 터졌는지 모르겠다”고 하였답니다. 이 말은 매일 경제를 다루는 사람들이 한 번쯤 곱씹어봐야 하는 말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우리는 근거 없이 낙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현실은 냉철하게 인식하면서도 “설마 그렇게 되겠어? 잘되겠지!” 합니다. 경제 정책을 다루는 사람들이 지금 우리 경제를 보는 일반적인 시각입니다.

지난 2007년 대통령 선거에서 ‘잃어버린 10년’이라는 말이 회자하였습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잃어버린 10년’ 동안 경제가 엉망이 되었기 때문에 “경제를 살리자”며 마치 경제 최고의 전문가로 인식되던 이명박 후보를 대한민국 대통령으로 뽑은 것입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이명박 대통령 이후 지금까지 한국경제는 어떻게 돌아가고 있습니까? 수치상으로만 보면 현재 한국 경제의 여러 가지 지표들이 그렇게 나쁘지는 않습니다. 소망스럽기는 성장률이 3~4%가 넘으면 좋겠지만, 우리 경제 여건상 절대로 3% 이상을 달성할 수 없고, 2.5% 내 정도가 저는 정상이라고 봅니다. 그런데 경제가 마치 죽어버린 것처럼 ‘경제 살리자’는 이야기를 자꾸 하는데, 그 자체가 막연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대선 당시 이명박 대통령이 출마하며 내세운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747이라는 어마어마한 수치를 내세웠습니다. 물론 그런 수치를 제시했을 때는 학자 등 여러 전문가가 참여해서 선거에 맞게 설계했겠지만, 과연 실현 가능할 것으로 생각했겠느냐? 하는 겁니다. 제가 루이 16세의 이야기를 먼저 말씀드린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거의 불가능한 얘기를 소망대로 되겠지 한다고 결과도 그렇게 되지는 않는다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지금도 경제정책을 하는 사람들이 똑같은 방식을 답습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왜 이러한 현상이 발생하는가? 우리나라 경제정책의 가장 큰 문제가 무엇인가 하면, 박정희 대통령의 경제성장 콤플렉스에 그 이후의 대통령들이 모두 빠진 것입니다. “박정희 대통령만 잘나서 경제가 성장했느냐? 나도 잘할 수 있다. 나도 연간 7~8%는 성장시킬 수 있다”는 과대망상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그러니 대통령을 보좌하는 경제 관료들은 과거 생각만으로 항상 똑같은 처방을 내놓게 됩니다. 경제 관료들이 처방을 내리기 전에 진단을 명확히 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는 것입니다. 저는 경제정책을 다루는 사람을 의사와 비교를 하는데, 의사가 환자 진단을 잘못하면 제대로 된 처방을 할 수 없고 처방이 잘못되면 환자의 병은 낫지 않습니다. 경제정책 하는 사람이 경제 현실에 대한 인식이 정확하지 못하면 처방을 바르게 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경제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가게 됩니다. 1997년 우리는 IMF 사태를 겪었습니다. 그럼 IMF 사태를 왜 겪을 수밖에 없었느냐? 바로 경제 현실에 대한 인식이 정확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사태를 겪고 나서도 우리 경제정책을 다루는 사람들은 아직 과거의 미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제가 1990년 청와대 경제수석으로 일할 때 우리나라가 WTO체제에 가입 하기 직전이었습니다. 당시의 우루과이라운드만 끝나면 우리는 바로 개방해야 했었습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기업들은 동일상품을 생산하는 해외 유수의 기업들과 경쟁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각기 잘할 수 있는 분야에만 집중하도록, 대기업들에게 당신네들이 잘 할 수 있는 세 가지 업종에만 국한하라며 사실상의 주력업종제를 요구했습니다. 이를 위해 여러 가지 금융적인 규제도 도입했었습니다. 사실 우리는 1990년대에 경제에서 하나의 전환을 이룩할 수 있는 구조적인 변화를 만들어 내야 했습니다. 그런데 과거 1970년대의 사고방식이 90년대 이후에도 여전히 지속되다 보니 구조조정을 하자는 내 얘기에 당사자인 기업의 반발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또 당시 우리나라의 경제정책을 담당하는 관료들에게 구조정책이라는 개념은 매우 생소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다 그냥 스쳐지나간 겁니다. 당시 투자에 대해 약간의 제재를 정부가 가했더니, 반발이 매우 컸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1990년에 들어와서도 과거 고도성장기의 환상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 김종인 전 청와대 경제수석이 동반성장연구소가 개최한 ‘제25회 동반성장포럼’에서 주제 발표를 하고 있다. 제공=동반성장연구소

