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 세계대회 최초 여자기사의 결승 진출
신진서 9단, 김명훈 9단을 이겨 결승에 진출
[이코노미21 이재식] 11월 4일 열렸던 삼성화재배 준결승전에서 대이변이 벌어졌다. 최정이 세계 랭킹 2위 변상일의 대마를 잡고 이겨 결승에 진출한 것이다. 삼성화재배란 대회의 중량감과 메이저 세계대회 최초 여자기사의 결승 진출이 더하여 국내는 물론 중국과 일본의 바둑계까지 큰 반향을 일으켰다.
변상일은 마음의 부담이 없진 않았겠지만 자신이 최정에게 질 것이라고는 꿈에서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졌고, 그냥 진 것이 아니라 대마가 몰살당하며 완패를 했다.
생중계 중인 대국에서 변상일은 중반으로 접어들며 모든 사람들이 알아볼 수 있도록 울기 시작했다. 그 울음은 쉽게 그치지 않았고, 돌을 거두는 순간까지 이어졌다.
온라인 대국이지만 바로 옆이라고 할 수 있는 자리에서 바둑을 뒀기 때문에 최정은 변상일의 울음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변상일의 눈물을 나의 유리함이나 상대의 불리함으로만 간파하기에는 최정이 그리 모진 성격은 아니다. 마음은 애틋했겠으나 최정은 더욱 거세게 몰아쳤고, 그 모습을 지켜본 전직 유명 해설자는 ‘때린데 또 때리고, 항복하려는데 끌어내어 더 난타한다.’고 표현했다. 그게 사실이었고, 권투로 비유하자면 그로기 상태의 상대 선수를 다운이 되지 못하도록 일으켜 세워가며 주먹을 날린 것이라고 이해하면 되겠다. 권투는 심판이라도 있어 녹다운을 선언하거나 스태프가 수건이라도 던질 수 있지만, 바둑은 불행히도 본인이 던지지 않는 이상 대국을 중단시킬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프로기사들은 어릴 때부터 고도의 바둑 훈련만 받고 자라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세상 경험이 부족하고 험한 일을 겪어 보지 못한 순수한 사람들이 많다. 보는 사람들이 딱할 정도로 눈물을 흘린 이유는 변상일만이 아는 것이겠지만, ‘남자가 웬 눈물이냐?’고 몰아세우기에는 너무나 복잡한 감정적 변화가 있었을 것이니 그의 눈물을 쉽게 비난하지는 말자.
기자는 얼마 전 최정이 ‘내리막길’이라는 역대급 오보(?)를 썼는데, 이 기회에 최정에게 진심으로 미안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최정은 ‘내리막길’이라는 주변의 수군거림을 밀어내고 화려하게 부활했다.
11월 5일 펼쳐진 또 다른 준결승전에서는 이변 없이 신진서 9단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김명훈 9단을 이겨 결승에 진출했다. 신진서는 세계 랭킹 1위의 기사이며, 자타공인 인공지능에 가장 근접한 사나이다. 오죽하면 별명이 신공지능일까?
바둑판은 네모지만 바둑돌은 둥글납작하다. 일본 최강자 이치리키 료와 중국 최강자 중 한 명인 양딩신, 한국 최강자 중 한 명인 변상일을 물리치고 올라온 최정, 결과나 바둑 내용을 보면 우연이나 행운으로 볼 수가 없다. 객관적 전력에서는 최정이 신진서에게 분명히 밀리지만 승부는 신발끈 묶어봐야 알 수 있다. 더구나 그 신발은 지네의 신발이다. 바둑이란 너무나 변수가 많은 경기다.
최근 여자바둑계 최강자로 확실히 자리매김한 오유진 9단에게 결승전 결과가 어떨 것인지 물었더니, “단판이라면 최정 선수가 이길 수도 있지만, 3번기에서 승리하는 것은 솔직히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워낙 상승세라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진검승부를 벌어야 할 두 사람은 친한 사이다. 큰 부담이 없는 최정과 부담 백배인 신진서, 최정 인생 최고의 바둑을 기대해 본다. 삼성화재배 결승전은 11월7일부터 시작된다. [이코노미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