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이 이어지는 명문도장을 만들고 싶다”
안국현, 오정아, 문도원 등 42명의 프로기사 배출
지도자의 길로 들어선 것은 가장 잘한 선택중 하나
[이코노미21 이재식] 프로바둑계에서도 부부기사들이 있다. 박병규 9단(이하 ‘박병규’)과 김은선 6단(이하 ‘김은선’)은 김영삼 9단과 현미진 5단, 이상훈 9단과 하호정 4단에 이은 프로바둑계 3번째 부부 기사다.(중국 프로기사와 결혼한 권효진 7단을 포함하면 4번째)
박병규는 조훈현과 서봉수가 활약하던 시대를 풍미했던 장수영 9단(이하 ‘장수영’)의 제자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 그는 명문 도장인 ‘장수영 바둑도장’의 운영을 물려받게 된다.
스승이 쓰던 도장 이름을 그대로 쓰는 이유를 물어 봤다. “‘장수영 바둑도장’은 1999년 용인 수지에서 시작해 2001년 마포로 이전한 후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저는 장사범님의 제자이기도 하지만, 도장에서 지도사범으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2008년 무렵부터 현역활동보다는 가르치는 일에 더 몰두했고, 그것이 현역활동보다는 제게 잘 맞았습니다. 2015년 3월에 장사범님의 권유로 도장을 이어 받게 되었는데 ‘장수영’이라는 명성이 도움도 되었지만, 일본의 기다니 도장처럼 전통이 이어지는 명문도장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으로 장사범님의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름도 쟁쟁한 이세돌, 목진석, 조한승 등과 같이 활동한 박병규로서는 후배 송아지 3총사(박영훈, 최철한, 원성진)와 같이 공부하면서 더 이상 성적을 내기 힘들다는 현실적인 한계를 느꼈다고 한다. 당시 토너먼트 프로기사 생활을 접고 대학을 가고 싶다는 생각을 잠시 했다. 뭔가 바둑과 관계없는 일을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었는데, 제자들을 가르쳐 보니까 너무 좋고, 제자들이 잘 따라 주기도 해서 지금의 길을 걷게 되었다고 한다.
장수영이 박병규를 신뢰하듯이 박병규에게 장수영은 부모님과 같은 존재다. 현역시절 개인 우승을 한 적은 없지만 결승전에 진출한 적은 있다. 'KBS 바둑왕전'이었는데 송태곤에게 져서 아쉽게 준우승에 머물렀다. 초등학교 때도 ‘KBS 어린이바둑왕전’에서 우승한 적이 있는 걸 보면 사람마다 연이 있는 기전이 있는 것 같다.
김은선은 현역활동 중이다. 현역활동은 어떤지?란 질문에 “프로바둑에서는 남자와 여자가 약간 다른 부분이 있어요. 저희 도장 출신 기사들이 활발하게 활동하는데, 제자들과 시합에서 만나도 별 부담이 없어요. 여자는 출산 등으로 공백이 있어서 아무래도 힘든 점은 많지만, 후배들이 치고 올라오는 건 좋은 일이니 별로 신경을 안 씁니다. 제가 성적이 중간 그룹이라서 승부에 대한 스트레스도 크지 않고, 후배들과 바둑 두는 게 즐겁습니다”
부부끼리 바둑을 두는지 물었더니, 부부기사들이 집에서 진지하게 바둑을 두는 일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바둑TV를 보거나 시합에 관한 이야기는 많이 하고, 상대가 출전한 시합에 대해 의견 교환도 한다. 프로기사니 말로도 복기가 가능한 수준이라 중요 대국이 있는 날에는 바둑판을 펼치지 않고 대국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다고 했다. 굳이 설명하자면 영화감독 부부가 영화의 어떤 부분에 대해 말로 서로의 의견을 교환하는 것을 상상하면 되겠다.
박병규와 김은선은 10살과 6살짜리 두 자녀를 두고 있다. 첫째는 프로기사 지망생이고 바둑을 곧잘 둔다. 일본과 중국의 경우를 보더라도 손‧자녀가 좋은 성적을 내는 경우가 드물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성적을 떠나 본인의 재능과 노력이 있으면 도와줄 생각이라고 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자녀가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없다면 거짓말일거다.
바둑도장을 평가할 때 프로기사의 숫자가 중요한지 걸출한 인물이 중요한지 물었더니 단적으로 판단하기는 어렵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장수영 도장’은 42명의 프로기사를 배출했다. 안국현, 이지현(남자), 이창석, 박건호, 홍무진 등이 그들이고, 여자기사들도 많이 있다. 장수영 도장은 상대적으로 여자기사가 강한 편이다. 오정아, 문도원, 김혜림, 박소율, 김민서, 이슬주 등 이름만 들어도 쟁쟁한 기사들이 많다. 현재 ‘장수영 도장’의 사범으로는 프로기사 이춘규, 백찬희, 주치홍이 지도중이다.