노태우 정부 마지막 해인 1992년도의 성장률이 아마 5,7% 정도였습니다. 1962년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처음 시작한 이래 1980년의 마이너스 성장을 제외하고는 거의 7~8% 이상 성장을 했는데, 92년 성적표가 5.2% 정도밖에 안되었던 것입니다. 그 후 1993년에 들어선 소위 문민정부는 뭘 했느냐? 그들도 역시 “나라고 이전 대통령처럼 경제 성장을 못할 이유가 없다”는 사고에 젖어 있었습니다. 이러한 정부에 당시 대기업들이 무엇을 요구 했냐면, 우리에게 모든 것을 허용해주면 우리가 성장률을 높일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소위 ‘신경제 100일 계획’이라는 것을 세워 재벌에 가해졌던 규제를 풀어주었습니다. 금융 규제 풀어주고, 투자를 재벌의 판단에 맡겨 허용했습니다. 결국 과잉부채, 과잉투자, 과잉시설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투자가 계속되니 성장률은 올라갑니다. 거시지표에서 성장을 이룰 수 있는 소비, 투자, 수출이 높아지면 자연적으로 성장률은 올라갑니다. 그렇게 성장하는 과정에서 일시적으로는 기업의 부채 같은 것은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것이 결과적으로 1997년의 IMF사태를 불러오게 된 것입니다. 당시 IMF에서 요구한 것이 무엇이냐면 구조개혁이었습니다. IMF의 캉드쉬 총재가 한국에 와서 “너희들이 7년 전에 하려던 구조개혁을 했으면 우리가 여기 올 필요가 없었다”는 말을 합니다. 그런데 IMF사태를 겪고 난 이후에도 우리 정부의 경제 정책은 하나도 변한 게 없습니다. 재벌을 도와주면 재벌이 경제성장을 이끌어간다는 경제 정책이 계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김대중 정부도 IMF문제를 빨리 해결한다며 재벌구조를 더욱 고착시켰습니다. 변화가 있을 것이라 기대했던 노무현 정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경제성장을 높이려면 재벌위주로 가야 한다는 생각이다 보니 법인세 내려, 소득세 내려 이렇게 된 겁니다. 그래도 성장이 제 궤도에 올라서지 못하자, 이명박 대통령은 아예 재벌위주의 ‘기업 프렌들리(friendly)’를 경제정책의 핵심으로 삼아 낙수효과(trickle down effect)를 계속 주장했던 것 아닙니까? 그런데 그 낙수효과는 지금 작동하지 않습니다.

최근, 레이건 정부에서 감세정책을 적극 홍보하고 trickle down effect를 강력하게 주장했던 David Stockman이 과거 자신의 주장에 대해 굉장히 후회한다는 말을 합니다. 당시의 감세 이데올로기가 미국 역사에 커다란 위험을 초래했다는 것입니다. 감세정책은 결국 부채국가로 갈 수 밖에 없는데 지금 전 세계가 그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2008년 금융위기는 지금도 완전히 극복하지 못했고 양극화는 갈수록 심화되고 있습니다. 부채중독 환자가 되어 정부·민간·기업 모두 부채만 늘어나는 상황입니다. 이대로 가서 과연 경제문제가 해결 될 수 있을까요? 이웃 일본이 1990년대 초부터 불황에 빠져 아직도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몇몇 사람들은 마치 아베노믹스가 굉장히 성공할 것으로 보는데, 현재 상황에서 성공의 기미를 찾기는 쉽지 않습니다. 우리도 똑같은 형태로 가고 있습니다. 재벌을 도와주어야만 경제가 성장할 수 있다는 과거의 낡은 사고에서 벗어나지 않고서는 우리 경제의 미래를 낙관적으로 볼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독일의 한 회의에 참석해 자료를 보니, 한국경제는 2030년이 되어야만 1인단 GDP가 4만불에 도달할 것으로 예측되어 있었습니다. 연간 3% 정도의 성장률을 전제로 한 예측입니다. 그런데 우리 현실을 보면 과연 한국경제가 연간 3% 성장할 수 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저는 굉장히 회의적으로 봅니다. 우리경제의 잠재성장률은 인구변동을 보나 여러 가지 투자 상황을 볼 때 결국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게 현실입니다. 특히 가장 걱정스러운 점은 우리도 다른 선진국처럼 소위 부채중독환자가 되어 가지 않나 하는 것입니다. 저는 굉장히 위험한 상태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어떻게 해결해야 될까요? 지금 전 세계적으로 “자본주의가 이 상태에서 안정적으로 갈 수 있겠는가?”, “자본주의가 지속적으로 가기 위해서는 무엇을 수정해야 하는가?”