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미21 이재식]여자프로기사 송혜령 3단(이하 ‘송혜령’)은 아마추어 시절부터 기재가 특출했던 것으로 유명했으며, 서초고등학교 2학년 때 프로에 입단했다. 다른 프로기사들과 마찬가지로 9살부터 도장을 다녔으니 당연히 학교생활은 제대로 하지 못했다.
바둑 명문 권갑용 도장은 처음에 송혜령을 받아 주지 않으려고 했다. 바둑 실력이 너무 약하다는 것이 이유였다. 이후 송혜령의 아마추어, 프로 시절을 살펴보면 도장의 판단은 틀렸던 것 같다. 초등학교 때는 다른 것에는 관심이 없고 정말 바둑이 좋아서 도장에만 나갔다.
아버님이 바둑을 좋아해서 적극 지원해줬고, 같이 바둑도 종종 뒀지만 아버님이 지기 시작하면서부터 도전을 안 하신다고 한다.
프로기사들은 대부분 학교와 거리가 멀지만 송혜령은 요즘 폐과 문제로 말이 많은 명지대학교 바둑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체육교육과 스포츠 매니지먼트 석사 과정에 진학했다. 대학 때 외국과 교류활동도 많이 했고, 한국기원에서 지도자로 미국에 파견한 적도 있어 대학 졸업 후 외국 진출을 모색했으나 코로나 때문에 뜻대로 되지 않았다, 송혜령은 바둑을 떠날 수는 없지만 새로운 일에 호기심을 느끼고 더 많은 분야를 경험하고 싶다고 한다.
입단 후에 행복했는지 물었다. “입단하고 3개월만 천국이었고, 이후에는 방황을 많이 했어요. 어린 나이였던 데다 프로기사에 대한 환상이 있었는데 경쟁은 더 치열해지고 일상은 비슷했습니다. 이기면 강자고… 성적으로 말해 주는 살벌한 세계거든요. 입단 하는 순간 내로라하는 사람들만 모인 집단으로 들어가는 건데, 그 안에서 나는 ‘보통 사람이구나’를 처음 느꼈습니다. 별 거 없는 줄 알았던 프로 세계는 막상 부딪혀보니 많이 지고… 상상하던 현실이 아니구나 하고 느꼈어요. 성적을 아예 못낸 건 아닌데 최정상까지 바라보기 어려우니까… 정상권에 도달하려면 몇 배의 노력을 해야 하는 걸 스스로 아는데 내가 그 노력을 하기 힘들다 보니 다른 분야에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이 노력을 다른데 해 볼까 하는 생각 같은 거요…. 학업으로 전향한 이유는 단조로운 생활이 질리기도 하고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싶었거든요. 결국 어떻게든 바둑과 관련된 일을 할 것이고, 재미있는 생활을 해야겠다고 생각해요. 바둑을 싫어하지는 않습니다”
얼마 전 ‘홀트강동복지관’에서 발달장애인 바둑대회가 열렸는데, 소속팀을 열성적으로 응원하던 송혜령의 모습이 떠올랐다. 송혜령은 발달장애인 교육 프로그램인 ‘아름바둑’ 선생님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발달장애인들을 가르치는 일에 대해 물어봤다. “처음 한국기원의 공지를 봤을 때 대단히 신선한 발상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지원했어요. 시작해보니 정말 좋은 프로그램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발달장애인들을 가르치는 일에 긍지와 보람을 느낍니다. 다른 형태의 바둑이 나온 게 신기했어요. 발달장애인들이 수업에 잘 따라 오는 것도 신기하고, 해가 지나면서 발전하는 것도 놀라웠어요. ‘아름바둑’이 발전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해외에 보급하는 일에도 종사하고 싶고, 국내에서도 잘 정착이 될 수 있다면 열심히 해 보고 싶습니다”
현재 송혜령은 서울대학교 바둑동아리 지도사범으로도 근무하고 있다. 한국기원에서 지원하는 사업인데 동아리 지도하는 것은 아주 행복한 일이라고 한다. 나이대도 비슷해 제자들과는 친구처럼 지낸다. 마침 바둑 동아리에 모임이 있어 송혜령과 같이 동아리 방으로 자리를 옮겼다, 바둑을 검토하고 있던 4명의 학생들은 모두들 송혜령을 스스럼없이 누나라고 불렀다.
바둑이 신기해서 배웠다는 소비자학과 1학년 이병언 학생은 바둑 유튜버 방송에서 ‘서울대 도장 깨기’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한 유명 인사였다. 인문계열 1학년 권영준 학생과 연예인 김종국을 닮은 지구과학교육과 김룡기 학생에게 바둑을 좋아하면 여자 친구를 만들기 어렵지 않냐고 물었더니 4명 모두 이구동성으로 ‘여자 친구가 없지만 바둑에 더 에너지를 쏟는다’고 해서 한바탕 폭소가 터졌다. 실제 요즘 청춘들에게 바둑이 인기가 없는 것은 사실인데 서울대에서만 80명 정도의 동아리 구성원이 있다니 꼭 그런 것만은 아닌 것도 같았다.
바둑 동아리의 최강자 산업공학과 진민승 학생은 타이젬에서 9단에 등극해 있다. 타이젬 9단은 아마추어에겐 신의 영역에 가까운 수준이다. 송혜령에게 2점으로 버틸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한 후 송혜령의 얼굴을 한 번 보더니 금방 꼬리를 내려 또 폭소가 터졌다. 아마추어가 프로에게 2점으로 이기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기말고사를 앞두고 있어 4명의 학생들만 있었으나 동아리의 분위기는 정말 화기애애했다.
송혜령은 바둑 TV나 유명 유튜버에 출연을 자주 하고 조회수도 상당히 많이 나오는 편이다. 특히 고려대학교 바둑 동아리에서 찍었던 ‘몰카’는 구독자들로부터 엄청난 호응을 얻었다. 기타 솜씨도 수준급이니 유튜버에서 한 번 감상해 보기를 권한다. [이코노미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