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앞서 나가는 바람에 고전을 면치 못한 적이 많아요.” 생활용품 업체 피죤의 이주연(39) 관리·총괄부문장(부사장)은 회사 자랑을 해 달라고 하자 대뜸 이런 말을 끄집어낸다.
지금은 일반화된 섬유 유연제 ‘피죤’이 처음 등장한 건 1978년 무렵. 당시만 해도 정전기를 없애고 옷을 부드럽게 해주는 섬유 유연제는 국내에선 존재하지 않는 낯선 제품일 뿐이었다.
세탁기를 쓰는 집도 많지 않아서 대부분 빨랫비누로 옷을 빨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25년이 지난 뒤 피죤은 1천억원대 이상의 매출을 올리는 중견 기업으로 성장했다.
‘피죤’이 불황에도 별다른 타격을 받지 않는 어엿한 생필품으로 자리를 잡게 된 것이다.
최근 보기 드물게 대규모 공채를 실시한 것에서도 이런 분위기가 물씬 느껴진다.
섬유 유연제 ‘피죤’뿐 아니라 대체로 피죤에서 출시한 제품들은 대기만성형인 것들이 많다.
출시 초기엔 너무 앞서 나가서 낭패를 보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빛을 발한다는 것이다.
지난 91년 국내에서 처음으로 바디클렌저 ‘마프러스’를 내놨을 때도 그랬다.
비누로 샤워를 하던 사람들이 하루 아침에 바디클렌저를 쓸 리 만무했다.
이렇게 새로운 시장을 개척한 이미지 탓에 외국 브랜드라는 오해를 받은 적도 많았다고 한다.
올해 시장에서 큰 인기를 모으고 있는 ‘무균무때’도 마찬가지다.
무균무때는 뿌리기만 하면 50여가지의 유해균을 박멸시킬 수 있는 세균 잡는 세정제다.
“무균무때를 내놓기 위해 연구 작업에 들어간 게 84년이었어요. 5년 뒤에 ‘바이졸’이란 이름으로 제품을 출시했었죠. 하지만 지금처럼 살균 제품에 대한 인식이 없던 때라 역시 고전을 면치 못했어요.”
이주연 부문장은 “히트 상품은 그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게 아니라 부단한 노력으로 만들어 내는 것”이라고 말한다.
세탁기 보급률이 높아지면서 자연스레 피죤의 매출도 고속 성장을 해 왔지만, 부단한 마케팅 노력도 있었다는 것이다.
예컨대 80년대 초반에는 이른바 ‘공동 마케팅’을 적극적으로 벌여 주목을 받기도 했다.
삼성전자에 제안을 해서 세탁기를 구입하는 사람들에게 피죤을 선물로 나눠준 것이다.
무균무때는 올해 사스 공포가 세계적으로 확산되면서 적극적인 판촉을 벌여 매출이 급성장한 경우다.
월 평균 매출이 8억원에서 20억원까지 늘어났다.
사실 무균무때는 피죤의 대를 이어 앞으로 회사를 먹여 살릴 주력 제품이다.
10년 넘게 20억원의 개발 비용을 투자한 노력이 이제서야 빛을 보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는 소비자들의 어깨 하나씩만 앞서갈 겁니다.
”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신제품 개발 행진을 계속할 거냐는 질문에 이 부문장은 다소 신중한 태도를 보인다.
마케팅 측면에서 보면 한 걸음은 커녕 어깨 하나씩만 앞서갈 때가 효과도 가장 크다는 이야기다.
이런 맥락에서 개인용 탈취제는 앞으로 공략해 볼 만한 틈새시장이란다.
소비자들의 욕구가 막 피어오르고 있는 상황에서 업계가 조금만 리드해 주면 된다는 것이다.
생활용품 업계의 경쟁은 날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언제까지 단일 브랜드로 시장을 독식해 왔던 화려한 과거만 이야기할 순 없다.
위협적으로 다가오고 있는 다국적 기업들에 대항할 채비는 갖춰져 있는 걸까. 지금까지 없던 시장을 개척하느라 소비자와 싸움을 벌여 왔다면 앞으로는 시장 내에서 치열한 경쟁을 겪어야만 한다.
하지만 의외로 이 부문장의 말엔 여유가 한껏 배어 있다.
“막대한 자본을 갖고 있는 다국적 기업은 파워는 있지만, 현지에 침투하는 속도는 느릴 수밖에 없어요. 까다로운 한국 소비자들의 니즈에 맞추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고요. 오랫동안 사람들의 생활 습관에서부터 연구 작업을 벌여 온 피죤을 따라잡기가 쉽지는 않을 겁니다.
”
피죤 창업자인 이윤재 회장의 딸이기도 한 이 부문장은 지난 96년 피죤에 디자인실장으로 입사해 마케팅 본부장을 거쳤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서울여대에 서양화 강의를 나갈 정도로 그림에 대한 애착이 깊다.
지난 7월 부사장으로 승진한 뒤로는 경영에만 매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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