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표는 경기부양, 승부처는 3분기. 확실한 U턴이다.
고개 숙인 김진표 경제팀의 발걸음도 덩달아 빨라졌다.
노무현 대통령이 중국 방문을 마치고 돌아옴에 따라 정부가 곧 내놓을 것으로 알려진 하반기 경제운용방향의 윤곽 역시 드러나는 분위기다.
한마디로 총력전이다.
정부는 재정확대, 특별소비세 및 근로소득세 인하, 금리인하 등 모든 재정·통화정책 수단을 총동원해 대대적인 경기부양에 나설 태세다.
최근까지도 최소한 연간 4%대의 성장을 자신한다며 경기부양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던 것과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오는 8~9월 중에 2차 추경예산을 편성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정부의 발빠른 움직임에 통화당국도 마침내 금리인하 카드를 꺼내 적극 화답하고 나섰다.
지난 10일 한국은행은 금융통화위원회 정례회의를 열어 콜금리 목표를 4.0%에서 3.75%로 0.25% 내렸다.
지난 5월 금리를 0.25% 내린 지 꼭 두 달 만이다.
박승 한국은행 총재는 “이번 금리인하로 가계 및 기업의 이자부담이 2조원 가량 줄어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로써 그간 솔솔 피어나던 추가 금리인하론도 마침내 세상 빛을 보게 됐다.
실물지표 줄줄이 하락세…내수침체 심각
이처럼 출범 다섯 달이 채 지나지도 않았는데 노무현 정부가 앞뒤 가리지 않고 전면적인 경기부양 몰이에 뛰어든 것은 실물경제가 이미 위험수위에 다다랐다는 인식 때문이다.
이라크전쟁, 북핵문제, 카드채 문제 등 안팎의 불확실성이 사라지면 실물지표들도 서서히 개선되리라던 믿음이 슬그머니 힘을 잃고 있다.
5월 산업생산지수는 1.9% 감소했고, 도소매판매와 설비투자도 전년도 같은 기간에 비해 각각 4.6%, 8.9%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9일 2분기 경제전망을 발표한 KDI(한국개발연구원)는 올해 성장률을 3.1%로 하향조정했다.
당초 5.3%로 예상했던 올해 성장률을 4.2%로 한 차례 수정한 데 이어, 또다시 3%대로 내린 것이다.
민간소비 및 설비투자 증가율도 각각 2.1%, 3.4%에서 0.6%, 1.0%로 떨어뜨렸다.
두 분기 연속으로 전 분기 대비 마이너스 성장을 이어간 탓이다.
다음날 금융연구원도 3.4% 성장을 예상하는 하반기 경제전망 자료를 발표하며 뒤를 이었다.
이 자료에서 금융연구원은 아예 “하반기에도 불확실성이 지속된다면 성장률이 2%대 중반으로 떨어질 수 있다”고 경고하고 나섰다.
11일 한국은행이 내놓은 6월 중 기업경기조사 결과에서도 이런 추세는 두드러진다.
제조업체의 업황전망 경기실사지수(BSI)는 73을 기록해 2001년 1분기 이후 28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특히 내수기업 전망지수는 지난달 79에서 72로 크게 떨어진 것으로 나타나 심각한 내수침체 여파를 짐작케 해준다.
물론 통화당국이 또다시 금리인하 카드를 들고 나온 것은 세계경제의 움직임과 따로 떼어놓을 수 없다.
지난달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금리를 내린 데 이어, 많은 나라들에선 금리인하 도미노 현상이 한창이다.
한국은행이 콜금리를 내린 10일엔 인도네시아와 영국의 중앙은행도 이 대열에 동참했다.
영국의 금리는 55년 이래 최저 수준이다.
이처럼 전 세계 중앙은행이 앞다퉈 금리인하 전쟁을 벌이는 이유는 인플레이션율이 비교적 낮은 상태에 머물면서 그만큼 통화정책의 공간이 예전보다 넓어진 탓이 크다.
금리를 내리면 주식시장으로 돈을 흘려 보낼 수 있는 데다, 자국통화가치 절상압력을 효과적으로 이겨낼 수 있기 때문이다.
금리인하 배경을 설명하던 박승 총재도 “환율하락 추세를 억제할 수 있는 수단”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실제로 국내 소비자물가는 지난 4월 이후 3개월 연속 하락했다.
통화증가율도 점진적 하락세로 돌아섰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건 주택시장 안정세를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전월 대비 아파트매매가격 상승률은 5월 2.3%에서 6월엔 0.6%로 눈에 띄게 떨어졌다.
여전히 금리인하가 부동산시장을 들썩일 수 있다는 우려는 남아 있지만, 예전만은 못한 편이다.
씨티은행 오석태 이코노미스트는 “현재 경제상황이 아주 좋지 않은 만큼, 부동산 가격상승만 걱정하고 있을 때는 아니라고 본다”는 의견을 밝히기도 했다.
통화당국이 정책금리를 인하할 수 있는 건 그나마 모두 이런 조건 덕이다.
“금리인하 기대감 이미 반영”
그럼에도 금리인하의 효과에 대해선 의견이 엇갈리는 편이다.
경제 주체들의 심리가 너무 위축되어 있을 뿐 아니라, 워낙 현 금리수준이 낮은 상태라 소비 및 투자 진작효과는 미미할 것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세계적인 저금리 기조로 인해 세계 전체가 유동성 함정에 빠져 있다는 일부의 목소리도 이런 판단에서 비롯된다.
금리인하 발표 당일, 여의도의 한 펀드매니저는 “한마디로 너무 늦었다.
정부가 경기선행적 정책을 펴는 데 실패했다”는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하지만 한편에서는 이럴 때일수록 정부와 통화당국이 경기부양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는 평가도 내놓는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의 왕윤종 연구위원 역시 “경기부양이라는 확실한 정책방향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일단 긍정적”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개별 주체들의 위축된 심리를 되살려주는 게 무엇보다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럴 때일수록 거시정책보다는 미시적 대책을 통해 정책적 불확실성을 해소해 주는 게 중요하다는 말과도 통한다.
그런데 뭐니 뭐니 해도 경제 주체들의 심리를 가장 먼저 읽을 수 있는 코드는 시장의 반응이다.
금리인하 당일, 시중금리와 주가는 거꾸로 놀았다.
통상 통화당국이 정책금리를 내리면 시중금리는 떨어지고, 부동자금이 주식시장으로 옮겨갈 거라는 기대감으로 주가는 오르게 마련이다.
하지만 이날 3년짜리 국고채 수익률은 0.01% 오른 반면, 종합주가지수는 전날보다 4.99포인트나 떨어진 700.51로 마감했다.
“금리인하에 대한 기대감은 이미 시장에 반영되어 있다”는 펀드매니저의 냉소적 평가가 실감나는 대목이다.
최근 시장 장세는 외국인 매수에 따른 유동성 장세이므로, 금리인하보다는 오히려 미국 증시상황에 더 민감한 반응을 보일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분위기다.
당장 눈길은 오히려 바깥으로만 쏠리는 게 사실이다.
15일 그린스펀 FRB 의장이 미 하원 금융서비스위원회에 참석해 올해 하반기와 내년도 경제전망을 담은 반기보고서를 발표하기 때문이다.
정부가 뒤늦게 난리법석을 피우고 있는데도 정작 시장의 눈길은 바깥만 쳐다보고 있는 것, 그 자체가 거울에 비친 경제 주체들의 불안한 심리를 보여주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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