라는 성찰이 하나의 흐름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저는 지난 2012년 대통령 선거 때 경제 민주화를 강하게 주장했었습니다. MIT 교수로 있는 터키출생의 대런 애쓰모글루(Daron Acemoglu)가 2012년에 인크루션(Inclusion)이라는 단어를 처음 썼습니다. 이후 IMF, OECD, 미국 등에서 자본주의를 안정화하려면 포용적(Inclusive)인 제도를 수립해야 한다는 주장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우리가 주장하는 경제 민주화나 ‘Inclusive’한 성장을 하자는 이야기나 맥락은 같습니다. 즉 제도적인 장치를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선진 자본주의의 안정적인 발전은 제도에 의해서 가능했습니다. 첫 번째 제도가 ‘시장’이라는 제도고, 두 번째 제도가 ‘의회민주주의’라는 제도입니다. 시장이라는 제도를 통해서 ‘효율’이 탄생됐고, 효율에서 파생된 문제를 의회민주주의가 조정을 해서 오늘날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것이 무너지는 단계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애쓰모글루가 미국이 과연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느냐고 물었던 것입니다. 애쓰모글루 뿐만 아니라 시카고의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윌리엄이라는 사람은 조지 워싱턴, 에이브러햄 링컨, 시어도어 루즈벨트 이 세 사람의 업적으로 오늘날 미국이 세계를 지배하는 국가가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지도자의 역량에 나라가 발전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달려있다는 뜻입니다.

경제라고해서 단순히 경제이론만 가지고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경제가 발전하면 사회가 변하고, 사회가 변하면 인간이 변화하기 때문에 그것을 망라해 조정할 수 있는 정치적인 능력이 없으면 안 됩니다. 미국의 시어도어 루즈벨트 대통령은 전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해 취임한지 두 달 만에 죽자 그 직을 승계하게 됩니다. 루즈벨트 대통령은 평소 미국사회의 부조리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라는 신념으로 가득 찬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당시 록펠러·카네기·제이피모건 등 미국 재벌세력의 독점적 횡포를 어떻게 막았느냐면 전부 이 사람들을 법정에 세웠습니다. 그러자 미국 재계의 행태가 바뀌었고 결국에는 미국 사회가 변화되었습니다. 시어도어 루즈벨트 대통령부터 시작된 그러한 변화는 윌슨 대통령·프랜클린 루즈벨트·존슨대통령에 이르러 세계에서 가장 효율적이고 안정적인 미국 사회를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1980년대에 들어서 신자유주의로 인해 미국사회가 완전히 이상한 형태로 변질됩니다. 특히 가장 걱정스러운 점은 이를 해결해줄 곳이 없다는 것입니다. 기본적으로 의회가 이 문제를 해결할 주체인데 의회는 완전히 월가의 자본에 지배되고 있어 조정능력을 상실한 상태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나라는 어떨까요? 다른 나라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각종 사회지표가 보여주는 겉치레에 비해 속은 비어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이것을 시정하려는 노력이 보이지 않습니다. 현실적으로 우리 경제는 2.5%대 이상의 성장은 어렵고, 이것은 세계적인 추세입니다. 문제는 내부 갈등이 너무 심하다는 것입니다. 사회가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내부 갈등이 이대로 방치된다면 그나마도 성장을 할 수 있을지 회의가 듭니다. 제가 늘 이야기 하지만 오늘날 공산주의 경제체제가 망한 것은 인간의 욕구를 너무 억눌렀기 때문입니다. 반면 자본주의 체제는 이 욕구를 너무 방치하다보니 지나친 탐욕이 생겨 문제가 시작되었습니다. 어느 자리에서인가 해결책이 뭐냐 질문에 제가 “갈 데까지 가면 해결이 된다”고 했더니 “갈 데까지 가는 것이 뭐냐”고 다시 묻길래 상상에 맡긴다 하고 말았습니다. 지금은 사회나 경제가 혼자서만 돌아가지 않습니다. 사회의 안정 없이도 경제가 효율을 발휘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던 과거에나 가능하지 현재 수준에서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지금까지의 처방이 제대로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면 처방을 바꿔야 하는데 처방을 바꿀 수 있는 능력이 없는 것 같습니다. 농작물을 오랜 기간 재배해 지력(地力)이 나빠지면 그 토양을 한 번 근본적으로 갈아주지 않으면 작물이 제대로 자라지 않습니다. 지금까지는 재벌한테 맡기면 된다는 식이었습니다. 