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스페이스넷으로 불리는 길랏은 이스라엘의 대표적 통신장비 업체이다.
길랏 미국지사에는 이스라엘에 있는 가족들의 안부 전화가 쇄도했고, 덩달아 체크포인트를 비롯한 이스라엘 다른 업체들에도 관심이 집중됐다.
하이테크 국가를 지향하는 이스라엘로서는 나스닥의 진로에 관심을 쏟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문제는 안에 있다.
이스라엘의 하이테크 기업들은 요즘 전례없는 시련을 겪고 있다.
지난해 가장 급속히 성장한 기업 가운데 하나인 암독스는 대대적 비용절감안을 내놓았고, 일렉트릭코퍼레이션(IEC)도 눈덩이처럼 불어난 적자에 시달리고 있다.
하포알림은행 보고서에 따르면 2분기 혹은 3분기 이후에나 하이테크 기업들이 한숨을 돌릴 것으로 보인다.
이런 때일수록 경영자들은 탈출구를 찾게 마련이다.
그들에게 생존을 위한 합병은 매력적이지 않을 수 없다.
인수합병에 관한 가상 시나리오가 설득력을 얻고, 특히 동종업체간의 합병은 성공에 대한 기대를 불러일으킨다.
연구개발 시설을 함께 이용할 수 있고, 기업문화가 엇비슷해 섞이기 쉽기 때문이다.
시너지를 통해 시장지배력을 높일 수도 있다.
무선업계에서 먼저 합병의 신호등이 반짝거리기 시작했다.
비오(Vyyo)와 브리즈컴(BreezeCOM)이 많은 이들의 축복을 받으며 맞선을 본 것이다.
비오는 표준 주파수 제품을 생산하는 업체로 기업가치가 1억9500만달러에 이른다.
미국 출신 CEO를 영입해 미국 시장을 공략하고 있으며 최근 월드컴과 업무제휴를 맺었다.
브리즈컴은 비표준 주파수 제품 생산업체로 기업가치가 1억7천만달러에 이르며 주로 유럽 시장을 노린다.
제품 다양화와 시장 확대라는 장점을 내세운다.
세라곤네트워크(Ceragon network)와 스타트업 기업인 프리스페이스옵틱스(Free space Optics)도 합병을 모색하고 있다.
세라곤네트워크와 프리스페이스옵틱스는 기술적으로 서로 보완관계여서 더욱 기대를 모으고 있다.
일반적으로 라디오 장비는 눈과 비에 치명적이고, 레이저 장비는 안개에 치명적이다.
라디오에는 표준 주파수가 필수적이지만, 레이저에는 적외선이 필수적이다.
따라서 이를 하나로 묶는 광 무선통신 솔루션만이 기업과 고객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다.
하지만 동종업체라고 해서 항상 합병 가능성이 높은 것은 아니다.
‘가족들의 반대’가 적지 않은 것이다.
예컨대 2억8천만달러짜리 네트로(Netro)와 1억6천만달러짜리 플로웨어와이어리스시스템(FLRE)은 상업적으로나 기술적으로나 완벽한 조합인데도 합환주를 들 수가 없다.
두 기업과 업무제휴를 맺은 업체가 서로 앙숙이기 때문이다.
네트로는 루슨트와 OEM 협정을, 시스코와는 업무제휴 협정을 맺고 있다.
플로웨어는 지멘스가 27%의 지분을 갖고 있다.
플로웨어의 3GHz 솔루션은 네트로 것보다 월등하고, 네트로의 LMDS 주파수 솔루션은 플로웨어 것보다 우수하지만 차마 혼사를 들먹일 수가 없는 것이다.
동종업체의 합병에선 힘겨루기가 가장 위험한 요소로 지적받곤 한다.
합병 후 누가 기선을 잡고, 누가 더 영향력을 발휘하느냐를 따지다보면 합병이 깨지게 마련이다.
이 때문에 합병을 고려할 땐 기술적 시너지 효과를 절대적 위치에 올려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또한 소규모 기업이나 지역에 특화한 기업은 재무 차원의 합병이 바람직하다는 지적도 만만치않다.
자금이 말라붙은 요즘같은 시절엔 가장 현실적인 방책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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