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리 사회에서는 우체국 집배원, 드라마 촬영 스태프, 고속버스 운전기사, IT 업체 종사자, 민원 처리 공무원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는 직장인들이 과로와 장시간 노동으로 질병이 발생하거나 사망하는 일이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특히 버스나 택시 등 운전기사들의 과로는 승객의 안전에까지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과로사로 인한 문제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인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세계 최장의 노동시간과 과로사, 이건 정상이 아니다
OECD의 발표에 의하면, 우리나라 직장인의 1인당 연평균 노동시간은 2,113시간으로 OECD 34개 회원국 가운데 두 번째로 길다. 우리나라는 OECD 국가의 연평균 노동시간인 1,766시간 보다 무려 347시간이나 더 많이 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같은 장시간 노동은 결국 꿈과 희망을 실현해야 할 직장에서 노동자의 건강과 생명을 위협하는 요소가 되고 있다.
매일 매일 바쁘게 일하는 직장인들은 업무량이 너무 많아 밥 먹을 시간조차 없다는 사람도 있고, 화장실 갈 시간을 낼 수가 없어서 물을 아예 안 마신다는 사람도 있고, 출근 시간은 있지만 퇴근 시간이 없다는 노동자들도 있다. 또 집에 가지 못하고 회사에서 자거나 차 안에서 자다가 출근을 하는 사람도 있고, 퇴근을 해도 짧은 수면을 취하고 다시 출근해야 하는 경우도 많다. 결국 일상 속에서 늘 잠은 부족하고, 휴식이나 여가는 찾아볼 수 없고, 만성적인 피로에 시달리다 과로로 사망하는 경우가 발생하는 것이다.
과로사란 일을 지나치게 많이 하거나 무리하게 해서 육체적·정신적 부담이 발생하여 뇌출혈이나 심장마비 등으로 사망하는 것을 말한다. 뇌심혈관계 질환으로 사망한 노동자는 2016년에 300명이나 발생했는데, 이는 하루에 한 명꼴로 사망한 것이다. 이 수는 같은 해 건설업 등에서 추락으로 사망한 노동자 숫자인 366명과 비슷한 수준이다.
과로사로 산재 인정을 받는 게 어려운 이유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과로사로 산재 인정을 받는 것은 매우 어렵다. 그러므로 이보다 더 많은 인원이 과로로 인해 사망했을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2016년 근로복지공단에서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과로사와 관련 있는 뇌심혈관 질환은 1,911건이 산재 신청을 하였는데, 이 중에서 산재로 인정된 것은 421건이고, 1,490건은 불인정되어 산재 인정률은 22.0%에 불과했다. 이는 근골격계 질환의 산재 인정률 54.0%, 기타 질병의 산재 인정률 39.4%에 비해 매우 낮은 수준이다.
이처럼 과로사에 대한 산재 인정률이 낮은 이유는 과로사의 원인이 개인 질병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산재로 인정받으려면 업무로 인한 질병으로 사망했다는 사실을 증명해야 한다. 하지만 이것은 어렵다. 업무상 사고는 업무와의 관련성을 증명하기가 쉽지만, 과로로 인한 질병 및 사망은 확실한 인과관계를 증명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입증 자료를 제출해야 하는 노동자 본인이 사망한 상황에서 유족들이 객관적인 자료를 제출하기란 매우 어렵다고 할 수 있다.
근로기준법 특례조항의 과로사 유발
또한 우리나라는 근로기준법에 주 40시간 일하도록 하고 있으나 1주 12시간 한도 내에서 근로시간의 연장이 가능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근로기준법 제59조에는 운수업, 금융보험업, 영화 제작업, 통신업, 의료업, 청소업 등에서 주 12시간을 초과해 연장근로를 할 수 있도록 특례조항을 두고 있다. 그런데 이것이 실질적으로 과로사를 유발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 2014년부터 2015년까지 과로사로 인정받은 전체 노동자 중 28.1%가 특례업종에 해당하는 노동자로 나타났다. 이 부분을 개선하는 일이 매우 필요함을 알 수 있다.
과로사의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노동시간을 줄이는 것과 더불어 노동의 총량을 줄이려는 노력이 요구된다. 노동시간을 줄이고 줄어든 시간 안에 원래 하도록 돼 있는 일들을 다 하게 한다면 이것이 오히려 과로사를 유발할 수 있는 요인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인력을 보충하거나 일자리를 나누는 등의 적극적인 방법을 시행함으로써 노동량을 감소시키는 것도 필요하다.