과거 이명박 정부시절에 법인세를 25%에서 22%로 내렸습니다. 그 때 법인세를 내리며 내세운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법인세를 내려줘야 투자가 늘어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과연 투자가 늘어났습니까? 우리나라는 2008년 이후 투자증가율이 일 년에 1%씩 정도밖에 안 됩니다. 그렇다고 기업이 돈이 없어서 투자를 못하느냐, 현재 기업의 유보소득이 GDP대비 34%라고 이야기합니다. 돈이 있어도 투자할 대상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투자할 대상이 없어 투자를 안 하고, 투자를 안 하기 때문에 성장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직도 “재벌에 맡기면 된다”는 식의 사고에 젖어 있습니다. 싹이 새로 돋아나려면 그 틀을 바꿔주어야 합니다. 최근 롯데의 경영권분쟁사태를 통해 우리는 재벌의 순환투자 구조가 얼마나 용의주도하게 짜여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정치권이나 정부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습니다. 이렇게 해서는 문제가 고쳐질리 없습니다.

대기업과 관련해 또 하나의 문제가 무엇인가 하면, 우리나라 경제를 나름 지탱해왔다고 하는 대기업들이 앞으로도 글로벌체제에서 생존할 능력을 충분히 갖추고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저는 굉장히 어려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잘 알다시피 그동안은 중국의 고속성장 과정에서 그 혜택을 많이 받았습니다. 제가 언젠가 “그동안 중국의 혜택을 많이 받았는데 2015년쯤 가면 그것이 꺾일 것이다”라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지금 중국이 위기라고 하는데 저는 중국의 위기가 일반의 진단처럼 대단하다고 보지 않습니다. 중국은 중국 나름대로의 방식이 있고, 경제규모가 엄청나게 커졌기 때문에 10여 년 전에 10%성장한 거나 지금 6%성장하는 거나 크게 차이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중국시장이 우리의 영원한 터전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그동안 투자를 굉장히 늘려놨는데 오늘날 그것이 효율을 발휘할거라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봅니다. 비근한 예로 중공업·조선·섬유화학공업 등을 들 수 있습니다. 이들 산업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지고 우리나라의 지속적인 성장을 이끌 수 있겠는가 하는 것에 저는 굉장히 회의적입니다.

▲ ‘제25회 동반성장포럼’ 회의장 모습. 제공=동반성장연구소

최근에 ‘창조경제’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창조경제’라는 것을 누가 주도하고 있느냐면 재벌입니다. 창조경제 역시 재벌을 기반으로 하겠다는 것입니다. 창조경제의 원류는 1910년대 조셉 슘페터(Joseph Alois Schumpeter)가 말한 창조적 파괴(creative destruction)와 2002년에 미국의 리차드 플로리다(Richard Florida)가 주창한 창조계급Creative Class)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이들이 말한 창조경제의 세 가지 키워드가 3T입니다. Technology, Talent, Tolerance 즉, 기술, 재능, 관용이 실질적으로 갖추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현재 그런 여건이 충족되었다고 보이지 않습니다. 또 본질적으로 자본주의 경제는 창조를 통해 발전해왔는데 이를 갑자기 추진한다고 창조가 이루어지는 건 아닙니다. 앞에서 리더의 역량에 따라 나라가 크게 변할 수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지난 2012년 대선 당시의 경제민주화 분위기로 다시 갈 수 있지 않을까라는 기대를 가졌는데 결국 원점으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상황이 다른데 처방이 같으니까 그 처방이 먹혀들지 않는 것입니다. 일본의 경우 재계, 행정부, 정치권이 서로 상호작용하며 지금까지 경제를 이끌어왔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오늘날 일본이 불황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가 되어버렸습니다. 우리도 일본과 비슷합니다. 우리도 재계, 관료, 정치권이 같이 돌아가는 형태로 되어버렸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오늘날 대한민국이 당면하고 있는 문제를 해결 할 것인가? 저는 리더의 결심이 중요하다고 보는데 불행하게도 우리는 아직 그런 리더를 가지지 못했습니다.

