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 칼럼 – Healing Museum Road
지난호에서는 건축가 안도 다다오의 본태박물관를 통해 한국전통적 색채를 드러내고 있는 건축물과 만나보았다.
이번호에서는 제주 동측에 위치한 명상공간 지니어스 로사이와 글라스하우스를 살펴보기로 한다.
‘땅을 지키는 수호신’이라는 뜻의 라틴어에서 온 지니어스 로사이는 서귀포해안 섭지코지 내에 2009년에 조성된 자연과 호흡하는 명상전시관을 표방하고 있는 공간이다.
섭지코지의 명물이 된 이 곳을 향해 가는 길은 5월의 경이로운 제주 봄 풍광이 한컷한컷 함께했다.
넓은 바다를 끼고 언덕길을 걷다 보면 바다를 배경으로 흰등대가 있는 오름이 감탄스럽게 펼쳐진다. 잔잔한 파도의 바다를 배경으로 파도가 만들어 낸 오름의 조형미가 실로 감탄사를 자아내게 한다.
언덕을 넘으면 또다시 초현실적인 넓은 잔디벌판이다. 광활한 잔디 벌판 저 멀리 왼쪽, 나지막이 수평으로 자리한 명상공간 지니어스 로사이가 보인다. 그 우측으로 해안언덕 위에 글라스 하우스가 잔디벌판을 전경으로 제주 하늘과 바다를 배경으로 성산을 사이에 둔 채 펼쳐진다. 두 건축공간 모두 성산일출봉을 향해 각기 다른 건축어휘로 열려있다.
이곳 진입은 긴 산책로를 따라 굳이 꼭 걸어보시길 권한다. 잔디벌판에 들어서 걷는 길은 마치 현실이 아닌 듯, 초현실의 세계와도 같은 느낌이다. 벌판을 가로질러 천천히 다가오는 좌측 지니어스 로사이는 가로로 긴 낮은 입면으로 이루어진 건축물로, 절묘하게 저 먼 바다의 수평선 높이다. 상대적으로 우측에 위치한 글라스하우스는 성산의 지형을 기학학적 단순형태로 표현한 지형으로부터 돌출된 형상이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감아 도는 삼각면등대오름을 우측으로 하고 초현실적인 벌판을 한참을 걸어 안도다다오의 명상공간 진입로로 들어선다.
건축물의 가로로 긴 입면과 띠를 이룬 지붕의 가로선에 출입구는 점의 구성요소로 이루어진 파사드를 하고있다.
지니어스 로사이의 진입로 구성은 안도의 건축 어휘가 그대로 들어난다. 매끄러운 콘크리트 질감으로 높게 올린 폐쇄적 건축벽면과 그와는 대조적으로 제주현무암의 거칠고 낮은 담장의 개방적 벽, 그 담장 너머 광활한 자연이 펼쳐져 있다. 대비적 구도로 이루어진 진입로의 좌우는 안도의 특징적 공간요소인 폐쇄와 개방, 매그러움과 거침의 구성으로 이루어져 인간의 일상세계와 피안의 명상세계를 추구한 건축공간의 경계이다. 건축공간에 대한 암시와 호기심 상대적으로 압도적인 개방감을 가지는 낮은담장의 대비를 통해 자연을 강하게 실감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인간에게 자연은 거칠고 강한 특징으로 인해 극복해야 하는 대상이라면, 안도는 건축공간을 안식처가 될 것을 목표하였을 것이다.
노출콘크리트의 벽은 주위환경과의 관계에서 확연하게 들어나는 매끈한 질감과 극도로 단순한 형태의 결연한 차이로 인하여 더 강하게 부각된다. 이러한 주변맥락으로부터 격리시키는 방식은 그 극명한 대립 속에서 역전과 의외성이 삽입됨으로써 좀 더 풍부한 건축을 가능하게 하며, 외부환경은 건축 내부로 선택적으로 수용되어 우리와 무관했던 풍경을 새롭게 인식하게 해준다.
매끄러운 벽에 잘라낸 듯, 심플한 직사각의 입구로 들어서면 다양한 질감의 사각 면들의 향연으로 잠시 멈칫하게 된다. 연못이 있는 이 장소는 실제적 기능보다 무엇인가 다양한 느낌으로 인해 매표소이면서 또 다른 감각의 혼돈을 주는 공간이다.
안도는 차가운 추상, 기하추상의 대가인 조셉 알버스의 회화에 대한 견해를 다음과 같이 피력 했다.
