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제 중심은 아시아로 이동할 것
<특집1 - 동북아경제질서 재편 – 미중무역전쟁 이후 세계경제 어디로 가나①>
이 기사는 월간지 ‘이코노미21’ 1월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기사량이 너무 많아 한번에 읽기에 부담된다는 독자들의 의견을 반영해 두 번에 걸쳐 게재합니다. - 편집자 주
어제까지의 글로벌라이제이션 체제를 만든 역사적 계기들
미국 우선주의에 입각한 트럼프의 광폭 행보가 어제까지의 글로벌라이제이션 체제를 뒤흔들고 있다. 이제 어떤 세계가 전개될 것인가라는 물음을 신중하게 제기해야 할 시점이다. 이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는 우선 어제까지의 글로벌라이제이션 체제의 형성과정 및 그 특질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어제까지의 글로벌라이제이션 체제의 두드러진 특질로는 세 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 팍스 아메리카나 체제였다. 둘째, 미국을 제외한 나머지 국가들(The Rest)의 경제 성장이 빠르게 진행되어 경제적 다극 체제가 형성됐다. 셋째, 글로벌 공급망을 형성하는 다국적 동맹 체계가 발전했다. 하나하나 살펴보자.
1) 팍스 아메리카나의 형성
20세기에는 팍스 아메리카나 체제가 완성되었는데, 그것은 생각만큼 빠르게 진행된 것은 아니었다. 미국은 이미 1920년대에 19세기 후반부터 시작된 과학기술혁명의 성과를 담아낼 대기업 체제와 대중 소비사회를 형성하여, 생산기술 혁신을 선도하면서 세계 최고 수준의 생활 수준을 누리는 부자 국가가 되었지만, 당시에 팍스 아메리카나 체제가 형성되었던 것은 아니었다. 패권 국가체계는 기술 수준이나 소득수준에 의해 결정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팍스 아메리카나 체제가 형성되기 위해서는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무역체계, 국제통화체계, 군사안보체제가 형성되지 않으면 안 된다.
미국 중심의 국제무역체계와 국제통화체계는 제2차 세계대전이 연합국의 승리로 마무리되면서 이른바 IMF-GATT 체제로 구현되었다. IMF-GATT 체제에서 미국은 자유무역 질서의 수호자이자 국제통화체계를 관리하는 기축통화국이 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자본주의국가와 사회주의국가 간의 냉전체제가 형성되면서 자본주의국가의 안전보장을 지키기 위해 미국 중심의 군사동맹체제가 형성되었으며, 이 군사동맹체제는 냉전체제가 해체된 이후에도 존속하고 있다.
냉전체제가 붕괴한 이후에도 냉전 시대에 형성된 군사안보체제가 유지된 이유로는 군사안보체제가 갖는 경로 의존성을 들 수 있다. 냉전체제는 막강한 국방력을 가진 국가 간의 대치구조를 만들었는데, 냉전체제가 해체되어도 이와 같은 군사적 대치상태를 해소하지 않는 한, 미국의 동맹국들은 미국과의 군사동맹체제를 벗어나기 어렵다. 그뿐만 아니라 미국도 막강한 군사력을 가지기는 했지만, 세계 각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분쟁이 발생하면 미국의 군사력만으로 해결하기는 어려웠다. 이와 같은 현실에 규정되어 냉전 시대에 형성된 군사동맹체제는 냉전체제가 해체된 이후에도 계속 존속하고 있다. 물론 군사동맹체제의 내에서 경제협력체제가 형성되었던 냉전 시대와는 달리, 냉전체제가 해체된 이후에는 군사동맹체제를 넘어서는 경제협력체제가 광범하게 형성되었다. 군사동맹체제와 경제협력체제의 부정합적 공존이 일상화된 것이다. 안보는 미국에 경제는 중국에 의존하는 한국이나 ASEAN의 처지는 이와 같은 과정에서 형성된 것이다.
2) 플라자 합의와 동아시아 안행(雁行) 체계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을 제외한 나머지 국가 중 상당수는 매우 높은 경제 성장을 이루었다. 특히 1950년대와 1960년대에 유럽의 독일과 동아시아의 일본의 경제 성장이 두드러졌다. 왜 독일과 일본이 높은 성장을 이룰 수 있었는가에 대해서는 많은 논의가 있는데, 본 글에서는 동아시아에서의 변화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일본에 대해서만 살펴본다.