앞으로 대한민국 경제에 대해 4%대 성장은 기대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2%대로 성장해도 그것 자체를 너무 비관할 필요는 없습니다. 2%성장 과정에서도 우리가 삶의 조화를 이룩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합니다. 선진국을 보면 성장률이 더 아래로 내려가더라도 사회조화를 이루면서 나아갑니다. 정권은 노동시장유연화, 노동시장개혁을 대한민국 경제의 가장 핵심처럼 이야기하는데 우리 현실에 대한 인식이 분명해야 합니다. 우리나라 노동조합은 직장노조가 가장 기초를 이루고 있습니다. 한국노총은 우리나라에 그리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조직입니다. 그리고 우리나라가 임금이 너무 높아 국제 경쟁력이 없다고 하는데, 임금이 높아 국제경쟁력이 없다는 나라가 1인당 수출액은 세계에서 두 번째입니다. 독일이 첫째입니다. 임금이 높아서 경쟁력이 없다는 나라가 그런 수출실적을 낸다는 것은 굉장히 모순된 이야기가 아닙니까? 몇몇 기업의 강조노조를 이유로 대한민국의 전체 노동시장을 그렇게 접근하면 문제해결에 도움이 되질 않습니다.

그래서 제가 강조하는 것이 우리나라의 현 상황에 대한 정확한 인식입니다. 각 분야에서 우리가 어떤 처지에 놓여있는지 인식을 분명히 하고 그 바탕위에서 처방이 나와야합니다. 단순히 경제이론만을 가지고 경제정책을 하면 그 정책이 제대로 성공할 수 없습니다. 사실 최근의 경제상황에 대해 경제학자들은 별로 할 말이 없습니다. 경제학자들이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없다는 뜻입니다. 가장 시급한 것은 세계적인 흐름에 대해 정확하게 인식하는 것입니다. 다른 나라는 자본주의의 미래에 대해 굉장히 걱정하며, 무엇을 어떻게 수정할지에 대한 논의가 활발합니다. 최근 OECD가 한국에게 포괄적인(inclusive)성장에 대해서 연구해보자는 제의까지 했다고 합니다. 그것을 하면 제일 불편하게 느낄 사람들은 몇 안 되는 거대 경제세력뿐입니다. 오늘의 스웨덴의 기초를 닦은 알빈 한손(Per Albin Hansson)이라는 스웨덴 수상이 있습니다. 그가 1930년대부터 10년 가까이 집권할 당시 이 사람은 정치민주화, 사회민주화, 경제민주화를 주장했습니다. 현재 우리사회는 경제민주화가 필요하다는 인식은 하고 있다고 보입니다. 지난 대선 때 제가 “정치권에서 경제민주화를 하지 못하면 결국 국민이 경제민주화를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별로 비관하지 않는다.”라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문제는 그렇게 되면 비용(cost)이 많이 든다는 것입니다. 특히 우리가 통일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통일을 하려면 무엇이 전제되어야 하는가? 독일의 사례를 보면 기본적으로 독일이 축적한 돈과 당시 서독이 이룩한 사회적인 조화가 결국 통일을 가져온 것입니다. 통일의 기회가 온다고 해도 우리가 지금과 같은 갈등구조에서 과연 서독처럼 순발력 있게 대처해 나갈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쉽지 않을 것입니다. 통일을 위해서도 현재와 같은 사고방식으로 경제를 운영해서는 절대 안 됩니다. “지금 우리 성장률이 높지 않은데 다른 이야기 할 게 뭐 있느냐, 성장만 가지고 하면 되지 않느냐?고 하지만, 아무리 성장쪽만 가지고 한다 해도 지금 수준 이상을 능가할 수 없습니다. 한국 경제의 현실이 그렇습니다. 현재 수준의 성장에서 내부의 조화를 잘 충족시키며 사회를 안정된 방향으로 끌고 갈 방법을 고민해야 합니다.

