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예산안은 총 16개 분야의 3000여개 사업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이들 3000여개의 사업들은 2종류의 분류기준을 가진다. 하나는 사회복지, 보건, 교육 등과 같은 분야별(기능별) 기준이고, 또 하나는 보건복지부, 교육부와 같은 부처별 기준이다. 각 사업은 어떤 기준으로 보느냐에 따라 부처별 사업이 되고, 분야별 사업이 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국방부 사업 중의 하나인 군인연금은 국방부 사업이지만 동시에 복지 분야의 사업이기도 하다.
예산의 편성은 행정부에서 실시한다. 그리고 이들 예산이 적절한 지에 대한 심의는 입법부인 국회에서 한다. 행정부의 편성 기준은 분야별 기준이지만, 입법부의 심의 기준은 부처별 기준이다. 이렇게 두 기관의 기준이 상이하다보니, 예산을 심의할 때 문제가 발생한다. 위에서 예로 들었던 군인연금의 경우, 심의는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하지만, 편성 단계에서 국방부에서는 복지사업으로 편성된다. 결과적으로 ‘군인연금’이라는 사업의 적절성에 대해 실질적인 논의가 이루어지기 어렵다. 바로 이 부분이 노무현 대통령 당시에 미처 완성하지 못한 우리나라 예산 편성의 과제이다.
우리나라 예산이 만들어지는 과정
한 국가의 1년 치 생활비인 예산은 어떤 과정을 거쳐서 만들어질까? 예산이 논의되고, 집행되고, 결산되는 과정은 총 3년에 걸쳐서 이루어진다. 2018년도 예산은 2017년에 예산안을 만들어서 제출하고, 2018년에 집행되며, 2019년에 배정된 예산이 적절히 사용되었는지 결산한다. 이번에 다루어볼 부분은 바로 편성 과정이다.
예산안의 편성 과정은 매년 4월 30일까지 각 부처의 장이 기획재정부의 장에게 예산 요구서를 제출한다. 이를 토대로 5월초에 대통령이 주관하는 국가재정전략회의가 열린다. 이 회의에서 정부는 각 분야에 대한 예산 지출 계획을 정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복지 예산을 늘리겠다는 방침을 부처의 장에게 전달하고 계획하는 장소가 바로 이곳이다.
정부의 방침에 따라 조정된 예산안을 10월 2일까지 국회에 제출하는 것으로 행정부의 예산 편성 작업은 끝이 난다. 다음은 국회의 심의 과정이다. 보통 국정감사가 끝나면 예산안 심의가 시작되고, 국회는 11월 30일까지 본회의에 상정해야 한다. 심의 과정에서 여야 간에 치열한 논쟁이 일어나며, 심의기간 동안 합의를 보지 못할 경우 국회선진화법에 따라 정부 제출 예산안이 본회의로 자동 상정되어 결정된다.
그렇기 때문에 적절한 심의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정부의 제출안대로 예산이 결정된다. 편성 단계에서부터 각 부처는 자기 부처의 이해득실을 우선으로 따져 예산을 편성하기 때문에 실제로 해당 사업이 적절한지, 또 사업들에 배당된 예산이 적절한 지에 대한 심의는 매우 중요하다. 때로는 전혀 엉뚱한 사업이 예산 확보를 위해 편성되는 일도 왕왕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논란이 발생하고, 또 이를 조정하는 과정에서 행정부의 이득을 보장해주는 대신 국회의원 개개인의 쪽지 예산 통과와 같은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
일례로 경찰청에서 실시하는 사업 중의 하나인 ‘아동 안전 지킴이’ 사업은 복지 사업이다. 이 사업은 우범 지역의 순찰을 강화하여 각종 범죄를 예방하고 청소년을 선도할 목적을 가진 사업이다. ‘아동의 안전한 성장 환경 조성’이라는 문구 하나로 이 사업은 복지 사업에 포함되는 듯하다. 하지만 이 사업은 보면 볼수록 사회복지 사업이 아니라 ‘공공질서 및 안전’ 분야가 더 적절하다.
전 부처에 흩어져 있는 복지 사업들을 한 군데에 모아 검토·심의하게 되면 같은 사례를 막을 수 있지 않을까? 예산안을 살펴보면 이처럼 기준에 맞지 않는 사업이 한 둘이 아니다. 각 부처들은 조금이라도 더 예산을 많이 확보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다 보니 전혀 다른 분야의 사업이 정부가 좋아하는 가면을 쓰고 나타난다. 특히 복지 예산은 일종의 ‘노다지’에 해당한다.
저출산·고령화대책위원회 특별위원장인 자유한국당의 나경원 의원이 밝힌 바에 따르면, 저출산·고령화 대책과 어떤 상관이 있는지 모를 CCTV설치 사업, 템플스테이 지원과 같은 사업이 저출산·고령화 대책이라며 예산이 편성되어 있다고 한다. 계속해서 발생하는 이런 사업들을 막기 위해서라도 예산의 편성과 심의의 기준이 분야별 기준으로 확립될 필요가 있다.
