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중국이 내건 전제조건의 하나를 미국이 수용한 것
[이코노미21 조준상 선임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7월 340억달러 규모에 대해 25% 관세 부과를 시작으로 1년4개월 가까이 계속되고 있는 미중 무역전쟁을 일단 ‘무승부’로 일단락지으려는 움직임을 정말로 보이고 있다. 중국 쪽에서 11월7일 “두 나라가 협상 진전에 다라 단계적으로 고율 관세를 취소하는 데 동의했다”고 발표하고, 미국 쪽에서도 이를 전면 부인하지 않고 있어서다. 강력한 반대가 있다는 얘기가 흘러나오지만, ‘단계적 관세 철회’ 합의설에 올라가는 증시를 보고 “새로운 기록, 즐겨라”고 날린 트럼프의 트윗은 어디에 무게가 실려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런 진단은 ‘단계적 관세 철회’ 합의가 갖는 의미에서 나온다. 지난 10월11일 13차 협상에서 트럼프가 “1단계 합의”라고 부르는 ‘구두합의’(handshake deal)에 이르는 과정에서 중국 협상단 대표인 부총리 류허는 ‘무역전쟁 시작 이전으로 관세 복귀’를 주장하지 않았다. 대신에 ‘미국 쪽의 2500억달러 어치에 추가관세 부과(10월15일) 유예-중국 쪽의 미국 농산물 400억~500억달러 구매’를 핵심으로 하는 구두합의를 했을 뿐이다. 관세 철회는 지난 5월 11차 협상에서 중국이 상당한 정도로 진전된 합의를 뒤집으며 내건 세 가지 전제조건의 하나였다. 그때 류허는 미국과 3대 이견으로 △모든 관세 철회(취소) △미국 제품 구매량의 현실성 △합의문의 균형성을 꼽았고, 합의 타결의 전제조건으로 △관세 철회 △강제기술이전 주장 수용 불가 △국가 차원의 지식재산권 절도 주장 수용 불가를 내걸었다(http://www.economy21.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06592).
그런데 이번에 1단계 합의를 구체화시키는 후속협상에서 두 나라가 동시에 ‘단계적 관세 철회’에 합의했다는 얘기가 나온 것이다. 중국 상무부 대변인의 말에 따르면, “만약 두 나라가 1단계에 합의에 이른다면 반드시 합의 내용을 바탕으로 동시에 같은 비율로 고율관세를 취소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중국이 지난 5월 내건 세 가지 전제조건의 하나인 관세 철회가 사실상 관철된 것이다.
이를 둘러싸고 미국 내부에서 상당한 이견이 나오는 것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그동안 미국 쪽의 기본 협상전략은 1단계는 추가관세 부과 유예로 가고, 중국이 합의 이행에 불성실할 경우 언제든 관세를 부과함과 동시에 이를 고리로 2단계, 3단계 합의로 가는 것일 가능성이 높아서다. 이런 상황에서 두 나라 모두의 단계적 관세철회는 협상의 지렛대를 약화시키는 것으로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지금까지 상황은 트럼프가 이를 수용했음을 가리킨다. ‘그랜드 딜’ 아니면 ‘노 딜’이라는 말로 ‘전부 아니면 전무’만 있을 뿐이라고 중국을 압박해오던 트럼프가 결국 ‘스몰 딜’을 하는 것으로 물러섰다는 것이다. 그것도 단계적 관세철회가 갖는 함의는 당분간 ‘무승부’라고 선언하는 것에 가깝게 말이다. 이를 너무 과장되게 받아들이기는 것은 금물이다. 관세를 동원해 양자 간 해법을 추구해오던 트럼프가 다자틀을 통해 이를 추구하는 쪽으로 선회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일본과 오스트레일리아 주도로 타결한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에 중국이 올라타려 할 경우, 미국이 참여하면서 국영기업 보조금, 강제기술이전, 금융자유화, 지식재산권 존중 등 양자 협상을 통해 풀려던 중국의 구조적 문제들의 해결을 전제로 내걸 수도 있다는 얘기다.
