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들이에 초대된 사람들은 안방의 장롱을 보고 집과 집주인을 느끼곤 한다.
마찬가지로 사무실 가구도 회사의 이미지에 큰 영향을 준다.
사무실 분위기가 우중충하거나 어지러우면 일하는 사람들마저 그런 것처럼 느껴진다.
1평 남짓한 공간에서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야 하는 직장인들에게 쾌적하고 세련된 사무공간은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하다.
80년대 중반 불어닥친 사무자동화 바람을 타고 사무가구들이 전문화, 패션화하기 시작했다.
오피스텔이 잇따라 들어서고 새로 짓는 건물들이 지능화하면서 가구들의 변신도 빨라졌다.
움직일 때마다 끼긱거리고 서랍이 덜컹거리던 철제책상은 썰물처럼 사무실 밖으로 밀려났다.
그 대신 부드럽고 고급스러운 분위기의 멜라민으로 칠한 파티클보드나 섬유판 책상이 쏟아져 들어왔다.
노른자위 시장을 공략한 ‘인체공학적 설계’ 컴퓨터 가구가 가구업계를 유혹하기 시작한 것은 특허청이 지난 85년에 컴퓨터 전용 가구에 대해서도 의장과 실용신안 특허를 허용하면서부터다.
가구업체들은 책상, 테이블, 의자, 칸막이 등 각종 사무가구를 새로 디자인하고 재질도 현대적으로 바꾸기 시작했다.
동선을 최대한 줄이고 오랫동안 컴퓨터를 써도 피로하지 않도록 하는 데 주안점을 뒀다.
이른바 ‘인체공학적 설계’였다.
컴퓨터 전용 책상은 우선 키보드를 모니터 밑에 슬라이딩 방식으로 배치,손의 피로를 덜 수 있게 했다.
VDT 증후군(Video Display Terminal Syndrome)이 회자되던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발상이었다.
컴퓨터 본체가 세우는 형이냐 눕히는 형이냐에 따라 책상을 선택할 수 있게 했고 프린터 공간을 따로 제공하기도 했다.
공간활용에 그만큼 신경을 쓴 셈이다.
컴퓨터 가구는 혼수용 가구 다음의 노른자위 시장으로 떠올랐다.
당시 컴퓨터 가구만을 전문적으로 생산·판매한 업체로는 일신가구, 신즈서플라이, 서린컴퓨터월드 등이 있었는데 이들은 대부분 컴퓨터 관련 일을 하다 가구업에 뛰어든 경우였다.
보루네오·리바트·한샘퍼시스·삼익·선퍼니처같은 대기업과 철제가구로 이름높던 동양강철·삼신가구, 인테리어 업체인 다다인터내셔널 등도 발을 들이밀었다.
저변에는 서울 을지로나 용산 전자랜드 주변의 중소업체들이 깔려 있었다.
주방가구 전문업체인 한샘은 한샘퍼시스라는 사무가구 전문업체를 별도로 두고 공세를 폈다.
당시로서는 생소했던 재택근무나 소호(SOHO;Small Office Home Office) 비즈니스를 연상시키는 ‘홈오피스’라는 브랜드를 들고 가정까지 넘봤다.
한샘퍼시스가 강세를 보인 까닭은, 부엌용 싱크대와 거의 유사한 재질과 제작 노하우를 사무가구가 요구했기 때문이다.
한샘퍼시스는 침대나 장롱에 치중하던 전통의 대기업을 물리치고 사무가구 전문 회사로 지금도 명성을 날리고 있다.
전국의 대리점에 ‘컴퓨터를 이용한 설계시스템’을 설치하고 고객이 원하는 대로 즉석에서 부엌을 설계해준 것이다. 컴퓨터 화면에서 부엌 평수에 맞게 원하는 싱크대나 찬장을 배치해보게 했다. 바닥, 천장, 조명, 냉장고 등과도 조화를 이루도록 이리저리 뜯어 맞추는 ‘신기함’을 보여줬다. 이 설계시스템을 개발한 사람들은 한샘의 가구를 컴퓨터로 설계하던 이들이었다. 이들은 한샘에서 만드는 모든 제품을 3차원으로 입력하고 부엌 도면을 평면도와 투시도로 출력하고 견적서까지 받아볼 수 있게 했다. 당시 한샘은 이 서비스를 광고하면서 “부엌을 효율적으로 설계하면 주부의 작업량을 40%, 작업시간을 25%까지 줄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한샘의 컴퓨터 설계시스템은 부엌에 패션과 생활공간 개념을 도입했다. 부엌이 단순히 식사공간이 아니라 단란한 가족모임의 장이라는 인식을 심어준 것이다. 주부들에게 컴퓨터의 효율성을 직접 보여주어 컴퓨터와의 거리감을 좁히는 데도 이바지했다.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이 마케팅은 5개 신도시 건설과 맞물려 한샘의 매출과 시장점유율을 크게 높이는 계기를 마련했다. 한샘은 부엌가구가 아니라 생활 속의 컴퓨터 이미지를 판 회사로 평가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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