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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사회책임 경영④] 한국 기업, 어디까지 왔나
[기획연재/사회책임 경영④] 한국 기업, 어디까지 왔나
  • 장승규 기자
  • 승인 2004.01.1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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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시민’ 싹이 보이는 13개 기업 성적표

최근 국내에서 사회책임 경영과 관련해 상당히 의미 있는 움직임이 잇따르고 있다.
지난해 12월23일, 기업책임을 위한 시민연대가 제일투자증권과 함께 ‘사회책임 투자(SRI) 머니마켓펀드(MMF)’를 선보였다.
국공채에 주로 투자하는 MMF 형태라는 한계는 있지만, 국내에서 시판된 첫 SRI 펀드라는 점에서 많은 주목을 끌었다.
앞으로 펀드 규모가 커지면 사회책임 경영에 충실한 기업만을 골라, 적극적인 투자에도 나설 계획이다.
기업에 재무적 성과만이 아니라 사회적, 환경적 성과도 함께 요구하는 금융시장의 압력이 마침내 국내에서도 구체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기업에도 사회책임 경영이 조금씩 확산되고 있다.
지난 연말, 삼성SDI에 이어 현대차가 지속가능성 보고서를 내놓았다.
이 보고서에는 현대차가 지난 1년 동안 경제적, 환경적, 사회적 측면에서 어떤 기여를 했는지가,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GRI 가이드라인에 따라 항목별로 상세하게 수록돼 있다.
지속가능성 보고서 발간은 기업이 주주, 소비자, 직원, 사회단체, 지역사회 등 다양한 이해 관계자로 구성된 사회 속에서, 제 몫을 다 하는 ‘기업시민’으로 거듭나기 위한 첫 걸음에 해당한다.


그러나 이런 부분적인 진전에도 불구하고, 아직 많은 기업이 사회책임 경영을 또 다른 규제나 불필요한 부담쯤으로 여기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변화의 필요성을 감지한 몇몇 기업조차 이를 어떻게 구체화해야 할지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다.
명확하게 정리된 개념이 없는 탓에 윤리 경영이나 환경 경영과 헷갈려 하는 기업도 적지 않다.
세계의 앞선 기업들이 사회책임 경영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이를 강력한 미래 경쟁력으로 주조해 나가고 있는 지금, 우리 기업들은 과연 어디쯤 와 있는 걸까. 국내 기업의 사회책임 경영 현황을 알아보기 위해 은 지난 2003년 12월8일부터 31일까지 20일 동안, 국내 기업 가운데 나름대로 사회책임 경영을 준비하고 있다고 판단되는 13개 기업을 뽑아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설문대상 기업은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지속가능발전기업협의회(KBCSD) www.kbcsd.or.kr와 전국환경친화기업협의회www.ef21.co.kr의 도움을 받아 선정했다.
설문내용은 유엔환경계획(UNEP) 비상근자문기구인 GRI(Global Reporting Initiative)가 만든 가이드라인에 맞춰 경제, 환경, 사회 등 3가지 주요 영역을 모두 포괄하도록 구성했다.
이번 조사는 우리 기업의 사회책임 경영 현황을 체계적, 종합적으로 살핀, 최초의 사례다.


경제부문
정보공개 꺼려…위기관리 합격점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경제, 환경, 사회라는 3개 기둥으로 떠받쳐진다.
이 가운데 경제적 책임은, 기업이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경제적 번영을 위해 얼마나 기여 했는가를 따지는 것이다.
여기서는 기부나 자선 활동보다는 기업 자체의 비즈니스 활동을 통해 사회에 기여한 몫을 더 중요하게 계산한다.
일반적으로 지역별 매출비중, 전체 구매물량 규모, 지역별 임금 및 복지지출, 투자자에 주는 배당과 채권자에 대한 이자지급, 국가에 낸 총 세금액수 등이 핵심적인 지표로 활용된다.


그러나 이번 조사에서는 아쉽게도 이런 항목들이 대부분 포함되지 못했다.
조사 기간이 짧은 데다, 아직은 적극적인 정보공개를 부담스러워 하는 기업이 많았기 때문이다.
대신 기업지배 구조의 투명성을 중심으로, 경영 활동에서 소비자나 투자자 등 이해 관계자들을 어느 정도 고려하는가를 집중적으로 알아봤다.


우선 조사대상 기업의 사외이사 비율이 여전히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50%에 가까운 기업에서 사외이사 비율이 25% 미만인 것으로 조사됐다.
물론 이사회 인원의 절반 이상을 사외이사에 내준 기업도 3곳이나 됐다.
반면, 사외이사를 한 명도 두지 않은 기업도 있었다.
지난해 잇따라 터진 분식회계 사건으로 문제가 된 회계법인의 컨설팅업무 겸업 문제에 대해서도 물어봤다.
회계감사를 맡은 회계법인과 별도의 경영컨설팅 계약을 맺고 있다고 답한 기업은 한 곳도 없다.
7개 기업이 회계감사만 받고 있다고 답했다.
회계감사와 경영컨설팅 계약을 동시에 맺을 경우, 분식회계를 제대로 적발해 내기 어렵다는 게 여러 나라에서 나타난 현상이다.
그러나 이번 조사에서는 이 항목에 응답하지 않은 기업이 6곳이나 됐다.