박병규는 지도자의 길로 들어선 것을 인생에서 가장 잘한 선택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을 가르치지 않았다면 경험하지 못했을 부분들이 많기 때문이다. 바둑도장은 입시재수학원과 비슷한 방식으로 운영되고, 전국에서 초1부터 20살 넘은 성인까지 모여든다. 특이한 것은 입단을 하기 위해 부족한 부분들을 채우려고 외국에서도 유학을 온다는 거다. 외국에서 오는 아이들은 당연히 어느 정도 실력을 갖춘 친구들이다. 일본과 중국 출신들이 대부분이지만 ‘장수영 도장’은 특히 일본 아이들과 인연이 깊고, 일본 제자 중에서 4명이나 입단을 도왔으니 대단한 성과를 냈다고 할 수 있다. 일본과 중국은 바둑의 인프라가 한국보다 훨씬 잘 만들어져 있을 텐데 왜 한국으로 유학을 오느냐고 물었다. “중국과 일본은 바둑에 대한 인프라가 어느 정도 갖추어져 있지만 바둑을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이 한국보다 열악합니다. 일본은 학업을 병행해야 하는 데다, 대회가 많이 없어 대회가 수없이 열리는 한국이 바둑 공부하기에는 천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김은선이 일본어를 잘 하기 때문에 일본인들을 상대하기에 많은 도움이 된다고 한다. 일본 출신 제자들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 봤다. “소우타라는 8살짜리 일본 아이는 어머니와 같이 한 번 와보고 장수영 도장에서 공부하기로 결정했어요. 일본으로 돌아가서 아이만 비행기에 태워 보내 기억에 남는 친구입니다. 장기체류비자를 발급 받기 위해 준비하던 중에 코로나 사태가 터지면서 결국 한국에서 공부를 하지는 못했지만요”
일본 유학생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친구는 일본 바둑계의 전설 ‘요다 노리모토’ 9단의 아들 ‘오오조라’(넓은 하늘이라는 뜻의 일본어)이다. 요다는 한국 바둑팬들에게 그리 좋은 인상을 주지 못한 기사지만 그에 얽힌 전설은 차고 넘친다. 바둑판을 쪼개 버릴 것처럼 돌을 두드리는 버릇, 일본 전통 복장인 기모노를 입고 대국하는 모습 등은 한국 바둑팬들에게 강한 인상으로 남아 있다. 요다는 이창호, 조훈현, 유창혁 등 한 시대를 풍미했던 한국 기사들과 마치 사무라이를 연상케 하는 모습으로 대결해 좋은 성적을 낸 바 있으며, 특히 조훈현이 요다와의 대국 중 노래를 부른 일화는 아직도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요다의 대국 태도가 심히 불쾌했던 조훈현이 요다의 심기를 건드리는 방법으로 노래를 불렀는데, 요다가 결국 귀마개를 하고 대국을 한 진풍경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로 치자면 이세돌이나 유창혁의 아들이 일본의 도장에 공부하러 간 것과 마찬가지인데, 일본에서 도장을 운영하던 김효정 프로기사의 언니가 이들을 연결해 주었다고 한다.
요다의 아들이 장수영 도장에서 공부하고 싶어 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박병규 부부는 도전해 보고 싶은 열정이 차올랐다. 오오조라를 한국으로 유학을 보내는 데는 일본기원 이사를 맡고 있던 요다의 부인 역시 적극적으로 나섰다고 한다. 요다 정도면 일본에서 선생님을 구하는 것이 어려운 일은 아니지 않느냐고 물었다. “일본이 한국과 문화가 정말 다릅니다. 일본은 초보자가 프로가 되기 위해서 공부할 만한 상대를 찾기가 쉽지 않거든요. 저희는 전문적인 학생들만 모여 있기 때문에 일본에서 오는 유학생들은 한국이 천국이라고 합니다. 오오조라가 어릴 때는 너무 유명한 사람의 아들이라 오히려 바둑기사를 하고 싶지 않았는데, 중2가 되면서 생각이 달라진 겁니다. 그런데 그 때는 이미 일본기원 연구생으로 들어갈 나이가 몇 달 지나 버렸는데, 날짜를 따져 보니 한국기원 연구생으로 지원할 수 있는 기간은 2달 정도 남아 있었어요. 한국기원 연구생은 국적을 안 따지기 때문에 오오조라도 지원이 가능했습니다. 만약 단번에 선발전을 통과한다면 한국기원에서 연구생 생활 1년 정도 하고 일본에 돌아가는 최상의 코스가 완성될 수 있는데…그런 기회를 잡은 거죠. 오오조라 어머니 역시 최후의 기회라고 생각하고 오오조라를 ‘장수영 도장’으로 보냈고, 저희 모두가 한마음으로 노력한 결과 연구생에 합격했습니다. 오오조라는 한국기원 연구생으로 공부를 마친 후 일본에 돌아가서 10%도 되지 않는 확률을 통과하고 2년 만에 드라마틱하게 프로기사가 되었어요”