“알버스의 방법은 정방형 안에서 감각의 모호함을 허용하는 것이다. 정방형이란 규칙안에 자신을 한정해서 독특한 색채를 칠한다. 이때 관찰자의 감각은 작품의 미약한 진동과 확장을 느끼고, 다양한 자유를 향하고자 한다.” 안도는 알버스의 방식에 색채를 대신하여 건축 공간에 인공과 자연의 요소들로 채워 감각의 모호함을 허용한 것이다. 이 매표소에서 알버스의 회화를 말한 안도의 방식을 확인할 수 있다.
진갈색 잔돌들로 이루어진 대기공간 사각바닥은 거칠다. 거기에 고인돌의 거석을 연상시키는 유기적형태의 돌의자가 있다. 바닥경계는 단호한 직선의 경계로 시작되어 마무리는 자연의 요소와 모호하게 연결된다. 매끄러운 콘크리트 질감의 면들 사이에서 태초의 자연을 느끼게 된다. 연꽃이 채워진 연못은 더 거칠고 큰현무암들의 군집으로 경계를 이룬다. 부드러운 수면과 매끄러운 콘크리트벽과 연계되어 그 더 너머엔 모호한 경계로 태초의 자연이 이어진다. 실제적 기능의 유리로 마감한 안내데스크는 없는 것이다.
또한 안도는 ‘추상성과 구상의 중합’이라는 글에서 알버스의 회화와 피라네시의 회화를 통해 자신의 건축의 목표가 추상성과 구상성을 동시에 획득하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정사각형의 편심적 구성을 한 알버스의 작품에 표현된 정방형의 윤곽과 색체는 관찰자가 그 정방형의 윤곽을 안에서 밖으로 또는 그 역으로 시선을 유도하여 평면적 상태를 입체적으로 느끼게 만드는 일종의 착시적인 효과를 유도하고 있는 것이다.”
안도가 견지하는 추상이란, 시선이 정지된 평면적 순수함이 아니라 정방형의 윤곽들에서 움직여지는 시각적 동요를 이끌어 내어서 입체적인 볼륨의 극적인 효과를 유도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현대건축의 기하학적 단순함을 강조하기 위한 모더니즘적 균질공간의 개념을 극복하는 그의 중요한 추상적 요인이 된다. 또한 안도에게 이것은 실제로 단순함의 결과로서 복잡함을 가지는 공간을 창조하는 원리인 것이다.
구상의 의미에 대하여 “인간의 육체가 각인된 구상적인 것” 이라는 설명으로 언급하고 있는데,고인돌을 연상시키는 유기적형태의 의자에는 인간의 육체가 역사성을 가지고 각인되어 있는 것이겠다.
피라네시의 동판화G.B.Piranesi 환상의 감옥Carceri d'Invenzione은 소실점의 위치가 불명확하고 그 것을 통해 바닥과 천장의 깊이감 파악이 흐려지게 되고 시각적 강조점을 찾기가 어렵다. 그것은 관찰자와 공간과의 관계가 모호하게 설정되어지는 시각적 혼란을 야기 시켜서 관찰자에게 모호성과 복합성, 신비로움을 유도하게 하며 관찰자에게 나름대로의 시각적인 작용과 조작을 유도한다.
추상적 언어로 이루어진 기하학적 공간 형태가어떠한 장소와 상황에서 이행되어지느냐에 대한 과정의 문제로서 구상에 대한 의도가 짐작된다.
따라서 안도 다다오의 건축공간속의 상황, 예를 들어 지역, 풍토와 풍경, 문화 같은 건축외적인 정서가 건축과 동화되어 일어나는 의미론적 절차와 개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안도 다다오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특징의 사례를 종합해보면 일본전통 차경기법이 그의 건축속에서 인간의 삶에 어떠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는 의미로 읽혀진다.
안도 다다오 건축의 일반적 형태요소는 노출콘크리트, 벽, 볼륨, 그리고 프레임의 요소로 구분되고, 이것들의 조합과 상호간섭, 분절을 통해 형태가 조작된다. 그 결과 건축물은 엄격한 기하학을 바탕으로 구축된 추상적인 상태를 통하여 미로와 같은 형태로 만들어 진다. 그리고 이것은 물리적 세계보다는 정신적 세계의 도달을 위해 장식을 배제하는 극소공간의 형태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이제 매개공간과도 같은 매표소를 지나 사각의 정돈된 또다른 입구를 지나 돌, 여인, 바람의 정원으로 들어 선다.
비워진 광야의 풍경이다. 흑갈색의 현무암들이 무더기로 싸여 둔덕을 이루는 돌정원은 경사로를 사이에 두고 돌들만이 있는 곳, 초목들과 돌들이 함께하는 곳으로 이루어져 있다. 밀도 높은 매표소 공간을 지나 광활함을 경험하는 반전의 공간이다.
