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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프로] 게임 사운드 디자이너 박상문
[나는프로] 게임 사운드 디자이너 박상문
  • 오철우
  • 승인 2000.08.0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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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마법사의 무기 '상상력'
“선풍기에서 천지를 뒤흔드는 지진 소리가 들려요.” 이게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인가?
“눈을 뜨고서 귀로 듣는 소리와, 오로지 소리만을 담는 마이크 녹음 소리는 정말 달라요. 소리만을 보려는 노력을 하다 보면 선풍기에서 지진 소리가 느껴질 겁니다.
물론 쉽지 않죠.”

컴퓨터 게임의 음향효과를 만드는 게임 사운드 디자이너 박상문(32)씨의 귀엔 ‘또하나의 귀’가 달려 있다.
소리 듣기의 오랜 경험과 상상력이 빚어낸 귀다.
그래서 베개를 빠르게 그어대는 손톱 끝에서 화살 날아가는 소리가 들리고, 공중에 던져졌다가 바닥에 떨어져 나뒹구는 종이컵들에선 폭파 직후 파편들의 요란한 굉음이 들린다.


박씨는 지금 PC게임 개발업체 트리거소프트 www.trigger.co.kr에서 게임의 특수음향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최근에야 번듯한 직장을 얻었지만 사운드 디자인은 7년째 계속해온 일이다.
“사실 ‘배고픈’ 직업이다.
” 국내 PC게임 산업이 아직은 풍족한 처지가 아닌데다 게임 음향은 시나리오·그래픽에 비해 여전히 ‘찬밥’이기 때문이다.
소리 찾아 지리산 헤매던 열정 하지만 그는 소리가 너무 좋았다.
93년 뒤늦게 들어간 서울대 전기전자제어계측학과 생활을 1년도 채우지 못하고 때려치운 건 순전히 소리에 미친 탓이다.
“그해 여름방학 땐 매미 소리를 녹음하기 위해 지리산을 누비다 길을 잃어 2박3일을 헤맨 적도 있죠.” 미디동호회에 푹 빠져 학교를 제대로 다니기도 어려웠다.
집에서는 벼락같이 반대했지만, 결국 학교보다는 소리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그렇게 7년이 흘렀다.
인천 주안역 부근 트리거소프트 4층에 마련된 그의 일터엔 디지털 신시사이저, 사운드 믹서, 드럼머신, 미디 프로세서 등등 값비싼 고급 음향장비들이 수두룩하다.
하지만 그의 소리는 ‘싸구려 특수장비’(?)에서도 나온다.
스티로폴, 나무막대, 벽돌, 쇠사슬, 물통, 유리병 등 온갖 잡동사니가 들어 있는 커다란 종이상자엔 “손대지 마시오, 특수음향 장비임”이라는 경고문구가 붙어 있다.
“우습게 보이겠죠? 하지만 이것들이 내 재산이기도 합니다.
별 신통한 소리를 다 만들어내요. 게임 한편에 들어가는 음향의 많은 부분이 이렇게 소품 관찰과 실험을 거듭해 태어납니다.
보통 500번을 듣고서야 제 음향을 찾아요.” 최근 그가 참여한 출시예정 게임 ‘카오스’엔 200여가지의 음향효과가 들어갔다.
가장 먼저 소리 재료를 찾는 게 중요하다.
자연음을 따거나 효과음을 만들어 샘플을 만든다.
디지털 데이터로 저장한 다음엔 무수한 반복 실험이 계속된다.
소리를 조금씩 변형시키면서 정말 맘에 드는 소리를 찾아내는 일이다.
“아기가 ‘엄마’라는 말을 하려면 5만번이나 들어야 한대요. 수천번씩 변형시켜 들어야 성에 차겠지만 요즘엔 바빠서 수백번 정도 듣고 말아요.” 수백~수천가지 변형음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게 되면 다음 작업은 이렇게 선택된 여러 음을 섞어서 하나의 음향 파일을 만드는 일이다.
이때엔 캐릭터나 화면 동작의 시작과 끝에 소리를 정확히 맞추는 일이 중요하다.
또 게임 한편의 전체 데이터 가운데 사운드에 할당된 용량은 워낙 적기 때문에 작은 파일로도 충분히 효과를 내게 하는 비법도 중요하다.
“잘 들을 줄 알아야 제소리를 만든다” 지금까지 그는 10만개의 음향을 만들어왔다.
사람, 괴물, 동물들 소리와, 기계음·폭파음·무기소리, 그리고 특수효과음, 마법소리 등으로 분류된 그만의 음향 자료목록은 그의 큰 자산이 됐다.
“전문가의 비결요? 무엇보다 상상력이 필요합니다.
소리는 물리적 현상이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해요. 들리는 대로만 듣지 않고 그 속에서 새로움을 상상할 줄 알아야 합니다.
특히 게임의 음향효과엔 더더욱 상상력이 필요하죠.” 그는 요즘 국내 몇 안되는 게임 음향전문가들의 인터넷 모임에 참여하고 있다.
열악한 국내 상황에서 조금씩 각자가 쌓아온 게임 전문 음향효과의 비법들을 함께 나누었으면 하는 게 그의 바람이다.
게임 사운드 디자이너라는 직업에서 얻은 노하우를 책으로도 펴내고, 홈페이지도 만들어 지식을 공유하는 계획도 세워두고 있다.
“게임 사운드 디자인 분야는 앞으로 크게 발전할 겁니다.
왜냐하면 지금 너무 뒤져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매력이 있어요. 내가 할 일이 더 많잖아요.”
● 내 버릇, 나 좀 말려줘요 “무슨 새로운 소리만 들리면 눈보다 귀를 먼저 들이대게 되더라고요. 가만 있질 못해요. 새로운 물건을 보면 두드려보는 습관도 있고요. 이건 좀 쑥스런 얘긴데, 혼자 있을 때엔 목소리를 가지고 장난을 많이 쳐요. ‘꽥꽥’대면서 괴물 흉내도 내고…. 영화를 볼 땐 눈을 감고 보는 습관이 있어요. 원래 시각이 청각보다 앞서잖아요. 눈을 감으면 세세한 소리가 다 들려요. 그래서 좋은 영화는 두번씩 보죠. 귀로 보고, 눈으로 보고. 게임을 할 때도 게임음악은 꺼버리고 음향만 듣죠. 남들이 이런 내게 뭐라고 말하냐고요? 사이코라고 하더군요. 더러는 미친 놈이라고 하고, 하하 참.” ● 정말 대단해요 “단연 ‘스타크래프트’와 ‘디아블로’는 음향면에서도 대단한 게임입니다.
만든 사람이 게임을 정말 잘 알고 만들었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스타크래프트’의 타격음은 압권입니다.
사람에게 쾌감을 줘요. 실제 때리는 듯한 느낌요. ‘디아블로’의 배경음은 정말 음산하죠. 밤에 혼자 게임 배경음을 듣고 있으면 무서운 생각까지 들어요. 그래픽도 256컬러에 별 신통치 않은데도 이런 게임이 성공을 했다는 건 시나리오 외에 음향도 상당히 기여했다는 거죠. 따로 음향만 모아 듣는 마니아들도 생겨날 정도니까요. 국산 게임도 부지런히 발전해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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