‘산업안전보건 기준에 대한 규칙’ 제669조에는 직무 스트레스에 의한 건강 장해를 예방하기 위하여 사업주가 해야 할 방법이 명시되어 있다. 그러나 이 규정은 벌칙 조항이 없기 때문에 사업주에게 이 내용을 강제할 수가 없다. 따라서 관련 법률에 사업주가 과로사를 예방하기 위한 활동을 의무적으로 수행하도록 정하고, 이를 준수하는지의 여부에 대해 산업안전보건 감독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특히 야근과 과로를 당연하게 여기는 직장 문화를 개선하고, 일하는 사람들이 쉬면서 일할 수 있는 휴식시간과 휴게 공간이 보장되도록 해야 한다.
과로사를 예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과로사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직장인들의 건강관리를 담당하는 보건관리자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보건관리자는 주기적으로 노동자의 건강을 체크하여 위험도를 사전에 평가해 주고, 관리자와 노동자가 지켜야 될 사항에 대해 정기적으로 보건교육을 시행하며, 직장 단위의 건강증진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작업 환경을 개선할 수 있도록 관리함으로써 신체적 피로와 정신적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보건관리자의 이런 활동은 과로사를 사전에 예방하는 데 큰 기여를 하고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금융업, 운수업, 콜센터, IT 업종 등 장시간 노동과 업무 과로가 높은 업종은 보건관리자를 두어야 하는 대상에서 제외되어 있다. 그래서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이들 직장인들에 대한 관리가 이루어질 수 없는 상황이다. 가능하면 모든 사업장에 보건관리자를 배치하여 과로사를 예방하고 직장인의 건강과 생명을 보호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8년 신년사에서 국민들이 평범한 일상을 지키면서, 이 생활이 더 나아지게 만드는 것이 행복이라고 했다. 대부분의 국민들이 평범한 직장 생활을 하면서 ‘삶의 질’이 향상되고, 안전이 보장될 때 그것이 바로 행복해지는 것이 아닐까? 대통령이 늘 말씀하시는 ‘일과 생활의 균형’은 노동시간이 단축되고, 만성적인 피로가 쌓이지 않아 과로사가 발생하지 않는 것이리라! 나는 우리나라의 모든 직장인들이 건강하고 안전할 때 우리나라의 밝은 미래도 기약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번 아웃 증후군’ 자가진단 기준
끝으로 보건관리자가 없는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뿐만 아니라 이 글을 읽는 모든 독자들도 잠시 시간을 내서 ‘번 아웃 증후군’ 자가진단 체크를 한 번 해 보시길 권한다. 자신의 피로도를 사전에 관리하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아래의 ‘번 아웃 증후군’ 자가진단 체크 리스트는 20개 항목으로 되어 있는데, 이 중에서 12개 이상에 해당될 때 ‘번 아웃 증후군’(탈진 현상)이 발생했음을 나타낸다.
<표> ‘번 아웃 증후군’ 자가진단 체크 리스트
1. 전보다 잘 지치고, 피로가 쌓여 있다. 일과를 마치면 녹초가 된다.
2. 지금 일에 흥미가 없어졌다.
3. 일에 대체로 의욕이 없다.
4. 매사에 싫증을 잘 내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몇 시간이고 보낸다.
5. 자신이나 타인에 대해 더 비관적이고 비판적이고 트집을 잡게 됐다.
6. 약속이나 마감일 등을 잘 까먹고 그것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는다.
7. 예전보다 더 많은 시간을 친구나 가족, 직장 동료와 떨어져 혼자 지낸다.
8. 평소보다 화를 잘 내거나 적대감을 갖거나 공격적이 되는 일이 잦다.
9. 유머 감각이 두드러지게 감소했다.
10. 예전보다 감기 같은 질병에 자주 걸린다.
11. 평상시보다 머리가 자주 아프다.
12. 위장 상태가 나쁘다(위통, 만성 설사, 대장염 등).
13. 아침에 심한 피로감을 느끼는 상태에서 일어나는 날이 잦다.
14. 예전에는 주위에 있어도 신경 쓰이지 않았던 사람들을 일부러 피한다.
15. 성욕이 감퇴됐다.
16. 다른 사람을 마치 인격이 없는 물질처럼 다루거나 무신경하게 다룬다.
17. 업무상 의미 있는 결과를 전혀 내지 못한다고 느끼거나 무언가를 바꿀 힘이 없다고 느낀다.
18. 혼자 있을 때 자발적인 활동이 없어진다고 느낀다.
19. 매일 업무나 사람 사귀는 일, 과거의 일을 떠올리며 걱정하는 시간이 길다.
20. 한계를 느끼고 있거나 기력이 쇠약해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