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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 은행업계 잠 못 이루는 밤
[비즈니스] 은행업계 잠 못 이루는 밤
  • 이경숙 기자
  • 승인 2002.02.2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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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실적 눈에 띄게 호전… 수익구조 차별성 없어 장기 성장전망 ‘갸우뚱’ “은행 기업설명회에 가면 다 똑같은 말들을 해요. 가계여신을 늘리겠다, 우량 중소기업 대출을 늘리겠다, 신용카드 사업을 강화하겠다…. 그외엔 추구하는 게 없는 것 같아요.” 한 증권사 은행담당 연구원은 은행들의 기업설명회 자료를 뒤적거리며 심드렁하게 말한다.
기업구조조정이 마무리 단계에 들어서면서 지난해 실적도 좋아졌고 올해 실적도 좋을 전망이지만 수익구조가 모두 비슷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은행 기업설명회 시즌이 돌아왔다.
1월말부터 2월말까지 12개 은행들은 저마다 국내외 거점에서 기업설명회를 열고, 지난해 올린 높은 실적과 장밋빛 비전과 경영전략들을 자랑하고 있다.
지금까지 발표된 실적들은 다들 훌륭하다.
2000년 대비 2001년 당기순이익 증가율을 보면 국민은행은 19.5%, 조흥은행은 416.8%, 대구은행은 95%를 기록했다.
증가요인은 비슷하다.
이자 이익과 수수료 이익이 크게 증가했다.
특히 신용카드 수수료 수익이 눈에 두드러지게 많아졌다.
2000년보다 국민은행은 73%, 조흥은행은 64.9%, 대구은행은 63.5%가 늘었다.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은 발표를 앞둔 다른 은행들의 실적 역시 2000년보다 호전된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대우, 현대 구조조정이 마무리돼 대손충당금을 추가로 적립하는 부담이 사라졌고 IMF 위기 전에 24개이던 은행이 12개로 줄어들었다는 점은 올해 은행의 수익성을 낙관적으로 바라보게 할 만한 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행산업의 장기적인 성장성에 대해 애널리스트들은 고개를 갸웃거린다.
대부분의 은행들이 가계 대출, 우량중소기업 대출, 신용카드 사업을 강화함으로써 수익성을 높이겠다면서 비슷한 사업전략을 내밀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은행은 이자 마진 확대, 신규사업 추진, 수수료 수입 증대, 본부 부서 통합, IT(정보기술) 인프라 비용감축, 상품 교차 판매 등으로 수익 시너지를 높일 계획이다.
조흥은행은 신용카드사와 자산운용사를 은행에서 독립, 전문화시키고 수수료 사업을 강화하겠다는 방침이다.
또 주택대출영업팀 등 소매금융 부문에 새로운 마케팅 체제를 도입하고, 기업경영컨설팅팀 등 차별화된 서비스로 중소기업 고객을 공략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대구은행 역시 소매와 중소기업 여신을 확대하고 신용카드 사업과 수수료 사업을 강화하겠다는 전략을 내놨다.
은행들은 이미 가계와 중소기업에 대한 여신 비중을 크게 늘리고 있다.
전체 원화대출금 중 가계 대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조흥은행이 2000년 28.9%에서 2001년 41%로 늘었고 대구은행이 17.26%에서 25.2%로 늘었다.
중소기업 대출비중은 조흥은행이 41.6%에서 45%로, 대구은행이 60%에서 64.4%로 높아졌다.
그만큼 대기업 여신은 줄어들었다.
서울증권 여인택 선임연구원은 “IMF 이전에는 대기업 대출이 많던 조흥, 하나, 외환 등 시중은행들과 대구, 부산 등 지방은행들이 모두 소매금융과 중소기업 여신 부문을 늘리고 있다”며 “대부분의 은행들이 국민은행의 수익구조와 비슷해졌다”고 분석한다.
수수료 수입 확대 등 대책마련 부심 금융연구원의 연구위원들 역시 이 점에 우려를 나타낸다.
외환위기 이전에는 소매전문 은행인 국민, 주택은행 이외엔 너나없이 기업대출에 치중해 금융시스템의 위기가 왔다.
그런데 최근엔 모두가 가계 대출 비중을 늘리고 있는 것이다.
금융연구원이 최근에 발표한 보고서 <최근 가계금융부채의 현황과 시사점>에 따르면 조흥, 한빛, 외환 등 주요 시중은행의 가계 대출 비중은 1993년 말엔 전부 10% 미만이었다.
그런데 2000년 말에는 이 비중이 24%에서 30% 사이로 크게 증가했다.
특히 제일은행은 49%까지 늘어났다.
금융감독원은 모든 은행이 유사한 방식으로 자산 운용을 하게 되면 특정 자산항목에 충격이 왔을 때 은행시스템 전체까지 그 충격이 확산될 위험이 있다고 경고한다.
치열한 경쟁은 벌써부터 가계 대출 시장의 수익성을 끌어내리고 있다.
가계 대출 예대마진(예금금리와 대출금리의 차이로 생기는 수입)은 98년 4월 이후 6%대까지 급격히 상승해 그해 9월부터는 기업 대출 예대마진을 넘어섰다.
그러나 그해 11월부터는 지속적 하락을 거듭해 2001년 11월엔 3.16%로 떨어졌다.
같은달 기업 대출 예대마진은 2.77%를 기록해 가계 대출 예대마진과 격차를 0.39% 수준까지 좁혔다.