기업의 지속가능한 경영을 위해서는 위기관리 능력이 필수적이다.
조사대상 가운데 절반이 넘는 7개 기업이 경영상의 위험을 관리할 수 있는 별도의 담당부서를 두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담당부서가 없다고 답한 기업은 한 곳에 불과했다.
화재나 천재지변, 또는 각종 안전사고에 대비하는 기업은 이보다 더 많았다.
9개 기업이 별도의 안전관리 전담부서를 두고 있고, 이들은 최소 연 1회 이상 정기적인 안전 테스트를 실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소비자와 투자자는 이제 기업 경영에서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대상으로 자리 잡았다.
대부분의 기업이 정기적으로 고객만족도 평가를 실시하고 있고, 8개 기업은 고객관계관리 전담부서를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많은 기업이 최소 연간 1회 이상 투자자를 대상으로 기업설명회를 열었다.
1년 동안 무려 6차례나 기업설명회를 연 곳도 있다.



환경부문
환경 경영 시스템 도입 너도나도

환경분야에선 우리 기업도 이미 상당한 수준에 올라있는 게 사실이다.
상당수 기업이 최근 몇 년 동안 경쟁적으로 환경 경영 시스템을 도입했다.
이런 사실은 이번 조사에서도 확인됐다.
조사대상 기업 모두가 문서화된 형태의 환경정책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이는 물론 환경 경영에 앞장서고 있는 기업을 중심으로 조사대상 기업을 선정한 탓이기도 하다.
일반 기업으로 시야를 조금만 넓히면, 여전히 성과보다는 과제가 더 많다는 걸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조사대상 기업은 모두 환경정책 전담부서를 설치해 놓고 있고, 부사장(2개 기업), 전무(3개 기업), 상무(4개 기업), 부장(4개 기업)이 그 부서의 최고 책임자를 맡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환경 관련 투자에도 적극적이다.
조사대상 13개 기업은, 2002년 기준으로 평균 112억2200만원을 환경설비, 환경 관련 부서 직원 인건비, 환경교육비, 환경 경영 시스템 운영비 등 환경 투자비용으로 사용했다.
이를 매출액 대비 비중으로 환산하면, 평균적으로 매출액의 0.5%를 환경 투자에 사용한 셈이 된다.
2002년 기준으로, 해당 문항에 응답한 11개 기업 가운데 4개 기업만이 환경 투자비용을 축소한 반면, 7개 기업은 이를 9~200%까지 늘렸다.


조사대상 기업은 모두 하나 이상의 환경 관련 인증을 획득하고 있고, 그 중 11개 기업이 자원 및 폐기물의 양적관리 목표를 사전에 설정해 두고 있었다.
그러나 환경보고서를 정기적으로 발간하는 곳은 9개 기업에 불과했다.
또한 조사대상 기업들은 사내뿐만 아니라 인근 지역 사회의 환경개선 활동도 활발하게 벌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사1하천 가꾸기 운동, 국토청결 운동, 댐유역 가꾸기 운동, 자연생태계 보존운동, 인근 해역 보호활동, 환경 미술대회 개최, 공원조성기금 지원, 꽃씨 나누기 캠페인, 환경학교 운영, 치어방류사업, 철새도래지 정화활동 등이 대표적인 사례로 꼽혔다.



사회부문
‘선심성 자선’ 패러다임 바뀌어야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실천해야 한다는 데 반대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제 문제는 결국 이를 어떻게 구체화할 것이냐로 모아진다.
이미 많은 기업이 크고 작은 형태로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을 벌이고 있다.
이번 조사대상에 포함된 기업들도 2003년 기준으로, 매출액의 0.74%를 기부금으로 내놓고 있었다.
이를 금액으로 따지면, 매년 각 기업이 평균 208억3200만원을 사회에 내놓는 셈이 된다.
그러나 한편에선 기업의 이러한 기부활동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다.
기업이 자신의 본질적인 활동과는 무관한 선심성 ‘자선’을 통해 사회적 책임을 손쉽게 벗어 버리려 한다는 지적이다.
이들은 기업활동의 패러다임 자체가 이제는 완전히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조사대상 기업들은 윤리규정 제정 등 형식적인 변화에는 적극적인 반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내용적으로 실천하는 데는 여전히 소홀한 것으로 나타났다.
12개 기업이 문서화된 윤리규정을 갖고 있고, 최고경영자(3개 기업), 부사장(1개 기업), 전무(1개 기업), 상무(2개 기업), 이사(2개 기업) 등이 이 규정을 담당하는 최고 책임자를 맡고 있었다.
조사대상 13개 기업 가운데 9개 기업이 임직원에 대한 성과보상 체계를 갖고 있고, 같은 수의 기업이 1년에 최소 1회 이상 직원만족도 조사를 실시했다.
많은 기업이 임직원의 직무 관련 교육(8개 기업), 자기계발 지원(6개 기업), 재취업 등 특별교육(7개 기업)을 지원했다.
반면, 노동조합참가비율은 평균 44%에 불과했다.
이 비율이 0.12%인 기업도 있었다.
장애인, 여성 등 소수자의 고용비율은 더 충격적이다.
전체 임직원 가운데 장애인은 1.2%, 여성은 13%에 불과했다.
해당 항목에 응답한 조사대상 기업 가운데, 여성 임원이나 장애인 임원이 있는 기업은 단 한 곳도 없었다.


이번 조사로 국내 기업이 환경부문에서 비교적 앞서 있는 반면, 사회부문에선 상대적으로 뒤쳐져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경제부문에선 기업의 소극적인 정보공개가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그러나 이번 설문조사 과정에서 사회책임 경영에 대한 기업 관계자들의 뜨거운 관심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우리 기업이 이미 변화의 길로 들어섰음을 확인하기에 충분한 것이다.



박원일/ 한겨레기업평가센터 컨설턴트 pwi88@economy21.co.kr
신예정/ 한겨레기업평가센터 컨설턴트 newtree@economy21.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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