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금 정사면체 퍼즐 맞추기를 하고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쪽엔 우리가 걸어 온 과거가 있고, 그 반대편엔 우리가 앞으로 맞이할 미래가 있습니다.
물론 아직은 보이지 않죠. 혼란스러운 건 당연합니다.
” 앨빈 토플러와 더불어 세계적인 미래학자로 이름을 날리는 존 나이스빗 교수가 한국 땅을 찾았다.
전 세계에서 800만부 이상이 팔려 나간 대히트작 <메가트렌드(Megatrends)>의 저자답게, 7월24~25일 양일간 정부 주최로 열린 차세대 성장산업 국제회의에 참석차 내한한 그는 단연 관심의 대상이었다.
대회 당일 노무현 대통령의 기조 연설에 앞서 개회식 축사도 그의 몫이었다.
새로운 성장 엔진을 애타게 찾고 있는 한국 경제 현실에 비춰 그의 입에서 튀어나올 말 한마디 한마디에 관심이 쏠리는 건 당연했다.
그는 특히 글로벌한 맥락에서 진행되는 10가지 트렌드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며 얘기를 풀어 나갔다.
새로운 성장 엔진을 찾는 발걸음은 바로 이런 트렌드를 짚어 내는 데에서 시작된다는 말과 함께. 오늘날처럼 경제 성장을 지속하기 어려운 적이 없었던 데다, 대외 여건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는 한국 경제의 속성상 세계 경제의 트렌드를 정확하게 읽어 내는 게 무엇보다 필요하다는 메시지가 전해졌다.
그의 논지는 단순했지만, 꽤나 명쾌했다.
“이제는 브랜드를 구입하는 시대죠.” 여기까지는 사실 뻔한 얘기다.
“하지만 과거처럼 수동적인 방법으로 아이콘을 소비하는 게 아니에요. 세상은 ‘트레이드마크’에서 진정한 의미의 ‘트러스트마크(신뢰마크)’로 옮겨 가는 중입니다.
트러스트마크의 핵심은 바로 소비자와의 정서적 교감이죠. 나이키 제품을 소비하며 유명 운동선수와 정서적 교감을 이루는 경지에 도달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
그럼 세계인들이 ‘한국’의 휴대전화가 아니라 ‘삼성’의 휴대전화를 구입하는 이 세상에서 정부가 할 일은 무엇일까? 그의 충고는 단호했다.
“정부가 새로운 성장 엔진을 찾겠다고 직접 뛰어들어서는 안 됩니다.
” 더 이상 예전과 같은 ‘산업 정책’이 끼어들 공간이 없다는 말이다.
대신 정부는 새로운 산업이 생겨날 수 있도록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으로 스스로의 임무를 끝마쳐야 한다는 게 요지였다.
금융위기 이후 한국에서 조금씩 싹트기 시작한 기업가 정신이 더욱 왕성하게 자랄 수 있는 토양을 만들어 줘야 한다는 대목에선 목소리에 짐짓 힘이 들어가기도 했다.
하지만 자기치유 능력을 갖춘 자연의 자정 기능을 거듭 눈여겨보라며 세계 경제의 커다란 흐름에서 벗어나지 말 것을 주문하는 나이스빗 교수는 기업들에게도 따끔한 충고를 잊지 않았다.
바로 또 하나의 글로벌 트렌드로 자리 잡은 ‘기업의 사회책임’을 게을리 하지 말라는 것. “지난날 비즈니스의 목적은 단지 돈을 버는 것이었죠. 이제는 다릅니다.
기업의 사회책임은 더 이상 보너스 상품이 아니에요. 그 자체가 바로 생존을 위한 필수요소입니다.
주주만 바라봐서는 안 됩니다.
더 넓게, 더 멀리 봐야죠.” 그가 가리킨 곳에는 바로 지구 환경이, 종업원의 인권이, 또 지역 공동체가 놓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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