일본의 경우, 제2차 세계대전에 의한 생산시설의 파괴로부터 부흥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재건 효과가 고도성장의 기폭제 역할을 하였지만, 그것만으로는 왜 일본이 세계 최초의 고도성장국가가 되었는가를 설명할 수는 없다. 1945년 이전에 형성된 성장 잠재력이 당시에는 실현되지 못하고, 1950년대 이후에야 발현된 점도 고려하여야 할 것이다. 이와 관련된 두 가지 점만 지적하여 둔다. 첫째, 1945년 이전에 교육에 대한 투자는 많이 이루어졌지만, 교육 투자의 성과는 상당한 시간이 지난 후에야 효과가 나타난다. 둘째, 근대적 산업을 형성하기 위해 큰 노력이 이루어졌지만, 호주제도로 인해 노동력의 이동이 제약되었기 때문에 이른바 쿠즈네츠적 성장 효과가 충분히 발휘되지 못하다가 전후 패전개혁의 하나로 이루어진 호주제도의 폐지로 쿠즈네츠적 성장 효과가 빠르게 실현되었다. 물론 앞서 지적한 일본 내부적인 요인만으로 일본의 고도성장을 온전히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미국은 1950년대 이후 우방국에게 기술을 전수하는데 우호적이었으며, 시장을 개방하는데에도 우호적이었다. 일본은 미국이 제공하는 이와 같은 우호적인 조건을 고도성장을 달성하는 기회로 활용하였다.
어떻든 일본은 고도경제 성장 체계를 구축하여 빠르게 미국과의 격차를 축소해 감으로써 일본의 경제 성장에 대한 미국 내 위기감이 형성되었으며, 일본이 자동차·가전·반도체 등 분야에서도 미국 시장을 잠식하여 들어감으로써 미국의 대일 무역적자 폭이 켜졌으며, 미일 무역마찰이 격해졌다. 이와 같은 상황을 배경으로 하여 1985년에는 이른바 플라자 합의가 선진국 재무부 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G5)에서 결정되었다. 이 합의는 미국의 무역적자를 해소하기 위해 고평가된 달러 가치를 정상화할 필요가 있는데, 이를 위해 국제적인 협조체계를 유지한다는 것을 내용으로 삼고 있다.
[그림 1] 달러-엔 환율 (1973년 1월 – 2019년 8월)
플라자 합의는 엔화 가치를 높이는 데 매우 성공적이어서, 1985년 9월에 1달러에 236.91엔이었던 엔화 가치는 1995년 4월에는 1달러에 83.53엔으로 떨어졌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만들 만큼 큰 폭의 엔화 가치의 상승은 어떻게 가능하였을까? 그것은 엔화 가치가 지속해서 상승할 것이라는 시장의 기대를 형성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인데, 이와 같은 기대의 형성에는 두 가지 점이 중요하게 작용했다. 첫째, 1985년 당시 엔화가 저평가 상태에 있다는 시장의 컨센서스가 있었다. 둘째, 미국, 일본, 영국, 프랑스, 서독으로 구성된 선진 5개국이 달러의 가치를 낮춘다는 명확한 방향을 가진 협조적 개입을 유지할 것이라는 믿음을 시장에 주었다. 엔화 가치의 상승에 대한 기대가 확실하다면 엔화 가치가 오르기 전에 엔화를 사려는 투기적 목적의 엔화 수요가 발생하는데, 엔화에 대한 투기적 수요는 엔화 가치의 상승에 대한 기대를 실현하는 자기실현적 기대체계를 작동시킨다. 엔화 가치의 상승에 대한 자기실현적 기대체계에 의한 엔화의 상승은 1995년 버블이 붕괴할 때까지 지속하였다.