금융연구원은 앞으로 은행들이 더 적극적으로 가계 대출을 늘릴 경우 수익률 하락은 더욱 심화될 것이라고 내다본다.
크레디리요네(CL)증권은 은행들이 주택담보가계대출 금리를 0.01%포인트 낮추면 은행 순이자마진(NIM)이 0.1%포인트 하락한다고 추정하고 있다.
한편 또하나의 격전지인 중소기업 대출시장에서는 은행 사이의 빈익빈 부익부가 깊어지고 있다.
금융감독원 자료에 따르면 2001년 국민은행을 비롯한 기업은행, 한빛은행, 농협, 신한은행 등 시장점유율 상위 5개 회사는 전체 중소기업 대출시장의 59.2%를 차지했다.
이는 2000년 말 57.9%에서 1.3%포인트 가량 상승한 수치다.
반면 20개 금융회사 중 11개 회사의 시장점유율이 감소했다.
금감원은 올해에는 상위 5개사의 시장점유율이 60% 이상을 웃돌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하지만 은행들의 가계, 중소기업 여신 확대는 정부가 은행한테 적용한 기준을 충족시키기 위해선 필요불가결한 선택이었다.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 10% 이상이라는 ‘글로벌 스탠더드’를 지켜내야 하기 때문이다.
이 기준에 따르면 BIS 비율 산정시 적용되는 위험가중치가 100%인 기업 대출에 비해 가계주택담보대출은 50%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서울보증보험이 보증을 선 중소기업 채권도 위험가중치가 50%이다.
이에 따라 지난해 중소기업 대출 규모는 2000년의 132조1158억원보다 12.6% 늘어난 148조7072억원을 기록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정부가 계속 기업 대출을 늘리라고 종용하자 일부 은행들은 신용등급 BBB0 이상의 우량 중소기업들을 찾아다니며 돈을 꿔가라고 간청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은행산업이 성장성을 유지하는 길은 결국 수익구조 다변화, 시장장악력 증대뿐이다.
투자은행화, 금융그룹화, 방카슈랑스(은행·보험 겸업) 등 현재 은행들이 내놓고 있는 청사진들이나 가지각색의 인수합병 시나리오들은 그러한 전망에서 나오는 것들이다.
그러나 청사진들은 완성되려면 아직 멀었고, 시나리오들은 실현이 불확실하다.
가장 정확하고 실현가능한 방법은 수수료 수입 확대이다.
은행들은 현재 원가보다 낮은 가격에 각종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한 은행의 자기앞수표 발행원가는 장당 1373원이다.
그러나 실제 징수료는 50원이었다.
각종 증명서 발급은 건당 원가가 4725원에서 1만2870원에 달했지만 수수료는 1천~1만원을 부과하고 있었다.
또 정부의 국고금 수납대행, 소득세 원천징수, 금융정보 제공업무 등 각종 공적 서비스도 공짜로 제공하고 있었다.
금융감독원 이재연 박사는 “기업의 자금수요 감소가 지속되고 있고 저금리체제로 예대마진에 의존한 수익창출에 한계가 나타나고 있다”며 “수수료체제를 전면 개편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 박사는 미국 은행들의 변신을 사례로 든다.
미국 은행들은 80년대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수수료 수입 강화정책을 쓰기 시작했다.
수수료 수익은 비교적 경기변동에 민감하지 않기 때문이다.
은행들은 예전엔 무료로 제공했던 서비스에 수수료를 신설하거나 기존 서비스 수수료 가격을 대폭 올렸다.
또 투자은행 등 업무영역을 넓히면서 비이자수익을 늘렸다.
그 결과 미국 은행에서 수수료 수익이 차지하는 비중은 80년 1.7%에서 90년엔 3%, 2000년엔 4.1%로 급증했다.
우리 은행들도 없던 수수료를 신설하거나 기존 서비스의 수수료를 올리면서 수수료 수익 확대를 꾀하고 있다.
하나은행은 지난해 12월 중순부터 평균 잔액 10만원에 못미치는 통장에는 이자를 지급하지 않기 시작했다.
조흥은행은 1천원이던 통장 재발급 수수료를 2천원으로 올렸다.
한미은행은 통장 분실 등 사고 신고를 받는데 1천원의 수수료를 받기로 했다.
외환은행은 자기앞수표를 조회해주는 데 장당 1천원을 받기 시작했다.
외환은행과 하나은행은 예금주 명의변경 수수료를, 한빛은행은 개인신용조사 수수료를 새로 만들었다.
문제는 고객의 저항이다.
고객 입장에선 예전엔 공짜로, 혹은 적은 가격에 받았던 서비스에 돈을 지불하라고 하면 당연히 서비스가 뭐가 달라졌냐는 항의가 튀어나오게 마련이다.
또 수수료를 올리는 기준도 정확하게 마련해야 한다.
예를 들어 은행들은 송금수수료를 지역별, 금액별로 최저 500원에서 최고 7천원까지 받고 있다.
이것은 은행전산망이 제대로 갖춰지지 못했던 때의 기준을 따르고 있는 것이다.
소비자보호원 정윤선 선임연구원은 “이젠 은행전산망이 공동화되어 있기 때문에 돈을 부산으로 보내건 옆동네로 보내건 은행으로선 똑같은 비용이 드는데도 은행들은 수수료를 다르게 받고 있다”며 “은행이 수수료를 인상하려면 먼저 소비자가 공감할 만한 가격 기준을 제시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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