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는 보통 냉매와 모터, 파이프 등이 들어 있다.
하지만 냉매와 모터 대신 반도체만 들어 있는 정수기도 있다.
이 반도체가 ‘열전 반도체’다.
일반 반도체는 전기를 걸면 자유전자나 전자가 빠져나간 구멍인 ‘전공’이 반도체 안에서 이동한다.
열전 반도체는 전기를 걸면 열이 이동한다.
이런 현상은 1834년 프랑스 물리학자 장 샤를 펠티에가 처음 발견했다.
열전 반도체는 제2차 세계대전 후 군사무기와 우주선에 이용되면서 크게 발전했다.
한 예가 옛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을 때였다.
당시 소련군은 자신의 탱크가 아프가니스탄의 높은 기온 속에 오래 있으면 전자부품들이 고장날 것으로 걱정했다.
이 때문에 소련군은 열전 반도체를 이용해 탱크의 전자부품을 냉각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하지만 당시 전쟁이 빨리 끝나는 바람에 소련군이 이 기술로 큰 효과를 보지는 못했다.
미군도 ‘사이드 와인더’라는 열추적 미사일의 일부 기종에 열전 반도체를 사용해 추적을 방해하는 열을 식혔다.
현재 쓰이는 열전 반도체는 대부분 ‘비스무스 테루라이드 합금’으로 만든다.
이 반도체의 양쪽에 전기를 넣으면 열이 이동해 한쪽 끝은 섭씨 70도까지 온도가 올라가고 반대쪽은 영하 10도까지 내려간다.
열전 반도체는 냉각과 가열을 함께 할 수 있으며 국부 냉각이 쉽다.
보통 냉장고보다 온도를 정확하게 맞출 수 있고, 부피도 크게 줄일 수 있다.
진동이나 소음도 거의 없다.
하지만 에너지 효율이 기존 냉장고보다 낮아 30리터 이하의 작은 냉장고에서만 경제성이 있다.
요즘 많은 가정에 김치냉장고가 있다.
1994년 국내에 처음 나온 20리터급 김치냉장고가 바로 열전 반도체를 이용한 것이다.
열전 반도체를 이용하면 김치의 숙성기간에 맞춰 온도를 정확히 맞출 수 있다.
그러나 지금 나오는 김치냉장고는 보통 냉장고와 똑같은 냉각방식을 이용한다.
김치냉장고가 100리터 이상으로 커진데다, 보통 냉각방식도 온도를 정확히 유지할 수 있도록 발달했기 때문이다.
열전 반도체는 현재 자동차용 냉·온장고를 비롯해 피크닉용 냉·온장고, 화장품용 냉장고, 일부 정수기 등 크기에 제한이 있거나 소형으로도 충분한 곳에 많이 쓰인다.
식당에서 쓰이는 찬 물수건 제조기, 와인냉장고, 차량용 캔 쿨러, 혈액보관기, 자판기, 항온항습기, 에어컨, 졸음 방지기 등에도 열전 반도체가 이용된다.
맥주컵을 차게 유지하는 받침, 벽걸이 냉장고도 열전 반도체를 이용해 개발되고 있다.
일본 도요타사는 시트속에 열전 반도체를 깔아,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게 해주는 자동차도 내놓았다.
열전 반도체가 쓰이는 또 다른 곳은 정밀 전자부품이다.
고급 디지털카메라의 촬상소자(CCD)에는 열전 반도체가 붙어 있어, 사진을 찍을 때마다 재빨리 열을 식혀준다.
집에서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것도 광통신망 중간중간에 열전 반도체가 설치돼 있기 때문이다.
이동통신 무인기지국, 항공기 블랙박스 등 열이 많이 발생하는 전자회로에는 열전 반도체가 있다.
열전 반도체를 이용해 전기를 만들 수도 있다.
냉각하는 방식을 거꾸로 적용해 열전 반도체의 양끝에 온도 차이를 주면 전기가 만들어진다.
바닷물은 심해수와 표층수의 온도 차이가 많이 난다.
온도가 서로 다른 두가지 바닷물과 열전 반도체를 이용하면 ‘해수 온도차 발전기’가 된다.
소각장이나 발전소같이 남아 도는 열이 있는 곳에서도 온도차를 이용해 발전을 할 수 있다.
국내에서도 한국전기연구소 이희웅 박사팀이 2년 전 온수열을 이용한 1kW급 열전 발전 시스템을 처음으로 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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