분야별 예산 심의가 가져올 좋은 결과들
첫째, 효율성이 높아진다. 예산안을 살펴보면 비슷한 사업인데 부처가 다르다는 이유로 별도의 재정을 받는 경우가 있다. 특히 정보화 사업의 경우, 각 부처별로 따로 사업을 진행한다. 물론 다루는 정보의 종류와 양이 다르기 때문에 각 부처별 정보화 처리가 필요할 수 있다. 그렇지만 개별 부처가 자신들만의 양식으로 사업을 진행하다보니 이걸 찾아보는 국민의 입장에선 답답할 수밖에 없다. 이럴 바엔 통계청과 같은 부처가 해당 정보화 업무를 통합하여 진행하는 것이 훨씬 낫다. 이렇게 하면 복지 예산도 억지 사업이나 중첩 사업의 손실을 막을 수 있다. 효율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둘째, 사업의 목적이 분명해진다. 위에서 예로 든 경찰청의 ‘안전 지킴이 사업’의 경우 경찰청이 필요한 사업을 행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분야가 복지는 아니다. 저출산·고령화 대책 사업이었던 템플스테이 지원이나 CCTV 설치 같은 사업 역시 복지라기보다는 문화나 안전과 같은 분야에 소속되는 것이 옳다. 이렇듯 분야별 심의가 이루어지게 되면 해당 분야에 적절한 사업과 적절하지 않은 사업을 골라내어 보다 정확하게 분야별 예산의 크기를 파악할 수 있게 된다. 그렇게 돼야 정부가 정한 국가재정전략회의의 결정에 따른 예산의 분배가 가능해질 수 있다.
셋째, 행정부의 권력이 약화됨과 동시에 국민들의 감시 능력은 강화된다. 우선 현재 배포되고 있는 각 부처별 예산안의 경우 다양한 분야의 사업들이 혼재돼 있다. 국방부에도 복지 사업이 존재하고, 기재부에도 복지 사업이 존재한다. 이들은 각기 부처별 예산이기 때문에 국회의 해당 상임위에서 심의된다. 그렇지만 해당 분야에 맞춰서 심의되지는 않는다. 만약 이것들을 복지 예산으로 분야별로 모아서 검토하게 되면, 우리나라가 실제로 복지에 얼마나 재정을 투입하고 있으며, 또 동시에 적절하게 사용되고 있는 지를 감시하기가 더 쉬워진다.
거기에다 분야별로 심의를 하게 되면, 각 부처는 해당 부처의 사업들을 16개 분야로 나누어 국회의 해당 분야별 상임위에서 심의를 받아야 한다. 그렇게 되면 국민들은 관심 있는 분야의 사업을 찾기 위해서 수십 개가 넘는 부처의 예산안을 훑을 것이 아니라 관심 분야의 예산안과 심의 자료를 찾아보는 것만으로 손쉽게 예산의 그림을 살펴볼 수 있게 된다.
넷째, 이처럼 각 예산이 명확한 목적을 가지고 배분된다면 증세 논의도 보다 활발해질 수 있게 된다. 복지의 경우는 각 부처별로 사업들이 배분될 수밖에 없다. 고용노동부의 일자리 복지, 보건복지부의 의료 복지, 국토교통부의 주거 복지 등등이 여기에 해당하는데, 이들 복지 사업들은 한 부서가 일괄적으로 처리하기보다 일을 가장 잘 할 수 있는 부처가 담당하는 것이 옳다. 그렇지만 이를 ‘복지 예산’이라는 큰 분야로 묶어놓으면 해당 복지 사업들이 어느 정도의 크기를 가지고 있는지 알기 쉽고, 이것을 우리 사회의 우선순위에 따라 조정하는 것도 더 용이해진다. 그럴 경우, 취약한 분야의 예산을 더 확보하기 위한 증세 논의도 활발해질 수 있을 것이다.
조세저항의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가 정부 재정의 용처를 ‘신뢰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목적세와 같은 세금은 분명한 목적을 가진 예산이 된다. 분야별로 정리가 돼 있어서 국민들이 찾아보기 쉽고, 적절한 심의가 이루어지는 예산이라면 신뢰도 부문에서 큰 향상이 있을 것이다. 내 세금이 어디에 어떻게 사용되는지, 이런 것이 분명해지는 분야별 예산 심의는 증세를 위한 논의의 시작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복지국가로 가기 위해 이제 미완의 국가재정법 완성해야
노무현 대통령은 저서 「진보의 미래」에서 “모든 정책은 재정으로 통한다.”고 언급했다. 정부가 제출한 내년도 우리나라 예산 429조 중에서 복지와 교육을 합하면 210조 원 규모로 거의 절반에 해당한다. 그렇지만 그 210조 원 규모의 사업들 중에는 복지와 전혀 상관없는 사업들이 포함돼 있기도 하고, 복지 사업이지만 다른 분야에 포함돼 있는 사업도 존재한다. 따라서 지금의 예산 심의를 새롭게 해서 숨어있는 사업들은 포함시키고, 상관없는 사업들은 퇴출시켜 정확한 추계를 해야 한다.
OECD의 복지 예산 평균은 ‘GDP 대비 21%’라고 한다. 선진 복지국가인 북유럽 국가들은 이보다 거의 10%포인트나 더 높다. 그렇지만 우리나라는 최대로 잡아도 겨우 12%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그마저도 정확한 통계가 아닐 가능성이 높다. 이대로는 정확한 비교도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가 얼마나 더 부족한 지에 대한 현실적인 대답을 내놓기도 어렵다.
물론 분야별 예산의 편성과 심의가 만능열쇠는 아니다. 비로소 시작인 것이다. ‘GDP 대비 복지 지출의 비중’이 복지국가의 수준을 판단하는 기준이라면, 우리는 복지 지출의 내용을 더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그런 후에 OECD나 유럽 선진 복지국가와 복지 지출의 차이를 비교하는 것이 순서이다. 올바른 기준에 따라 예산을 적절하게 편성·심의하고 제대로 사용하는 것이 복지국가 증세를 거쳐 보다 성숙한 복지국가로 가는 시작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