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벤처 갑부들이 하루아침에 종적을 감춘 2000년 이후 3년여 만에 테헤란밸리가 다시 흥청거릴 기세를 보이고 있다.
실적 향상과 코스닥에서 주가 고공행진으로 당장 몇백억대 부자들이 갑자기 생겨나고들 있다.
최근 가장 주목을 받은 이는 게임업체 웹젠 사장을 거쳐 여성포털 마이클럽을 끌어가고 있는 이수영(37) 사장이다.
이 사장은 여자-미모-미혼-발레리나 출신-결별-떼돈… 온갖 화젯거리를 몰고다녔다.
어떤 스포츠신문은 이 사장을 인터뷰하며 남성관에 관심이 많았는지, ‘어떠어떠한 남자가 좋더라’는 식의 제목을 뽑은 인터뷰 기사를 내보내기도 했다.
웹젠은 지난달 23일 코스닥에 이름을 올린 이후 내리 상한가 행진을 거듭했다.
3만2천원이던 시초가는 며칠 만에 10만원을 돌파했고, 최대주주인 이 사장은 어느새 400억원이 넘는 보유주식 평가액을 보게 됐다.
웹젠·넷마블 등 새로운 신화 창조 이런 날이 오기까지 그는 치밀하게 준비했다고 한다.
세종대 무용과를 졸업한 그는 미국에서 발레를 전공하고 예술학 석사학위도 받았다.
90년대 중반 귀국해서는 소프트웨어업체 해외마케팅 과장, 국제금융 컨설팅을 하다가 지금의 웹젠 경영진과 의기투합해 게임사업에 뛰어들었다.
지난 1분기에 매출 130억원에 영업이익 89억원을 안겨준 온라인게임 ‘뮤’가 이들의 작품이다.
그런데 마치 로또에 당첨되기라도 한 사람처럼 바라보는 시선에 대해서 이 사장은 결코 동의할 수 없다는 태도다.
“잠자다가도 일하는 꿈을 꾸고, 미용실 갈 시간도 없이 일했다’고 한다.
웹젠을 경영하면서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만큼 술 실력도 늘었다고 얘기한다.
미디어에 나오는 연예인 비슷한 사진과 달리, 실제로는 청바지나 건빵주머니가 달린 바지를 입고 다니며 회사를 휘젓는 스타일에 가깝다.
웹젠의 대박으로 이 사장의 과거 동업자인 ‘고졸 3인방’도 돈방석에 앉았다.
김남주(32) 현 사장을 비롯해, 조기용 상무, 송길섭 이사 등이 모두 300억원대의 주식을 가지고 있다.
김 사장은 예림미술고 졸업, 조 상무는 안양과학대 중퇴, 송 이사는 의정부공고 졸업이 학력에, 모두 서른을 갓 넘긴 나이다.
하이텔 게임동호회가 이들 사이 인연의 시작인데, 이 사장의 경영과 마케팅 능력을 빌리기 위해 3+1체제로 2000년 웹젠이 출범한 것이다.
그러나 지난해 9월 이 사장은 이들과 사이가 틀어지면서 웹젠을 떠나야 했다.
웹젠 신화에 못지않은 깜짝 스토리를 만들어낸 장본인은 또 다른 게임업체인 넷마블 방준혁(35) 사장이다.
넷마블은 지난 2001년 매출 6억6천만원에 7억원의 적자를 냈다.
그해 말 100억원의 회사가치로 영화·음반 등의 엔터테인먼트회사인 플레너스 자회사로 편입된 넷마블은 지난주 기업 역사상 전무후무한 일을 발표했다.
공식적으로는 모회사인 플레너스와의 1 대 1 합병인데, 두 회사의 가치를 같게 평가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자회사가 모회사를 삼킨 꼴이다.
넷마블 주식은 플레너스 주식의 20배가 넘게 평가받고, 방 사장은 오는 8월 합병이 이뤄지면 플레너스에서 최대주주(25.7%)이자 공동대표로 서게 된다.
플레너스의 최근 주가가 유지된다고 가정하면, 그는 1300억원대의 갑부가 된다.
엔씨소프트 김택진 사장이나 다음커뮤니케이션 이재웅 사장에 이어 벤처 갑부 3위에 오르는 수준이다.
하지만 그에게도 넷마블을 이끌기 전 연거푸 사업에 실패하며 고전을 면치 못했던 때가 있었다.
90년대에 초고속인터넷 보급이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 영화 사이트를 하다가 망한 아픈 기억도 있다.
아직도 그는 방 두칸짜리 전셋집에서 산다고 하는데, 집을 안 사는 건지 못 사는 건지, 지켜보는 이들을 알쏭달쏭하게 만든다.
웹젠이나 넷마블처럼 갑작스럽게 떠오른 갑부는 아니지만, NHN 이해진(36) 사장의 부상도 눈에 띈다.
이 사장은 지난주 한때 13만원대를 돌파한 주식 덕에 750억원대의 부자 반열에 올라섰다.
닷컴기업 최고경영자치곤 지분(7.8%)이 적기 망정이지, 남들만큼만 큰 지분을 가지고 있더라면 벤처 부호 1위도 넘볼 뻔했다.
이들에 견주면 새발의 피에 불과하지만, 뜨는 닷컴의 직원들도 스톡옵션이나 우리사주로 몇천만원에서 억대의 재산을 가지게 돼 희색이 만면하다.
그런데 사회 전체에 인터넷 벤처 열풍을 몰고오다가, 주가가 수십분의 1로 토막나며 허망하게 꺼진 2000년의 벤처열기는 지금과 어떻게 다르고 또 어떻게 비슷할까? 우선 업체별 시가총액이나 최대주주 등의 주식평가액은 당시와 비교하면 ‘쑥스러운’ 수준이다.
지난주 NHN과 다음커뮤니케이션의 시가총액이 한때 각각 1조원을 넘었다고 법석을 떨었지만, 당시에는 업체는 물론, 최유신 리타워테크놀러지스 회장(2조5천억원), 김형순 로커스 사장(1조1천억원) 등 최대주주 개인의 주식 평가 총액도 조 단위가 됐다.
“묻지마 투자 아니다” 긍정적 평가도 또 몇년 전 적자투성이 기업의 전망이나 대세만 믿고 뛰어들던 ‘묻지마’ 투자 열기 때와는 달리, 지금의 우량 닷컴들은 매출 성장이나 순이익률 등에서 분명히 다른 점이 있다.
수익성이 검증되지 않은 기술로 허풍을 부리는 대신, 안정적인 엔터테인먼트 수익모델로 자리잡은 닷컴들이 현재의 붐을 주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두번의 급등이 모두 저금리시대에 400조원에 이른다는 부동자금이 마땅한 안식처를 찾지 못하고 분출구만을 찾다가 벌어졌다는 점에서는 닮은꼴이다.
또 닷컴기업의 주가수익률(PER·시가총액을 순이익으로 나눈 지표로, 수치가 높을수록 주가가 이익에 견줘 비싸다는 뜻)이 다른 업종에 비해 뚜렷하게 높다는 점도 비슷하다.
미국 나스닥의 열기라는 외풍에 영향받았다는 점도 모든 불안을 잠들지 못하게 하는 이유가 되고 있다.
웹젠의 공모주청약에 3조3천억원이 몰렸다는 점은 거품의 징조라고밖에 볼 수 없다는 지적도 많다.
이번에 떠오른 벤처 갑부들도 결국 일장춘몽의 쓴맛을 볼 것인지, 아니면 오래가는 부자로 남을 것인지에 투자자와 벤처인들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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