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3~7월 협상 때도 비슷한 제안…미국내 반도체 생산물량 적어 합의 불발
2024년까지 총 1조달러 이상의 미국산 제품을 더 사들여 대미 무역흑자를 0으로 만들겠다고 중국이 미국 쪽에 제안한 계획의 중심에 반도체가 포함돼 있는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이 지난 2월14일 보도한 내용을 보면, 미‐중 무역 협상 과정에서 중국은 향후 6년간 미국으로부터 반도체 수입 규모를 2천억달러(약 225조원)로 늘리겠다고 제안했다. 지난해 10월 푸젠진화반도체에 대한 반도체 수출 제한 조치를 취하기 이전까지 인텔, 퀄컴, 마이크론 등 미국 업체들의 대중 반도체 수출액의 5배를 넘는 수준이다. 중국의 반도체 수입은 2017년 2601억달러, 작년엔 2990억달러 정도다. 중국의 반도체 수요는 세계시장의 60%에 이른다.
미국 수용시 한국 메모리 반도체 대중 수출 직격탄 맞을 가능성 높아
중국의 이런 제안은 사실상 한국이나 일본, 대만 기업들로부터 메모리 반도체 수입을 줄이고 이를 마이크론․웨스턴디지털 등 미국 기업들로 돌리겠다는 뜻에 해당한다. 시스템(비메모리) 반도체의 경우 인텔과 퀄컴 등과 같은 미국 기업들이 이미 석권하고 있는 터라 중국이 미국 기업들로부터 수입을 추가로 늘릴 수 있는 여지는 거의 없다. 반면 중국의 메모리 반도체 수입은 메모리 반도체 1, 3위 업체인 한국의 삼성전자와 하이닉스에 50~60%를 의존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대중 반도체 수출은 2017년 664억달러, 2018년 858억달러로 중국 반도체 수입의 각각 25.5%, 28.7%를 차지했다.
지난해 3230억달러로 추정되는 대미 무역흑자를 2024년까지 0으로 만들겠다는 제안은 미‐중 무역협상에 접근하는 핵심을 이룬다. 그 일환으로 하루 500만t의 미국산 대두 대량구매, 미국산 원유와 액화천연가스 등의 수입 확대 등을 중국은 이미 제안했다. 하지만 미국산 반도체 대량 구매는 이와 견주기 어려운 복합적인 측면이 깔려 있다. 푸젠진화반도체와 이노트론 등을 통한 반도체 굴기를 통한 수입대체 등을 상당 부분 후퇴시키겠다는 뜻을 미국에 내비치는 것에 해당한다. 미국산 반도체 대량구매는 ‘중국제조 2025’에서 중국산이 차지하는 핵심 부품 비중을 2020년 40%, 2025년 70%까지 끌어올리는 기존 계획을 수정하는 핵심 수단이기도 하다.
이와 동시에 중국은 미국산 반도체 수입 대폭 확대에 따른 부담을 한국․일본․대만 등에 떠넘기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http://www.economy21.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06005). 미국의 대중 무역적자 해소를 위한 비용이 이들 나라에 전가됨에 따라 동맹의 관계를 멀어지게 하는 효과도 거두는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구조적 문제 개선과 실효성 있는 집행 합의가 좌우할 듯
현재로서는 미국이 이런 제안을 받아들일지 불확실하다. 이전에 선례에서 미국이 받아들이지 않기는 했다. 340억달러 어치의 중국산 제품에 25% 관세를 부과한 지난해 7월 이전 진행된 미‐중 협상에서 중국은 한국과 대만 반도체 수입을 줄이고 미국산을 늘리겠다는 비슷한 제안을 했다. 외신에서는 미국에서 이런 제안을 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하지만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주요한 이유의 하나에는 마이크론의 반도체 생산공장이 일본, 대만, 싱가포르 등지에 흩어져 있다는 점이 꼽힌다. 중국이 미국산 반도체 수입을 늘린다고 해도 정작 미국에서 생산되는 반도체 물량이 많지 않다는 게 걸림돌로 작용한 것이다.
변수는 미국과 중국이 강제기술이전이나 첨단기술 탈취, 국영기업의 경쟁적 중립성 등 이른바 중국경제의 구조적 문제 분야에서 진전이 있을 수 있느냐, 특히 실효성 있는 집행 방안에 합의할 수 있느냐다. 미국산 반도체 대량구매 등을 통한 중국의 2024년 대미 무역흑자=0이라는 제안의 현실화 여부는 여기에 좌우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