탄핵 몰린 트럼프, 성장세 유지 필요성 더 커져
트럼프가 무역전쟁에서 일단 '무승부'로 흘러가는 배경은 짐작하는 대로다. 먼저, 트럼프가 맞이한 탄핵 소추다. 하원 전체투표에서 탄핵조사 공식 의결과 함께 트럼프는 민주당에 탄핵의 올가미를 씌우는 데 집중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새로 밝혀진 게 뭐냐?’며 나라의 소중한 자원과 시간을 민주당이 헛되이 낭비하고 있다고 역공을 취하는 데 전력을 쏟아야 한다는 얘기다. 이를 통해 1998년 12월 빌 클린턴에 대한 탄핵소추와 비슷한 상황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당시 민주당은 빌 클린턴이 ‘오입쟁이’임을 모두가 알고 있으면서도 ‘새로 드러난 게 없다’는 것과, 공화당과 한 배를 탈 수는 없지 않느냐는 탄핵의 동학 속에서 상원에서 부결됐고 클린턴은 살아남았다. 문제는 ‘이기느냐 지느냐’만 탄핵에서 민주당이 질 경우 트럼프의 반격과 역공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엄청나게 거셀 것이라는 점이다.
트럼프를 일단 ‘무승부’ 선언 쪽으로 흘러가는 배경으론 역시 상대적으로 견조한 미국 경제를 대선 때까지 유지해가는 게 트럼프에게 유리하기 때문이다. 탄핵소추로 인해 경제를 견조하게 유지해나갈 필요성은 트럼프에게 한층 더 커졌다. 제롬 파월 의장에 대한 꾸준한 압박을 통해 연준은 미중 무역전쟁이 낳은 불확실성을 이유로 이미 세 차례나 기준금리의 ‘보험성 인하’에 나선 상황이다. 단계적 관세철회 합의 소식에 폭등하는 증시를 향해 “새로운 기록, 즐겨라”는 트럼프의 트윗은 이를 단적으로 상징한다.
단계적 관세 철회 합의는 견조한 성장세를 유지하면서 중국에 진출해 있는 미국계 초국경(TNC) 기업들의 불확실성을 줄여주는 효과도 있다. 실제 투자자의 국적을 추적해 나가는 유엔무역개발회의(운크타드)가 개발한 방법론을 적용하면, 대중국 외국인직접투자에서 미국계 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공식통계의 1%가 아니라 10%로 증가한다. 초국경기업 내부의 거래를 감안하면, 대중국 관세 부과가 미국계 초국경 기업에 주는 부담은 애플 이외에도 상당히 폭넓게 작용하고 있음을 짐작하게 한다(http://www.economy21.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07077).
트럼프가 일단 ‘무승부’ 쪽으로 흘러가는 데는 중국 쪽 사정도 못지않게 작용하고 있다고 보는 게 정확하다. 공식 통계가 상당히 부풀려졌음을 감안해도 중국 경제는 최악의 상황에 있다. 2015년 때처럼 대규모 경기부양에 나서기는 어렵다. 그때 여파로 민간부문의 중소기업과 부동산개발업체들의 부채가 지나치게 과도하고, 이들 기업의 자금을 공급한 민간은행들의 상당수가 채무불이행 위기에 몰려 있다. 통화정책 완화도 제한이 걸렸다. 아프리카 돼지열병으로 중국 내 돼지의 절반이 줄어들면서 돼지고기를 포함한 생필품 가격이 급상승하며 인플레이션 압력을 높아져서다. 일부 국영기업을 빼곤 대부분의 만간기업들에 대한 대출금리는 그리 내려가지도 않고 돈이 제대로 흘러가지도 않는다. 결국 2015년과 달리 내수 부양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수출(해외수요)의 역할이 그때보다 훨씬 더 크다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게다가 대규모 탈출이 아직은 현실화하지는 않았지만 외국계 기업들의 중국 탈출 움직임은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 최근 중국 총리 리커창이 삼성전자 중국공장을 찾아 중국 내 잔류를 요청한 사건은 이런 우려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중국 내 상당수 외국계 기업이 공장을 이미 이전했거나 이전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는 소식은 더 이상 뉴스가 아니다. 중국으로서는 성장과 일자리 유지를 위해 미국 시장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외국계 기업들의 우려와 불확실성을 풀어줘야 한다. 공장 이전 계획이 이사회를 통과라도 한다면, 일당독재 국가도 이를 되돌리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그만큼 1단계 합의의 후속협상 과정에서 중국이 미국 쪽에 이를 끈질기게 설득하고 요구했을 가능성이 컸을 것으로 예상된다.
손뼉은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 미중 양쪽이 무역전쟁을 중지하는 1단계 합의를 최종 타결하면서 일단 ‘무승부’를 선언한다면 두 나라의 이해에 일치하는 데 따른 결과다. 하지만 무역전쟁 이외의 영역에서 두 나라 간의 전쟁은 당분간 계속될 것이다. 1단계 잠정합의 와중에도 화웨이를 향한 미국의 공세를 포함해 5G 네트워크 핵심영역에서 화웨이 통신장비 배제로 기우는 독일의 움직임 등은 기술전쟁이 계속될 것임을 강하게 시사한다. [이코노미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