그런데, 달러 가치의 하락은 미국의 무역적자를 해소하는 데 이바지하지 않았다. 왜 달러의 가치가 낮아졌는데도 미국의 무역적자는 줄어들지 않았는가? 그 이유 중의 하나는 엔화 가치의 상승과 달러 가치의 하락이, 일본과 미국의 균형 잡힌 무역체계가 아니라, 일본에서 미국으로의 직접 수출 대신에, 동아시아 NIEs, ASEAN, 중국 등을 통하는 우회 수출로 전환되었기 때문이다. 이 우회 수출의 체계는 일본이 동아시아 각국에 소재, 부품, 자본재를 수출하는 체계, 동아시아 각국이 가공한 공산품을 미국에 수출하는 체계를 하위 체계로 가지고 있었다. 이 속에서 아시아·태평양의 안행형태적 분업구조가 심화 발전하게 되었으며, 일본의 고도경제 성장 체계는 동아시아 NIEs, ASEAN, 중국의 고도경제 성장 체계로 이어지게 되었다. 현재 미·중 간의 무역마찰은 이와 같은 역사적 전개 과정을 배경으로 한 것이다.
3) 메커트로닉스 혁명과 글로벌 공급망의 형성
플라자 합의가 동아시아 NIEs와 ASEAN과 중국의 경제 성장을 초래한 한 요인으로 작용하였음을 살펴보았는데, 이것만으로 동아시아 NIEs와 ASEAN과 중국의 경제 성장을 온전히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메커트로닉스 혁명으로 개발도상국의 산업구조 고도화가 쉽게 되었다는 점도 간과되어서는 안 된다. 이 점을 명확하게 하기 위해서는 메커트로닉스 혁명이 어떻게 선진국 기술의 후진국으로의 이전을 쉽게 하였는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전반에 걸쳐 영국에서 형성된 기계제 공장체계나 20세기 전반에 미국에서 형성된 포디즘적 생산체계는 원동기와 작업기, 작업장 배치 등에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와서 공업 생산력을 비약적으로 높였다. 이 시기 기계는 인간의 근력이 아니라 원동기에 의해 작동된다는 점에서 그 이전의 도구와 구분되지만, 어떤 물건을 만들지에 대한 인간의 정보적 개입이 없으면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도구적 성격을 완전히 극복한 것은 아니었다. 청사진으로 만들어진 지식과 기술은 이식하기 쉽지만, 오랜 작업 과정에서 형성되고 전수되는 숙련이나 Know-how는 상대적으로 이식하기 쉽지 않아, 노동집약적 산업에 어느 정도 경쟁력을 가진 개발도상국도 이와 같은 새로운 기능과 숙련이 있어야 하는 자본 집약적 산업으로 산업구조를 고도화하는 것은 어려웠다.
개발도상국이 자본 집약적 산업으로 산업구조를 고도화하는 것을 막았던 기술적 장벽을 크게 낮추어 준 것은 1970년대부터 시작된 메커트로닉스(mechatronics) 혁명이었다. 정보통신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함으로써 기존에 기계화되지 않고, 인간의 능력에 의해 이루어졌던 작업의 정보적 통제체계가 기계장치에 합체하게 된 것이다. 메커트로닉스 혁명으로 자본 집약적 산업의 지역적 이전 가능성이 크게 높아지면서 기존에 노동집약적 산업에 특화되어 있던 개발도상국들이 산업구조 고도화를 도모하였는데, 플라자 합의는 메커트로닉스 혁명이 내장한 공업생산입지의 재배치 가능성을 현실화시키는 동력으로 작용한 것이다.
이후 정보통신기술은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메커트로닉스 혁명은 ICT 혁명으로 심화하였으며, 이를 배경으로 하여 산업 내 분업이 전 세계적으로 진행되는 글로벌 공급망 체계가 형성되었으며, 이것은 미국을 제외한 나머지 국가들(The Rest)의 발전에도 크게 이바지하게 되었다.
어떤 미래가 펼쳐질 것인가?
2016년 11월 8일,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의 제45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당시 필자는 트럼프가 내건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라는 슬로건으로 제시된 정책들이 미국을 더 강하게 하기보다 더 약하게 할 것이라 우려한 글을 쓴 바 있는데, 그 우려는 트럼프의 집권 마지막 해인 내년에 본격적으로 실현될 것이다.