거친 돌정원을 지나면, 평지가 이어지고, 직선으로 쭉 뻗은 길을 따라 좌측 낮은 타원형의 여인의 정원은 핑크 빛 들꽃으로 가득하다. 평온함이 느껴진다.
저 멀리 우측에 사각 콘크리트 담장 안에 사람 키 높이의 억새풀들이 무성하게 채워져 흔들리고 있다. 바람의 정원이다. 거친 돌정원의 경사로를 지나, 평원 같은 꽃으로 조성된 여인의 정원을 지나, 인공의 매끄러운 콘크리트 사각구조틀 안에, 풀들이 무성하게 흔들리고 있는 바람의 정원이 있는 것이다. 인공구조물안에서 초록의 억새풀을 통해, 가둬 둔 바람을, 무성한 초록의 풀들 사이에서 감촉하는 것은 촉각과 시각, 후각과 청각 그리고 감성이 함께 흔들리는 느낌이다. 잠시 머물자.
이제 명상의 전시공간으로 진입이다. 입구 게이트가 거친질감과 거대스케일의 높이로 인해 성벽처럼 느껴지는 강력한 담벼락에 단순하게 나 있다. 콘크리트 수평띠와 현무암석 성벽의 간결한 구성이다.
조밀한 안내공간은 광활한 잔디평야를 지나온 뒤 진입했었다. 그 안내공간을 지나 광야같은 정원공간 그리고 이제 또 다른 조밀함의 실내 명상공간으로의 구성이다. 공간스케일의 변화가 일렁이는 듯하다.
명상의 건축공간으로 들어서면 거친 현무암석 성벽과 레이어를 이룬 매끈한 콘크리트 벽 뒤에 이번 엔 물의 공간이다. 양 쪽 비스듬한 사선면으로 벽천이 흐른다. 얕지만 쉴새 없이 흐르는 작은 폭포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자연의 속성을 은유적으로 담아낸 비워둔 정원을 지난 뒤에 만나는 채워진 공간이다.
건축물의 입면디자인에서는 어디에서도 사선을 직접적으로 발견할 수 없다. 그러나 지형을 통해 우리는 사선을 경험하게 되고. 안도의 건축공간에서 역동성과 다채로움을 느끼게 되는 요인이 여기에도 기인한다 할 수 있겠다.
지면보다 아래, 명상의 실내공간이 있다. 그 곳 지하로 내려가는 길이 거대한 높은 벽 사이로 나 있다. 양 쪽의 벽마감은 극명하게 대조적이다. 좌측은 매끈한 콘크리트, 우측은 거친 현무암을 집적해 놓은 성벽이다. 하늘로 열린 두 질감의 대비는 저기 먼 피안(彼岸)과, ‘지금’ ‘여기’의 차안(此岸), 단절과 수용, 사유와 행동 등 다양한 의미로 여겨진다.
거기 길고 긴 길 한쪽 거친벽에, 갑자기 나타나는 가로로 긴 프레임이 뚫려, 그 프레임너머에는 제주 성산의 광활한 풍광이 펼쳐져 있다. 그 사각의 틈사이로 바람과 빛이 소통한다. 그리고 노란색 야생화의 들을 너머 바다 위에 떠있는 성산일출봉을 조망한다. 일본전통정원의 차경기법 요소 ’너머보기’와 ‘사이보기’ 특징을 보여주는 곳이다. 심호흡을 하게 되는 것은 필자만의 감성일까.
관광객들의 카메라가 이 장면을 담기 위해 분주하다.
안도의 건축공간에서는 빈번하게 일본전통정원의 차경기법 요소들을 발견할 수 있는데, 일본전통 차경기법은 자연그대로가 아닌 자기지배 아래 길들이는 특징을 갖는다.
원경을 담장 같은 인공구조물들 사이에 두고 원경하부가 담에 의해 편집되는 ‘너머보기’, 벽이나 개구부를 통해 원경을 보는 ‘사이보기’, 상부의 매개물에 겹쳐서 보는 ‘겹쳐보기’, 내부와 원경사이에 중간영역을 차단시켜 육감을 통하여 인지하는 ‘간접보기’, 원경을 축소하여 내부로 도입한 ‘축소하기’기법들이 그것이다. 지니어스 로사이에서 이러한 기법들이 다양하게 나타난다.
정사각의 균질한 구조로 이루어지는 프레임의 공간내부는 비워짐과 채워짐의 관계를 통하여 이루어지고, 크고 작은 볼륨의 덩어리에 건축공간의 깊숙한 곳까지 외부적인 요소가 유입된다. 비워진 그리드 프레임으로는 바람과 빛이 자유롭게 소통하고 지역의 특수한 자연환경을 건물에 유입시켜 나가는 과정을 통해 건축을 육체화시키고자하는 안도의 의도를 볼 수 있다.
