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로써 1949년 건국 이후 최초의 ‘무혈’ 권력교체가 벌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이번 권력승계 과정도 마지막 고비에 다다른 느낌이다.
지난 8월13일과 14일 대만 일간지 '중국시보'와 홍콩 영자지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7월 마지막주에 시작된 ‘베이다이허회의’가 이미 8월초에 끝났으며, 9월에 예정됐던 중국공산당 16기 전국대표대회(당대회)는 11월로 연기된 게 확실하다고 잇달아 보도했다.
주요 서방 언론들도 10월말 장쩌민 주석이 미국을 방문한다는 이유를 들어 그동안 ‘9월 개최설’에 의문을 품어오다가, 이제는 아예 ‘11월 연기설’쪽에 무게를 두는 편이다.
15일 중국 정부가 9월29일 베이징에서 열리는 중일수교 30주년 기념행사에 장쩌민 주석이 공식적으로 참여한다는 내용을 일본 정부에 정식으로 통보한 것도 이같은 해석을 뒷받침해준다.
전국대표대회와 같은 중요 행사가 벌어질 경우, 일반적으로 최고지도부의 모든 대외행사 일정이 취소되기 때문이다.
물론 중국 최고위급 지도자들이 발해만의 대표적 휴양지 베이다이허에서 여름휴가를 보내며 중요 현안을 논의하는 베이다이허회의가 통상 20여일간 진행되는 관례를 깨고 과연 예년보다 일찍 끝난 게 사실인지, 어떤 결론을 도출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확실히 전해지지 않고 있다.
잘 알려졌다시피 올해 베이다이허회의에 전세계의 관심이 쏠린 것은 장쩌민 주석의 은퇴와 권력승계에 관한 논의가 핵심 의제였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예년보다 회의일정이 단축된 것은 장쩌민 주석이 완전한 권력승계에 미온적 입장을 보임에 따라 논의 자체가 아예 이루어지지 않았거나, 치열한 권력다툼이 벌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는 해석을 내놓기도 한다.
그간 중국 정부가 단 한차례도 공식 언급을 하지 않았음에도 서방언론들은 올해 가을의 전국대표대회에서 중국 최고지도부의 권력승계가 확정될 것이라는 점을 기정사실화해왔다.
국가주석, 당 총서기 및 중앙군사위원회주석을 겸하고 있는 장쩌민이 물러나고 ‘제4세대’ 지도부가 그 자리를 꿰차게 되리라는 게 그 내용이었다.
올해 5월 후진타오 부주석의 미국 방문을 두고 주요 서방언론이 일제히 큰 관심을 보인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올해 나이 59살의 후진타오가 75살인 장쩌민의 뒤를 이어 권력을 무난히 승계할 것이라는 게 대체적 관측이었기 때문이다.
가장 큰 요인은 연령제한 규정이다.
과거 덩샤오핑은 당 정치국 상무위원 및 부총리급 이상 고위지도자의 신규취임 연령을 70살 이하로 규정해놓은 바 있다.
지난 97년 열린 15차 전국대표대회에서 70살의 장쩌민은 논란 끝에 국자주석직을 비롯한 주요 공직의 연임에 성공했다.
그럼에도 올해 상반기를 지나면서 이같은 해석은 조금씩 수그러든 편이다.
그 핵심에는 장쩌민의 집권연장 가능성이 놓여 있었다.
일부 중앙군사위 위원이나, 특히 장쩌민의 권력기반인 ‘상하이방’을 중심으로 유임요구 탄원이 잇달아 제기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애초 예상과는 달리 권력승계 과정이 순탄하게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으리라는 해석에 점차 힘이 실렸다.
올해 베이다이허회의에 특별히 관심이 쏠린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하지만 주요 서방언론과 국내외 전문가들은 올해 베이다이허회의를 계기로 중국의 권력승계 논의는 대체로 권력교체의 큰 틀은 유지하되, 안정을 유지한다는 명분 아래 장쩌민 주석이 일정 기간 영향력을 행사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는 데 더 많은 무게를 싣는 편이다.
11월에 열릴 예정인 전국대표대회에서도 대체로 이런 시나리오가 확정되리라는 게 일반적 전망이다.
일단 규정상 연임이 금지된 국가주석직은 내년 3월 전국인민대표자대회 시점에서 예정대로 후진타오 부주석이 승계하는 게 거의 확실해 보인다.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인 당 총서기직 역시 내놓을 것으로 예상하는 목소리가 더 큰 편이다.
장쩌민이 당 총서기와 상무위원직에서 물러날 경우 7명으로 이루어진 상무위원 전원을 새로 임명해야 한다는 점에서 다소 논란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권력이양의 큰 틀을 깨지는 못하리라는 게 논거다.
다만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직은 당분간 장쩌민이 계속 보유하리란 의견이 지배적이다.
덩샤오핑에서 장쩌민으로 권력이 넘어오는 과정 역시 어림잡아 5년이라는 세월이 걸렸다는 점에서, 장쩌민 역시 완전한 퇴장보다는 일정 기간 막후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가능성이 높은 편이다.
물론 이같은 시나리오는 여전히 많은 위험요소를 안고 있다.
민간 기업인의 공산당 입당을 정식으로 허용한 이른바 ‘3개 대표이론’을 둘러싸고 반발을 보이는 당내 좌파는 물론, 완전한 세대교체를 주장하는 50대 세력들이 장쩌민을 더욱 압박할 경우, 권력승계를 둘러싼 갈등이 폭발할 가능성도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특히 대만문제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마오쩌둥이 ‘건국의 아버지’, 덩샤오핑이 ‘개혁개방의 아버지’로 불리듯, 장쩌민은 ‘통일의 아버지’에 대한 강한 미련을 갖고 있다.
재임기간 중 홍콩과 마카오의 귀속을 이끌어낸 장쩌민은 마지막 사업으로 대만문제에 집착하는 편이다.
최근의 예에서 알 수 있듯, 중국과 대만간 갈등이 격화할 경우, 의외로 ‘장쩌민 시대’가 연장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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