요다는 물론이고 오오조라의 어머니도 박병규에게 진심어린 고마움을 느낄 것은 말할 필요도 없는 일이다. 이런 일로 인해 일본 프로기사들 사이에서는 장수영 도장이 잘 알려져 있어 일본에서 유학 문의가 많이 온다. 여태까지 일본에서만 유학생이 30명 정도 왔다니 좁은 바둑계에서는 놀라운 숫자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박병규 부부와 가까운 홍맑은샘을 잠시 언급하고 넘어가야겠다. 홍맑은샘은 아마추어 시절 이창호와 치수고치기에서 이기기도 할 만큼 대단한 활약을 하다가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관서기원 소속 프로기사가 되었고, 지금은 일본에서 도장을 운영하고 있다. 마치 드라마의 미생 같은 사람이랄까…홍맑은샘의 제자로는 일본 바둑계의 전설 ‘후지사와 슈코’의 손녀 후지사와 리나와 이치리키료, 시바노 도라마루 등 현재 일본 바둑계를 평정한 쟁쟁한 기사들이 있다. 심지어 리나의 아빠가 일본에서 ‘후지사와 도장’을 운영하지만 홍맑은샘에게 지도를 맡겼다니 더 말할 필요가 없는 일이다. 홍맑은샘은 세이라라는 여자 제자를 장수영 도장에 보냈고, 입단에 성공해 기쁨이 배가되기도 했다.
박병규는 연구생 생활만 8년을 했고, 연구생에서 퇴출되기 전 마지막으로 입단했다. 박병규는 제자들을 보면 자신의 과거를 보는 것 같아 최선을 다해 지도한다. 제자들의 마지막 꿈을 이뤄주는 기분이랄까...뛰어나고 빛나는 제자들을 가르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바둑을 공부한 경험을 통해 승패를 받아들이며 끊임없이 도전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프로지망생이 왔을 때 가능성이 높지 않으면 어떻게 대응하는지? 물어봤다.
“결정은 결국 본인이 할 수밖에 없고, 가능성이 낮으면 쉽지 않다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프로기사로 키우려는 부모님들은 내 자식도 ‘신진서’와 ‘최정’으로 만들고 싶어 하죠. 저로서는 어느 정도 가이드라인을 제시합니다. 보통 6학년 말, 중학교 2학년 여름에서 겨울까지, 고등학교 진학할 때 정도가 진로를 결정해야 할 시기입니다. 본인들도 솔직하게 말해 달라고 하고, 어느 정도 지도하다 보면 서로 교감이 생깁니다. 당연이 본인들도 느끼구요.
대기만성형도 있다 보니 그만 둬야 한다고 직접적으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6학년은 정말 바둑을 좋아해야 앞으로 나갈 수 있고, 중학교는 공부로 돌아갈 수 있는 기회가 남아 있지만 고등학교는 돌아가기 어려운 시기이니...한 사람의 인생이 달린 문제라 고민이 많을 수 밖에 없습니다”
자녀들에게 바둑을 가르치려는 부모님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란 질문에는 이렇게 답을 했다. “일단 바둑공부는 아이가 좋아해야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제 아이를 가르치는 마음으로 지도합니다만, 바둑인으로서 성공을 담보하기는 어려운 것도 현실입니다. 1인자가 되면 좋겠지만, 1인자가 되지 않더라도 바둑을 통해 자신의 한계에 도전하고 어린나이에 그것을 통해 내면이 단단해지고 고비를 넘길 수 있는 힘이 길러집니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관심과 믿음 속에 성장하기에 인내심을 갖고 끊임없이 격려해야 하고, 특히 실패했을 때 용기를 줘야 합니다. 아이들은 실패를 통해 더 배우고 성장하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물어 봤다. “두 아이의 육아를 하면서 프로기사로 활발히 활동하는 것에 큰 자부심을 갖고 있습니다. 멋진 엄마로, 승부를 즐기는 선수로 최선을 다하는 선생님으로 바둑의 길을 걷고 싶습니다”라고 말하자 박병규가 이렇게 마무리를 지었다. “바둑계가 어렵다고들 합니다. 특히 도장을 운영하면서 그것을 더욱 절실하게 느낍니다. 하지만.. 물고기가 맑은 물, 깨끗한 환경에서만 살 수 없듯이 바둑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바둑을 알리고, 좋은 제자들을 키우고, 바둑계에서 묵묵히 제게 주신 소명을 감당하고 싶습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다보니 유망주 김민서(프로기사)가 와서 바둑을 연구하고 있고, 프로를 지망하는 많은 아이들이 바둑공부에 열중하고 있었다. 여기서 공부하는 모든 아이들의 미래가 밝게 빛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이코노미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