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한글에뮬레이터 `태백한글'을 들고 나타나 화려한 조명을 받았던 사람. 1992년 실패의 쓴 맛을 삼키며 조용히 시장을 떠났던 김일진(36)씨가 8년여만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재기를 노리고 던진 승부수는 인큐베이팅 서비스. 1998년 세운 인터넷 솔루션 개발업체`테크웨이'를 발판 삼아 점프를 시도한다.
김씨는 5월9일 서울 역삼동 리츠칼튼호텔에서 자신의 새로운 사업인 인큐베이팅 서비스의 공개설명회를 열었다.
인큐베이팅 서비스에 ‘아이비즈온’(Your Internet Business Is ON)이란 이름까지 내걸었다.
별도법인인 앳벤처도 설립했고, 제일화재, 한국컴퓨터, 피코소프트, 메리디엔 벤처 파트너스, 맥시드 인베스트 컨설팅 등을 협력사로 끌어 안았다.
“인큐베이팅 회사들이 흔히 제공하는 사무실, 시스템 인프라, 자금, 경영컨설팅 뿐 아니라 인터넷 사업의 핵심인 비즈니스 모델을 기획하고 필요한 시스템까지 개발해주는, 테크놀로지 기반의 인큐베이팅 전문 회사입니다.
기술이나 아이디어만으로는 인터넷 사업을 할 수 없어요. 기획, 마케팅, 영업 따위가 긴밀하게 어우러져야 하는데 신생 벤처기업이 이 모든 것을 다 할 수는 없죠.” 다분히 자신의 경험담처럼 들린다.
‘태백한글’ 시절의 뼈저린 기억이 떠오른 것일까. “기술만 좋으면 성공할 수 있다고 굳게 믿었지요. 그 믿음이 완전히 무너지는 데 꼭 1년6개월 걸렸습니다.
” 10년 전 영문 소프트웨어에서도 한글을 입력하고 출력할 수 있게 해주는 한글에뮬레이터 ‘태백한글’을 선보였을 때의 기대는 남달랐다.
당시 국내 PC 사용자에게 한글 입출력 문제는 난제 중의 난제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대는 한풀에 꺾였다.
“판매 첫 달 6000만원어치를 팔았습니다.
쾌재를 불렀죠. 그런데 다음달 매출이 500만원으로 줄더군요. 그 다음달부터는 거의 제로였습니다.
” 불법복제가 기승을 부린 탓이었다.
용산 조립PC에 ‘태백한글’이 실려나오며, 겉으로야 잘나가는 제품이었지만 정작 개발업체에 돌아온 것은 좌절감 뿐이었다.
결국 대형 PC업체에 1개당 400원씩 끼워팔기용으로 공급하며 버틸 수밖에 없었다.
그것도 오래 가지 않았다.
김씨는 1992년 태백한글에서 완전히 손을 뗐다.
태백한글이 대량으로 복제되면서 경쟁업체들에게 악영향을 미쳤다는 것이 지금도 마음아프다.
“천명 가운데 한사람만 제품을 사줘도 된다고 생각했죠. 기획이나 마케팅은 그냥 될 줄 알았죠. 너무 순진한 계산법이었습니다.
” 김씨는 당시 상황이 지금만 같았어도 한국의 마이크로소프트가 탄생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괜한 너스레를 친 다.
그는 사장에서 다른 회사 직원으로 몸을 낮췄다.
그러면서 최고경영자의 마인드가 기업의 운명을 결정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국내 벤처기업의 경우 대부분 제품개발자인 엔지니어들이 최고경영자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제 변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가 인큐베이팅 대상자로 30대 후반에서 40대 경영자를 꼽는 것도 오프라인 경험의 중요성을 높이 사기 때문이다.
사업설명회 이후 테크웨이에는 20여명의 예비창업자들이 문을 두드렸다.
6월1일 공개모집에 나서 올해 안에 40개 업체를 대상으로 1차 투자까지 성사시키겠다는 것이 그의 두번째 야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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