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로 지역간 의료격차 심화…지역의료체계 붕괴 가능
고속도로 4∼7㎞ 설치 비용으로 종합병원급 공공병원 설립 가능
[이코노미21 원성연 편집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공공의료의 중요성이 다시 주목 받고 있다.
국가적 재난상황에서 체계적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선 민간의료 서비스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이런 한계를 보완하기 위한 것이 공공의료다. 우리나라가 코로나19라는 전대미문의 사태 속에서 방역모범국이라는 평가를 받은 이유 중 하나로 의료체계를 꼽을 수 있다.
우리나라는 영리의료법인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다시 말해 민간의료기관도 공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다. 그래서 이익만을 추구하는 영리의료법인과는 달리 우리나라의 민간의료기관은 합리적 비용으로 이용이 가능하면 국가적 재난시기에 정부의 지침을 공유하는 것도 용이하다.
이번 사태에서도 정부는 공공의료기관만 아니라 민간의료기관에게도 필요한 조치를 요구했으며 민간의료기관들도 이같은 방침을 성실히 따르고 있는 편이다. 하지만 영리만을 추구하지 않는다해도 민간의료기관은 엄연히 민간조직이며 운영을 위한 최소한의 이익추구는 불가피하다. 이런 점에서 감압시설 등 평상시 사용이 많지 않은 특수시설을 민간의료기간이 충분히 운영‧유지하는 것은 쉽지 않다. 우리나라 의료기관들의 공공성이 다른 나라보다 높은 편이지만 공공의료가 이를 보완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이유다.
우리나라 국민 3명중 2명은 의료서비스가 공적자원이라고 생각한다. 국립중앙의료원이 지난 6월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국민의 67.2%는 의료서비스가 공적자원이라고 답했다. 이전에는 공적자원이라는 응답이 22.2%에 그쳤으나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세 배 이상 늘었다. 이번 사태를 통해 우리나라 의료체계가 어떻게 구성돼야 하는지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이 바뀌었음을 엿볼 수 있다.
공공의료의 필요성에 대해선 정부, 국민, 정치인, 의료인 등에서 별다른 이견이 없다. 공공의료의 양적‧질적 수준을 높여야 한다는데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으나 문제는 어떻게 할 것인가다. 현재 공공의료기관이 가지고 있는 병상 비중은 9.6%에 불과하다.
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연구원은 ‘공공의료 확충 필요성과 전략’ 보고서에서 공공병원에 대한 투자 확대가 필요하다고 강조하며,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 통합적인 관리‧지원을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보고서는 인구고령화로 수도권과 비수도권, 농어촌 지역간 의료격차가 더욱 심화되고 있으며 고령화로 중규모 민간병원의 수익성이 악화하면서 지역의료시장이 붕괴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공공의료가 필요한데 현재 우리나라의 공공의료는 지난해 12월 기준 5.7%에 불과하다. 지방의료원을 포함한 일반진료기능을 갖춘 공공의료기관은 63개에 불과하고 광역지자체 중에서 광주, 대전, 울산, 세종은 지방의료원조차 없다.
전체 병상 기준 공공병상은 2015년 10.5%에서 계속 감소해 지난해 9.6%까지 줄었다. 이는 프랑스(61.5%), 독일(40.7%), 일본(27.2%) 뿐아니라 의료부문에서 많은 비판을 받고 있는 미국(21.5%)에 비해서도 크게 낮은 수준이다.
중환자 치료병상 부족도 심각하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17일 기준 코로나19 중중환자용 가용 병상은 전국에서 119개에 불과하다. 특히 최근 확진자가 증가한 강원과 전남은 각각 2개, 1개뿐이다. 코로나19 확산세가 계속된다며 조만간 병상 부족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보고서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병상 300개 규모의 종합병원급 공공병원을 권역별로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한다. 설립비용 약 2000억원은 고속도로 4∼7㎞를 설치하는 비용 정도라고 설명했다.
공공병원이 비효율적이라는 일부의 주장에 대해서는 2016년 이후 지방의료원 중 절반 이상이 경상수지가 흑자로 전환됐다는 점에서 근거가 미약하다고 반박했다. 보고서는 또 공공병원이 의료경쟁력 확보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공공병원이 표준치료 지침에 따라 환자에게 적절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면 기존 민간병원 중심의 의료체계에서 문제로 지적된 과소‧과잉 진료 문제도 해소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공공병원은 이번 사태와 같은 감염병이나 재난 대응에서 중심이 될 수 있으며 국내에서 개발한 새로운 의료기기나 의료기술을 선도적으로 도입할 수 있는 시험대로 활용될 수도 있다.
김윤 서울의대 교수(의료관리학)는 코로나19 같은 감염병 위기사태시 효율적으로 대처하고 지역간 의료격차를 해소하기 위해선 현 의료체계를 재편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김 교수는 이를 위해 국립중앙의료원과 암센터ㆍ재활원ㆍ정신병원 등을 통합한 국가중앙의료원을 만들고 공공의료인력을 키우기 위한 국립의료전문원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이와 함께 국립대병원과 각 권역 단위로 진료협력체계를 구축하는 한편 지역거점병원을 확대하거나 새로 만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예산 지원과 예비타당성 면제 등 충분한 유인책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김용익 건보공단 이사장은 “코로나19와 같은 대규모 감염병 대응과 초고령 사회에 대비해 공공의료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사태로 다시 관심을 모으기 시작한 공공의료의 중요성이 향후 정책에 어떻게 반영될지 주목된다. [이코노미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