미국 우선주의에 입각한 트럼프의 정책은 단기적으로는 미국이 근린 궁핍화 정책(beggar my neighbor policy)으로 얻은 이득 때문에 다른 나라보다 더 나은 경제적 성과를 거둘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저생산성 부문의 비중이 증대함으로써 구조적 부담(structural onus)이 발생할 것이고, 국제적 신뢰를 상실함으로써 패권 국가로서의 지위가 취약해질 것이다. 미국을 제외한 나머지 국가들은 미국의 근린 궁핍화 정책으로 인한 손실뿐만 아니라 ‘미국 주도의 글로벌라이제이션’의 해체에 따른 손실을 보게 되겠지만, 장기적으로는 ‘미국없는 글로벌라이제이션’으로 성장의 동력을 회복할 것이며, 그 속에서 세계 경제의 중심은 아시아로 빠르게 이동할 것이다.
따라서 이제 팍스 아메리카나 시대를 넘어선 새로운 시대에 대해 생각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팍스 재패니카일까 팍스 시니카일까 팍스 코리아나일까 아니면 팍스 아시아나일까? 이중 어느 것도 실현되지 않을 수 있지만, 이러한 질문들은 어제까지의 글로벌라이제이션의 시대를 넘어선 새로운 시대를 조망하는데 필요한 우리의 상상력을 증대시켜 줄 것이다.
미·중 무역전쟁의 끝은 제2의 플라자 합의일까 제2의 아시아 외환위기일까?
현재 미국의 중국 때리기를 1980년대 일본 때리기에 비교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현재 진행되는 미·중 무역전쟁 및 기술패권전쟁은 제2의 플라자 합의로 이어질 것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는데 과연 그럴까?
앞서 보았듯이 1985년 플라자 합의가 성공한 것은 엔화가 지속해서 오를 것이라는 시장참가자들의 기대를 형성하는 데 성공하였기 때문이다. 중국이 제2의 플라자 합의의 덫에 걸릴 것으로 보는 것은 미국이 위안화가 지속해서 오를 것이라는 시장의 기대를 형성하는 데 성공할 것이라 보는 견해인데, 현실은 그렇게 되기 어렵다.
우선 위안화는 IMF가 지적한 바와 같이 인위적으로 저평가된 상태라고 할 수 없으며, 보유 외환의 감소, 자본유출 위험의 증가, 기업 부실채권의 문제 등 때문에 위안화는 가치 상승의 위험보다 가치 하락의 위험이 더 큰 상태에 있다. 트럼프가 관세 인상의 효과를 위안화 가치 하락으로 흡수하려 한다고 겁박한다고 하여 위안화 가치가 상승할 것이라는 시장의 기대가 형성되는 것은 아니다. 트럼프는 위안화 가치가 지속해서 상승할 수 있다는 믿음을 시장에 줄 수 있는 신뢰할 만한 개입 체계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미·중 무역전쟁은 위안화의 가치가 지속해서 상승할 것이라는 기대 속에 위안화에 대한 투기적 수요가 형성되는 제2의 플라자 합의의 가능성은 작고, 오히려 중국으로부터의 자본유출의 위험이 증가하여 위안화가 하락할 것에 대비한 투기적 수요가 형성되어 제2의 아시아 외환위기가 중국에서 발생할 가능성이 더 커 보인다.
미·중 무역전쟁의 귀결을 평가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점을 추가로 고찰할 필요가 있다. 첫째, 플라자 합의 이후 일본 경제의 장기 추이와 아시아 외환위기 이후 관련 아시아 국가들의 경제의 장기 추이를 비교하여 보면, 전자보다 후자가 덜 나쁜 결과를 초래하였다고 보인다. 즉 중국은 제2의 아시아 외환위기를 경험할 수도 있지만, 그에 적절한 조처를 한다고 한다면 그 위기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둘째, 제2의 플라자 합의이든 제2의 아시아 외환위기이든 동아시아 내의 공업입지 구조의 격한 변화를 초래할 것이라는 점이다. 이것은 우리가 현재 생각하는 것과는 상당히 다른 경제 지형이 형성될 수도 있음을 의미한다. 과연 아시아의 경제 지형은 어떻게 변화될 것인가?
다음 기사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