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재 옮김
이산 펴냄
글로벌 경제 주연 동양으로
오리엔트 : 동양; 눈부신, 찬란한; 위치를 바르게 잡다, 방향을 찾거나 정하다.
리오리엔트 :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하다.
- [콘사이스 옥스퍼드 사전] -
안드레 군더 프랑크의 이름 앞에는 으레 ‘종속이론의 창시자’라는 칭호가 붙어 다닌다.
1960년대 후반에서 70년대 초반 무렵, 사미르 아민 등의 학자와 더불어 흔히 ‘종속이론 4인방’에 당당히 이름을 올리던 그였다.
어린 시절 나치의 압정을 피해 독일 땅을 등진 후 미국에서 학자의 길에 들어선 프랑크의 발길은 당시 뜨거운 에너지를 토해내던 드넓은 땅 라틴아메리카 대륙과 운명적으로 맞닥뜨리게 된다.
세계 자본주의 ‘체제 안’의 종속적 지위가 곧 라틴아메리카 대륙의 ‘발전’과정을 이해하는 밑거름이라는 그의 도발적인 생각은 1969년에 선보인 대표작 '저발전의 발전'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학설사적으로 보자면 서구(유럽) 중심의 ‘근대화론’에 첫 파열음을 내던 순간이었음에 틀림없다.
‘서구=중심’이라는 잣대를 들이댄다는 점에서, 근대 자본주의 체제를 온통 장밋빛으로 그렸던 주류이론이나, 혹은 그 반대편에 섰던 이른바 비판사회이론(마르크시즘)이나 결국엔 한몸뚱이라는 게 프랑크가 지닌 생각의 뼈대였다.
특히 ‘비서구사회=전통사회=후진사회’의 등식에서 한걸음도 빠져나오지 못했던 마르크시즘을 향해 프랑크를 중심으로 한 일군의 학자들은 비판의 칼날을 곧추세웠다.
비서구사회=후진사회 등식에 물음표
그로부터 30여년의 세월이 훌쩍 흐른 뒤, 프랑크가 우리 곁을 다시 찾아왔다.
73년 군사 쿠테타가 일어나기 직전까지 라틴아메리카대륙의 한줄기 희망이었던 칠레 아옌데 정부의 경제정책에 깊숙이 발을 담그던 현실참여적 성향의 소장학자는 어느새 70대 노학자로 변했다.
하지만 30년이라는 기나긴 세월이 남긴 흔적만큼이나, 그의 이름을 다시 떠올리게 만든 '리오리엔트:아시아시대의 글로벌경제'에서는 여러모로 크고 작은 ‘변화’가 읽힌다.
물론 지금 이 순간 우리에게는 ‘글로벌학적’(globalogical) 잣대가 필요하다는 그의 믿음은 30년 전의 모습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
“세계경제라는 몸통을 누비고 다니는 무역과 화폐의 흐름은 산소를 싣고 순환계를 구석구석 누비고 다니는 혈액과 일맥상통한다”는 그의 지적은 이미 오래 전부터 곧 하나의 ‘글로벌 체제’로서 세계경제를 이해하려는 그의 출발점을 이루고 있었던 탓이다.
세계 자본주의 ‘체제 안’의 종속적 발전이라는 그의 명제도 따지고 보면 글로벌 경제라는 하나의 세계체제를 전제할 경우에만 성립할 수 있는 것이다.
프랑크가 흔히 ‘세계체제론’으로 이름난 임마뉴엘 월러스타인과 한묶음으로 묶이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하지만 '리오리엔트'에서 그의 발걸음은 좀더 앞으로 멀찌감치 내달았다.
프랑크를 포함해 세계체제를 머릿속에 그리던 일군의 학자들의 관심은 언제나 ‘어떻게 서구는 세계체제를 탄생시켰는가’라는 근본물음에 답하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비서구사회의 현재를 서구(중심)가 만들어놓은 글로벌 체제라는 틀 안에서 바라보아야 한다는 믿음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그 체제 자체는 서구가 만들어놓은 것이었을 뿐이다.
비서구사회는 그 안에 ‘편입’된 셈이다.
이쯤 되면 서구중심주의에 대한 날선 비판과는 아랑곳없이 서구에는 여전히 주연배우의 역할이 주어지고, 비서구사회는 조연 내지는 대상에 머물렀을 뿐임을 알아차릴 수 있다.
세계체제가 탄생한 지 대략 500년이 지났다는 그간의 속설에 정식으로 도전장을 내밀고 그 역사를 5천년까지 한껏 늘려놓은 프랑크의 작업 속에는 이런 한계마저 뛰어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서구에 의해 세계체제가 만들어진 게 결코 아니다!” 그럼 그 주인공은? '리오리엔트'에서 프랑크가 내놓는 답은 바로 ‘오리엔트’(아시아)다.
역사상 서구사회가 패권을 쥐었던 시기는 극히 한순간이었일 뿐이고, 나머지 시기 동안의 주인공은 엄연히 오리엔트였다는 게 그가 내린 결론인 셈이다.
“동양에 대한 새로운 방향 설정”
이쯤 되면 이 책의 제목이 '리오리엔트'인 건 여러모로 흥미롭다.
이 말 속에는 ‘동양을 다시 보자’는 메시지가 담겨 있을 뿐 아니라, 자신의 옛 작업을 비판적으로 되돌아보면서 ‘새로운 방향을 설정하겠다’는 또 다른 의지가 짙게 묻어 나오기 때문이다.
이 책의 초고가 쓰여진 게 96년 말~97년 초라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한때 다음 세기의 주인공인 양 당당히 칭송되던 아시아 사회가 금융위기라는 직격탄을 맞으며, 다시금 ‘후진사회=전통사회’라는 낯익은 공식의 굴레 속으로 내동댕이쳐지던 무렵이었으니 말이다.
그래서인지 이런 분위기를 정면으로 거슬러 글로벌 경제를 곧 아시아시대로 자리매김하려는 대목에선 노학자의 과욕마저 느껴짐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어찌보면 이 책의 진정한 매력은 늘 스스로를 중심에 세웠던 서구인들에게 스스로를 거울에 찬찬히 비춰볼 수 있는 시간을 허락한다는 데 있을지 모른다.
저자 자신의 표현을 빌자면, 그들 스스로 “벌거벗은 임금님”으로 다시 태어나게 하는 셈이다.
때마침 지구촌 한편에서 서구문명의 최첨단 무기들이 불을 뿜어대며 문명간의 격한 충돌을 뽐내고 있는 이 순간, '리오리엔트'가 던지는 진짜 메시지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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