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재산권․원산지 규정 등 20개 챕터 협정문 타결
상품․서비스․투자 시장개방 일부 쟁점 남아 2020년에 최종서명
미국, 협정 타결에 맞춰 인도․태평양 전략보고서 발표하며 견제구 날려
CPTPP와 맞물려 본격적인 지정학 신경전 본격화 예상
[이코노미21 조준상 선임기자] 중국 주도로 2012년 11월부터 시작된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이 7년 만에 원칙적인 협정 타결을 봤다.
한국 정부가 11월5일 발표한 내용을 보면,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 10개국과 한국․중국․일본․오스트레일리아․뉴질랜드 등 15개국 정상들은 11월4일 타이 방콕에서 정상회의를 열어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의 10개 챕터 모든 협정문 타결을 선언하고 2020년 최종 서명하기로 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애초 협정 참여국인 인도는 “협정문에 인도의 우려가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며 참여를 보류했다. 대중국 무역에서 지속적인 적자를 보고 있는 인도는 이번 협상 과정에서 관세 인하와 시장 개방 등 무역 장벽 축소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참여국들은 2015년부터 해마다 연내 타결을 목표로 내세웠다가 올해 초까지만 해도 협정문에서 합의점을 찾은 부분은 중소기업, 세관수속 등 7개 분야에 그치는 등 번번이 무산돼 왔다. 이번에는 강도 높은 양자, 다자대화 등을 병행하며 협정문에 타결했다.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은 버락 오바마 행정부 당시 미국이 중국 견제를 위한 전략적 차원에서 추진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대항해 중국이 주도한 것이다.
인도가 참여할 경우, 이 협정은 세계 경제의 32%인 27조4천억달러, 세계 인구의 약 절반인 36억명, 세계 교역의 29%인 9조6천억달러를 포괄하게 된다.
한국은 일본을 빼고 아세안 10개국, 중국,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등 참여국들과 모두 양자 자유무역협정(FTA)를 체결해 놓은 상황에 더해, 이 협정 아래에서 지속적인 투자를 통해 이들 나라에 생산기반을 확보한 상황에서 역내 가치사슬을 거치며 생상된 제품들에 대해 특혜관세를 적용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됐고, 신남방 핵심국가들로 교역 다변화 계기를 마련하는 효과도 누릴 것으로 보인다.
한편, 미국 국무부는 협정문 타결에 맞춰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이란 제목의 인도태평양 전략보고서를 발표하는 견제구를 날렸다. 폼페이오 장관은 보고서 인사말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인도․태평양 지역에 대한 미국의 관여를 행정부의 최우선순위에 둬왔다”며 “이 지역에 대한 깊은 관여, 이 지역의 번영에 대한 전념을 계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30쪽 분량의 이 보고서에서 미국은 인도를 “우리의 전략적 동반자”라고 표현하며 “(동맹국은 물론)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들과 동반자 관계를 심화․강화하고 있다”며 오스트레일리아와 일본, 한국을 언급한 뒤 필리핀과 타이, 아세안을 거론했다. 또한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은 인도양과 태평양을 연결하는 일본의 ‘민주주의 안보 다이아몬드’ 구상, 인도의 동방정책, 한국의 신남방정책 등과 긴밀히 보조를 맞추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 RCEP와 CPTPP 관계설정 현안으로 등장
한국으로서는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 타결에 따라 지난해 12월30일 발효한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과의 관계가 주요한 관심사로 떠오르게 됐다. CPTPP는 일본과 오스트레일리아가 주도한 것으로, 인구 5억명과 글로벌 국내총생산 10조달러를 포괄하는 무역합의다. 11개 회원국으로 이뤄진 CPTPP는 일단 오스트레일리아, 캐나다, 일본, 멕시코, 뉴질랜드, 싱가포르, 베트남 등 7개국과 함께 출발했다. 브루나이, 칠레, 말레이시아, 페루 등 4개국은 협정을 비준하는 대로 합류한다. 한국은 빠져 있다.
특히 CPTPP는 TPP의 버전2에 해당한다. 트럼프 행정부가 2017년 출범과 함께 탈퇴했으나, 일본이 끌어오며 출범시킨 것으로, 양자협상에 치중하고 있는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 견제 차원에서 인도와 한국을 끌어들이며 참여 쪽으로 돌아설 가능성은 늘 있는 상황이다. 한국으로서는 CPTPP 가입을 염두에 둬야 하는 상황이다.
한국은 일본과 멕시코를 빼곤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캐나다, 싱가포르, 베트남, 페루, 칠레, 아세안(말레이시아. 브루나이 포함) 등 CPTPP 참여국 대부분과 양자 자유무역협정(FTA)을 이미 체결해 놓고 있다. 현재 한국과 무역전쟁을 벌이고 있는 일본이 무리하게 반대만 하지 않는다면, 가입이 어렵지는 않은 편이다.
문제는 중국이 CPTPP에 가입하려고 할 경우다. 이는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과 어긋나는 것이라 일본이나 오스트레일리아 등 동맹국을 통한 견제가 매우 강할 것으로 예상된다. 인도와 한국을 묶어 미국이 CPTPP에 가입하려는 움직임이 가속화할 수도 있다. 중국의 시도는 CPTPP 11개 회원국 중 8개국의 최대 교역상대국이 중국이라는 점에 기반한다. 동남아시아국가연합(아세안),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와 중국이 맺은 자유무역협정들도 중국에게는 발판이 될 수 있다.
열쇠는 지난해 10월 중국과 경제개선 합의를 이룬 일본이 쥐고 있을 수 있다. 그러면서도 일본은 중국을 견제하는 ‘민주주의 안보 다이아몬드’ 구상을 일찌감치 확정해 추진하고 있다. CPTPP에 중국을 가입시킬 유인이 적다는 얘기다. RCEP가 본궤도에 오르면서 RCEP나 CPTPP에 대한 인도의 향방, CPTPP에 올라타려는 중국의 시도와 미국․일본의 견제 등 본격적인 지정학이 펼쳐질 것임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이코노미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