여기서 제일 중요한 것이 지도자라고 봅니다. 특히 우리의 헌법 체제에서는 대통령이 확실한 신념을 가지고 국민의 지지를 기반으로 밀고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현재 우리 국회는 이것을 할 수 없는 상태입니다. 제가 헌법에 경제민주화 조항을 넣었을 당시 전두환 대통령이 그것을 왜 넣느냐며 빼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빼면 안 된다며 외국의 사례를 쭉 설명했더니 대통령이 동의해서 지금 그것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거의 30년이 흘렀습니다. 그런데도 경제민주화에 대해 제대로 인식하려고 하질 않습니다. 지금 미국은 대통령선거 열기가 뜨거운데 공화당의 트럼프나 민주당의 샌더슨은 서로 추구하는 이상은 다르지만 실제로는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트럼프는 ”나는 선거자금 모금을 하지 않는다. 부시 당신은 선거자금을 1억3천만 불이나 모금을 했다던데, 대통령이 되면 그 신세를 어떻게 갚으려고 그러느냐?“고 공격합니다. 이 주장이 미국 중산층의 호응을 얻으면서 지금 트럼프가 인기를 끌고 있는 것입니다. 샌더슨도 똑같은 이야기를 합니다. 또 가장 강력한 후보인 힐러리 클린턴도 가장 중요한 대선공약 중 하나로 포용적 자본주의(Inclusive Capitalism)를 내세우고 있습니다. 자본주의를 가장 철저하게 한다는 미국이 현실에 대해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미국사회가 완전히 기업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사회라고 생각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미국처럼 기업에 대해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나라도 없습니다. 월남전 때문에 우리가 평가절하는 존슨대통령도 ‘위대한 사회’(Great Society)정책으로 불리는 빈곤추방 및 경제번영정책을 추진하여 미국 사회를 많이 변화시켰습니다. 미국은 사실 존슨대통령 재임 시 많은 법률을 제정하여 오늘날 오바마와 같은 대통령이 출연할 수 있도록 기반을 만든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신자유주의는 복지를 완전히 외면한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레이건 대통령이 감세정책을 하며 소위 ‘작은 정부’를 이야기 했지만, 레이건 정부의 예산안을 자세히 보면 카터 대통령 당시 3천2백억불 정도 되던 사회지출이 레이건 정부 때 5천3백억불로 늘어났습니다. 그리고 레이건 대통령이 미국 연방의 교육성을 없앴는데 교육예산은 50%가 더 늘어났습니다. 민주주의 정치체제의 나라에서는 아무리 신자유주의를 한다 해도 사회 안정을 위한 정부지출이 줄어든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감세를 하면 결국 빚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에 와서 그러한 감세정책의 문제를 고쳐보려고 하는데, 최근 미국의 경우 최저임금과 관련해 시애틀에 있는 어느 기업가가 주도해서 시간당 8불짜리 최저임금을 15불로 올리자고 하고 있습니다. 임금이 있어야 소비가 되고 소비가 있어야 기업도 제대로 물건을 팔 수 있지 않겠냐는 이야기입니다. 최저임금제가 없던 독일은 최저임금을 도입하면 고용문제가 클 것으로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시장경제를 신봉하던 독일은 최저임금이 없다가 2014년에 처음 도입되었습니다. 도입초기에는 고용이 줄어들 것이라고 학자들이 우려했지만 오히려 최저임금법을 도입한 이후 고용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입니다. 결국 어느 한 이념에 집착해서는 실효성 있는 경제 정책을 펼 수 없다는 뜻입니다. 경제정책을 하는 사람이 특정 이데올로기를 신봉해 도그마처럼 생각하면 경제정책의 효율을 가져올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경제가 현재와 같은 사고를 바꾸지 않고서는 효율적으로 발전하기 힘들지 않겠나 생각합니다. 다만 상황이 사람을 바꿀 수도 있기 때문에 어느 단계에 이르면 우리에게도 변화의 기회가 오지 않겠나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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