높은 담장의 긴 경사로를 따라 이제 실내 명상공간으로 진입이다. 진입로를 제외한 지하의 명상전시공간의 내부는 모두 노출콘크리트로 이루어진다.
자연의 빛은 사라지고 어둠 속 길 하단에 인공조명이 하나씩 길을 비춘다.
존재의 근원, 마음의 심연으로 향하는 길이다.
그 길을 따라 빈 공간을 지나면 미디어아트 작가 문경원의 작품이 세 개의 공간에 설치되어 있다.
먼저 '다이어리Diary', 미디어 아트가 빈 공간 한 벽면 가득 흐르고 있다. 제목이 일상을 적어가는 일기장이다. 다시 자연 현상을 생각하게 하는 영상이다. 나무의 생장과 소멸, 재생을 영상으로 표현한 것으로 앙상한 가지로 시작하여, 잎과 꽃이 피고, 점점 번성하다, 다시 하나씩 떨어지고, 사그라지고, 다시 피는 생명순환을 표현한 작품이다. 이것은 자연의 유한과 무한이 섞인 존재의 실상을 잘 보여준다.
두번째 작품은 '어제의 하늘'이다. 육면체 안에 원통형 공간을 레이어링한 전시공간으로 하늘풍경 영상이 원형바닥에 떠있다. 사각의 대지와 원형의 하늘 공간에서 내부와 원경사이에 중간영역을 차단시켜 육감을 통해 인지하는 ‘간접보기’의 공간이다.
우주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감싸고 있는 세계. 시간의 경과를 담고 있는 하늘 위에는 풍경들이 거품처럼 떠돌고 그 원형의 영상 안에 서있는 자신이 있다. 찰나의 덧없음을 상징한다.
세번째 '오늘의 풍경', 전시공간은 벽돌벽으로서, 벽면 일부가 사각프레임으로 열려 영상이 흐르는 가부좌 공간이다.
바깥 카메라를 통해 지하에서 보는 지금 이 순간의 바깥세상을 벽의 일부를 뚫어 이어준다. 성산일출봉의 일출부터 일몰까지의 실시간 풍경이 화면에 투사된다. 그 간접의 풍경을 통해 밖에서 보던 제주자연과 암흑의 공간에서 보는 현실이 대비를 이루며 초현실적인 감각에 빠져들게 한다. 원경을 축소하여 내부로 도입한 ‘축소하기’ 기법의 공간이다. 지금 이 순간 존재가 어떤 것인지 되돌아 보게 한다. 그런 작품 속에서 가부좌로 있다보면, 현실에서 한참이나 떨어져있는, 우주 저 끝의 신비한 공간 속에 육체가 부유하는 듯한 느낌이다.
그 감흥의 여운은 오래도록 이어져 건물 밖으로 나온 뒤에도 한동안 숙연해 지는, 내부로 침잠해 간 공간들이었다.
자연을 전시한 명상전시공간 지니어스 로사이를 뒤로하고, 인공자연이 아닌 자연 그대로를 다시 만나는 글라스하우스의 2층공간에서 자연 그대로의 확 트인 제주의 원경을 즐기는 시간이 되기를 기대한다.
'이 땅을 지키는 수호신'이라는 뜻의 '지니어스로사이'에서 안도는 섭지코지로 대표되는 제주의 자연과 인간을 건축가의 또다른 해석으로 지키려는 것으로 보였다.
자연은 인간과 모든 존재의 근원이기에 신성한 것이다. 안도 다다오는 그런 존재의 신성한 근원을 제주의 물, 돌, 빛, 바람, 풀, 등을 추상화한 공간과 건축물로 우리에게 보여준다.
자연을 건축화시키는 방식으로서 있는 그대로의 풍경을 감상하는 차원이 아닌 선택되어진 영역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거나 상징하는 사의적 개념을 포함시켜 자연상황을 인위적으로 재창조하여 나타내는 일본전통 차경기법들이 보여지는 지니어스 로사이와 먼 곳의 경치를 있는 그대로 감상하려는 한국의 전통주택에서 보여주는 전망의 개념과 같은 글라스하우스에서의 제주자연 풍광의 차이를 경험하는 시간이기도 하였다.
2009년에 완공한 지니어스 로사이에서 안도의 건축이 다분히 일본의 전통기법을 적용한 공간들이었다면, 지난호에서 살펴본 2012년 완공한 본태 박물관에서는 한국전통적 색채를 건축에 구현하려는 시도가 보였던 공간이었다.
다음호에서는 안도의 산 뮤지움으로 건축여행을 이어가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